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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일꾼들, 김면후 연대장을 따라 배워야”

이인선 기자 | 기사입력 2024/09/10 [15:00]

북 “일꾼들, 김면후 연대장을 따라 배워야”

이인선 기자 | 입력 : 2024/09/10 [15:00]

▲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8월 2일 조선인민군 공군 직승비행연대를 방문해 훈장 수여식을 진행했다. 김면후 연대장은 공화국영웅 칭호를, 직승비행연대는 자유독립훈장 제1급을 받았다. 사진 속 김정은 국무위원장 옆에서 깃발을 잡고 있는 사람이 김면후 연대장이다.  © 노동신문

 

북한이 최근 일꾼들에게 김면후 조선인민군 공군 직승비행연대 연대장을 따라 배울 것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은 헬리콥터를 직승기라 부른다.

 

김면후 연대장이 어떤 인물이기에 일꾼들에게 따라 배우라고 하는 것일까?

 

노동신문은 3일 「우리 당이 바라는 혁명의 지휘성원의 능력과 자질은 어떤것인가」라는 기사에서 김면후 연대장의 일화를 소개했다.

 

지난 7월 27일 폭우로 압록강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평안북도 신의주시와 의주군의 여러 섬에서 홍수 피해가 발생했다. 이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당과 정부, 군부의 지도 간부들을 현지에 급파했고 공군 직승기들, 해군과 국경경비대 해상경비편대의 각종 구조정들을 주민 구출 전투에 신속히 투입했다.

 

김면후 연대장이 이끈 직승비행연대도 7월 28일 새벽 특별명령을 받고 피해 현장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상황은 긴급하고 위험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 쏟아지는 폭우, 휘몰아치는 강풍으로 출동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특히 예측할 수 없는 위험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을 재해지역은 대부분 비행사에게 있어서 생소한 곳이었다.

 

이때 김면후 연대장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늘 익혀두었던 비상 전투 방안을 번개처럼 떠올렸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 생사를 판가름하는 항로를 날아야 할 비행사들의 신심과 의지를 높이는 것이었다. 즉 지휘관으로서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여 직승비행연대 장병들에게 필승의 의지를 심어주고자 했다.

 

정렬한 직승비행연대 장병들 앞에 김면후 연대장이 나섰다. 긴장이 역력한 모두의 시선이 김면후 연대장에게 집중됐다. 김면후 연대장은 직승비행연대에 다음과 같이 출동 명령을 내렸다.

 

“나의 위치는 1번기, 연대 나를 따라 앞으로!”

 

▲ 수해지역 모습.  © 노동신문

 

직승비행연대가 착륙 장소인 비행기지에 도착했을 때 재해지역의 상황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심각했다. 일기 조건도 말 그대로 악천후였고 침수지대의 지형지물을 전혀 알아볼 수 없어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판단할 수 없었다. 더구나 해당지역 일꾼들이 알려주는 수재민들의 숫자나 위치도 대략적인 것이었다.

 

이에 김면후 연대장은 자신이 직접 정찰 비행을 하며 정황을 파악했다.

 

김면후 연대장은 확인 결과 수천 명에 달하는 주민들을 단시간에 구출하자면 공중에서 직승기의 권양기(밧줄이나 쇠사슬로 물체·사람을 들어 올리거나 내리는 기계)를 이용하는 일반적인 구조 방법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결론을 냈다. 

 

어떻게 해서든 직승기를 착륙시켜 사람들을 태우는 방법으로 해야 하는데 온통 물에 잠겨 버려 그 밑의 지형지물을 알 수 없다 보니 착륙과 이륙부터 매우 위험했다. 더구나 비행 교범과 지도서에 나와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김면후 연대장은 ‘주민들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100% 구출할 뿐만 아니라 비행 사고도 내지 말라’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명령을 기준으로 자신의 사고와 행동 방향을 결정했다고 한다.

 

주민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물속에라도 비행기를 착륙시켜야 하고 직승비행연대 장병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가장 큰 위험들은 자신이 앞장에서 막아 나서야 한다는 것이 김면후 연대장이 내린 결정이었다.

 

김면후 연대장은 직승기별로 장소를 찍어주고 비행기지에서의 이착륙 순번들을 정해주었다. 그리고 비행기지에서의 지휘는 부연대장에게 위임하고 자신은 제일 위험한 장소들을 맡았다.

