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일침317] 1951년 정전담판의 “코리아 패싱”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7/08/16 [23:58]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정전회담을 진행하는 북, 중, 유엔군 대표     © 자주시보

 

▲ 정전협정문 서명란 어디를 봐도 국군 대표의 이름은 없다.     © 자주시보

 

“모르는 게 약”이라면 아는 것은 고통이다.
한국에서 생산된 글들을 보다나면 고통을 자주 느낀다.

 

8월 16일 《아시아타임즈》 이정선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의 까칠토크 “북한은 ‘갑’, 미국은 ‘을’?”은 공산군이 예전부터 꼼수를 많이 부렸다면서 북이 지금도 “대내용 허세”를 부린다고 결론을 내렸는데, 길지 않은 글이 처음부터 필자에게 고통을 연거푸 안겨주었다.
글은 6·25 전쟁’ 때 개성에서 열린 정전회담부터 시작된다.

 

“공산군은 회담에 참가하는 유엔군 차량에 흰 깃발을 달도록 요구했다. 그 이유가 희한했다. 만약의 경우 적으로 오인되면 공격받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엔군은 일리가 있다며 요구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는 공산군의 ‘작전’이었다. 그들은 깃발을 단 유엔군의 차량을 고스란히 사진에 담았다. 사진을 보면 유엔군이 마치 백기를 달고 항복하러 가는 듯한 모양이었다. 공산군은 이렇게 ‘꼼수’를 부렸다.”

 

뒤이어 회담장에서 공산군이 이러저러하게 꼼수를 부렸다고 열거했는데 정전담판에 관련해 여러 측의 자료들을 많이 본 필자로서는 글 읽기가 고통의 연속이었다. 사실을 왜곡하거나 괴상하게 비꼬아 해석했기 때문이었다. 일일이 지적하기에는 너무 품이 들고 길어지며 이렇게까지 대할 가치가 없는 글이므로 흰 깃발만 설명하겠다.

 

▲ 정전협정 회담장으로 가는 백기 꽂은 미군 차량     ©자주시보

 

유엔군 차량이 공산군 통제지역인 개성으로 들어가면서 흰 깃발을 단 것은 사실이지만 공산군의 요구가 아니었다. 중국인민지원군 연락관 신분으로 정전담판에 깊숙이 관여한 차이청원(柴成文, 시성문)은 저서 《판문점 담판(板门店谈判)(해방군출판사 1992년 8월 2판)에서 7월 10일의 첫날 회담상황을 서술하고 미국 측의 브리핑이 너무 간단하여 기자들을 만족시킬 수 없었음을 지적한 다음 이렇게 썼다.

 

“유감스러운 것은 중국, 조선 측 일부 기자들의 보도들에 확실히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는 언사가 있었다. 예컨대 ‘조이(유엔군측 수석대표 터너 조이 해군중장)는 백기를 들고 개성으로 회의하러 왔다’고 했는데 뜻인 즉 백기를 들고 투항하러 왔다는 말이다. 이게 최강국의 장군과 장교들에게는 분명 감정을 자극하는 모욕이었다. 게다가 그들이 길과 휴식장소의 엄격한 경호를 일종 위협이라고 오해했기에 한결 불쾌해했다. 오죽하면 리찌웨이가 첫날 회의가 끝나자 수석대표에게 ‘개성의 담판환경개변에 힘쓰라’고 지시했겠는가.

 

‘백기’표식을 달고 회의에 참가하는 것은 쌍방이 달성한 합의다. 제일 먼저 제기한 사람은 확실히 리지웨이였다. 그는 7월 3일 김일성, 펑더화이(팽덕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제1차 회의와 관련되는 많은 세부를 효과적으로 배치함을 보증하기 위하여 나는 제의하는바…… 조성된 차량대열은 서울에서 개성에 이르는 큰길을 따라 전진하고 차량마다 큰 백기 하나를 걸 게 될 것이다.’ 그는 또 ‘만약 귀측이 귀측 연락관의 차량대렬 행진노선, 시간 및 아군이 식별하기 편한 차량대열양식을 우리 측에 통지한다면, 그 차량대열은 회의에 참가하러 오거나 회의장소에서 떠나는 길에서 아군의 공격을 받지 않는다는 보증을 받게 된다.’

 

