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일침329] 거품투성이 국군 영웅동상 남들이 알면 웃을 일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7/09/12 [23:05]  최종편집: ⓒ 자주시보

 

한국에서 나온 6. 25전쟁 관련 책을 요즘 보다가 쓴 웃음을 지었다. 심일 소령의 무용담이 번듯이 찍혔기 때문이다. 2016년에 이대용 전 월남주재 공사가 심일 무용담의 허구성을 폭로했는데, 신화는 여전히 깨지지 않은 모양이다. 춘천 전투 당시 7연대 1대대 1중대장이었던 이대용 전 공사의 주장을 100% 받아들여 6사단 7연대 대전차 포대 2소대의 심일 소대장이 도망간 비겁쟁이까지는 아니라 치더라도, 《조선일보》가 파헤친 문제점들은 사실 심각하다. 우선 1950년 6월 27일 춘천 전투에서 심일 소대장을 선두로 한 5인의 특공대가 ”포탑의 뚜껑을 열어 수류탄과 화염병을 던지고 뛰어내”려 3대나 까부셨다는 게 탱크인지 탱크형 자주포인지도 분명치 않고, 춘천 전투에 인민군의 탱크나 자주포가 참가했는지도 애매하다. 또한 5인의 특공대는 병적기록부와 상훈, 전사기록 등이 없단다. 헌데 심일 소령의 동상이 태릉 육사 교정과 원주 현충공원 등에 세워져있고 한국 육군이 매년 가장 우수한 전투중대장을 선발해 “심일상”을 수여해왔다니까 진실규명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 전쟁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고 수많은 기록들이 남아있다. 여러 방면의 자료들을 꾸준히 찾아보아야만 보다 많은 세부를 알게 되고 진실에 보다 접근하게 된다. 반탱크전투에 관해서도 그러하다. 

 

필자가 어린 시절에 보고 들은 중국인민지원군의 반탱크전은 폭약꾸러미와 폭파통(爆破筒)으로 진행되었다. 폭약꾸러미라면 한국인들이 이해하기 어렵잖겠지만 폭파통은 생소한 개념일 것이다. 1960년대에 나온 영화 《영웅적 아들딸(英雄儿女)》에서 남자주역이 쥔 것이 폭파통(포스터 사진)이다. 

 

▲ 예술영화 《영웅적 아들딸》에서 왕청(王成, 왕성)이 쥔 폭파통     © 자주시보


보다시피 길다란 막대기로서 꽁무니를 당기면 잠시 후 폭발하게 되어있다. 원래는 화점 따위를 파괴할 때 쓰던 무기인데, 고효능 반탱크무기는 고사하고 반탱크수류탄마저 없었던 지원군은 이 폭파통을 반탱크전에서 많이 썼다. 폭약꾸러미는 사람이 탱크 옆으로 접근하여 무한궤도 밑에 넣은 다음 심지를 당겨야 했고, 폭파통은 탱크의 무한궤도에 찔러넣은 다음 꽁무니를 당겨야 됐다. 탱크로의 접근 자체가 위험천만한 노릇인데다가, 심지나 꽁무니 당기기부터 폭발이 일어나기까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으므로 사람이 급히 물러나야 했으니 그것도 아주 위험했다. 게다가 적 탱크가 폭약꾸러미를 피해 움직이거나 폭파통이 무한궤도에서 떨어져 나오면 다시 놓거나 다시 박아야 했으니, 그건 목숨을 내건 행동이었다. 

 

소련이 팔아준 무기들이 늘어난 다음에는 아군 무기로는 무반동포(중국어로는 우허우쭤리파오无后座力炮)나 미군의 로켓발사통을 이용하여 탱크를 파괴하곤 했으나, 지원군의 참전 초기에는 위와 같은 방식으로 탱크를 까야 했다. 그나마 탱크와 싸워본 경험이 있는 부대들이 그 정도로 나섰지 탱크와 부딪쳐본 경력이 없는 부대들은 당황해나기도 했었다. 그럴 때 인민군이 도와준 사례가 생겨났다. 

