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산지석] 메달리스트가 사라진 중국의 전국운동대회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7/09/08 [16:26]  최종편집: ⓒ 자주시보

 

✦ 개막식부터 화제를 낳은 운동회 

 

8월 28일부터 9월 8일까지 중국의 북방 대도시 톈진(天津, 천진)에서 제13차 전국운동회가 열렸다. 해마다 진행하는 한국체전과 달리 몇 해에 한 번씩 열리는 중국의 전국운동회는 줄여서 “취안윈후이(全运会, 전운회)라고 불리는데 20~ 30여 개 큰 항목을 설치하고 항목 아래에 작은 종목들을 설치하여 그 규모가 올림픽이나 아시아게임과 비길 정도이다. 

 

1959년의 제1차부터 1979년의 제4차까지는 수도 베이징(北京, 북경)에서 열렸다가 1983년에 제5차를 상하이(上海, 상해)시에서 진행하면서부터 지방도시들이 개최권을 따내려고 경쟁을 벌렸다. 하여 지금까지 광둥성(广东省, 광동성), 랴오닝성(辽宁省, 요녕성), 산둥성(山东省, 산동성), 쟝수성(江苏省, 강소성) 등이 기회를 잡아 성소재지와 중소도시들의 지명도를 높였고 도시재개발로 도시면모를 일신했으며 GDP도 올렸다. 마스코트 또한 지방을 알리는 훌륭한 선전수단으로 되었다. 

 

▲ 1987년 제6차 전국운동회부터 생겨난 마스코트들     © 자주시보, 중국시민

 

전통 대도시인 텐진은 이번에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큰 마음먹고 노력했는데, 제113차 전국운동회는 이래저래 이야기거리가 많았다. 

 

제일 먼저 8월 27일 밤에 생방송된 개막식에서 차질이 빚어졌다. 식장에서 톈진의 랜드마크인 “톈진의 눈(天津之眼, The Tientsin Eye)“ 모방품이 올림픽 5환으로 변하여 고조를 이루도록 설정했으나 비가 내리는 바람에 전기선이 연결되지 않아 고리가 4개만 밝아졌다. 

허나 관중들과 네티즌들은 큰 비 속에서 그쯤 실수야 생길 수 있다면서 너그럽게 대했고, 개막식 관계자 또한 “나머지 하나의 고리가 영원히 톈진에 남았다”고 재치있게 응대했다. 예전 같으면 큰 망신이라고 여겼을 실수에 대한 용납은 중국인들의 심리변화를 말해준다. 

 

▲ 톈진시의 랜드마크 “톈진의 눈”. 지름 100미터에 이르는 대관람차로서, 어떤 사람들은 벤츠의 마크를 본땄다고 농담한다.     © 자주시보, 중국시민

 

▲ 고리 하나가 불이 밝혀지지 않은 올림픽 5환     © 자주시보, 중국시민


 

✦ 몇 가지 열점 

 

전국운동회는 예전부터 뉴스제조기라 금년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초기에 주목받은 건 탁구시합이었다. 세계일등을 따냈던 명선수들이 연거푸 패배하여 참관하러 온 일본 탁구인들이 아우성쳤다. 중국의 선수벽이 너무나도 두텁다고. 워낙 중국선수들은 국제시합보다 국내시합을 더 어려워한다. 외국선수들에 비해 국내선수들은 형편을 서로 잘 알기 때문이란다. 일본처럼 중국을 적수로 삼는 나라들은 누구를 경계해야 될지 헷갈리기 쉽겠다. 배드민턴도 탁구와 비슷해 명장들의 낙마가 드물지 않았다. 

 

그다음 화제로 떠오른 건 화교와 중국계 외국인들의 참가였다. 전에는 참가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이번에 대회규정이 바뀌면서 등장했고 성적은 썩 좋지 않았다만, 커다란 희망을 남겨두었다. 규정변화에 대해 논자들은 중국이 우수한 선수들을 국가대표팀에 인입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평가한다. 

 

개막 며칠 뒤까지 거론된 건 개막식에 등장한 보통 백성들이었다. 평소에 신체단련을 즐기던 수천 명 시민과 학생들이 개막식에서 솜씨를 선보여 “전민전운(全民全运, 모든 백성의 전국운동회)”라는 대회이념을 체현한 것이다. 

