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1. 녕변핵시설의 용도가 조절변경되었다
2. 수송열차 드나드는 동위원소생산시설
3. 초정밀측정장비가 검출한 방사성핵종
4. 3톤급 소당량 핵실험은 핵융합실험이었다
5. 핵기술의 도약, 증폭핵분열탄에서 열핵융합탄으로
6. 증폭과 열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조선의 놀라운 핵기술
▲ <사진 1> 이 사진은 평안북도 녕변의 핵시설단지 안에 있는 5메가와트급 흑연감소로 건물을 촬영한 것이다. 뾰족한 고깔모자처럼 생긴 키높은 증기배출구가 보이고, '자력갱생'이라고 쓴 커다란 구호가 옥상에 세워진 것이 보인다. 6.25전쟁 때부터 미국의 끊임없는 핵위협을 받아온, 전 세계에서 유일한 핵위협피해국인 조선은 미국의 핵위협에 맞설 핵억제력을 보유하기 위해 자력갱생의 투쟁을 벌인 끝에 마침내 강위력한 핵억제력을 보유할 수 있었다. 지난 냉전시기 중국과 소련은 자기들이 조선의 동맹국이라고 하면서도, 조선의 핵억제력 보유를 반대하였다. 그리하여 조선의 핵개발은 미국의 끊임없는 핵위협과 봉쇄와 감시, 그리고 중국과 소련의 반대를 뚫고 오직 자기의 힘만으로 최첨단을 돌파하여야 했던 자력갱생의 간고한 투쟁이었다. 그런 점에서, 조선의 핵억제력은 자력갱생의 핵억제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자주시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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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녕변핵시설의 용도가 조절변경되었다
조선원자력연구원 원장이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의 질문에 답변한 기사가 2015년 9월 15일 <조선중앙통신>에 실렸다. 그의 답변을 전한 언론보도는 “미국과 적대세력들이 무분별한 적대시정책에 계속 매여달리면서 못되게 나온다면 언제든지 핵뢰성으로 대답할 만단의 준비가 되여 있다”고 경고하는 문장으로 끝난다. 바로 이 문장에 시선을 집중시킨 한국과 미국의 언론매체들은 조선이 제4차 핵실험을 예고한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하지만 핵뢰성이라는 말은 핵실험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 핵타격이라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함경북도 길주군에 높이 솟은 만탑산의 화강암층을 1km 정도 파고 들어가 굴설된 갱도식 지하핵실험장에는 10개의 강철문으로 겹겹이 밀폐된 지하갱도가 있는데, 그 갱도의 맨 끝에 자리 잡은 기폭실에서 핵폭발이 일어나도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지상에서는 핵뢰성이 들리지 않는다. 조선에서 말하는 ‘최후결전’에서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발사한 핵탄이 타격목표에 명중하여 폭발할 때 천지를 진동하는 핵뢰성이 울리게 될 것이다.
조선원자력연구원 원장의 답변을 전한 언론보도에서 정작 주목해야 하는 문장은 따로 있다. 그는 “우리 원자력부문의 과학자, 기술자들과 로동계급은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각종 핵무기들의 질량적 수준을 끊임없이 높여 핵억제력의 신뢰성을 백방으로 담보하기 위한 연구와 생산에서 련일 혁신을 창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지금 조선에서 핵억제력을 질적으로 강화하는 기술연구와 핵억제력을 양적으로 확대하는 생산활동이 적극적으로 벌어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사진 1>
조선에서 핵억제력을 질적으로 강화하는 기술연구와 핵억제력을 양적으로 확대하는 생산활동이 적극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말이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 파악하려면, 조선원자력연구원 원장의 답변을 전한 언론보도에 들어있는 또 다른 문장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지난 2013년 4월 당시 우리의 원자력총국 대변인이 밝힌 바와 같이 력사적인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제시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로선에 따라 우라니움농축공장을 비롯한 녕변의 모든 핵시설들과 5MW흑연감속로의 용도가 조절변경되였으며 재정비되여 정상가동을 시작하였다”고 말했다.
