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영국 주요 언론이 이스라엘의 거짓 주장만 듣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집권세력 하마스를 악마화해 왔다는 폭로가 나왔다.
지난 10월 5일(현지 시각) 아랍권 유력 매체 알자지라의 주간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리스닝포스트’는 CNN, BBC 기자 10여 명의 내부 고발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가자지구를 취재해 온 미국 CNN과 영국 BBC 소속 기자들은 자사 고위 인사가 “친이스라엘 편향성”과 하마스를 맹목적으로 악마화하는 “조직적인 이중잣대”를 해 왔다고 전했다.
구체적으로 CNN과 BBC는 이스라엘의 주장을 받아 ▲하마스가 아기들을 참수했다는 주장 ▲이스라엘이 폭격한 가자지구 어린이 병원에 하마스가 이스라엘 포로들을 숨기는 공간을 뒀다는 주장 ▲알시파 병원에 하마스 본부와 벙커가 있다는 주장 ▲하마스가 조직적 성폭력을 벌였다는 주장을 사실처럼 보도했지만 모두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CNN의 왜곡
CNN 소속 기자 몇몇은 이스라엘 측의 주장이 거짓임을 사전에 경고했지만, 닉 로버트슨 국제외교 에디터가 이를 묵살하며 보도를 강행했다고 털어놨다.
이와 관련해 이스라엘군이 하마스 요원들의 거점이라며 폭격해 사상자를 낸 가자지구 알란티시 어린이 병원의 사례를 들었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수석대변인은 알란티시 병원을 방문한 로버트슨과 CNN 취재진에게만 특별히 종군 취재를 허용했고, 하마스가 이스라엘 포로들을 알란티시 병원에 숨긴 증거를 찾았다고 주장했다.
하가리 수석대변인은 아랍문자로 쓰인 종이를 내밀며 “하마스 요원들의 명단”이라고 주장했으며, 이는 로버트슨의 손을 거쳐 CNN 보도 영상에도 그대로 담겼다.
하지만 하가리 수석대변인이 내민 종이의 실체는 그저 아랍문자로 적힌 달력이었다.
해당 종이에 적힌 내용은 CNN이 하가리 수석대변인의 거짓 주장을 보도하기 전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퍼졌고, 아랍어를 할 줄 아는 누리꾼들은 하가리 수석대변인의 주장이 거짓임을 알렸다고 한다.
이에 CNN 기자들이 로버트슨에게 보도를 해선 안 된다고 항의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로버트슨은 ‘그럼 하가리가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건가?’라는 식으로 반문하며 보도를 강행했다는 것이다.
하가리 수석대변인이 증거라며 조작한 달력 이외에 하마스가 알란티시 병원에 이스라엘 포로들을 숨긴 증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이밖에 가자지구 보건부가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4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숨졌다고 발표한 것과 관련해, 마이크 맥카시 CNN 편집국장이 “하마스 책임으로 돌려라”라고 주문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스라엘이 1년 넘게 가자지구를 공격해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집단학살 해왔음은 세간에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CNN 고위 인사는 집단학살을 하마스의 탓으로 몰아 사실 왜곡을 시도한 것이다.
BBC의 왜곡
BBC 고위층 역시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주장을 받아 가짜뉴스를 내보내고 있다고 ‘사라’라는 가명을 쓴 BBC 현직 기자가 증언했다.
BBC가 팔레스타인 측 인사를 인터뷰할 때면 엄격한 조사를 거쳐 까다롭게 심사해 걸러내 보도를 제한하는 반면, 이스라엘 측 인사는 과거 거짓말을 했음이 드러났음에도 인터뷰를 보도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정치인 이단 롤은 BBC 진행자 마리암 모시리에게 하마스가 2023년 10월 17일 이스라엘 남부를 침공했을 때 “아기들이 불에 탔고 머리에 총을 맞았다”라고 주장했지만 이스라엘군은 이를 입증할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그럼에도 BBC는 팔레스타인의 시각을 반영한 정정 보도를 하지 않으며 이스라엘의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BBC의 방식은 이스라엘의 시각에서 맹목적으로 하마스를 ‘악마화’하고 이스라엘을 옹호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거짓을 진실인 것처럼 꾸민다는 점에서도 악의적인 보도 행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내부 폭로를 통해 일부 드러난 ‘빙산의 일각’으로, 알려지지 않은 가짜뉴스 사례는 더욱 많을 것으로 보인다.
거짓을 받아쓰는 국내 언론의 보도 행태
이스라엘과 서구 언론의 왜곡된 시각을 그대로 인용해 보도해 온 한국 언론도 ‘조작의 공범’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를 들면 「전쟁 38일째, 이스라엘군, 가자지구 북부서 하마스 축출 큰 전과」라는 제목의 2023년 11월 14일 자 아시아투데이 보도를 살펴보자.
아시아투데이는 당시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부장관의 말을 인용해 하마스가 가자지구의 통제력을 상실했다고 보도했다.
또 알란티시 어린이 병원의 폭격이 정당했다는 하가리 수석대변인의 말을 그대로 소개하면서, 이스라엘이 병원에서 환자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는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시각에서 쓴 위 보도는 3가지 측면에서 거짓으로 드러났다.
▲첫째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장관 등 고위 인사가 이스라엘의 목표인 하마스 소탕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등 가자지구에서 하마스의 영향력이 지속되고 있는 점 ▲둘째로 하가리 수석대변인이 아랍문자가 적힌 달력을 하마스 요원 명단이라고 조작한 점 ▲셋째로 이스라엘이 민간인이 있는 것과 상관없이 병원 등에 무차별 폭격을 이어오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번에는 「가자지구 땅굴서 인질 시신 6구 수습…바이든 “참담하고 화가 나”」라는 제목의 2024년 9월 1일 자 서울경제 보도를 살펴보자.
서울경제는 하마스에 포로로 잡힌 미국인 허시 골드버그-폴린이 시신으로 발견된 것과 관련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하마스의 잔인한 학살 과정에서 친구와 낯선 사람들을 돕다가 팔을 잃었다”, “정말 참담하고 화가 난다”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말은 이스라엘군의 시각이 반영된 일방적인 주장일 뿐, 골드버그-폴린이 어떤 과정에서 숨지게 된 건지 진실은 밝혀진 바가 없다.
오히려 위 CNN과 BBC의 ‘조작 사례’를 보건대 이스라엘군이 하마스 악마화를 목적으로 골드버그-폴린의 죽음을 왜곡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럼에도 서울경제가 바이든 대통령의 일방적 주장을 그대로 인용했다는 점에서 하마스 악마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서구 언론의 보도라면 검증 없이 가져다 쓰는 그동안의 보도 행태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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