 

김면후 연대장은 지상에서의 지휘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1번기를 타고 제일 위험한 구역에서 모범을 보여줌으로써 지휘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첫 비행에서 수십 명의 주민을 구출하고 무사히 돌아온 연대장의 모범은 비행사들의 교본이 되었다고 한다.

 

▲ 현장에 투입된 직승기.  © 노동신문

 

신문은 김면후 연대장이 의주군 어적리 상공을 비행할 때의 일화도 소개했다.

 

당시 언뜻언뜻 땅이 보이는 유일한 착륙 장소는 낮은 건물들로 둘러싸인 크지 않은 공지였다. 직승기가 안전하게 착륙하자면 동체 길이와 프로펠러의 회전 직경을 고려해 최소한 40~50미터의 공간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건물들 사이의 거리가 30미터도 안 되어 보이는 데다 바람까지 거세 착륙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렇다 보니 한 승조원은 김면후 연대장에게 “이곳은 해군에 맡기는 것이 어떻습니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평상시라면 해군에 맡기는 것이 더 안전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해군도 고무보트로 다니는 상황일 뿐더러 구조해야 할 인원들이 많았다. 즉 한정된 인원만 탈 수 있는 고무보트로는 시간이 꽤 걸릴 수밖에 없다. 특히 빠르게 불어나는 물은 주민들의 생명을 무섭게 위협하고 있었다.

 

김면후 연대장의 눈에는 위험한 착륙 장소가 아니라 구출을 기다리는 주민들의 모습이 들어왔다고 한다. 주민들이 비행기를 보며 “우리 원수님[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보내주신 인민군대 비행기다!”라며 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김면후 연대장은 다음과 같이 명령했다. 

 

“착륙합시다”

 

김면후 연대장을 선두로 모두가 조심스레 고도를 낮추며 접근했고, 착륙은 기적적으로 성공했다. 돌아가고 있는 프로펠러 끝과 건물벽들 사이 간격은 불과 1미터밖에 안 되는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승조원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연대장을 쳐다봤다. ‘아차’ 하는 순간에 비행기와 비행사의 운명이 결딴날 모험의 주인공답지 않게 연대장의 얼굴빛은 태연했다고 한다.

 

그 순간에 승조원들은 연대장이 늘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머리를 쳐들지 못하는 병사처럼 비행사도 불리한 정황 앞에서 순간이라도 주춤하면 비행기와 함께 끝장나고 마오. 공포는 달려드는 적기가 주는 것이 아니라 신심을 잃은 비행사의 마음속에서 새어 나오는 법이요”라고 말했던 것이 뼈에 사무치게 절감되었다고 한다.

 

▲ 해군도 고무보트를 사용해 주민들을 구조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정된 인원만 탈 수 있는 고무보트로는 시간이 꽤 걸릴 수밖에 없다. 특히 빠르게 불어나는 물은 주민들의 생명을 무섭게 위협하고 있었다.  © 노동신문

 

그렇게 수십 명의 주민들을 구출하고 비행기지로 돌아온 김면후 연대장은 직승기 창문으로 비바람을 맞으며 지휘하고 있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김면후 연대장은 서둘러 군모를 쓰고 복장을 바로잡은 다음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달려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무력 최고사령관 동지, 공군 대좌 김면후 명령대로 왔습니다”라고 보고를 올렸다.

 

김면후 연대장은 직승기들이 얼마 만에 이륙할 수 있는지에 관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물음에 “30분이면 이륙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물론 기존 상식으로는 도저히 엄두조차 내지 못할 시간이었지만 자신의 1번기부터 30분 안에 출동함으로써 모범을 보였다고 한다.

 

김면후 연대장은 그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직접적인 지휘 속에서 구출 전투를 진행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느끼며 더 큰 힘이 솟구쳐 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정찰, 구조, 수색 비행 임무까지 도맡은 김면후 연대장의 비행 횟수, 시간, 구한 주민 수는 다른 비행사들의 몇 배를 능가했다.

 

비행사들은 이런 김면후 연대장과 관련해 “공군에서 가장 비행술이 높고 경험 많은 우리 연대장 동지가 1번기를 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저희들은 마음이 든든했습니다”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그렇게 김면후 연대장을 필두로 한 직승비행연대는 7월 28일 하루 동안 4,200여 명을 구출했다.