그리고 대중체육종목들도 신설하였으니 이는 이번 제13차의 주제가 “취안윈후이민 졘캉중궈(全运惠民、健康中国)”로서 전국운동회가 백성들에게 혜택을 주고, 건강한 중국을 만들자는 뜻이기 때문이다. 

 

▲ 중국의 제13차 전국운동회 주제 “취안윈후이민     ©자주시보, 중국시민

 

 

✦ 최대의 변화- 메달리스트의 취소 

 

뭐니뭐니 해도 제13차 전국운동회의 최대 변화이자 제일 큰 논쟁거리는 메달리스트의 취소이다. 

 

전통적으로 전국운동회는 성급을 단위로 하여 팀을 갈라 승부를 겨뤘다. 이번에는 전국의 성, 자치구, 직할시, 특별행정구들 외에 해방군팀, 신쟝생산건설병단(新疆生产建设兵团)팀 및 3개 업종팀 등 38개 팀이 참가했는데, 예전에는 첫날부터 팀별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 리스트가 생중계되면서 관심을 끌었으나 이번에는 메달리스트가 사라진 것이다. 

 

메달리스트가 없는 운동회가 무슨 재미가 있느냐? 무차별경쟁을 부추기지 않기 위해 취소했다는데 각 팀이 자체로 집계할 테니 취소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이러저러한 반론과 풍자가 많았다. 헌데 알고 보면 전국운동회의 메달리스트 취소는 처음이지만 그보다 낮은 등급의 운동회들은 이미 시행한 경험이 꽤나 된다. 

예컨대 전국청년운동대회가 변해서 생겨난 전국성시운동회가 2007년부터 메달리스트를 취소했어도 특별한 부작용이 생기지 않았으니, 이런 경험이 제13차 전국운동회의 과감한 조치를 뒷받침한다. 

취소 이유로 “금메달 지상주의”가 유발한 나이조작, 심판조작, 흥분제 사용, 무리싸움 등등이 거론되고, 취소 이점으로는 선수들이 체육자체를 즐기고 단순한 메달이 아니라 성적제고에 힘을 기울일 수 있다는 등이 꼽힌다. 

 

사실 이번 운동회는 선수들이 출신고장에 매이지 않고 합작하여 좋은 성적을 거둔 사례들이 수두룩하다. 릴레이만 보더라도 예전 같으면 한 성의 선수들끼리 모이다나니 성적제고에 한계가 있었으나, 이번에는 둘 혹은 그 이상 성 출신인 우수한 선수들이 이른바 “강강연합(强强联手)”하여 출전해 새 기록을 세웠다. 이런 신식조합으로 보다 좋은 성적이 생겨나고 성들 사이의 악성경쟁도 줄어들며 윈윈으로 나아간단다. 

전국운동회의 메달리스트 취소는 중국 체육이념의 심각한 변화를 말해주는 바, 장기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근현대 중국 체육의 변화과정을 통해 이념과 실천이 어떤 변화를 거쳤는가 살펴보기로 하자. 

 

✦ 수십 년 동안 인민체질증강이 중점 

 

1840년의 아편전쟁 실패로부터 100년 가량 중국과 중국인들은 열강들의 침략을 받아 전에 없는 좌절을 겪으면서 패배감과 열등의식에 시달렸다. 중국인들에게는 “동아시아의 병든 사람”이라는 뜻은 뚱야삥푸(东亚病夫, 동아병부)“라는 별명이 붙었고 국제운동대회들에서의 저조한 성적은 그런 이미지를 더 강화했다. 특히 1932년, 1936년 올림픽대회에 중국선수들이 참가했으나 예선마저 통과하지 못했고, 아시아의 운동회에서도 별 볼일 없었다. 1984년 로스안젤레스 올림픽에서 중국인의 첫 금메달이 생겨나기까지 중국인들은 거주지가 중국 본토던 타이완이던, 홍콩이던 마카오던 해외던 가리지 않고 체육에서 자랑거리가 부족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건립으로 전에 없이 강력한 중앙정권이 생겨나고 정치적으로 자립한 다음, 풀어야 할 난제들 가운데 하나가 체육이었다. 체육계에서 예전부터 체육을 하던 사람들은 엘리트 스포츠를 강화해야겠다고 여겼고 혁명간부출신들은 어떻게 손을 대면 좋을지 몰랐다. 