위의 인용문에 나오는 조선원자력총국 대변인의 2013년 4월 발언을 다시 찾아볼 필요가 있는데, 2013년 4월 2일 당시 조선원자력총국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변하였다. “력사적인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제시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병진시킬 데 대한 전략적인 로선에 따라 우리 원자력부문 앞에는 (줄임) 핵무력을 질량적으로 확대강화하여야 할 중대한 과업이 나서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자력총국은 당면하여 우선 현존 핵시설들의 용도를 병진로선에 맞게 조절변경해나가기로 하였다.”
위에 인용한, 조선원자력총국 대변인의 2013년 4월 2일 발언과 조선원자력연구원 원장의 2015년 9월 15일 발언에서 공히 지적된 것은, 조선이 자기의 핵억제력을 질량적으로 확대강화하기 위해 모든 녕변핵시설의 용도를 ‘병진로선’에 맞게 전면적으로 조절변경하였다는 사실이다.
▲ <사진 2> 이 사진은 미국의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가 며칠 전 자기의 웹싸이트에 올려놓은 논문에 들어있는 것인데, 녕변핵시설단지 안에 새로 건설되어 완공을 앞둔 대규모 동위원소생산시설을 2015년 8월 초에 촬영한 상업위성사진이다. 조선은 핵융합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한 이후 모든 녕변핵시설의 용도를 '병진로선'에 맞게 조절변경하여 핵융합에 필요한 동위원소를 생산하게 되었다. 이것은 오늘날 조선의 핵억제력이 핵융합기술로 더욱 강화되어 최정점에 도달하였음을 말해준다. © 자주시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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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수송열차 드나드는 동위원소생산시설
모든 녕변핵시설의 용도를 ‘병진로선’에 맞게 조절변경하였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 이 물음에 답하려면, 미국의 유명한 안보문제연구기관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nstitute for Science and International Security)가 2015년 9월 15일에 발표한 글 ‘북조선의 녕변핵시설단지에 관한 최신 정보’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 글에서 특별히 언급된 것은 녕변핵시설단지 안에 지난 40여 년 동안 있었는데도 그 존재가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아 이름도 생소하게 들리는 어느 특정시설인데, 그것이 바로 동위원소생산연구소다. 조선은 녕변핵시설단지 경내의 북쪽에 위치한 이 연구소에서 방사능치료에 사용될 약 300mg의 의료용 동위원소를 1975년에 생산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1992년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에게 밝힌 바 있다.
위에서 언급한 과학국제안보연구소의 글에 따르면, 원래 동위원소생산연구소가 자리를 잡았던 터에는 1970년대에 건설된 작은 건물 두 채가 있었는데, 그 작은 건물들은 헐렸고, 2009년부터 새로운 건설공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착공 이후 6년이 지난 2015년 8월 현재 큰 건물 한 채, 서로 연결된 중간 크기의 건물 두 채, 그리고 작은 건물 한 채가 새로 들어섰는데, 시공이 거의 끝나가는 이 시설들은 조선에서 당창건 70주년을 맞는 오는 10월 10일에 즈음하여 완공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 2>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아무리 방대한 공사라도 “평양속도”로 밀고 나가 2~3년 안에 “불이 번쩍 나게 해제끼는” 조선에서 그리 크지 않은 건축공사를 6년 동안 계속해왔다는 사실이다. 이런 유별난 사정은, 그 건축공사가 고난도 시공기술을 요구하는 공사였을 뿐 아니라, 그 신축건물에 들여놓을 각종 설비들도 간단히 만들지 못하는 특수설비들이었음을 말해준다.
