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으로 2차 송환을 희망하던 장기수 박희성 선생이 27일 운명했다. 향년 90세.
박희성 선생은 서울 관악구 낙성대 근처에 있는 ‘만남의 집’에서 이날 저녁 운명했다. 사인은 백혈병 합병증으로 인한 부정맥으로 추정된다.
선생은 1935년 평안북도 박천군에서 태어났으며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6세의 나이로 인민군에 자원입대했다.
선생은 1962년 6월 1일 공작선 기관사로 대남 침투 공작 중 화성에서 체포됐으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7년간 복역 후 1988년 12월 21일 장기수 양원진, 강담 선생 등과 함께 광주교도소에서 출소했다.
선생은 2000년 9월 2일 63명의 장기수 1차 송환 후 2001년에 2차 송환을 신청해 북송을 기다려 왔다.
시민단체들은 28일 오전 회의를 열고 ‘비전향 장기수 박희성 선생 시민사회장례위원회’를 구성했다.
장례는 ‘비전향장기수 박희성 선생 시민사회장’으로 거행된다.
빈소는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 207호에 마련됐으며, 추도식은 29일 오후 7시 빈소에서 거행된다. 발인은 30일 오전 8시 20분이며, 장지는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있는 금선사이다.
조의 계좌는 206001-04-185430 (국민은행 김혜순)이다.
아래는 박희성 선생 약력이다.
박희성 선생 약력 -1935년 3월 24일 평안북도 박천군 출생 -1948년 구성군 관서국민학교 졸업, 관서중학교 입학 -1950년 조선인민군 자원입대, 길림에서 훈련, 양구/원산 전투 투입 -1952년 군공메달과 전사영예훈장, 화선입당 -1953년 최현 2군단장 산하 원산 재상륙방어전 투입, 정전 이후 흥남군관학교 입교 -1957년 제대 후 귀향, 트럭 운전, 선전부 영화 이동 영사 기사 -1959년 당 연락사업 소환, 해주 해상 공작 임무, 결혼 후 1961년 득남(동철) -1962년 6월 1일 공작선 기관사로 대남 침투 공작 중 화성에서 체포 -1988년 12월 21일 양원진, 강담 선생 등과 광주교도소 출소, 막노동 전전 -2000년 9월 63명 장기수 1차 송환 후 2001년 2차 송환 신청 -2024년 10월 27일 낙성대 만남의 집에서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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