 

중국인민지원군에서 연락원 등으로 일했던 리해식(李海植)이라는 분이 내놓은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연변인민출판사 1991년 2월, 344쪽)에 이런 대목이 있다. 

 

“우리 지원군 모부가 문등도로연선의 진지를 넘겨받아 지키게 되었을 때였다. 

하루는 적들의 땅크 40대나 무리를 지어 지심을 울리며 문등도로를 따라 기세사납게 덮쳐왔다. 그런데 땅크를 까부신 경험이 적은 우리 지원군 모 퇀의 장병들은 5키로 남짓이 쳐들어온 적땅크를 노려볼뿐 속수무책이였다. 적들의 땅크는 각일각 우리 지원군 모 퇀 퇀부를 위협하며 박근하여왔다. 

이 아슬아슬한 시각에 난데없는 포탄이 날아와 제일 앞에서 덮쳐드는 적땅크부근에서 작렬했다. 

굉음과 함께 적땅크부근에서 버섯구름이 치솟아올랐다. 자욱하던 초연이 사라지자 그 자리에서 맴돌아치거나 무한궤도가 벗겨져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땅크 4대가 보였다. 뒤따르던 적땅크들은 포탄이 련이어 날아와 작렬하자 대가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우리 지원군 모 퇀의 지휘원과 전투원들은 식은땀을 그러쥐였던 손을 스르르 풀면서 한숨을 후- 내숴였다. 

알고보니 문등도로 동쪽의 조선인민군부대에서 이 정경을 보고 류탄포를 쏘았던것이다. 

그후 7명으로 조직된 조선인민군 반땅크소조가 이 퇀의 전호속으로 건너왔다. 

《우리는 지원군수장의 지휘밑에 땅크를 까부시려고 왔습니다.》 

《환영하오!》 

퇀수장은 그들의 손을 굳게 잡아주었다. 

반땅크소조의 조선인민군전사들은 전호속에서 우리 지원군전사들과 함께 다시 덮쳐드는 적땅크를 까부시였다. 적땅크가 물러가자 그들은 또 지원군전사들에게 금방 땅크를 까부신 경험교훈을 총화하면서 땅크를 까부시는 기술을 차근차근 가르쳐주었다. 

그들은 이렇게 석달동안이나 지원군전사들과 함께 한전호속에서 적땅크와 싸웠다. 이리하여 수많은 반땅크용사들을 육성해내였다. 그들은 적들의 이른바 《땅크개척전》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진지가 공고해진 뒤에야 조선인민군 진지로 건너갔다. 

떠나갈 때 두 나라 형제 전우들은 서로 붙안고 눈물로 두볼을 적시면서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실로 피로 맺어진 친선의 정이 문등도로연선의 전호마다 산봉우리마다에 차고넘쳤다.”(113~ 115쪽) 

 

저자가 전시의 비밀유지 습관 때문에 “모 부”, “모 퇀(연대)”이라고 썼기에 당년에 책을 보면서 불만이 많았던 필자는 얼마 전에 중국어자료를 보다가 구체적인 부대를 확인하게 되었다. 중국인민지원군 68군 정치부가 경험을 총결한 글 《조선인민군과 단결한 일부 체험(团结朝鲜人民军的一些体验)》은 204사(사단)가 문등도로 서쪽 북한강 일선의 진지를 1951년 10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지킨 경력을 담았는데, 1년 남짓한 동안에 610퇀이 문등도로 서쪽 진지를 방어하면서 도로 동쪽의 인민군 5군단, 2군단, 3군단과 친밀히 협동(亲密协同)한 경험이 중점이다. 

위에서 거든 사례를 중국어자료에서는 이렇게 적었다. 