이튿날 김일성, 펑더화이는 리지웨이에게 답전을 보내 ‘우리는 당신의 제의에 동의한다’고 명확히 표시했다. 뿐 아니라 리커눙(李克农, 리극농) 등이 앉은 자동차가 평양에서 개성으로 올 때에도 백기를 꽂았다. 여기에서 사람들을 골려준 건 쌍방의 부동한 문화전통과 부동한 풍속습관이었다.
(遗憾的是中朝方面有的记者报道中也确实有伤害对方感情的言词,譬如说‘乔埃是打着白旗来开城开会的”。意思是说打着白旗投降来了。这对头号强国的将军和军官们无疑是一种刺激感情的侮辱。再加上他们把沿途和休息场所的严格警卫误认为是一种威胁,就更感到不快。无怪乎李奇微在第1天会议之后就指示他的首席代表’要力争改变开城的谈判环境‘了。
带着’白旗‘标志赴会是双方达成的协议。最先提出的确是李奇微。他在7月3日致金日成、彭德怀的信中说:’为了保证有效地安排关于第1次会议的许多细节,我提议……所组成的车队,沿自汉城至开城的大路前进,每辆车上将悬挂大白旗一面。‘还说:“如果你方将乘载你们联络官的车队的行车路线、时间以及便于我军识别的车队式样通知我方的话,该车队在赴会或离会的路上将被给予不受我军攻击的保证。’第2天,金、彭复电李奇微,明确表示‘我们同意你的建议’,而且李克农等乘坐的汽车由平壤来开城时也是插着白旗的。在这里捉弄人的主要还是双方不同的文化传统和不同的风俗习惯。)”(133쪽)

 

차이청원이 왜 이렇게 말했느냐 하면 흰 깃발 즉 백기가 서양에서는 담판용 표식으로 쓰이므로 중성을 띄는데 동양에서는 항복의 상징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차이청원이 나중에 거든 리커눙은 중국공산당 정보기관의 책임자였고 정전담판의 제2선 지휘자로서 담판 내내 비밀리에 움직였는데, 그와 다른 중국, 조선 대표들이 이동할 때 차에 흰 깃발을 꽂았다는 건 흰 깃발이 결코 공산군의 꼼수가 아니라는 증거로 된다.

 

378쪽이나 되는 차이청원의 책에서 필자가 깊은 인상을 받아 표기해둔 내용이 있다. 127쪽의 상대방 인물평가이다. 미군 장성들과 장교들 그리고 국무성의 관원으로 짐작되는 문관들을 경박하다, 교만하다, 교양있다, 비교적 점잖다 등으로 평한 다음 한국군 대표들을 언급했다.

 

“백선엽, 이수영은 모두 미군이 양성한 남조선 청년장교들로서 대표단에서 순전히 진열품이었다. 백선엽은 워낙 조이의 오른편에 앉았으나 조이는 쪽지를 써서 의견을 청취할 때 늘 그를 건너뛰어 호치(미8군 부참모장 헨리 호치 소장)에게 넘겨주었다. 이수영은 더구나 그들의 눈에 차지 않았으니 한 번은 글쎄 휴회한 다음 대방 대표단의 인원들이 모조리 떠나가면서 그를 중, 조 방면구역에 남겨두는 바람에 그는 굉장히 긴장해났다. 중, 조방면에서는 부득이 삐지룽(毕季龙, 필계룡)을 내세워 그를 청하여 회장에서 휴식하고 식사하게 했고 또 무선전화기로 상대방에게 데려가라고 통지했다.(白善烨、李树荣都是美军培养出来的南朝鲜青年将校,他们在代表团里纯属摆设,白善烨本来坐在乔埃的右手,但乔埃写条子征求意见时往往越过他交给霍治。李树荣更不被他们放在眼里,竟有一次休会之后,对方代表团所有人员都走了,却把他丢在中朝方面区内,搞得他异常紧张。中朝方面只好由毕季龙出面请他在会场休息、吃饭,并用无线电话通知对方接走。)”

 

백선엽 육군소장과 이수영 중령은 정전담판장과 그 부근에서 번듯한 사진들을 남겼는데, 실제로 담판장에서는 있어도 없어도 좋은 존재였다. 금년에 한국에서 유행된 말로는 “코리아 패싱”이다. 그 자신들은 회고록이나 회고문장에 정전담판장에서의 경력을 어떻게 그렸는지 궁금해난다.

 

▲ 정전협정문에 서명하는 김일성 주석    

 

▲ 정전협정문에 서명하는 미국 클라크, 그는 이후 회고록 등에서 승리하지 못한 정전협정조인문에 서명한 최초의 미군 사령관이라며 개인적으로도 매우 치욕적인 일이라고 평했다. 서명하는 얼굴 표정만 봐도 얼마나 치욕스러워하는지 느껴진다 . 한국의 군 지휘관들은 정전협정담판장의 들러리였을 뿐이었다.

 

언젠가 소년소녀들을 상대로 한 만화책의 정전협정체결을 다룬 그림에서 테이블 위에 조선의 인공기와 한국의 태극기를 그려놓은 걸 보고 쓰겁게 웃은 적 있다. 정전담판장에 꽂았던 깃발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남홍색공화국기”와 유엔깃발이었고, 정전협정에 조인한 건 조선인민군과 중국인민지원군 및 유엔군이었지 한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데도 남북 쌍방이 정전협정(휴전협정)을 맺은 듯이 어린이들을 속인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데 한국에는 용감한 전문가와 기자, 작가들이 너무 많아 걱정스러울 지경이다. 어릴 적부터 그릇된 정보들을 접하면서 자라난 사람들이 정상적인 판단을 내릴 능력이 있을까? 대답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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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통 17/08/17 [10:34]
언제나 주욱 읽게되는군요.
이대로 교과서에 실려도 될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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