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화신, 통일운동 든든한 언덕 임재복 선생을 추모하며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7/08/30 [23:55]  최종편집: ⓒ 자주시보

 

 

노동운동과 통일운동사에 있어 큰 일을 많이 해왔으며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조국의 자주, 민주, 통일과 노동해방을 위해 열과 성을 다 바쳐온 임재복 선생이 간암 투병 끝에 29일 새벽 3시, 81세를 일기로 끝내 영면의 길에 들어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광주전남공동의장, 범민련광주전남의장,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광주전남의장 등 거의 모든 광주전남지역연합조직의 의장을 도맡다시피 해왔는데 어느 것 하나도  자신이 먼저 하겠다고 한 것은 없고 시대와 주변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맡아온 의장이었다. 그래서 광주전남지역에서 임재복 선생은 '영원한 의장님'으로 불리고 있다.

 

특히 청년학생들을 더 없이 사랑하여 그들이 살풍경한 공안탄압을 받을 때면 온 몸으로 나서서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기댈 언덕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그의 장례식장으로는 지금 청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장례위원회 사무를 책임지고 있는 류종은 국민주권연대 광주전남 상임대표는 "임재복 의장님은 정의의 화신입니다. 불의를 보면 절대 지나치는 법이 없었으며 단호히 맞서 싸웠습니다. 그 기질은 항일운동을 하다 일제 경찰에게 희생된 증조부, 항미 항전을 하다 희생된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라며 얼마나 정의감이 투철했는지 알 수 있는 일화를 들려주었다.

 

 

[95년 김영삼 정권이 온갖 폭력으로 통일운동을 탄압하던 시절 범민련 통일운동 관계로 구속되었던 임재복 선생은 단호하게 형사들 앞에서 묵비권을 행사하였다. 

그래서 형사들은 상스런 욕설에 폭력까지 휘두르며 임재복 의장에 대해 강압수사를 시도하였다.

"너 이놈의 새끼, 누가 시키드냐. 

경찰국장이 시키드냐 경찰 서장이 시키드냐. 

나는 정의양심세력 국민운동본부 전남지역 의장님이시다. 

그런데 일개 형사가 폭행을 휘둘러?

응, 이것은 정당방위여!

맞을 짓거리 한놈은 맞어야돼야.

긴 세월 동안 우리 학생들이나 민주인사들한테

얼마나 이런 악행을 저질렀느냐.

내가 임재복이다. 바로 맛 좀 봐라!"

이러면서 떼로 달려드는 형사들을 그 자리에서 모조리 때려눕혀버렸다.

임재복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가장이 되어 지게질 농사일로 몸이 차돌보다 단단했고 날쌔기가 비호같은데다 불의를 보면 가빠지는 호흡을 거잡지 못하는 정의의 화신이라 얕보고 덤비던 형사들은 모두 납짝코가 되었던 것이다.]

 

임재복 의장은 초등학교도 중퇴했지만 노동자들이 억울하게 당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독학으로 노동법을 독파하여 노동상담소를 운영, 노동자들이 사회역사의 주인으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며 80-90년대 구사대의 폭력이 난무했지만 굴하지 않고 노동자들을 위한 정의의 투쟁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고 권익을 지켜 싸웠다. 

류종은 대표에 따르면 한번은 회사에서 조직폭력배 건달을 동원하여 임재복 선생에게 폭행을 가했는데 그 조폭 두목과 혈투를 벌려 결국 제압하여 후에 그 건달 두목이 임재복 선생을 형님으로 모시기까지 했다고 한다.

 

임재복 의장은 통일운동가 김양무 선생을 만나 이 땅 모든 악의 근원은 미제국주의라는 것을 똑똑히 알게 되었으며 오직 분단을 극복해야만 민중이 주인되는 참세상을 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면서도 범민련 통일운동,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광주전남 의장으로서 6.15, 10.4선언 이행 투쟁에도 적극 나섰다.

