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히 코르순스키 일본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의 최근 행보가 국제적으로 큰 파장을 낳고 있다.
일본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관은 지난 3일 엑스(옛 트위터) 계정에 “이날 코르순스키 대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조국을 위해 목숨을 잃은 분들을 추모했다”라는 글과 함께 사진 3장을 게시했다.
야스쿠니 신사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서 벌어진 내전과 일본이 일으킨 수많은 전쟁에서 숨진 246만 6천여 명의 영령을 추모하는 곳이다. 그리고 도조 히데키 전 총리 등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 14명도 합사돼 있다. 한반도 출신자도 2만여 명 합사돼 있는데, 이들의 합사는 유족 등 한국 측 의향과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이뤄졌다.
공개된 사진에는 야스쿠니 신사를 찾은 코르순스키 대사가 관계자들의 안내를 받으며 참배 전 정화수에 손을 씻고 방명록에 서명하는 등의 모습이 담겼다.
코르순스키 대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소식이 전해지자 온라인상에선 비판이 제기됐다.
일본 간다외국어대학 일본학 특별강사인 제프리 홀은 4일 자신의 엑스 계정에 “야스쿠니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 범죄자로 처형된 전쟁 지도자들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방문은 일본의 보수적·민족주의적 역사관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지지를 표명하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어쩌면 우크라이나는 자신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일본 우파가 일부 서방 국가의 보수 정당에 스며든 친푸틴 견해에 휘둘리는 것을 막아주길 기대하는지도 모른다”라고 분석했다.
일본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군국주의자들과 나치주의자들에 의해 희생당한 이들을 모독하는 일이다. 우크라이나 대사는 부끄러워해야 한다”라고 꼬집는 목소리가 나왔다.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위해 지금까지 2만 엔(약 18만 원)을 기부했지만 더는 보내지 않겠다”라며 개인 후원을 끊겠다는 글도 있었다.
이러한 비판이 거세지자 우크라이나 대사관은 4일 해당 게시물을 삭제했다.
코르순스키 대사는 2년 전에도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2022년 4월 1일 정부 공식 엑스 계정에 올린 영상에서 파시즘을 상징하는 인물로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일본의 히로히토 일왕을 꼽은 바 있다.
이에 일본 누리꾼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코르순스키 대사는 4월 24일 “전쟁 및 파시스트와 전혀 관련이 없는 일왕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본인들이 매우 불쾌해 하고 있다. 수정해달라”라며 “일본은 우리의 가장 큰 동맹 중 하나”라고 공개적으로 우크라이나 정부에 항의했다.
당시 그는 “일왕은 전쟁 발발과 파시스트와는 무관하다”라며 “쇼와(히로히토의 연호) 일왕이 항상 일본과 세계 평화를 원했던 것을 우리 우크라이나인들은 알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또 비슷한 시기엔 자신의 SNS 계정에 “그동안 한국으로부터 피해를 받은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러시아는 한국과 비슷하기 때문에 발 빠르게 반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라고 적힌 글을 공유하기도 했다.
코르순스키 대사가 이러한 친일 행보를 보인 것과 우크라이나 정부의 일본 관련 입장이 무관하진 않아 보인다.
그간 우크라이나는 일본으로부터 많은 것을 지원받아 왔다. 그리고 일본은 우크라이나 신나치주의를, 우크라이나는 일본 군국주의를 묵인해주고 있다.
이번 참배 사건과 관련해 국제사회의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서경덕 성신여자대학교 교수는 9일 자신의 SNS를 통해 “주일 우크라이나 대사관 측에 항의 메일을 보내 ‘이번 참배는 과거 일본이 저지른 전쟁 범죄를 옹호하는 꼴이자 아시아인들을 무시하는 행위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이번 참배에 관해 대외적인 공식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하길 바란다’라고 강조했다”라고 밝혔다.
쑨좡즈 상하이 사회과학원 러시아·동유럽·중앙아시아연구소 소장은 9일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과의 대담에서 “이번 우크라이나 대사의 행동은 제2차 세계대전 역사를 모독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금지선을 넘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쑨 소장은 “우크라이나가 이 같은 행동을 하는 이유는 전장의 위급한 상황과 미국, 서방 국가의 지원 감소 때문”이라며 “우크라이나 대사관이 역사를 무시하고 야스쿠니 신사 문제에서 일본과 함께해야 하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일본으로부터 더 많은 물질적 지원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이래 일본은 아시아에서 우크라이나에 가장 적극적으로 원조를 제공한 국가다. 직접적인 경제 원조 규모는 70억 달러를 넘어섰다”라며 “내년은 반파시스트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지 80주년이 되는 해다.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일본도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다시 배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바실리 네벤쟈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10일 우크라이나 관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나치 정권에 봉사하는 우크라이나 외교관은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14명의 A급 전범을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일본의 주요 언론은 당연히 이 사건을 무시했다. 그리고 일본 정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계속해서 우크라이나 정부를 묵인해주고 정권에 무기를 공급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나는 9월 3일이라는 날짜가 우연히 선택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날 러시아와 다른 많은 국가가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승리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9주년을 축하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외교의 이번 행동은 역사를 다시 쓰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임이 분명하다”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우크라이나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