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련희씨 출판 기념회,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
박한균 기자
기사입력: 2017/09/01 [13:43]  최종편집: ⓒ 자주시보

 

▲ 8월 31일 오후 7시 서울 기독교회관에서 김련희 씨의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김련희씨는 독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눈시울을 붉혔다.     © 자주시보

 

▲ 8월 31일 오후 7시 서울 기독교회관에서 김련희 씨의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 자주시보

 

8월 31일 오후 7시 서울 기독교회관에서 김련희 씨의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약 100여 명의 인사들과 독자들이 찾았다.     © 자주시보

 

▲ 김 씨는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독자들의 책에 사인을 해주고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 자주시보

 

▲ 출판 기념회에는 약 100여 명의 인사들과 독자들이 찾았으며 김련희씨는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은 고운 색의 한복을 차려 입고 입구에서 손님을 맞아주었다.     © 자주시보

 

이날 기념회에는 약 100여 명의 인사들과 독자들이 찾았으며 김 씨는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은 고운 색의 한복을 차려 입고 입구에서 손님을 맞아주었다. 김 씨는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독자들의 책에 사인을 해주고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러나 본 식에서 북에 있는 딸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민중가수 ‘우리나라’의 노래 공연이 시작되자 눈물을 쏟아냈다.  

  

▲ 북에 있는 딸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민중가수 '우리나라'의 노래 공연 모습.     © 자주시보


김 씨는 2011년 6월 친척들이 있는 중국으로 여행을 갔다가 지병인 간복수가 재발하여 치료비를 벌던 중 탈북브로커에게 속아 실수로 남쪽에 들어오게 된 일종의 ‘억류된 북한 공민’이다. 자의적으로 남쪽으로 넘어온 북한이탈주민(탈북자)가 아닌 것이다. 김 씨는 국정원에 조사를 받을 때부터 줄곧 가족들이 있는 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으나 번번히 묵살 당했고 급기야 북으로 추방되기 위해 간첩 행세를 하다가 교도소에 갇히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이후 언론과 종교단체 등의 도움으로 기자회견을 가지면서 세계적으로 김 씨의 억울한 소식이 전해지게 되어 북에서 김 씨의 송환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지금도 김 씨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며 ‘조국에 돌아갈 것’을 강력히 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책에는 김 씨가 남쪽에 들어오게 된 경위와 송환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겪은 갖은 고초,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난 따뜻한 사람들, 40여 년 간 북에서 나고 자라 생활해온 이야기 뿐 아니라 북의 가정, 의료, 교육, 문화 등 남쪽 대학생들이 궁금해 하는 점을 알려주는 대화도 담겨 있다.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21세기 분단된 북과 남의 슬프고도 처절한 신세를 알 수 있으며, 국정원과 지난 정권이 어떻게 간첩을 ‘탄생’시켜왔고 탈북자를 어떻게 이용해 왔는지 가슴 아프게 느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평양에서의 노동자 생활을 하다 남편을 따라 지방에서 고난의 행군 시기를 보낸 김 씨의 경험을 통해 북 인민의 생활을 보다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점도 의미 있다. 

 

김 씨가 살고 있는 대구지역에 김련희 송환준비모임이 꾸려져 있으며 그녀의 송환 활동은 지금까지 쉼없이 이어지고 있다.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를 통해 남쪽에서 애태우며 살고 있을 수많은 김련희들의 사연이 세상에 공개되고 송환을 원하는 이들이 하루 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 책 중에서 

 

“조국이라는 것이 대체 뭡니까. 왜 굳이 돌아가려고 합니까.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면 그들을 데리고 나올 수 있지 않나요? 저에게 누가 한국에서보다 더 잘살게 해주겠으니 미국에 오라고 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이 나라 국적을 버리고 미국으로 갈 거예요. 도대체 조국이 뭐길래 이런 고생을 사서 합니까” 

나는 그 말을 듣고 한참 머리가 멍해졌다. (중략) 

‘그처럼 소중하고 귀중한 조국이라는 말이 과연 먹다 버리는 빵부스러기 그렇게 쉬운 말이었나.... 이 분은 조국을 쉽게 버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일제로부터 조국을 되찾기 위해, 조국의 분단을 막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애국자들과 청년들이 자신의 청춘과 목숨을 바쳐 싸웠던가’ 이런 생각도 들었다. 해외에 잠시 머무르기 위해 떠났는데 그 나라에서 자신을 가두고 그 나라 국적을 강요한다면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리고 다시는 자기 나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면 누구든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을까? 

- 책 84P ‘4장 – 51번 김련희’ 중에서  

 

그를 북한이탈주민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정확한 용어가 아닐 수 있어요. ‘억류되어 있는 북한 공민’인 거죠. 어부들이 작업하다가 남한으로 오는 경우가 있지 않나요? 그러면 “자의로 탈북한 거냐. 아니면 어쩔 수 없이 온 거냐”자세히 조사하잖아요. 그렇게 해서 자의로 온 것이 아니면 판문점을 통해서 보내지 않나요? 어부들처럼 보내줘야지 련희씨는 왜 그렇게 처리하지 않았느냐는 거죠. 국정원이 바보 같은 짓을 한 겁니다. 실수로 온 사람을. 김련희는 일종의 ‘비행기 타고 온 표류 어부’ 같은 분인 거예요. 바로 돌려보냈으면 되는 건데 이 사단까지 오게 만든 거죠. 

- 책 146P ‘인터뷰5 - 김련희씨 이야기를 최초로 보도한 한겨레 기자, 허재현’ 

 

▲ 김련희씨 자수 작품도 전시했다.     © 자주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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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양요 때 침발라 놓은 조선 통일의 길 17/09/01 [15:15] 수정 삭제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잠시 일본에 맡겼다가 2차 대전 후 남북을 분단하며 반을 돌려받고 전쟁을 치르며 전부 차지하려다 실패한 뒤 남한을 지금까지 내 것이라고 빨아먹으며 우기는 미국넘들이다. 끝없이 빨아먹을 수 있는 맛있는 걸 돌려주기 싫지.

친일파나 친미파나 주체가 다를 뿐 그 성질은 같다. 새 정부 청와대도 대통령부터 친미파가 버글버글 이다. 일제 강점기 때 친일파를 어쩌지 못한 것처럼 친미파도 권력을 잡고 있으니 답이 없다. 미국넘들이 하는 말이나 한국 정부가 하는 말이나 똑같다.

친일파가 2차 대전으로 골로 갔으니 친미파는 3차 대전으로 골로 보내야 한다. 일본 도쿄 공습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핵 공격처럼 워싱턴, 맨해튼, 시카고나 LA 등 악마들의 소굴이 골로 가야 해결될 문제다. 중앙청과 같은 청와대가 부서져서 될 일이 아니다. 통일의 길은 여기에 있다.
이미친년아 ANGEL 17/09/16 [21:48] 수정 삭제
  제목부터 상서롭자 않다 이미친년아 너는 특간첩이다 평양시민이 왜 남한에 와서 이밥처먹으면서 교란 작전이냐 이간첩년아 북으로 썩 꺼저라 저년을 추종하는 인간들도 다 간첩 준하는 처죽일 인간들이다 답은 즉쌀처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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