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문화 가꿔가기 43] “고난의 행군”시기 북 청진 기업의 연유자급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8/06/24 [08:08]  최종편집: ⓒ 자주시보

 

연유는 현대생활과 생산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물질이다. 특히 군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때문에 미국을 우두머리로 하는 “국제사회”는 이단아 조선(북한)을 제재하면서 연유수입량을 특별히 가혹하게 눌렀다. 

그런데 “역대 최강 제재” 타이들이 자꾸 바뀌는데도 조선은 멀쩡하게 잘도 굴러간다. 이상한 수수께끼라 추측이 많다. 필자는 지난 해 9월 통일문화 가꿔가기 14편 “북 주유소 관련 소설이 암시하는 원유제재”(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5676&section=sc51&section2=)에서 중편소설 《우승기》를 소개하여 21세기 10년대 평양에 위치한 연유공급소가 어떻게 종합경영을 해내가느냐를 전했다. 

반북주의자들의 굳은 논리가 평양 특수론이다. 평양에는 특별히 선발된 엘리트들만이 산다, 평양은 거대한 대외전시장이다, 평양을 보고 북한을 평해서는 안된다, 지방들은 형편없다.... 

굳어진 머리들이 풀리기는 바라지 않는다만, 통일문화 가꿔가기가 보다 설득력을 가지려면 평양만이 아닌 지방의 연유상황도 다뤄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우연히 전에 보았던 책을 하나 뒤적이다가 맞춤한 자료를 발견했다. 

문학예술출판사가 2016년 3월에 펴낸 작품집 《초석》에 실린 실화문학 《살줄 아는 사람》(276~293쪽)이다. 

 

▲ 양해모 작품집 《초석》(문학예술출판사 2016년 3월, 295쪽)     © 자주시보,중국시민

 

책 뒤의 “편집후기”에 따르면 저자 양해모는 일제시대 황해도 해주시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전후 사회주의건설시기에 농촌에 진출해 일하다가 벽소설 《뉘우침》을 《황남일보》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들어섰는데 그 후 김책제철소 확장공사에 참가하면서 창작범위를 넓혔다 한다. 

“편집후기”는 왜서인지 양해모가 세상을 떴다는 정도로만 알릴뿐 생년원일은 밝히지 않았는데 작품과 특성을 이렇게 소개했다. 

 

“《우리는 연단우에 서있다》, 《당원의 모습》, 《부문당비서》, 《초석》, 《두번째 침강》, 《내 나라》, 《백양나무 설레는 저녁에》,  《계승》, 《결석대표》를 비롯한 그가 창작한 많은 단편소설들과 실화문학 등 모든 작품들은 현실과 매우 밀착되여 있으며 묘사에서의 직선적 지향과 간결성, 작품의 속도감이 뚜렷한 개성으로 특징지어진다. 

언제나 들끓는 현장들에서 예리하고 문제성있는 종자를 포착하고 줄기찬 필력으로 작품들을 창작한 것으로 하여 그의 작품들은  《좃너문학》, 《문학신문》에 발표될 때마가 문단의 이목을 끌군 하였다.”(294~ 295쪽)

 

《초석》에는 단편소설 13편과 실화문학 2편이 수록되었는바, 공장과 건설장이 주무대이다. 맨 뒤에 실린 《살줄 아는 사람》은 2004년 4월 저자가 전국건설자대회에 참가할 청진금속건설연합기업소 대표들과 한 차칸에 타고 평양으로 가게 되면서 시작된다. 

이 건설연합기업소는 작품집의 여러 편 소설에서 등장한다. 《초석》(2~ 25쪽), 《부문당비서》(59~ 73쪽), 《축복속에서》(118~ 137쪽), 《백양나무 설레는 저녁에》(138~ 155쪽)에서는 직접 나오고 《두번째 침강》(101~ 117쪽), 《돌격대에서 온 처녀》(156~ 173쪽)에서는 간접적으로 등장한다. 다시 말해 작품집의 절반가량 작품이 이 건설연합기업소를 그렸으니 저자의 창작터전 혹은 창작텃밭임을 알 수 있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여러 차례 현지지도한 유명한 기업소의 대표들은 저자의 눈에 하나같이 끌끌하고 늠름해 보인다. 