위에서 언급한 과학국제안보연구소의 글에 따르면, 이 새 건물들의 특징은 건물내부가 여러 개의 격폐실(hot cell)들로 나누어졌다는 점, 지붕에 대형 환기시설과 가스배출구가 설치되었다는 점, 그리고 수송열차가 건물 안으로 직접 드나들 수 있게 설계되었다는 점 등인데, 이런 설계적 특징을 주목한 미국 전문가들은 그 새 건물들을 동위원소생산시설이라고 지목했다고 한다.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사정을 살펴보면, 조선이 녕변핵시설단지에 있던 기존 동위원소생산연구소 건물을 들어내고 생산설비가 현대화되고 생산능력이 확장된 새로운 동위원소생산시설을 신축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원자력총국 대변인의 2013년 4월 2일 발언과 조선원자력연구원 원장의 2015년 9월 15일 발언이 공히 지적한 것처럼, 조선이 모든 녕변핵시설의 용도를 ‘병진로선’에 맞게 조절변경한 목적이 핵억제력을 질량적으로 확대강화하기 위한 것이므로, 새로 건설된 동위원소생산시설에서는 핵억제력을 질량적으로 확대강화하기 위한 동위원소를 생산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서, 방사능치료에 필요한 의료용 동위원소를 소량 생산하던 기존 연구소가 없어지고, 핵억제력을 확대강화하기 위한 용도로 신축된 대규모 동위원소생산시설이 완공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핵억제력을 확대강화하기 위한 동위원소라는 것은 핵분열(nuclear fission)과는 차원이 다른 핵융합(nuclear fusion)에 필요한 동위원소를 말한다. 원래 핵융합에는 삼중수소(Tritium), 중수소화 리튬(Lithium Deuteride), 리튬-6, 우라늄-238, 플루토늄-235 같은 동위원소들이 필요하므로, 녕변핵시설단지에 신축되어 완공을 눈앞에 둔 동위원소생산시설에서는 위에 열거한 핵융합용 동위원소들이 생산될 것이다. “우리식의 핵융합기술”을 개발하였다고 밝힌 조선이 핵융합에 필요한 동위원소를 생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3. 초정밀측정장비가 검출한 방사성핵종
조선이 “우리식의 핵융합기술”을 개발하였다는 사실을 세상에 공개한 때는 제3차 핵실험을 진행하기 3년 전인 2010년 5월이다. 2010년 5월 12일 <조선중앙통신>은 “우리의 과학자들은 최첨단을 돌파할 데 대한 당의 사상과 의도를 결사관철할 비상한 각오를 가지고 핵융합기술을 우리식으로 개발하기 위한 줄기찬 투쟁을 벌려왔다. 부족하고 어려운 것이 많은 속에서도 우리의 과학자들은 사소한 주저와 동요도 없이 제기되는 수많은 과학기술적 문제들을 100% 자체의 힘으로 해결함으로써 마침내 핵융합반응에 성공하였다. 이 과정에 우리식의 독특한 열핵반응장치가 설계제작되고 핵융합반응과 관련한 기초연구가 끝났으며 열핵기술을 우리 힘으로 완성해나갈 수 있는 강력한 과학기술력량이 마련되였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조선은 “우리식의 핵융합기술”을 개발하였다고 밝혔지만, 조선에서 진행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의심하고 깎아내리는 습관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그 보도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이 핵융합기술을 개발하였다는 사실은 방사성핵종검출에 의해 입증되었다.
2010년 10월 19일 <연합뉴스>에 국정감사발언을 인용한 흥미로운 보도기사가 실렸다. 보도에 따르면, 조선이 핵융합기술을 개발하였다고 발표한 날로부터 사흘이 지난 2010년 5월 15일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에 있는 최북단 방사능측정소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거진측정소의 방사성핵종검출장비에서 제논-135가 검출되었다. 이것은 그 핵종검출장비가 2007년에 그곳에 설치된 이후 가장 높은 수치가 나타난 것이었는데, 평소에 검출되는 제논 농도는 0~0.55였으나 2010년 5월 15일 오전 2시 7분에 갑자기 4.085로 솟구쳤다고 한다. 제논은 자연적으로는 존재하지 않고 인공적 핵분열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기체상태의 방사능물질이다.