 

신문은 “평화 시기의 영웅 지휘관으로 시대의 단상에 높이 올라선 김면후 연대장은 인민군대뿐만 아니라 사회의 일꾼들도 따라 배워야 할 혁명의 지휘 성원의 전형”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8월 2일 직승비행연대를 방문해 훈장 수여식을 진행했다.

 

김면후 연대장은 공화국영웅 칭호를, 직승비행연대는 자유독립훈장 제1급을 받았다. 그리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훈장을 수여하고 부대 군기에 자유독립훈장 제1급을 손수 달아주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김면후 연대장를 높이 평가하며 “우리 당은 현대전이 요구하는 이런 야전형, 실력가형, 행동형의 지휘관을 필요로 한다”, “정말 지휘관으로서의 능력과 자질을 훌륭히 갖추었다”, “전 군에서 따라 배울 또 한 명의 우수한 지휘관을 전투 환경 속에서 찾아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7월 28일 직승비행연대 장병들과 악수하고 있다.  © 노동신문

 

신문은 김면후 연대장의 평소 모습도 소개했다.

 

김면후 연대장은 “명절날에도, 잠자리에 누워서도 이제 당장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의 명령이 내려진다면 나는, 연대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하고 생각하며 늘 마음속에 발동을 걸고 있어야 하오. ‘우리는 당의 출격 명령만 기다린다!’는 맹세가 빈말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되오”라는 말을 자주 얘기했다고 한다.

 

2023년 1월 말에는 당에서 맡겨준 단독 비행 임무를 성과적으로 마치고 부대로 돌아오자마자 당세포비서를 찾아가 그날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반성했다고 한다.

 

김면후 연대장은 “목표 지점에 착륙하기 전에 비행기 바퀴가 장애물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것은 내가 착륙 지점 주변의 장애물 상태를 손금보듯 안다고 과신하면서 구체적으로 다시 연구하지 못해 범한 실책”이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언제든지 명령을 내리면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게 준비해야 한다고 연대 앞에서 늘 강조하던 내가 그만 긴장이 풀렸다. 연대장의 과신은 연대를 자만의 추락으로 몰아가는 엄중한 과오”라고 토로했다.

 

김면후 연대장은 그날 비행 총화 회의와 부대당위원회 집행위원들의 모임에서도 심각하게 반성했다. 김면후 연대장이 혼자만 알고 있는 일, 남들 같으면 그저 스치고 넘길 실책을 세 번이나 엄정히 반성한 사실을 두고 지휘관들은 큰 충격을 느꼈다고 한다.

 

또 김면후 연대장은 “지휘관이라면 응당 전 군에서 인정받는 가장 우수한 지휘관이 되어야 하고 부대 역시 언제 어디서나 첫 자리를 차지하는 전투력이 제일 강한 부대로 항시 준비시켜야 일단 유사시에는 당의 명령 관철의 제1전위에 당당히 설 수 있다”라는 자기식의 지휘관 지론이 있다고 한다.

 

김면후 연대장은 학창 시절부터 최우수생으로 손꼽혔지만 지휘관의 첫걸음을 중대 정치지도원으로 뗐다고 한다. 그러면서 공군의 지휘관이라면 마땅히 무슨 직무에 있든 부대의 비행사들이 일치하게 공인하는 가장 뛰어난 비행술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는 각오로 항상 적기들을 향해 비행대를 이끌고 돌진하는 1번기의 좌석에 마음을 두고 살아왔다.

 

김면후 연대장은 하늘을 날 때만이 아니라 땅 위에 있을 때도 마음속으로 늘 비행기 조종간을 틀어쥐고 다양한 상황들을 스스로 상상하며 자기식의 비행법들을 계속 익혀 나갔다. 그리고 그 과정에 새로운 상황 처리 묘술들을 적지 않게 착상해내 비행사들을 감탄케 했다.

 

새로운 창안이 비행지도서에는 없는 것이어서 쉽게 인정하려 하지 않던 오랜 비행사들도 뜻밖의 상황에서 그것을 최후의 방도로 적용해 보고 나서 “면후 동무는 정말 타고난 비행사이구만”하고 머리를 숙였다고 한다.