 

“가슴마다 훈장과 메달로 꽉 채운 50~60대의 사람들, 그중에는 로력영웅들, 공훈건설자들도 있고 건설에 한생을 바쳐가는 책임일군들도 있었다. 그 한명, 한명이 장편소설의 주인공으로 될만 한 사연들을 안고있을것이다. 

그런데 일행중에 단 한명, 눈에 뜨이게 젊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가슴에는 두개의 훈장만이 있을뿐이였다. 

보통체구에 약간 검스레한 얼굴, 사색이 짙은 크지 않은 눈에서 내뿜는 강한 빛발... 겉모양으로 보건대 40살전후인듯한 이 젊은이가 어떻게 되여 건설로 한생을 바쳐온 이 로병들의 대오에 들게 되였을가? 

이런 호기심을 안고 나는 일행을 책임진 지배인과 마주앉았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며 어랑촌발전소건설장에 *** ***을 두차례나 모시고 그이께 기쁨을 드려 세상에 널리 알려진 동훈지배인과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였다.”(276쪽)

 

동훈 지배인이란 작품집의 첫 편인 《초석》에 나오는 동순호의 실제모델로 보인다. 1991년에 발표된 《초석》에서 동순호는 1968년 “푸에블로”호 사건 시기에 건설장으로 달려가 돌격대 대장으로서 황무지에 기업소를 일떠세웠고 뒷날 지배인으로 일해온 사람이다. 《초석》 발표 13년 뒤에도 지배인을 할 확률은 아주 높다. 

필자의 추측이 맞던지 틀리던지 동훈 지배인은 드라마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동무는 얼마전에 방영된 텔레비죤련속극 <첫 연유국장>을 보았는지요?》 

지배인은 나에게 물었다. 

《아주 감명깊게 보았습니다. 연유가 전쟁에서 그렇게까지 필수적인 전략물자라는걸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나의 대답에 지배인의 얼굴에는 흔연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습니다. 연유는 전쟁에서뿐아니라 오늘날 건설전투에서도 그 성과를 좌우지하는 전략물자라고 말할수 있지요. 우리 기업소에는 자동차와 기중기, 불도젤과 굴착기 등 륜전기재들이 백수십여대나 가동하고있습니다. 만일 이 륜전기재들이 하나, 둘 멎게 되는 경우를 동무는 상상해보았습니까?》 

나는 선뜻 대답을 못했다. 

륜전기재들이 멎어버린다면 건설자체도 지연되리라는것은 너무나 명백한 일이 아닌가. 

지배인은 자기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고난의 행군시기 미제의 악랄한 <제재>책동으로 하여 나라의 연유사정이 긴장해지면서 우리 건설장들에서도 난관에 부닥치게 되였지요. 기업소에 부닥친 그 난관을 한몸으로 막아나선 사람이 바로 저 동무입니다. 

연유공급과장 김영섭, 그는 지난 시기 우에서 대주는 연유를 공급해주던 부서를 자체로 연유룰 확보하여 공급해주는 부서로, 말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부서로 만들었지요. 

원쑤들의 반사회주의책동이 악랄해질수록 걸음마다 그것을 짓부셔나가는 우리의 힘이 백배, 천배로 강해지며 *** ***의 선군령도를 받들어가는 우리의 현실이 아닙니까?》 

기차는 힘찬 기적을 울리며 달리고 지배인의 이야기는 더욱 열기를 띄였다.”(276~ 277쪽)

 

김영섭의 소원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뵈는 것이었다. 군사복무시절 동기들 중에서 제일 먼저 상등병이 되었고 동년배들이 분대장이 될 때에는 부소대장이 되면서 부대건설에 온갖 심혈을 기울였는데 유감스럽게도 최고사령관을 부대에 모시지 못하고 1988년에 제대되어 고향 나선시로 돌아갔다. 그후 김정일 최고사령관이 그 부대를 시찰하였고 김영섭은 익숙한 전우들이 나오는 기념사진을 고이 간직하면서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들여다 보곤 하였다. 