<노컷뉴스> 2011년 3월 28일 보도에 따르면, 거진측정소에 설치된 방사성핵종검출장비는 한국의 다른 70여 개 측정소들에 설치된 유사한 핵종검출장비들에 비해 검출감도가 70만 배 정도 더 높은 초정밀검출장비이므로 다른 측정소들에서 검출하지 못하는 극미량의 제논도 검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강릉대학교 안에 있는 방사능측정소를 촬영한 것이다. 한국 각지에 있는 방사능측정소들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관리하고 있다. 이 측정소들은 대기 중에 포함된 방사능핵종을 검출하는 대기측정장비를 가동한다. 조선의 핵실험과 핵융합실험에서 방출된 방사능핵종도 그 측정소들에서 검출되었다. © 자주시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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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3일 과학전문지 <네이처(Nature)>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스웨덴 국방연구원 소속 대기과학자 라스 에릭 데예르(Lars-Erik De Geer)는 2010년 4월과 5월 한반도 상공에서 포집된 대기표본들에서 평소보다 매우 높은 농도의 제논과 바륨이 검출된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런 현상은 당시 조선이 핵실험을 진행하였음을 말해준다고 밝힌 바 있다. 조선의 핵억제력 발전추세를 알지 못하는 그는 핵실험이라는 모호한 말을 썼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은 핵융합실험이었다.
<조선일보> 2011년 3월 28일 보도에 따르면, 거진측정소에서는 2010년 5월 15일에 이어 2011년 3월 27일에도 제논이 검출되었다. 당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일본 후꾸시마 원전 사고로 방출된 제논이 바람을 타고 러시아 캄차카반도로 북상한 뒤 북극을 한 바퀴 돌아 저 멀리 시베리아를 거쳐 한반도 상공으로 남하했다는 말이 되지 않는 억측을 늘어놓았는데, 기상청은 그 날 바람이 어느 쪽에서 불었는지 등을 역추적하는 식으로 검증한 결과, 후꾸시마 원전 사고로 유출된 제논이 바람을 타고 북극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한반도로 내려왔다고 볼 수 있는 어떤 근거도 없다고 하면서, 제논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으로 논란의 마침표를 찍었다. 조선의 핵억지력에 관한 심층정보를 알지 못하는 기상청은 그 제논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알 수 없다고 했지만, 거진측정소에서 2011년 3월 27일에 검출된 제논도 2010년 5월 15일에 검출된 제논과 마찬가지로 조선의 핵융합실험에 의해 발생한 것이 확실하다.
▲ <사진 4> 2009년 후반 조선에서 상영된 다부작 예술영화 '내가 본 나라' 제4부에는 만탑산 지하핵실험장 입구를 형상한 위와 같은 장면이 나온다. 만탑산 허리의 견고한 화강암층을 뚫고 굴설된 갱도식 핵실험장 입구에는 전기장치로 여닫는 거대한 강철문이 설치되었다. 2010년과 2011년에 있었던 조선의 핵융합실험들도 바로 이 만탑산 지하핵실험장에서 진행되었다. © 자주시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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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톤급 소당량 핵실험은 핵융합실험이었다
중국과학기술대 연구진은 2014년 11월 20일 자기의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논문에서 2010년 5월 12일 오전 9시 8분께 북위 41.2863도, 동경 129.0790도의 좌표에서 소당량(소규모) 핵실험이 진행되었다고 밝혔다. 함경북도 길주군 만탑산 핵실험장의 좌표는 북위 41.28도, 동경 129.13도이므로, 2010년 5월 12일 오전 9시 8분께 조선의 만탑산 핵실험장에서 소규모 핵실험이 진행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사진 4>
그런데 중국과학기술대 연구진의 논문에서 밝혀진 더 중요한 사실은, 2010년 5월 12일 만탑산 핵실험장에서 진행된 소당량 핵실험이 “핵융합과 관련된” 실험이었다는 점이다. 이로써 조선이 진행한 소당량 핵실험이 핵융합실험이었음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은 2010년 4월과 5월, 그리고 2011년 3월에 만탑산 핵실험장에서 핵융합실험을 진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핵융합실험에서도 핵폭발이 일어나므로 인공지진파도 발생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 각지의 지진측정소들은 조선이 세 차례 핵융합실험을 진행할 때마다 인공지진파를 전혀 측정하지 못했다. 이런 불일치 현상에 주목한 국제핵과학계의 일부 전문가들은 당시 조선이 핵실험을 진행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의혹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그런 의혹은 정보부족으로 생긴 것이었다. 위에 인용한 중국과학기술대 연구진의 논문에 따르면, 조선이 2010년 5월 12일에 진행한 소당량 핵실험, 더 정확하게 말해서 핵융합실험에서 발생한 폭발력은 약 2.9톤이고 오차율은 0.8톤이라는 것이다.
