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레바논 곳곳을 침공하자 유럽 각국이 이스라엘을 강하게 규탄하고 나섰다. 유럽 각국이 속속 이스라엘과 선을 긋지만, 미국은 이스라엘을 옹호하면서 서방진영의 균열이 갈수록 커지는 분위기다.
예전에는 미국의 노선에 따라 이스라엘을 지지했던 유럽 각국이 지금은 이스라엘에 선을 긋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특히 유럽의 주요국인 프랑스가 잇달아 이스라엘을 강하게 규탄하고 나섰다.
프랑스 외교부는 10월 1일(이하 현지 시각) 발표한 공식 성명에서 이스라엘군의 무차별적인 레바논 공습으로 레바논에서 “용납할 수 없는” 규모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며 이스라엘을 강하게 비난했다.
이어 프랑스 외교부는 10월 4일 또 다른 성명을 발표했다. 프랑스 외교부는 이스라엘 정부가 레바논 침공을 규탄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을 페르소나 논 그라타(외교상 기피 인물)로 지정한 것을 두고 “정당화될 수 없다”, “부당하고 심각하며 비생산적인 결정”이라고 짚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0월 5일 프랑스 현지 언론과의 대담에서 미국 등 동맹국을 향해 이스라엘에 더 이상 무기를 공급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또 다음날인 10월 6일에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통화하면서 “프랑스는 (이스라엘에) 아무것도 공급하지 않을 것”,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이) 싸울 무기 공급을 중단”할 것임을 강조했다.
아일랜드는 아일랜드군이 유엔평화유지군 자격으로 활동하는 레바논의 구역을 공격할 예정이므로 철수하라는 이스라엘의 요구를 거부했다.
마이클 하긴스 아일랜드 대통령은 10월 5일 발표한 성명에서 “이스라엘군은 유엔의 권한 아래에 있는 전체 유엔레바논임시군을 물러나라고 요구하고 있다”라며 “이스라엘군이 (유엔) 평화유지군을 위협해 왔고, 평화유지군이 방어하는 마을을 비우라고 하는 것은 터무니없다”라고 일갈했다.
다음날인 10월 6일 제임스 브라운 아일랜드 법무부 차관은 “유엔은 이스라엘군의 철수 요구를 따르지 않을 것임을 명백히 했다”라고 거듭 밝혔다.
여기에 유엔레바논임시군도 6일 따로 낸 성명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명령한 임무를 수행하는 유엔평화유지군의 안전을 해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라고 이스라엘을 비난했다.
만약 이스라엘군이 유엔평화유지군이 있는 구역을 공격하면, 아일랜드가 소속된 유럽연합(EU)과 이스라엘 간 충돌이 어떤 식으로 번지게 될지 예상하기 어렵다.
이 와중에 영국에서는 네타냐후 총리가 영국 외무부 청사에 방문한 뒤, 외무부장관 집무실에서 도청 장치가 발견됐다는 폭로까지 나왔다.
10월 3일 영국 언론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는 발간을 앞둔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지난 2017년 네타냐후 총리가 영국을 방문한 뒤 자신의 화장실에서 도청 장치가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외무부장관이었던 존슨 전 총리는 네타냐후 총리가 자신과 만나던 중 화장실을 가겠다며 자리를 떴는데, 이후 도청 장치가 발견됐다며 네타냐후 총리를 범인으로 의심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동맹국인 영국 외무부에 직접 도청 장치를 설치했다는 주장이라는 점에서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취임한 딕 슈프 네덜란드 총리와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전화를 통한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10월 6일 슈프 총리는 페제시키안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일부 서방 국가들이 레바논을 침공하는 이스라엘의 “범죄 행위”를 옹호하는 것을 규탄했다. 그러면서 서방 일부 국가들이 “전쟁 범죄와 테러 행위”를 하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란에만 ‘자제’를 요구하는 점도 비판했다.
유럽 각국이 속속 이스라엘에 등을 돌리는 표면적인 이유는 이스라엘의 ‘집단학살 범죄’가 도를 넘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10월 초 시작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 이후 지금까지 4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학살했다.
게다가 이스라엘이 올해 9월 들어 레바논까지 무차별 공격하면서 이에 따른 민간인 희생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공격으로 레바논에서 지금까지 1,400명이 넘는 사망자와 7,500명에 이르는 부상자가 발생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유럽이 이스라엘에 등을 돌린 배경을 설명하기 어렵다. 본래 유럽은 중동 각국을 향한 이스라엘의 침공과 테러에도 수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지원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럽이 미국과 달리 이스라엘에 등을 돌리는 ‘진짜 이유’가 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보는 유럽과 미국의 엇갈린 시각을 짚어볼 수 있다.
현재 유럽은 사활을 걸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에 이길 것을 목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패배하면 바로 맞닿은 러시아가 유럽의 안보를 크게 위협할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즉, 유럽으로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승패에 유럽의 운명이 달렸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와 멀리 떨어진 미국의 상황은 유럽과 다르다. 우크라이나를 통해 러시아와 ‘대리전’을 벌이는 미국으로선 유럽처럼 굳이 러시아와 사활을 걸고 싸워야 할 이유가 없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가 미국을 포함한 나토를 향해 ‘핵공격 대응’을 암시하자,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미사일 사용을 허가하자는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의 요구를 거부했다. 미국으로선 우크라이나 전쟁의 불똥이 자국 본토까지 튈까봐 몸을 사리고 있는 처지라 할 수 있다.
결국 이스라엘에 등 돌리는 유럽의 움직임은 우크라이나를 향한 무기 지원을 축소하는 등,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발을 빼려는 미국을 향한 불만일 가능성이 있다.
위 유럽 국가들은 모두 미국이 주도해 온 나토로 묶여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본래 나토는 공동의 위협을 상정한 집단 안보를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을 향한 대응을 둘러싸고 나토 회원국 간 심각한 균열이 생긴 것이다. 이는 앞으로 나토의 공동 대응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현재 대선이 한 달도 남지 않은 미국 정치권은 진영을 가리지 않고 이스라엘을 편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하나같이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옹호한다며 서로 ‘이스라엘 지지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이스라엘의 외무부장관은 “자유세계 전체”가 이스라엘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미국을 뺀 서방진영이 이스라엘에 등을 돌리는 분위기에 위기를 드러낸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네타냐후 정권의 ‘우려’에도 이스라엘을 둘러싼 유럽과 미국의 균열은 나날이 커질 듯하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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