이런 상황에서 마오쩌둥 주석이 1952년 6월 10일 중화전국체육총회 제2차 대표대회(中华全国体育总会第二届代表大会)에 “체육운동을 발전시켜 인민체질을 증강하자(发展体育运动,增强人民体质)”는 글을 써주었다. 

 

▲ 마오쩌둥의 글 “체육운동을 발전시켜 인민체질을 증강하자(发展体育运动,增强人民体质)”     © 자주시보, 중국시민

 

이 글이 중국 체육의 목적, 목표와 본질적 기능을 체현했으니, 중화인민공화국 체육사업의 발전방향을 가르킨 것이다. 다시 말해 체육사업의 중점을 전민체질의 증강에 두었다. 얼굴이 창백하고 기운이 없는 샌님모습은 풍자대상으로 되었고 건장하고 씩씩한 노동자, 농민, 군인들이 본보기로 떠올랐다. 

  

▲ 마오쩌둥의 글이 파생시킨 선전화들     © 자주시보, 중국시민

 

라디오방송체조가 전국적으로 보급되고 소련의 노동보위제를 받아들여 학생시기부터 체육단련기준도달경쟁을 불러일으켰다. 

 

대중체육과 대조되는 것은 경기체육인데, 체육계에서는 물론 여기에도 힘을 들였다. 허나 당시 국제국내환경 때문에 경기체육의 발전에는 제한이 심했다. 내부로는 선수와 감독 인재가 턱없이 부족했고, 외부로는 참가할 수 있는 운동대회가 적었다. 1952년에 올림픽에 참가했던 중국선수의 수영성적이 시원치 않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올림픽위원회가 타이완의 국민당정권 올림픽위원회를 인정하는 바람에 중국은 올림픽에서 퇴출했다. 

세계에서 제일 큰 체육조직인 국제올림픽위원회만이 아니라 다른 위원회나 종목협회들도 국민당정권 산하의 조직들을 회원으로 인정하여 중국이 그런 위원회, 협회들의 활동에 일절 참가하지 않았으니, 이런 국면은 1970년대 말기부터 조금씩 개변되어 결국 타이완의 조직들은 “중화 타베이(中华台北, 중화 대북)”의 명의로 회원이 되고 대회에 참가한다는 합의를 보았다. 

 

경기체육은 돈이 엄청 들어간다. 중국은 째지게 가난했던 건국 초기에 어디에 돈을 들여야 체질증강과 성적쟁취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겠냐 따져야 했다. 연구 끝에 중점종목으로 인력과 자금을 투입한 게 탁구였다. 당시 일본선수들이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따내는 걸 보고 중국인들도 해낼 수 있겠다 판단했고, 탁구 강팀인 마쟈르(헝가리)가 사회주의권이어서 교류가 편했던 것 또한 유리한 요소였으며, 제일 중요한 것은 탁구보급과 제고의 원가가 적다는 점이었다. 경기용 탁구대와 탁구채가 없더라도 연습하고 비겨볼 수 있는 게 탁구였다. 

하여 1950년대 후반에 전국의 100여 명 골간들을 모아 집중훈련을 진행했고 경험교훈을 정리하면서 수준을 높였으니 1959년의 남자단식 1등에 이어 1961년의 남자단체 1등, 남자단식 1등 등 성적을 따내 전국적으로 탁구열풍을 일으키는 동시에 세계 1류를 자랑하는 선수대오를 만들어냈다. 

 

1970년대 말까지 체육운동의 1차적 목적이 체질증강에 있다는 건 철칙이었고 체육경기도 친선강화라는 큰 목적에 복종해야 했으며, 누가 1등과 금메달에만 집착하면 “진뱌오주이(锦标主义, 금표주의)”에 중독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 2월 말에 발표한 타산지석 “북중 농구경기보도에 나온 “친선 제일, 경기 제이”란?“(링크를 걸어주십시오)를 참조하면 당시 분위기를 보다 잘 알 수 있겠다. 