2006년 10월 9일 조선이 진행한 제1차 핵실험에서 발생한 폭발력은 약 1킬로톤이었는데, 2010년 5월 12일 소당량 핵실험(핵융합실험)에서 발생한 폭발력은 그것의 333분의 1 수준인 약 3톤밖에 되지 않았다. 이처럼 강도가 매우 낮은 폭발에서 미약한 인공지진파가 발생되었으므로, 한국 각지의 지진측정소들은 그 파장을 측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5. 핵기술의 도약, 증폭핵분열탄에서 열핵융합탄으로
2013년 2월 12일 제3차 핵실험을 진행한 때로부터 약 석 달이 지난 5월 21일 <로동신문>에 중요한 보도기사가 실렸다. 그 보도기사는 “오늘 우리는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 정밀화된 핵탄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제3차 핵실험은 핵탄의 다종화를 물리적으로 입증한 실험이었다고 밝혔다. 그 문장을 옮기면, “이전과 달리 폭발력이 크면서도 소형화, 경량화된 원자탄을 사용하여 높은 수준에서 안전하고 완벽하게 진행된 제3차 지하핵시험은 작용특성, 폭발위력을 비롯한 모든 측정결과들이 설계값과 완전히 일치됨으로써 다종화된 우리 핵억제력의 우수한 성능을 물리적으로 과시하고 적들을 전률케 하였다”는 것이다. 이 인용문은 주의 깊게 읽어야 그것이 암시하는 뜻을 파악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서술된 문장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우선 시선을 끄는 것은 “이전과 달리”라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제3차 핵실험이 제1차 핵실험이나 제2차 핵실험과는 다른 유형의 핵실험이었음을 뜻한다. 제3차 핵실험이 이전 핵실험들과 다른 유형의 핵실험이었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
조선은 제1차 핵실험 직후 언론보도를 통해 “주체95(2006) 10월 9일 지하핵시험을 안전하게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다. 과학적 타산과 면밀한 계산에 의하여 진행된 이번 핵시험은 방사능 류출과 같은 위험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확인되였다”고 하였다. 이것은 제1차 핵실험이 핵분열탄(원자탄)실험이었음을 밝힌 것이다. 제1차 핵실험의 폭발력은 약 1킬로톤이었다.
그로부터 3년 뒤 제2차 핵실험을 진행한 조선은 언론보도를 통해 “주체98(2009) 5월 25일 또 한 차례의 지하핵시험을 성과적으로 진행하였다. 이번 핵시험은 폭발력과 조종기술에 있어서 새로운 높은 단계에서 안전하게 진행되였으며 시험결과 핵무기의 위력을 더욱 높이고 핵기술을 끊임없이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과학기술적 문제들을 원만히 해결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 인용문에서 “폭발력과 조종기술에 있어서 새로운 높은 단계”에 도달하였다는 표현은 제2차 핵실험이 제1차 핵실험에 이어 핵분열탄실험을 반복한 것이 아니라, 기폭과정을 조종하여 폭발력을 증폭시킨 새로운 유형의 핵실험을 진행하였음을 뜻한다. 기폭과정을 조종하여 핵분열탄보다 폭발력을 몇 배 더 증폭시킨 핵분열탄이 바로 증폭핵분열탄(boosted nuclear fission bomb)이다.