1990년대 중반 시작된 “고난의 행군”이 지속되면서 국가계획 분으로 배정되던 연유량이 점점 줄어들던 시기에 연유공급과장으로 임명된 김영섭은 과에서 준비한 지원물자들을 싣고 어랑천발전소 건설장으로 나갔다가 돌과 흙, 콘크리트혼합물들을 맞들이에 싣고 내달리는 사람들로 붐비는 현장에서 세워진 굴착기 1대를 발견했다. 50대의 운전공에게 고장이 났느냐고 물은 김영섭은 퉁명스러운 대답을 듣게 되었다. 

 

“《보면 모르겠소? 동무는 오늘 아침 식사를 건느지 않았겠지만 이 기대는 끼니를 번진지 며칠째요. 이젠 아주 세워놓고 맞들이로 나르는거요.》”(278쪽)

 

김영섭도 운전공과 마찬가지로 한숨을 쉬였고 그제야 부지런히 가동하는 윤전기재들 사이로 숨결이 멎은 채 서있는 기중기와 불도저들이 눈에 띄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관심하는 공사인데 당장 내일이라도 나온다면 얼마나 가슴아파하겠는가? 이 귀중한 기재들이 연유가 모자라 멈춰서게 한다면 연유공급과장이라는 나의 존재는 무엇에 필요하단 말인가? 

군대시절 아무리 어려운 일들이라도 모두 자력으로 해냈던 경력을 되살린 김영섭은 동훈 지배인을 찾아가 자체의 힘으로 연유를 확보하여 보장하겠는데 기업소에서도 관심을 돌려달라고 제기한다. 처음엔 지배인이 알아듣지 못한다. 나라에서 대주는 연유를 현장에 공급해주는 일도 힘에 부친다고 여겨왔기 때문이다. 놀라와 반문하는 지배인에게 김영섭이 실무적인 방도까지 내놓는다. 

 

“《페중유에서 디젤유를 뽑아내는 보이라를 세우겠습니다. 지배인동지는 승인만 해주십시오.》 

너무나 엉뚱한 제기에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확신에 넘쳐있는 김영섭동무를 보니 나에게도 신심이 생기는것이였습니다. 

연유창에서 좀 떨어진 곳에 페유에 의한 연유생산기지가 서고 그곳에서 생산한 디젤유가 우리 륜전기재들에 공급되기까지 김영섭동무를 비롯한 연유공급과동무들의 수고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 기지의 생산을 정상화한다는것은 매일, 매 시각 긴장한 투쟁을 요구합니다.

원천을 탐구하는것이 무엇보다 힘든 일이였습니다. 

큰 공장, 기업소들에서 페유가 나오고있지요. 그 원천을 찾아 우리 동무들이 걸은 길은 그 누구도 가늠하지 못합니다. 

륜전기재들이 움직이자면 디젤유 한가지로는 안됩니다. 

많은 량의 휘발유가 있어야 하며 윤활유, 기계유들도 있어야 합니다. 그 확보방도 역시 김영섭동무가 찾아냈습니다. 

출장을 다녀보면 그 어느 공장, 기업소에나 사장되여있는 자재류들이 있고 항간에서도 노력만 들이면 연유로 전환시킬수 있는 물자들이 있습니다. 

우리 연유공급과동무들은 자체로 생산하지 못하는 휘발유 같은것들을 이런 방법으로 해결하였습니다. 

인원이 제한되여있는 연유공급과로서는 여러 방면에서 벌리는 연유자체확보를 위하여 연유공급원들과 자동차운전사들, 과장이나 부원들 모두가 상하차공이 되여 수시로 부닥치는 일들을 처리하였습니다. 

언제인가 장마철에 연유창에 나가보니 종업원들과 그 가족들까지 동원되여 억수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자동차에 물동을 싣는게 아니겠습니까. 

한방울, 한방울의 연유가 그들의 땀으로 이루어져 륜전기재들이 만가동하게 되였습니다. 

기업소가 맡아하는 대상건설장마다에서 건설성과들이 이룩되고 기업소는 매달 인민경제계획을 어김없이 수행하여 여러차례 *** ***의 감사를 받게 되였습니다. 