 

1980년대 초중반까지도 중학교나 소학교들에서 운동회를 열면 마오쩌둥 주석의 글이 현장방송으로 나오거나 학생들이 행진하면서 외쳤다. 흔히는 마오쩌둥 주석이 군민을 상대로 쓴 글 “경각성을 높이어 조국을 보위하자(提高警惕, 保卫祖国)”와 합쳐졌다. 

 

“체육운동을 발전시켜 인민체질을 증강하자! 

경각성을 높이어 조국을 보위하자!“ 

 

체육단련의 목적이 얼마나 분명한가. 

 

 

✦ 금메달 지상으로 변화 

 

중국체육중점의 변화는 197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되어 1990년대 초중반에 “금메달지상(金牌至上)”으로 굳혀졌다. 

문화대혁명의 결속과 더불어 모든 것을 반성하는 분위기에서 마오쩌둥 주석이 주창한 “인민체질증강”이나 저우언라이(周恩来) 총리가 엄청 강조했던 “친선 제일 경기 제이”가 체육이념에 어긋나고 현실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주장들이 솔솔 나왔다. 

 

마침 그 즈음 중국이 체육위원회, 체육협회들에서 합법적 지위를 회복하거나 획득하면서 여러 가지 종목의 여러 가지 국제대회에 참가할 길이 많아졌다. 예전에는 외국팀을 초청하여 친선경기를 치르는 경우가 많았다면 이제는 중국팀들이 출국하여 승부를 가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중국 체육인들은 외국관중들의 열광과 폭력에 깜짝깜짝 놀랐다. 예컨대 중국 남자 농구팀은 남미에 갔다가 처음으로 생수병에 얻어맞았다. 중국 체육인들은 친선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환경에서 승부에 집착하기 시작했고 자신과 비슷한 수준이나 자기보다 낮은 수준의 외국선수, 외국감독들이 자가용을 굴리고 사진기, 촬영기를 메고 다니는 모습에 강한 자극을 받았다. 게다가 특히 대형체육경기에서의 우승은 선수의 등급, 감독의 직함 등급, 관련자들의 수입과 정비례되다나니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메달을 따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국제경기참가가 늘어나면서 새로운 문제들이 꼬리를 물고 생겨났다. 상금이 걸린 국제대회에서 우승하면 상금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외국에서는 당연히 선수가 받는데 중국에서는 한동안 여러 모로 제한을 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바둑을 비롯한 여러 종목들이 상금의 상한선을 3, 000위안(보통사람 월급의 30~ 60배 정도)으로 정했다. 그 이유로는 국가가 거금을 들여 훈련조건을 만들어주고 선수들을 배양했으니 상금을 선수 개인이 독차지하면 불공평하다, 돈만 밝히게 하면 체육정신이 초라해진다.... 등등. 

헌데 국가가 적당히 통제하려고 해도 통제가 어려워졌다. 예컨대 육상선수가 승용차를 상으로 받았는데 승용차를 들여오는 문제부터 복잡해지고 차 1대를 선수와 감독이 어떻게 나누느냐도 까다로워졌으며 상금의 상한선을 고집하기가 힘들었다. 

 

한편 중국공산당이 경제건설에 중점을 두면서 중국 경제규모가 커지고 개인기업들이 대량 늘어났는데, 체육을 기업홍보수단으로 삼은 기업인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 올림픽금메달수상자에게 상금 얼마를 주겠노라고 어느 기업이 선포하면 숱한 매체들이 보도했으니 광고효과가 TV시간대를 사기보다 훨씬 나았다. 

이러루한 문제들 때문에 정부식 체육의 한계가 점점 선명해졌고 또한 시장경제에 대한 숭배가 늘어나면서 체육을 시장에 맡기자는 주장이 거세졌다. 일부 종목부터 시작해 시장화경영을 시험하다가 차차 종목이 늘어났는데 이제는 시장과 떨어진 종목이 거의 없을 지경이다. 

기업의 참여와 시장화 경영이 체육자금원천을 늘이고 성적제고에 일정한 도움이 된 건 사실이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투자- 수익을 바라는 게 기업인들의 속성이라 선수와 감독들이 성적과 메달에 집착하지 않을 리 있는가? 