조선의 제2차 핵실험은 증폭핵분열탄실험이었다. 1953년 8월 23일에 있었던 소련의 증폭핵분열탄실험에서 발생한 폭발력은 28킬로톤이었는데, 조선의 제2차 핵실험에서 발생한 폭발력은 약 5킬로톤이었으므로, 조선은 소련의 증폭핵분열탄보다 폭발력을 6분의 1 정도로 줄인 증폭핵분열탄을 실험한 것이다. <사진 5>
▲ <사진 5> 조선예술영화 '내가 본 나라' 제4부는 2009년 5월 25일 제2차 핵실험을 정면에서 다룬 화제작이다. 조선에서 이름을 날리는 유명한 배우들이 출연하고, 컴퓨터영상합성기술로 화면을 구성하여 영화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위의 사진은 제2차 핵실험 진행과정 중에 만탑산 핵실험장 지하갱도의 9번째 강철문이 차단되는 순간, 통제실의 컴퓨터에 나타난 화면을 보여준 장면이다. 구불구불한 형태로 굴설된 갱도는 기폭실에 가까와지면서 달팽이모양으로 감돌며 구부러졌다. 핵폭발이 갱도 밖으로 터져나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지하갱도 곳곳에 설치된 강철문은 모두 10개다. 조선이 이런 갱도식 핵실험장에서 진행한 제2차 핵실험은 제1차 핵분열탄실험보다 한 급 높은 증폭핵분열탄실험이었다. © 자주시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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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의 제3차 핵실험이 이전의 핵실험들과 다른 유형의 핵실험이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제3차 핵실험이 핵탄의 다종화를 물리적으로 입증한 실험이었다고 밝힌 <로동신문> 2013년 5월 21일 보도기사에 나오는 두 개의 문구에 시선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전과 달리 폭발력이 크면서도 소형화, 경량화된 원자탄을 사용”하였다는 문구와 “다종화된 우리 핵억제력의 우수한 성능을 물리적으로 과시”하였다는 문구다.
“폭발력이 크면서도 소형화, 경량화된 원자탄을 사용”했다는 표현은, 크기를 소형화하고, 무게를 경량화하였으면서도 핵폭발강도를 높인 증폭핵분열탄을 사용했다는 뜻이다. 조선이 제2차 핵실험에서 사용한 증폭핵분열탄은 핵분열장치를 소형화하고, 그 장치에 소량의 무기급 핵물질만 넣어 무게를 경량화하면서도 폭발력을 핵분열탄보다 5~6배 증폭시킨 것이었다.
크기가 작고, 무게가 가벼우며, 폭발력을 증폭시킨 증폭핵분열탄이 있어야 탄도미사일에 장착하는 고성능 핵탄두를 만들 수 있다. 그런 까닭에, 미국, 러시아, 중국을 비롯한 5대 핵강국들이 보유한 핵탄두는 전량 증폭핵분열탄이다.
그렇다면 조선의 제3차 핵실험은 제2차 핵실험과 마찬가지로 증폭핵분열탄실험이었던 것일까? 만일 조선이 제2차 핵실험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제3차 핵실험에서도 증폭핵분열탄을 실험하였다면, “이전과 달리”라는 말을 쓸 수 없다.
원래 증폭핵분열탄은 핵분열을 증폭시킨 강화원자탄이므로, 핵분열탄의 일종이지 다른 종류의 핵무기는 아니다. 그런데 위에서 인용한 두 번째 문구는 조선의 제3차 핵실험에서 “다종화된 핵억제력의 우수한 성능이 물리적으로 과시”되었다고 표현하였다. 다시 말해서, 제3차 핵실험은 증폭핵분열탄을 사용하면서도, 증폭핵분열탄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핵무기를 폭발시킨 실험이었던 것이다.