 

특히 한총련의 연대항쟁 이후 살풍경한 공안탄압 속에서도 통일운동의 깃발을 남총련 학생들과 함께 굳건히 들고 나갔으며 청년학생들의 바람막이가 되고 기댈 언덕이 되어 구속도 마다않고 호랑이처럼 앞장에 서서 싸웠다. 많은 청년학생들은 불의에 맞서 목숨걸고 당당히 싸워온 임재복 의장의 삶에서 많은 용기와 힘을 얻었다.

 

그럼에도 임재복 의장은 자신을 자랑할 줄 몰랐으며 겸손하게 모든 공을 청년학생들에게 넘기고 자신은 학생들이 하자는 대로 따라서 투쟁했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임재복 선생은 통일을 눈앞에 두고 안타깝게 우리 곁을 떠나 갔지만 그의 투철의 정의감과 민족사랑, 민중사랑의 정신은 투쟁하는 청년들의 뜨거운 가슴 속에서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다음은 임재복 선생 약력과 박근혜정부가 폐간시켰던 자주민보에서 임재복 선생 고희연을 기념하여 취재 보도한 기사이다. 임재복 선생의 애국의 뜻을 되새겨보자는 의미에서 여기 다시 소개한다. 

 

 

[임재복 의장 약력]

 

1937년 음력 10월 23일 부 임경술, 모 이온옆님의 3남 3녀 중 장남으로 해남군 북평면 동해리 838번지에서 출생.

 

1976년 8월 울산현대건설 근무 중 노동운동 시작. 근로조건 개선 투쟁으로 작업 중단 주도. 

 

1977년~1987년 광주 대창시내버스 운전원으로 입사. 어용노조 축출 운동 등 강경노선투쟁으로 87년 1월 해고. 이 기간 동안 삼척교육대 예비 검속 대상으로 7일간 구속 후 석방. 

 

1987년 5월 전남해고노동자 복직투쟁위원회 회장 

 

1987년 6월 민주쟁취노동자공동위원회 전남지역 의장, 노동문제상담소 소장,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광주전남 공동의장(노동자대표) 

 

1987년 8월 광주시내버스 노동자권익운동회 조직, 총동맹파업 주도, 어용조합장들 대거 축출하고 대폭 임금인상과 기본급 부활, 안기부에 납치 감금당함. 

 

1987년 12월 13대 대선과 1988년 4월 26일 13대 총선, 전남지역 공정선거 감시 부단장 

 

1989년 광주 노동문제연구원 상임의장, 광주전남 민주연합 공동의장,

11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중앙위원, 삼양시내버스노조 총무부장으로 활동 중 투옥. 

 

1990년 폭력정권 폭력경찰 탄압 저지 최루탄부상자회 전국연합회 회장. 

 

1991년 분신정국 대책위 광주지역 공동대표(2개월 투옥) 

 

1995년 11월 조국통일범민족연합 광주전남연합 감사 임무수행중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통일운동 사건으로 투옥(29명)

 

2000년 1월 조국통일범민족연합 광주전남연합 상임의장 

 

2000년 8월~2012년 남북공동선언광주전남실천연대 상임의장, 한국진보연대 광주전남 공동대표, 통일애국열사김양무정신계승사업회 회장.

 

2007년~ 연방제통일추진회의 광주전남 의장(현)

 

2009년~ 통일세대를 위한 교육기관 6.15학교 공동대표(현) 

 

2012년~ 시민주권행동 상임고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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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복 선생 고희연 기념 자주민보 기사]

기사입력: 2006/11/07 [03:05]  최종편집: ⓒ 자주민보

 

투쟁을 결의하는 행복한 고희연!

 

남북공동선언 광주전남 실천연대, 광주전남 평화재향군인회(가칭), 광주전남지역 대학총학생회연합, 빛고을 청년 김양무, 민주노동당 전남대학교 학생위원회 공동주최로 지난 5일 전남대학교 인문대 강당에서 임재복 남북공동선언광주전남실천연대 의장의 고희연 1부 행사가 200 여명의 지인들의 뜨거운 축하 속에서 진행되었다.

 

1부 ‘자주의 한길로’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축하행사가 시작되자 무대의 화면에서는 ‘인터넷 방송국 청춘에서 기념 제작한 임재복 의장의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흘러가기 시작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1909년 일제의 강제군대해산에 항거하여 해남 대흥사를 근거지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다가 일제에 의해 학살되었고 아버지와 그 4형제는 미군정의 지배와 분단책동에 항거하는 항미빨치산 투쟁을 전개하다 모두 학살되었다. 