나는 지금도 *** ***께서 우리가 맡아하는 어랑촌발전소건설장을 두차례나 찾아주시여 건설정형을 료해하시고 그리도 기뻐하시던 모습을 되새겨보노라면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영광의 그 시각에 김영섭동무는 공교롭게도 먼곳에 출장나가고 없었습니다....》”(281~ 282쪽)

 

그러니까 김영섭은 특수 보일러를 만들어 공장, 기업소들에서 나오는 폐중유에서 디젤유를 뽑아냄으로써 연유자체확보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그런 폐중유가 원래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모르겠는데 혹시 어딘가에 매립되었다면 재활용이 바람직한 노릇이겠다. 물론 뽑아내는 과정에서 환경오염이 생겼을 수도 있다만 생사존망이 걸린 판에야 일단 디젤유를 얻어내어 중장비들을 돌려야 된다. 

그 다음 여러 기업들과 항간에 있는 자재류, 물자들을 활용하여 연유로 전환시켰다는데 자체로 생산하지 못하는 휘발유 같은 것들을 그런 방식으로 해결했다는 두루뭉술한 표현에는 일부 물자들의 수출로 휘발유를 바꿔오는 방법도 숨겨있지 않을까 싶다. 공식수속을 밟았으면 수출과 수입이고 적당히 알아서 처리했다면 밀수도 될 수 있겠다. 구체적인 방법이야 어떠했던지 아무튼 김영섭은 모든 일들을 다 풀어냈다. 

그보다 여러 해 전 군에서 제대한 다음 연유자재과에 배치되어 사흘 째되는 날부터 출장길에 오르기 시작한 김영섭은 후에 부서에서 제기되는 출장일을 도맡게 되었다. 아무리 어려운 임무라도 그를 파견하면 어김없이 빠른 기일 내에 해결해왔기 때문이었다. 

그 비결에 대해 지배인은 이렇게 말했다. 

 

“《알고보면 단순한 리치였지요. 연유를 받아오는 일, 대상기관, 기업소에 인수하고 자동차나 철도로 수송해오는 모든 공정이 다 사람들과의 사업입니다. 그런데 영섭동무와 한번 대상해보면 그 누구나 례외없이 그를 인간적으로 믿게 되고 그가 요구하는 일이라면 기쁘게 받아주는것이였습니다. 

그가 과장사업을 하게 되면서 그 혼자서 다니던 출장길에 다른 부원들도 인입시키게 되였는데 그들이 한결같이 말하는것은 가는 곳마다 김영섭의 이름만 부르면 무조건 도와나선다는겁니다. 

지내보니 김영섭은 자기것을 아낌없이 남에게 주기를 좋아하고 남이 힘들어하는걸 보면 자기 몸은 아랑곳없이 돕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격을 타고난 사람입니다. 

생활이란 그렇지 않습니까. 남을 위해 많은것을 바치는 사람이 역시 많은 도움을 받게 되고 그 과정에 마음속도 터놓게 되지 않습니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 연유공급과를 찾아와 도움을 받기도 하고 여기 일을 도와주기도 하는데 그 사람들중에는 중앙이나 도급단위의 일군들이 있는가 하면 직위나 직종도 각각인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282~ 283쪽)

 

자본주의사회가 계약사회이고 인간들과 기업들 사이의 관계가 “계약관계”로 정의된다면, 사회주의사회 특히 조선 사회는 많은 면에서 “인정사회”이고 “인정관계”가 큰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김영섭은 당일꾼이 아니지만 인간과의 사업을 굉장히 중시하였고 그 덕을 많이 본 셈이다. 

전임 과장의 아내는 남편과 김영섭이 많은 양의 디젤유를 호송해오다가 단천에서 차가 고장나고 노자가 떨어졌으나 디젤유 한두 바께쯔에 후한 값을 치르겠다는 남들의 유혹을 거절하고 숱한 고생을 하면서 기업으로 돌아온 일을 잊지 못하고, 지배인이 기억하는 김영섭의 출장길 경력들은 더욱 많다. 