증폭핵분열탄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핵무기는 무엇일까? 증폭핵분열탄을 기폭제로 사용하는 새로운 핵무기는 열핵융합탄(thermonuclear fusion bomb)이다. 수소탄이라고 부르는 열핵융합탄은, 원자탄이라고 부르는 핵분열탄과는 종류가 다른 핵무기다. 핵분열탄은 고폭장약을 기폭제로 사용하여 연쇄핵분열을 일으키는 고전적 무기이고, 열핵융합탄은 증폭핵분열탄을 기폭제로 사용하여 다단계 핵융합을 일으키는 고차원 무기다. 열핵융합탄보다 폭발력이 더 강한 무기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사진 6>
▲ <사진 6> 1954년 3월 1일 미국은 남태평양 마샬제도의 비키니환초에서 열핵융합탄실험을 진행하였다. 위의 사진은 열핵융합탄이 폭발하는 순간 거대한 핵화염이 구름 위로 솟구치는 장면이다. 그 날 미국이 실험한 열핵융합탄의 폭발력은 히로시마 원폭보다 약 100만배나 더 강한 15메가톤이었지만, 그 열핵융합탄은 실전에서 쓸 수 없는 실험용 열핵융합탄이었다. 실전에서 쓸 수 있는 열핵융합탄을 세계 최초로 만든 나라는 소련이다 © 자주시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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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융합은 핵분열과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강력한 에너지를 방출하면서도 방사능은 방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조선이 제3차 핵실험에서 열핵융합탄을 실험하였다면, 당연히 방사능이 방출되지 않았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실제로 조선이 진행한 제3차 핵실험에서 제논이나 크립톤 같은 방사성핵종이 방출되지 않았다. 조선이 제3차 핵실험을 진행하였을 때, 한국은 12억 원을 주고 스웨덴에서 수입한 고성능 제논포집기(SAUNA)를 동원하였고, 미국은 방사능측정정찰기(WC-135)를 동원하여 여러 날 동안 샅샅이 훑었으나, 방사성핵종은 검출되지 않았다. 조선의 만탑산 핵실험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중국의 동북3성 변경지역에는 26개의 감측소가 있는데, 조선의 제3차 핵실험 직후 그 감측소들에서도 방사성핵종이 검출되지 않았다. 방사성핵종을 방출하지 않는 핵실험은 열핵융합탄실험밖에 없다.
6. 증폭과 열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조선의 놀라운 핵기술
제3차 핵실험에서 발생된 폭발력은 조선이 이전에 진행한 두 차례의 핵실험들에서 각각 발생된 폭발력에 비해 상당히 강해졌지만, 이전에 미국과 소련이 진행했던 열핵융합탄실험들에서 발생한 폭발력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였다.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핵선진국의 전문기관들이 조선의 제3차 핵실험에서 발생된 폭발력을 측정한 결과를 보면, 최소 6킬로톤에서 최대 16킬로톤에 이르는 상당한 편차를 드러냈다. 측정조건과 측정장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런 편차를 드러낸 것이다. 핵실험에서 발생하는 폭발력의 강도를 정확히 측정하려면 측정위치를 핵실험장에서 가까운 거리에 두어야 유리한데, 그런 점에서 중국과학기술대 연구진의 측정결과가 가장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조선의 제3차 핵실험 직후 그에 대한 연구를 가장 먼저 시작한 중국과학기술대는 폭발진앙지를 정확하게 탐지한 뒤에 위성영상자료들을 분석하여 폭발심도까지 정밀하게 계산함으로써 미국지질조사국이나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의 측정결과들보다 오차범위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중국과학기술대 연구진이 그렇게 측정한 조선의 제3차 핵실험의 폭발력은 12.2킬로톤으로 나왔다. 이것은 상용폭약(TNT) 12,200톤에 해당하는 엄청난 폭발력이 발생하였음을 말해준다. <사진 7>