 

그렇게 12살의 나이로 가장이 된 임재복 의장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중퇴를 하고 머슴살이를 시작, 13살 때 지게질을 하였고 16살 때 쟁기질을 배웠다. 

 

아내 가족의 반대를 정면돌파하고 엎어오다시피 이정님 여사와 결혼 한 후 친척이 학장으로 있던 광주 교육대학 서무과에 안정된 직장을 얻었으나, 돈 받고 교수를 임용하는 친척학장의 비리를 두고 보지 못하고 항의를 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미련 없이 풍요로운 직장을 그만 두었다. 

 

그 후 임재복 의장은 현대조선소 노동자, 광주 대창시내버스 운전수로 활동하는 중에 가열찬 노동운동을 전개하였다. 구사대 깡패들과 단신으로 혈투를 벌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100킬로의 거구들도 그의 주먹 한방에 나가떨어졌다. 

 

구사대의 테러가 늘 따라다녔기에 골목길도 멀리 에돌아 다녔고 집에는 송아지만한 세퍼트를 키우고 머리맡에 단도를 만져보고서 잠을 청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위협과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단 한번도 뜻을 꺾지 않았고 불의에 타협한 적이 없었다. 

 

임재복 의장이 해고와 구속을 밥 먹듯이 당하는 동안 삯바느질 등으로 4남매를 키우느라 아내의 손은 부르터 있었다. 

 

그는 지금도 근로기준법 전문을 줄줄 외울 수 있다. 그가 임금을 떼먹히거나, 부당 해고들 당한 노동자를 상담을 통해 구제한 것만 셀 수가 없다고 한다. 

 

임재복 의장은 어느덧 남총련 학생들이 특히 존경하는 선배전사로, 광주의 재야인사 중에서도 정의와 용기의 상징이 되었다. 전민련, 범민련 활동에 이어 지금은 광주전남 실천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다음 순서는 임재복 의장의 환영사.

 

“너무 감사하다는 말 밖에 뭐라 드릴 말이 없다. 오늘 고희연을 반성의 계기로 삼겠다. 생각되는 것이 많다. 앞으로 더 열심히 살겠다.”

 

이어 무대에 올라온 아내 이정님 여사는 “저는 할 말이 아무 것도 없네요.”라는 말만 남긴 채 무대를 내려갔다. 

 

순간 강당은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그 한마디 말에 얼마나 많은 사연과 그리고 얼마나 큰 행복감이 담겨 있는지 느꼈던 것이다.

 

이어진 축사에서 강희남 전 범민련 의장은 “임재복 선생은 정의와 진실의 화신, 참다운 반미 투사이다”라며 고희연을 축하하였다.

 

이어 허연 광주전남 희망연대 대표도 단상에 올라 임재복 의장이 무병장수를 빌었다. 

 

권오창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공동의장은 마지막 축사에서 북한의 핵주먹을 얻어맞고 부시가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며, 그 최후의 승리를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끝까지 함께 싸우자고 호소하였다.

 

다음으로 수배를 받고 있어 직접 올 수 없는 한총련 의장들의 임재복 의장의 건강을 기원하는 영상 편지가 소개되었다. 윤기진, 장송회, 이희철 한총련 의장들은 임재복 의장의 삶에서 타협할 줄 모르는 전사의 투혼을 배웠던 것이다.

 

이어 축시가 낭송되고, 남총련 노래패 ‘한반도’의 축하공연과 꽃다발 증정이 이어졌다.

 

1부 행사를 마치고 전남대학교 교수식당에서 진행된 2부 “가족과 함께”행사에 가던 중에 만난 임재복 의장은 기자에게 또 한 번 강조했다.

 

“다시 말하지만 오늘은 내가 반성하는 자리이다. 정말 앞으로 더 열심히 투쟁할 것이다.”