 

김면후 연대장은 연대장이 되어서도 ‘실력이 높아야 지휘관의 구령에 힘이 실린다. 연대장의 실력의 높이가 곧 연대의 전투력 수준이며 연대의 권위’라는 자각을 안고 자신부터 평시의 날과 달을 전시의 하루하루처럼 채찍질했다.

 

그 결과 전투비행술경기대회들에서 매번 우수한 성적을 기록했고, 비행사들과 군인들의 훈련과 생활이 언제나 실전 상황에 숙달되도록 순간도 긴장을 풀지 않고 단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신문은 이번 주민 구출 전투도 “지휘관과 연대, 비행사와 비행기, 비행대와 보장 성원들이 그야말로 한 비행기를 탄 하나의 승조처럼 일심동체가 될 때까지 맹훈련의 강도를 끊임없이 높여온 김면후 연대장의 엄격한 요구성이 맺은 귀중한 열매”라고 평가했다.

 

또 김면후 연대장은 비행사 탓, 병사 탓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면후 연대장은 ‘일단 연대의 구성원이 된 사람은 연대장 자신이 정치적 생명도 육체적생명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라고 생각하며 장병들에게 원칙을 엄하게 요구하면서도 깊은 인정미로 사랑했다고 한다.

 

▲ 김면후 연대장.  © 노동신문

 

한편, 신문은 6일 김면후 연대장의 일화와 관련해 일꾼들에게 요구하는 점들과 일꾼들의 감상을 보도했다.

 

신문은 「값높은 무훈의 근본핵」이라는 기사에서 “영웅 연대장이 세운 빛나는 무훈의 근본 핵은 당중앙에 대한 절대충성, 당의 명령 지시에 대한 결사집행 정신”이라며 “일꾼들은 절대충성, 결사집행을 정신적 지주로, 실천의 구호로 억세게 간직하고 당의 권위와 국가의 발전, 인민의 생활 향상을 위한 책무를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게 보다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신문은 「열렬한 공감, 자책과 분발」, 「지휘관의 풍모는 어떠해야 하는가」, 「영웅련대장과 나」 등의 기사에서 일꾼들의 감상을 소개했다.

 

김광천 개천탄광 지배인은 “김면후 연대장은 우리 일꾼들에게 당에서 준 지시와 과업의 진수부터 똑똑히 파악해야 그 집행이 정확한 궤도에 들어선다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 주었다. 이것을 명심하고 한 가지 일을 해도 당의 의도에 맞게 해나가면서 당정책 관철의 제일 기수로서의 영예로운 사명과 본분을 다해 나가겠다는 것을 결의한다”라고 밝혔다.

 

김철남 룡철군송배전소 소장은 “지난 7월 말 우리는 신의주시와 의주군이 큰물[홍수] 피해를 받았을 때 구름 속으로 날아가는 직승기들의 동음을 들으며 인민의 군대가 정말 다르다고 이야기하였다”라며 “당의 명령 지시에 결사의 실천으로 화답해 나서는 전투력이 있는 인민공군 직승비행부대의 앞장에는 언제나 김면후 연대장이 서 있었다는 기사의 구절구절은 나로 하여금 깊은 자책감과 함께 분발심을 더해주었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전진하는 대오의 전위에, 바로 이것이 우리 일꾼들의 위치이며 투쟁의 좌표”라며 “김면후 연대장처럼 단위의 면모를 일신하는 데서도, 튼튼한 후방기지를 일떠세우고 그 덕을 보게 하는 데서도 언제나 앞장서겠다. 당면하게는 피해지역의 송전선 복구의 앞장에서 종업원들을 이끌어 단위 앞에 맡겨진 과제를 단숨에 해치우겠다”라고 다짐했다.

 

김성일 평양과수농장 경리는 “쾌속으로 돌아가는 기다란 프로펠러의 끝과 건물벽들 사이의 간격은 불과 1미터, 이런 기적은 용감성만으로 창조할 수 없다. 김면후 연대장이 당의 명령 지시에 대한 결사적인 집행 정신과 비상한 책임성으로 연대를 이끌어 온 결과”라며 “이런 집행 정신, 이런 책임성을 지니고 일해 나간다면 못 해 낼 일이 없다”라고 감탄했다.