 

“... 연유를 싣고오던 자동차가 고속도로의 무인지경에서 고장나게 되였을 때 60키로그람이나 되는 차부속을 목도로 메고 30리 산길을 걸어 어느 탄광을 찾아가 3일만에 차를 되살린 이야기, 어느해 섣달 그믐날 유조차를 탄채 마천령고개밑에서 날도 저물고 눈사태까지 만났지만 불망치를 앞세우고 한치한치 길을 열며 령마루에서 설날아침을 맞았고 차속도를 높여 건설장의 첫 전투를 보장한 이야기, 출장도중 독담으로 의식을 잃게 되였을 때 병원에서 구급치료를 받고 의식이 회복되지 운전사를 독촉하여 차안에서 주사를 맞아가면서도 임무를 수행한 이야기...”(284쪽)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하다. 연유공급과가 자체로 짊어진 무거운 짐을 언제까지 감당하겠느냐고 온 기업소가 가슴을 조이며 지켜보는 상황에서 김영섭은 연유공급과의 전망도를 들고 지배인을 찾아갔다. 기존 건물들을 다 털어버리고 면모를 일신시키겠다는 전망도에 지배인은 감탄하면서 정문게시판에 붙여놓으면 좋겠다고 제의했다. 어려운 시기에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낭만을 안겨주는 정치사업이라고 여겼는데, 김영섭은 지배인이 찬성한다니까 쇠뿔은 단김에 빼랬다고 폐유보일러를 세울 때처럼 와닥닥 끝내겠다고 나섰다. 지배인은 김영섭이 몇 년 뒤가 아니라 당장 일을 시작하겠다는 잡도리에 깜짝 놀라 억이 막혔다. 무모하다, 지금 시설과 건물들도 10년 20년 유지할 수 있는데... 지배인의 미적지근한 말에 김영섭은 눈으로 불꽃을 튕기면서 반문했다. 지배인 동지는 우리가 지금의 연유창에 *** ***을 모실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고. 지배인은 말문이 막혔다. 김영섭이 절절한 소원이 어린 눈길로 지배인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언제든지 *** ***을 모실수 있게 준비하자는 저 구호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배인동지도 군사복무를 했겠지만 그 누구나 군사복무의 전기간을 최고사령관동지를 부대에 꼭 모시겠다는 절절한 소원을 안고살기에 전사들은 죽음의 고비에도 서슴없이 뛰여들고 보통사람들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넘지 못할 어려운 고비도 넘기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사회생활도 그렇습니다. 

*** ***을 가까이 몸가까이 모신다고 생각하면 없던 힘도 생기고 새상에 못해낼 일이 없다는것을 지배인동지야 더 잘 아시겠지요?》”(286~ 287쪽)

 

지배인을 설득한 김영섭이 일판을 벌렸을 때 기업소로서는 크게 도울 수 없었다. 시멘트, 소형부재, 목재, 철근 모든 것을 기업에 손을 내밀지 않고 자체로 해결했기에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건설을 시작한 다음 연유생산과 확보실적은 조금도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점점 높아졌다. 매일 연유공급과에서 들어오는 높은 실적이 믿어지지 않아 지배인이 현장에 나가보니 며칠 새에 낡은 건물들을 다 털어버리고 벽체를 다 쌓았으며 천정공사를 하고 있었다. 경사가 가파른 발판 위로 진흙 맞들이를 들고 나르는 사람들의 다수는 여성이니 종업원 가족들이었다. 마당 한복판에 놓인 녹음기에서는 혁명가요들과 전시가요들이 꽝꽝 울려나왔다. 그 분위기에 끌려 지배인은 진흙나르기에 뛰어들었고 휴식참에는 종업원 및 가족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오락회는 춤판으로 이어지고 다시 일이 시작될무렵에는 사람들의 사기가 부쩍 올라 일자리가 푹푹 나는것이이니다. 

날이 저물어가는데 전등불로 밝혀놓은 마당으로 연유를 가득 실은 유조차가 도착하자 모두 환성을 올리며 출장임무를 성과적으로 마치고 돌아오는 부원과 운전사를 환영하였습니다. 

이날 이들의 일본새를 보면서 나는 많은것을 생각하였습니다. 

집단을 어쩌면 이렇게까지 하나의 의지로 단합되게 할수 있었을가? 

