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집권당 하마스를 이끌어 온 최고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이란에서 암살되자 중동지역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하니예를 암살한 이스라엘이 오히려 이란을 선제타격할 수 있다면서 적반하장 격으로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7월 31일(현지 시각) 이란의 수도 테헤란 영빈관에 묵던 하니예가 암살된 데 있다. 하니예는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고자 테헤란을 방문 중이었다.
이란은 이전부터 하니예가 이끄는 하마스를 지원하며 팔레스타인을 옹호해 왔다. 이 가운데 하니예가 이란 수도 한복판에서 암살된 것이다.
하니예는 이스라엘과 휴전 논의를 하던 하마스 측 협상단의 대표였다. 전쟁 중에 협상단 대표를 암살하는 건 상대국을 자극해 더 큰 전쟁을 벌이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이런 점에서 네타냐후 정권이 하마스와의 휴전을 반대하고 확전을 노렸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7월 31일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성명에서 “범죄자 시온주의 정권(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이 우리의 손님을 순교하게 했다”라면서 “공화국 영토에서 발생한 쓰라린 사건과 관련해 그의 피 값을 치르는 것을 우리의 의무로 여겨야 한다”라고 밝혔다.
8월 3일 이란의 체제를 수호하는 최정예 이란혁명수비대는 “지난달 31일 하니예에 대한 테러는 7킬로그램의 탄두를 실은 단거리 발사체를 숙소 밖에서 발사해 벌어진 일”이라고 밝혔다.
또 “(하니예의 암살은) 시온주의 정권이 계획해 실행하고, 미국의 범죄 정권이 방조한 것”이라며 “적절한 때와 장소에서 가혹한 처벌”을 받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자 이스라엘이 이란에 선제타격을 경고했다.
8월 5일 이스라엘 매체 ‘와이넷’에 따르면 8월 4일 밤 네타냐후 총리는 안보 고위 인사들을 소집해 이란을 향한 선제타격 방안을 논의했다. 이스라엘을 향한 이란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징후가 보이면 먼저 이란을 공격하겠다는 계획이다.
네타냐후 정권은 일부러 이란 등 중동지역의 반미진영을 자극해 확전을 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니예가 암살되기 전날인 7월 30일, 이스라엘군은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남부 주거 지역을 공습했다. 이스라엘은 공습으로 레바논의 주요 정파인 헤즈볼라 최고사령관 푸아드 슈크르를 살해했는데 하루 뒤에는 하니예까지 암살했다.
그동안 이란은 팔레스타인의 집권당인 하마스, 레바논의 주요 정당 헤즈볼라, 예멘의 집권세력인 후티를 지원해 왔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한 이스라엘로서는 이란을 중심으로 뭉치는 중동의 반미진영을 타격해 또 다른 전쟁을 노린 것일 수 있다.
뉴욕타임스와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에 따르면 8월 1일 네타냐후 총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통화에서 “(하니예의) 암살이 (하마스와의) 휴전 합의에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하니예의 죽음으로 하마스가 더욱 많은 압박을 받게 되면, 하마스와의 휴전 합의 타결을 앞당길 수 있다며 이런 주장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하니예의 암살이 휴전을 앞당길 것이란 네타냐후 총리의 말은 모순됐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굳이 테헤란 한복판에서 하니예를 암살하면서 이란까지 자극했기 때문이다. 이는 중동지역에서의 확전을 바라지 않고서야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따라서 휴전 협상을 주장하는 네타냐후 총리의 말은 거짓으로 보인다.
최근 하니예 암살로 불붙는 중동지역의 확전 양상은 네타냐후 총리의 처지와 관련이 있다.
지난해 10월 7일 팔-이 전쟁이 발발하자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 소탕’을 주장하며 전쟁을 주도해 왔다. 하지만 네타냐후 정권은 지금까지 하마스 소탕이라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에서 집단학살 범죄국가로 몰려 궁지에 빠진 상황이다.
게다가 네타냐후 정권이 하마스와의 인질 협상을 관두면서 이스라엘 경제는 막대한 전쟁 비용으로 휘청대고 있다. 이 때문에 수천 명이 넘는 이스라엘 국민이 거리에 나와 ‘네타냐후 퇴진’, ‘전쟁 중단’을 외치며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전쟁을 멈추게 되면 그 책임은 오롯이 네타냐후 총리가 지게 된다. 네타냐후 총리에게는 부정부패 의혹도 있어서 총리직에서 내려오면 법적 처벌을 받게 될 것이란 관측이 무성하다. 이뿐만 아니라 국제형사재판소가 전쟁범죄 혐의로 네타냐후 총리에게 체포영장을 청구한 상태다.
네타냐후 총리로서는 정치적 생명을 붙들려면 전쟁을 이어가 권력을 쥐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네타냐후 정권을 두둔해 온 미국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바이든 대통령은 8월 1일 네타냐후 총리와의 통화에서 “헛소리 좀 작작 하라”라고 격분했다고 한다. 미국은 확전을 원하지 않는데 네타냐후 총리가 제멋대로 일을 벌여 미국을 곤란하게 만들었다는 식이다.
이렇게 보면 언뜻 미국이 중동지역의 확전을 꺼리는 듯하다. 미국과 서방의 주요 언론도 이스라엘은 확전을 바라지만 미국은 바라지 않고 있다는 시각의 보도를 내놓고 있다.
그런데 바이든 대통령의 말과 달리 미국은 하니예 암살 뒤 이스라엘 인근에 병력을 보내며 앞뒤가 다른 행동을 보였다.
8월 2일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장관은 “이란과 가자, 레바논, 예멘의 무장 단체들의 위협에 대응해 중동에 전투기와 해군 함정을 추가 배치했다”라고 발표했다. 미국은 미 공군의 스텔스기 F-22 편대 등을 중동지역으로 급파했다.
미국으로선 중동지역에서의 확전은 싫지만 그렇다고 이스라엘을 포기할 수도 없기에 네타냐후 총리의 ‘물귀신 작전’에 말려든 처지로 보인다.
앞으로도 막다른 골목에 몰린 네타냐후 총리가 전쟁을 부추기고 미국이 뒷받침하는 분위기가 계속될 듯하다. 이 때문에 중동지역 전체가 전쟁에 휘말리는 5차 중동전쟁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네타냐후 총리의 무리한 확전 시도는 이스라엘 국내외에서 더욱 큰 반발을 부르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수많은 목숨을 빼앗는 반인도적·반평화적 행태로 자신의 몰락을 재촉하고 있는 듯하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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