 

이번 임재복 의장의 고희연은 민중과 함께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는 삶이 왜 가장 참된 행복을 안겨주는 지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다들 이제 회고록이나 쓸 결심을 할 고희연에 이렇듯 투쟁을 결의하는 임재복 의장의 고희연은 빛고을 광주가 낳은 또 하나의 새로운 기풍이었다.

 

 

 

[임재복 의장 고희연 축시]

 

정의와 용기의 화신

-임재복 선생님의 고희연을 축복하며

                               이창기

 

날씬한 세단이 어울리는 신사라기보다는 

 

육중한 지프가 더 어울리는 전사 같은 이

 

세련된 양복보다는

 

꽉 조인 허리띠에 

 

사파리 잠바 흩날리시는 영원한 청년 

 

정의와 용기의 화신 임재복 선생

 

그 얼마나 악독한 세월이었던가!

 

구사대의 폭력과 자본의 횡포

 

국가보안법의 쇠고랑 앞에 

 

무참히 도륙당하던 

 

정의와 진실

 

분노의 주먹 부르르 떨면서도

 

사랑하는 가족걱정

 

부족한 용기로 눈을 감고 돌아선 이들 그 얼마이던가.

 

그러나 

 

광주는 달랐다. 

 

빛고을 광주!

 

혁명 광주는 용감했다. 

 

타협을 몰랐다.

 

전 세계를 멋대로 유린하는 

 

한반도 모든 악의 근원

 

미제!

 

그 미제의 탱크 앞에 칼빈총을 들고 일어섰다. 

 

혁명광주!

 

나는 보았다. 

 

그 혁명광주의 용기가 무엇인지를 

 

임재복 선생 그이의 눈빛에서 

 

앙 다문 입

 

꽉 조인 허리띠에서 

 

나는 불의에 타협할 줄 모르는 광주의 용기를 보았다.

 

세상에

 

매일같이 자행되는 구사대 테러 

 

경찰의 간악한 폭력

 

골목길 굽이 한 번 

 

마음 놓고 돌지 못한 채 

 

경계의 눈빛 번뜩이며 멀리 멀리 에돌고

 

머리맡에 단도를 잡아 보고서야 잠을 청할 수 있던 

 

그 살풍경한 폭력과 압제의 시대를 정면 돌파한 

 

그이의 용기!

 

굴복하지 않고

 

정의의 길

 

진실을 길을 뚜벅뚜벅 걸어온 

 

임재복 선생

 

그이의 그 불타는 눈빛

 

중원을 내달리던 고구려 전사의 눈빛

 

북만주를 주름잡던 항일전사들의 빛나는 눈빛

 

그리고 이제 그 눈빛이 

 

퍼지고 퍼져!

 

민족사에 

 

아니 세계사에 똑똑히 아로새겨놓은 

 

저항과 정의의 상징

 

자주와 통일의 영원한 선봉 

 

남총련의 눈빛에서 

 

나는 다시 그이의 정의에 불타는 눈빛을 본다.

 

전 세계 악의 근원 미제!

 

그 마지막 숨통을 끊어버릴 마지막 총공격의 시대

 

치욕의 분단 반세기를 결산하고 

 

조국통일의 찬란한 봄날을 안아오는 마지막 판가리 싸움!

 

광주를 떠도는 5.18 원혼들의 한을 풀 결정적 시기!

 

우리들의 눈빛도 그처럼 빛난다. 

 

우리도 입술을 그이처럼 앙다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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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추모 17/08/31 [02:22] 수정 삭제
  저같은 겁쟁이는 쳐다도 못볼 위인이십니다. 존경합니다. 선생님의 발끝만치라도 행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런 분이 계셨군요. 부끄럽습니다. 아.... 17/08/31 [21:57] 수정 삭제
  연예인 이름은 훤히 알아도 통일운동가 이름은 한사람도 모르는 세상입니다. 저 역시 그렇고, 저는 이 죄를 면피하려는 생각도 없습니다. 정말 당장에 핵폭탄 불벼락 맞고 비참하게 다죽어 없어져도 하나 아깝지 않을 죄많은 남조선 땅입니다. 역겹고 또 역겨운 땅입니다. 임재복 선생의 천만분지 일이라도 따를수 있는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보겠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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