오만가지 꼼수들이 생겨났고 조작과 흥분제 사용이 폭로되면서 체육선수나 감독들이 나라와 민족의 자랑이 아니라 수치로 되는 사건들이 심심찮게 벌어졌다. 

당연히 반성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 큰 배가 방향을 바꾸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법 

 

예전에 중국 체육계에 “세계기록 돌파자”들이 많았는데 명예를 가졌을 뿐 금품이익이 없어 순전히 정신적 포상이었다. 후에 메달과 수입을 연결시키면서 다른 극단으로 나아가 100% 가까이 물질적 포상으로 변했다. 

한 극단에서 다른 극단으로 넘어감과 더불어 대중의 체육참여열정과 체육인들에 느끼는 동질감이 약화됐다. 국제경기 금메달수상자들이 엄청 많아지고 올림픽 메달리스트에서도 앞자리를 굳히게 되니, 어느 선수의 성과가 더는 중국인의 인종열등성을 부정하는 근거로 되지 않았고 국운이 창성하다는 증명으로도 되지 않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중국 금메달에 평균 1억 위안 투자가 들어갔다는 계산결과가 나오면서부터는 돈을 처발라서 딴 금메달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식의 풍자들도 나왔다. 

금메달 따기가 무엇보다 중요해지면서 수상가망이 적은 종목과 선수, 감독들이 재정지원을 받지 못해 고생하다가 종목 자체가 사라지는 폐단도 생겨났고, 부유한 성, 직할시들이 외지 선수들을 돈으로 당겨다가 전국운동회 성적을 높이는 현상도 늘어났다. 결국 비인기종목, 가난한 지방들이 갈수록 열세에 처하게 되었다. 

 

이번 제13차 전국운동회의 메달리스트 취소는 이후에도 견지할 것이라 한다. 중국체육계는 이미 너무나도 몸집이 커졌고 적폐도 만만치 않다. 큰 배가 방향을 바꾸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메달획득과 체육계 전반적인 실력의 상승, 전민건강의 강화 등을 적당히 조절하려면 시행착오도 적지 않을 텐데, 효과는 두고 봐야 안다. 관건은 중국의 경제상황과 지도집단의 결심에 달려있다. 

 

✦ 여러 가지 메달 리스트 작성법 

 

대형경기대회의 메달리스트 할 때 사람들은 대체로 금메달 리스트를 떠올린다. 

금메달 획득수자를 기준으로 하여 팀들의 순위를 정하는 방식이 제일 유행되는 건 맞다. 허나 그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건 아니다.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 총수자로 계산하는 방법도 있다. 이 방법의 장점은 팀의 종합적인 실력을 가늠하는 데 유리하다는 것이다. 한 두 가지 종목의 실력으로 금메달 리스트에서 앞자리를 차지하기보다는 여러 종목에서 1류 수준에 이르는 게 더 낫다는 설명이다. 

 

또 한 가지 방법은 인구 대 메달 비례로 계산하는 리스트다. 

인구가 적은 나라와 지구들에서 나온 방식인데, 영토가 작고 인구가 적은 나라에서 뛰어난 선수 한 둘만 나와도 올림픽 메달리스트에서 앞자리 지어는 첫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를 따면 인구와의 비례는 1/1, 440, 000으로 된다. 중국은 인구가 하도 많으니까 그런 방식으로 계산하면 금메달 리스트에서 1, 2위를 차지하더라도 비례순위에서는 한참 뒤로 밀리게 된다. 중국이 볼트와 자메이카의 비례를 이기려면 올림픽금메달을 1, 000개쯤 따야 되는데, 올림픽 메달 총수자가 고작 300개를 윗도니까,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목표다. 

 

국제경기들에서는 메달리스트가 사라지지 않을 게 분명하고 그것도 금메달 리스트가 생중계되기 마련이다. 허나 국내경기에서 메달리스트를 취소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고 여러 모로 이점도 많다. 

중국 전국운동회의 메달리스트 취소는 메달에 집착하던 사람들에 뭔가 계시를 주는 조치라, 한국 독자들에게 특별히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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