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국방정책 변천과 미국
정설교 화백
기사입력: 2017/05/14 [00:48]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올브라이트와 조명록 차수의 만남   © 정설교 화백

▲  노태우정권에서 공산주의와 수교하며 반공에서 반북이 국시가 되었고  북이 주적이 되었다.

   © 정설교 화백

▲ 반공과  반통일,  반민족을 국시로한 두 사람    © 정설교 화백

▲ 미국의 오판 B52 폭격기  출처- 박태균 베트남 전쟁 

 

1948815일 남한 단독으로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자 대통령 이승만은 미국의 시책에 따라서 반공을 국시로 하였다. 한국의 국방정책의 기본은 미국과 같이 자본주의를 고수하며 공산주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하여 공산주의를 적으로 삼았으며  공산주의에 위협에 대응하기 위하여 한국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국방체계를 세웠다. 

 

이승만 정부의 당시 최대과제는 안보역량을 강화하여 북한을 무력으로 통일하는 것이었다. 이승만은 이를 위해 막대한 군사예산을 미국의 원조에 의존했다. 이범석은 국무총리로 33년간 광복군을 이끌었던 이승만 정부의 군 최고의 실력자로 국방장관이 되었으며 군사조직법, 북한을 적으로 하는 국가보압법을 제정하는데 행정적인 조치를 하였고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진영의 군사역량을 규합하여 만약에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미군의 작전협력을 받는 공동작전을 전개하고 군사 제일주의에 주력한다는 방침아래 반공정신강화를 국가의 시책으로 펴나갔다. 결국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은 한국군의 군사작전권까지 맥아더에게 받쳤다.

노무현 정부에서 되돌려 받기로 한 이 전시군사작전권은 비선에 움직이던 박근혜에 의하여 다시 무기한 반환 연기되었다.

 

반공국시에 반공교육강화는 군사쿠데타 박정희로 이어진다. 월남전이 발발하자 박정희는 더욱 기세를 올리게 되었는데 한국은 월남에 국군을 파병하여 미국을 도와 월남을 평정하고 동남아에서 공산세력을 강력히 저지하고 안으로는 방위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경제발전과 무기체제확립 기반을 조성하여 승공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역량강화를 수립하였다. 1968년 푸에블로호 사건에 박정희는 예비군을 창설하였으며 총 1662143명의 1000여개 중대가 넘는 예비군조직을 완료했다.

 

하지만 월남전 패전으로 월남과 한국에서 미군철수의 압력과 적대국인 중국과 미국이 국교를 정상화 하자  중국은 유엔 상임이사국에 강대국 반열에 오르고 반공이 국시던 대만은  미국으로부터 버림받았다. 이에 반공을 국시로 하던 박정희 정권은 흔들리기 시작하였고 미국의 방위공약을 받아내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려 하였고 이는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행위로  박정희는 부하의 손에 의하여 요정에서 살해되었다.

 

박정희의 뒤를 이은 전두환은 반공 국시에서 북한이 주적으로 민주주의 탄압은 극심하였다. 직선제 개헌 이후 노태우 시대에 미소의 냉전체제가 198912월 몰타에서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이에 미소협력 하에 독일이 통일을 이루고 이 영향은 한반도에도 독일식 통일 기대에 긴장완화의 활력소가 되었지만 이는 남북관계를 대결로 이끌어내는 북한 체제전복 남한 자본주의로 흡수통일의 야망으로 노태우 정부는 7.7 선언을 발표하게 되었고 중국과 소련 사회주의 국가와 수교하며 민족자존에 입각한 자주외교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에 직면하게 되었다.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소망은 19932월 문민정부 출범으로 남북이 1단계 화해협력단계와 2단계 남북연합단계를 걸쳐 궁극적으로 1민족1국가를 완성하는 3단계 통일구도가 발표되었다. 하지만 미국은 김영삼정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9461614시 미국은 북한 영변을 폭격하려고 하였으나 북의 비공개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김명철 소장의 주장)와 미국 자체 시뮬레이션 가상 대결에서 너무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어 결국 615일 카터의 북한 방문으로 극적인 타결을 보고 북미대화의 물꼬를 텃다. 하여 94년 북미제네바합의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1995410일 북한- 미국 직통전화개설, 1215일 북한 경수로공급협정체결, 1998525일 월리엄 페리 대북정책 조정관 북한방문, 2000109일 조명록 차수 특사자격으로 워싱턴방문, 1012일 북미 공동케뮤니케, 1023일 올브라이트 북한방문으로 이어지며 이는 20006.15 공동선의 기반이 되었지만 20019.11 미국에 테러가 발생하며 북미대화 단절에 다시 북한은 미국의 안보 위협국가로 분류되었고 오바마의 방치전략에 이명박근혜 두 정권은 충실하며 6.15 공동선언은 거의 사문화 되었다.

 

2017년 취임한 트럼프의 대북정책은 북미 힘겨루기 양상으로 번지지만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개발을 막지 못했고  북한은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선보이고 미국과 우리의 군도 국방백서 등을 통하여 이를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미 본토를 방위하기 위한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며 중국과 소련의 반발을 사고 이를 무마하기 위하여 북한 위협설로 미국이  변명을 하고 있지만 한국을 향한 중국의 무역제재는 계속되고 한국은 장기적인 불황에 허덕이며 이에 미국의 사드로 인하여 한국의 국민들만 불행한 처지다.  

 

지금까지 청와대는 국민의 뜻을 정치에 반영하는 게 아니라 미국의 이익을 국민들에게 강요하고 이를 반대하는 국민들을 종북으로 매도하여 처형했다. 결국 그 막장을 보여준 박근혜 정부는 탄핵되어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자는 대통령 임기를 끝내기도 전에 사법처리되는 불행한 대통령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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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글들에 사해천하 17/05/15 [04:18] 수정 삭제
  공감하는 부분도 있지만 이해 불가인 부분도 많습니다. 위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당시 독립군들이 항일운동의 중심지가 공산주의 였으며 미국이 점거한 남한을 하루아침에 반공을 국시로하여 애국애족 선열들을 적으로 몰아간 막가파 침략자들의 행패를 묵인하고 일본군과 매국반역세력들을 정부요직에 앉혀놓고 미국의 탐욕적 목적에 국민들이 이용되어 전쟁이 일어 난 사실을 은폐하고 국민들을 종북,좌빨로 몰아 지금까지도 조국과 민족을 위하는 자는 적폐들에 숙청 당해야 하는 혼란 속에 미국의 똥개로 살아야 하는지 심히 우려 되는 부분입니다. 미국이 이나라를 위한다면 민족을 분열시키는 행위를 기획하지 말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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