 

리현철 신평군당위원회 책임비서는 “일꾼이 자기의 책무를 다하려면 강한 요구성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라며 “영웅 연대장의 모범을 본받아 자신에 대한 요구성을 높여 나가겠다. 당중앙의 파견원으로서의 막중한 책무를 다할 수 있게 정치사상적 수양과 실력 향상에 박차를 가하겠다. 일꾼들 모두를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전개력, 이신작칙으로 이끌어 나감으로써 군 사업에서 뚜렷한 개선을 가져오겠다”라고 했다.

 

김광만 평양326전선종합공장 지배인은 “무원칙한 인정, 그것은 아랫사람들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아니다”라며 “그들이 당을 따르는 길에서 한치의 탈선도 없도록 요구성을 부단히 높이고 원칙적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열렬한 사랑,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정미가 아니겠는가”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언제나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공장의 일꾼들과 종업원들을 이끌어 줌으로써 책임일꾼으로서의 본분을 다해 나가겠다”라고 결의했다.

 

백춘기 개성시농촌경리위원회 해선남새농장 경리는 “그가 비행사 탓, 병사 탓을 전혀 몰랐다는 사실은 큰 여운을 주고 있다”라며 “집단에는 실력이 약하고 요구성에 따라서지 못하는 성원들도 있게 되는 법이다. 문제는 이를 보는 일꾼의 시야와 태도이다. 이런저런 사람을 제쳐 놓고 재능있는 몇몇 사람만 데리고 일하려고 하는 일꾼은 준비가 덜 된 일꾼이며 사람 타발은 일꾼의 무능력의 표현이라는 것을 깊이 새기게 된다”라고 밝혔다.

 

김철준 어랑군인민위원회 위원장은 “오늘의 들끓는 현실은 대오의 기수인 일꾼들의 자격을 평가하는 시금석”이라며 “인민들에게 베풀어지는 당의 크나큰 사랑과 은정이 하루빨리 그대로 가닿는가 그렇지 못한가 하는 것은 우리 일꾼들의 기수적 역할에 달려있다”라고 보았다.

 

이어 “이신작칙을 체질화한 영웅 연대장의 수범[모범]을 언제나 사업과 생활의 교본으로 삼고 당정책 관철에서 전진하는 대오의 기수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해갈 결심을 더욱 가다듬게 된다”라고 언급했다.

 

홍성민 강동군 송가농장 초급당비서는 “나도 한때는 실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이 과정에 일정한 성과도 거두었다. 하지만 직무가 올라가고 한 개 농장의 당사업을 책임진 일꾼이 된 다음부터는 사업이 긴장하다는 구실 밑에 이 사업을 소홀히 하였다”라고 반성했다.

 

그리고 “오늘날에 있어서 충성심도 책임성도 실력이며 실력이 높아야 지휘관의 구령에 힘이 실린다는 것을 항상 자각하고 단위의 기준, 수범이 될 수 있게 자신의 실력 제고에 배가의 노력을 기울이겠다”라고 다짐했다.

 

황광철 개천시건설여단 여단장은 “실적의 누적이 전투력의 전부가 아니다. 긴급하고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정황 속에서도 김면후 연대장이 당중앙의 명령을 완벽하게 관철할 수 있던 것은 평상시 연대의 전투력을 최강으로 준비시키기 위해 피타는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지휘관으로부터 병사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가장 책임적인 순간에 맡은 임무를 훌륭히 감당해 내는 만능전투원들로 준비시킨 것이 바로 지휘 성원의 사업 실적에서 제일 큰 실적이 아니겠는가”라며 “일꾼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긍지는 자기 단위를 당에서 맡겨준 과업을 언제 어느 때든 완전무결하게 수행할 수 있는 전투력이 강한 집단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나도 김면후 연대장을 따라 배워 여단 안의 일꾼들과 대원들을 당의 원대한 농촌 건설 구상을 맨 앞장에서 받들어 나가는 만능부대, 강력한 건설집단으로 꾸려나갈 결심”이라고 했다.

 

북한이 올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꾼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노동신문이 일꾼에게 제기되는 과제와 관련한 보도를 자주 내보내고 있다. 이런 보도 내용이 앞으로 어떻게 귀결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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