▲ <사진 7> 1953년 8월 12일 소련은 첫 열핵융합탄실험을 진행하였다. 기폭순간에 엄청난 핵뢰성이 진동하면서 핵화염이 하늘을 뒤덮고, 핵폭풍이 땅을 휩쓸고, 핵진동이 지축을 뒤흔들었으며, 400킬로톤급 폭발력을 발생시켰다. 증폭핵분열탄을 기폭제로 사용하여 다단계 핵융합을 일으키는 열핵융합탄보다 폭발력이 더 강한 무기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열핵융합탄은 그야말로 최상위 종결자인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2013년 2월 12일 조선에서 진행된 핵실험이 폭발력을 12.2킬로톤으로 크게 줄인 열화열핵융합탄실험이었다. 조선은 약 25년 동안 핵개발분야에서 자력갱생의 간고한 투쟁을 밀고나간 끝에 마침내 열핵융합탄실험에 성공하여 세계 최강의 핵강국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다. 조선은 미국이 상상하지 못하는 최첨단 핵기술과 초강력한 핵억제력을 보유한 것이다. 조선이 말하는 '최후결전'은 그런 초강력 핵억제력으로 미국의 핵공격을 원천봉쇄한 상태에서 단 3일만에 끝나는 초단기속결전으로 될 것으로 보인다. 만일 조선에게 열핵융합탄이 없다면 3일전쟁은 불가능할 것이다. © 자주시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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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8월 12일에 있었던 소련의 첫 열핵융합탄실험에서 발생한 폭발력은 400킬로톤이었는데, 조선이 제3차 핵실험에서 열핵융합탄실험을 하였다면, 그 폭발력이 어째서 12.2킬로톤밖에 나오지 않은 것일까? 열핵융합탄이 전략핵분열탄보다 1,000배 이상 초강력한 폭발력을 발생시킨다는 것만 아는 사람들은 열핵융합탄의 폭발력을 필요에 따라 전술핵분열탄 수준으로 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못한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자연지리적 공간이 협소한 조선에서는 메가톤급 열핵융합탄을 실험할 수 없다. 1메가톤은 1,000킬로톤이고, 1,000킬로톤은 상용폭약 1,000톤이므로, 1메가톤급 열핵융합탄은 상용폭약 100만톤의 폭발력을 가진다. 만일 조선이 1메가톤급 열핵융합탄을 실험하면, 혜산, 청진, 라선, 김책 등 북변도시들은 물론 국경을 넘어 중국의 훈춘, 옌지, 투먼 등 도시들에 엄청난 피해를 줄 초강력 인공지진파가 발생할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은 핵실험에서 발생하는 폭발력을 극도로 억제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은 조선이 메가톤급 열핵융합탄의 폭발력을 전술핵분열탄 수준의 매우 낮은 폭발력으로 열화(劣化)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이 제3차 핵실험에서 열핵융합탄을 실험하였는데도 그 폭발력이 고작 12.2킬로톤밖에 되지 않았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소련도 폭발력을 3.5킬로톤으로 줄인 열핵융합탄실험을 1955년 9월 21일에 진행한 적이 있다. 메가톤급 폭발력을 킬로톤급 폭발력으로 열화시킨 열핵융합탄을 열화열핵융합탄(depleted thermonuclear fusion bomb)이라고 부른다.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사정을 살펴보면, 조선이 2013년 2월 12일에 진행한 제3차 핵실험은 열화열핵융합탄실험이었음이 자명해진다. 열핵융합탄실험에서 성공하여 크게 고무된 조선에서는 자기의 핵기술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더욱 발전시키려는 국가적인 조치를 취하였는데, 그 조치가 바로 원자력공업성을 신설한 것이다. 2013년 4월 11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조선의 원자력공업을 현대화, 과학화하며 최첨단 과학기술의 토대 우에 확고히 올려세워 핵물질의 생산을 늘이고 제품의 질을 높이며 자립적인 핵동력공업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하여 원자력공업성을 내오기로 결정”한 정령을 발표하였다. 1985년 12월 조선과 소련은 ‘경제 및 기술협조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였고, 이듬해부터 녕변핵시설단지에서 5메가와트급 흑연감속로가 가동되었으며, 같은 해 12월 29일에는 원자력공업부가 신설되었는데, 그로부터 27년 만에 기존 원자력공업부를 원자력공업성으로 교체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조선이 열핵융합탄을 만드는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기까지 약 25년이 걸린 셈이다.
2015년 9월 19일 <로동신문>에 실린 논평기사는 “우리의 핵억제력은 미국이 예측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으리만큼 질량적으로 장성강화되였다”고 지적하였다. 이것은 조선이 2013년 2월 12일 마침내 열핵융합탄실험에 성공함으로써 핵분열탄→증폭핵분열탄→열핵융합탄으로 상승발전하는 핵억제력강화과정의 최정점에 도달하였음을 암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