역시 연유공급과장 김영섭동무의 군대성격이 사람들속에서 한결같은 믿음을 받게 되고 사람들모두가 그의 일본새와 생활방식을 저절로 따라가게 되면서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말이 난김에 하는 말인데 이 사람들이 자기 일터, 자기 집단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하는것은 명절날이나 휴식날에도 일터에 찾아나와보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것만 보고도 짐작할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일에서 누구나 두몫, 세몫을 맡아하는 이악쟁이들이지만 휴식날에 자기 가정에서 조용히 쉬는 법이 없습니다. 

휴계실에 있는 장기판들과 윷놀이판 그리고 일터에 꾸려진 배구장 등 오락장들이 얼마나 흥성거리는지 모릅니다. 일할줄도 알고 휴식을 즐길줄도 아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입니다...”(288쪽)

 

지배인의 소개는 여기서 끝났다. 열차가 종착역인 평양역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2년이 지나 저자는 김영섭의 일터를 찾아갔다. 전기를 쓰지 않고 연유공급을 할 수 있는 자연낙차식 연유공급체계가 완전히 구비된 구내 곳곳에서 김영섭과 동료들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김영섭이 그날 아침 발전소 건설장으로 지원물자를 싣고 떠나갔기에 그를 만나보지 못하고 당세포비서, 신입노동자, 기표원 등등의 말을 통해 김영섭과 연유공급과를 보다 잘 알게 된다. 

나중에 당비서는 이렇게 말한다. 

 

“작가선생! 

*** ***의 뜻을 받들어나가는 길에서 동지들을 위하여, 우리 사회와 집단을 위하여 더 많은것을 바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며 그렇게 사는것이야말로 선군시대에 참답게 살아갈줄 아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과장동무는 매 종업원가정의 살림살이뿐아니라 자녀들의 교야운제며 관혼상제까지도 다 자기의 책임으로 여기고 풀어주면서도 자기 한가정, 자기 안해와 하나밖에 없는 딸애에 대해서는 너무나 관심을 돌리지 않는다고 때때로 동지들의 비판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일군이야말로 크게 소개할 대상이 아닙니까?》”(291~ 292쪽)

 

그 말을 들으며 저자의 머릿속에서 글 제목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살줄 아는 사람”! 

대체로 살 줄 안다는 말은 제 살 도리를 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사회룰 위하여 남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저자는 의론을 전개했다. 

 

“살줄 안다는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동지들을 열렬히 사랑하며 부정과는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는것, 동지들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에서는 자기가 손해를 보고 큰 해를 입는다쳐도 주저없이 자기 한몫을 내대는것, 이것이 아니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말하고있다. 

아래우로 발라맞추기 잘하고 힘든 일, 손해되는 일은 묘하게 피하면서도 자기 리속만을 채울줄 아는 사람을 《살줄 아는 사람》이라고... 

그러나 우리 선군시대에 와서 그런 사람들은 살 자리가 없다. 

여기 연유공급과사람들은 한사람같이 고지식하고 남에게서 신세를 지면 몇곱절을 갚아주어야 마음을 놓는다. 

그러면서도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때로부터 지난 10여년기간에 연유공급과가 나라에 준 리득급은 수십억원에 이르렀다. 

이들이야말로 참답게 살줄 아는 사람들이 아닌가!”(292쪽) 

 

2006년에 창작, 발표됐고 2016년에 책에 실린 글을 2018년에 소개한다는 게 약간 어색하기는 하다. 그러나 조선에서 내세우는 인간상과 사업방식을 알아보는데 도움이 되니까 보는 이들이 필요한 내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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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18/06/24 [23:28]
남한은 1960년대 중반부터 1990년초까지 대부분의 기술자가 저렇게 살았다. 그게 대한민국의 오늘날 모습이다. 오로지 극일을 위해서 대한민국의 사나이들은 혼을 불태웠다. 북조선은 자력갱생을 위해서 혼을 사랐는지 모르나, 남조선은 일본을 이겨내기 위해서 혼을 불사랐다. 한국의 역사도 제대로 모르는 자유시민의 써 내놓는 글이라는 것이. IMF를 맞으면서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 들어버렸지만.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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