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광주에서 새로운 나라를 약속한 동아대학생의 역사기행
청춘동아
기사입력: 2017/05/19 [10:40]  최종편집: ⓒ 자주시보

 

지난 5월10일 동아대에서 5·18광주민중항쟁 37주년 기념 강연이 열렸다.

 

당시 시민군으로 참가하셨던 김공휴 선생님 (5·18구속부상자회 부회장)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참가학생이 선생님께 27일 마지막 도청진압 작전에 남으셨던 이유를 물었더니 “내가 가면 옆에 있던 사람도 가고 싶고, 이렇게 가버리면 광주는 어떻게 되나” 이런 생각을 하시며 죽음을 각오하고 남으셨다고 한다. 평범하지만 무척 공감이 되는 이야기였다.

 

“시민군으로 활동한 과거를 후회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는 “고문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개인적인 짐이지만, 주변에서 왜곡된 시선으로 5·18을 대할 때는 후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답해주셨다.

 

선생님이 당하셨던 고문, 당시 현장의 증언들로 80년 오월의 광주에 대해 체감하는 시간이었다.

 

 

▲ 김공휴(5.18구속부상자회 부회장)선생님과 강연후 기념사진.10일동아대김관음행홀     © 청춘동아

 

 

동아대 역사동아리에서는 희생된 열사의 사진과 열사의 사연을 담은 선전물, 당시 끔찍했던 계엄군의 만행이 담긴 ‘오월의 노래’를 학내게시판에 부착했다.

많은 학생들이 열사의 사진 한 장, 한 장을 들쳐보며 5․18을 기억하는 손길이 이어졌다.

 

 

▲ 역사동아리에서 직접 만든 선전물.     ©청춘동아

 

 

5월 13-14일, 18명의 동아대 학생이 5·18역사기행을 광주로 갔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5․18국립묘지!

 

2주 동안 밤낮으로 준비한 강사와 함께 묘역의 조형물에 대한 설명과 5·18 열사 한분, 한분을 만났다. 광주는 여러번 왔지만 5․18국립묘지는 처음이라는 새내기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하는 새내기를 위해 강사의 열정적인 이야기가 이어졌다.

 

순례를 위한 참배객들이 끊이지 않고 묘역으로 들어왔으며, 곳곳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퍼졌다.

미리 만들어간 국화를 열사에게 헌화하며 각자의 다짐을 전했다.

원묘역에서는 대학생, 농민, 노동자, 통일운동가인 민족민주열사께 참배하고 열사의 삶과 정신에 대한 해설을 진행하며 '5․18 정신'은 80년대, 90년대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 강사의 열정적인 묘역해설     ©청춘동아

 

 

묘역 순례 후에 광주역에서 금남로까지 대학생들의 약속 퍼레이드 ‘새로운 나라를 위한 행진’을 했다.

 

 

'오월정신 계승', '광주학살 책임 미국사과', '반값등록금 실현', '남북관계개선 및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세월호 진상규명' 구호를 외치니 광주시민분들의 손도 흔들어주시고 박수도 쳐주시는 모습에 ‘역시 광주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묘역순례를 통해 과거의 역사를 만나고 왔다면 퍼레이드는 현재의 우리의 역사를 직접 쓰는 시간이었다. 

 

 

▲ 금남로에 울려퍼진 사드철수 구호!     ©청춘동아

 

 

전남대학교 잔디밭에 앉아 늦은 저녁도시락을 먹으며 ‘새로운 나라를 위한 약속’ 문화제를 참가했다.

 

무대를 가득 채운 대학 노래패의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전하는 패기와 결기, 뭉클함으로 모두가 함께 불렀는데 9년만에 5․18기념식에서 제창될 ‘임의 위한 행진곡’의 예고편을 보는 듯했다.

 

 

'정권교체가 되었으니 새로운 나라는 당연히 오는 것이 아니라며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조선대 총학생회장의 발언이 특히 인상 깊었다. '노래패 우리나라'의 공연으로 시작된 대동놀이로 오월 광주에서의 밤은 젊음과 열정으로 가득했다.

 

 

▲ 대학생노래패연합의 '임을 위한 행진곡'     ©청춘동아

 

 

14일, 광주의 순례 둘째날에는 전남대 순례와 박주민의원의 강연을 마치고 마지막 순례지인 구, 전남도청으로 향했다.

 

아시아문화전당이 조성되면서 5·18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게 훼손되어 유가족과 시민단체에서 본관을 지키며 싸우고 계셨는데 단원고 기억교실을 지키기 위해 싸우던 세월호 유가족의 모습과 겹쳐보였다.

 

 

‘스마트기념관’이라며 전시된 곳들은 화려한 볼거리와 편의를 제공하지만 항쟁의 증거를 고스란히 남아있던 도청의 모습을 이제는 영상과 사진자료를 통해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다.

 

 

▲ 본관건물이 훼손되어 건물골격이 드러나있는 구,전남도청     © 청춘동아

 

 

윤상원 열사가 27일 계엄군의 총에 맞아 돌아가셨다는 도청 민원실 2층.

윤상원 열사는 어떤 마음으로 죽음을 각오하셨을까?

‘지금 우리는 패배하지만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다’ 그 자리에 서서 윤상원 열사의 말씀을 떠올려본다.

 

정권교체를 이룬 대선 직후의 광주는 유독 활기와 힘이 넘쳐보였다.

아마도 우리처럼 광주를 다녀간 많은 국민들의 마음에 활기와 힘을 가득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직 바로 잡아야 할 수 많은 일들이 있기에 우리는 오월 광주에서 열사의 묘역앞에서 약속을 했다.

 

반드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상식이 통하는 ‘새로운 나라’를 만들 것을!

 

 

▲     ©청춘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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