 

“610퇀이 문등진지방어를 접수하던 초기에는 아직 반탱크전 경험이 없었다. 2련(중대)가 전선에 나가자 적 40대 탱크군의 집중공격에 부딪쳤다. 적 탱크군은 우리 진지 종심 10여 리(중국의 1리는 500미터) 깊숙이 들어와 퇀 지휘소의 안전을 위협했다. 인민군이 곧 762야포를 즉시 공사에서 밀고나와 적 탱크 4대를 격파하여 우리와 협동해 적들의 진공을 물리쳤다. 그 다음 또 주동적으로 7명으로 구성된 반탱크조를 파견해 우리 전연 연대에 배속돼 지휘를 받으면서 우리를 도와 반탱크전을 3개월이나 진행했다. 그들은 우리의 진지가 완전히 공고해지고 적들이 문등지구에서 취한 탱크개척전이 완전히 실패한 다음에야 인민군의 원래 부대로 돌아갔다. 이러루한 구체적이고 생동한 전투단결사례들은 부대에서 국제주의교육, 계급우애교육을 진행하는 가장 실제적이고 가장 설득력이 강한 교재이다.(610团开始接访文登阵地时,尚无反坦克战经验,二连刚上前线,即碰到敌人四十辆坦克群的集中进犯,深入我阵地纵深十余里,威胁团指挥所的安全。人民军七六二野炮即从工事推出,击毁敌坦克四辆,协同我们打退了敌人的进攻。随后又自动派出一个七人的反坦克组,配属我前沿连队指挥,帮助我们进行反坦克战达三个月之久。他们在我阵地完全巩固、敌人在文登地区采取坦克劈入战完全失败之后,才归回人民军原建制。诸如此类的具体生动的战斗团结的事例,是向部队进行国际主义教育、阶级友爱教育的最实际最有说服力的教材。)”

 

첫 싸움의 적 탱크 4대 격파 외에 구체적인 전과들이 언급되지 않아 유감인데, 인민군들이 중국인민지원군 진지에 와서 싸우면서 거둔 전과들도 당연히 인민군에 통보되었을 것이다. 당시 68군이 5군단의 진지를 맡게 되었고, 중국어자료에서 협동작전의 첫 순위로 5군단을 거들었으니 된 걸 감안하면 반탱크조를 5군단에서 파견했을 텐데 조선(북한)자료에서 지금껏 그 싸움에 대한 내용을 보지 못해 더욱 유감이다. 

 

탱크 4대 격파는 어느 정도의 공로로 칠까? 중국인민지원군이 전쟁기간에 정한 입공조례를 참조하자. 

공은 개인과 집단(单位) 2종으로 가르면서 4등급으로 나누어 3등공, 2등공, 1등공, 특등공이고, 영웅은 개인과 집단 2종으로 가르면서 3등급으로 나누어 이급, 일급, 특급이다. 

탱크관련부분들만 뽑아보면 

 

3등공: 

수류탄, 폭파통, 폭약, 지뢰 등 무기를 휴대하고 용감하게 적 탱크에 접근해 작전하여 양호한 전적을 거둔자(携带手榴弹、爆破筒、炸药、地雷等武器,勇敢接近敌人坦克作战,有良好战绩者, 3장 9조 14항) 

포병부대를 지휘하여 적의 공사를 파괴했거나 적들의 탱크, 비행대공격을 격퇴하면서 모 방면에서 양호한 전적을 세운 자(凡能指挥炮兵部队,摧毁敌人之工事或击退敌人坦克、飞行队攻击等,某一方面创有良好战绩者, 3장 9조 20항) 

이밖에 탱크승조원이나 비행사가 탱크 1대를 격파하면 역시 3등공이었다.(3장 9조 24항, 28항) 

반탱크무기로 적 탱크 1대를 격파한 자(以反坦克武器,击毁敌坦克一辆者, 3장 9조 22항)

 

2등공: 

전투에서 수류탄, 폭파통, 폭약 등 무기로 적 탱그 1대 이상을 격파한 자, 혹은 보병무기로 적기를 격추한 자(在战斗中以手榴弹、爆破筒、炸药等武器,击毁敌人坦克一辆以上者;或以步兵武器击落敌机者, 3장 10조 14항) 

한 차례 전투에서 반탱크무기로 부동한 위력 요구에 근거해 적 탱크 2대를 격상, 격파한 자(在一次战斗中以反坦克武器,根据不同威力要求,击伤、击毁敌人坦克两辆者, 3장 10조 24항) 

탱크승조원으로서 적 탱크 2대나 대포 2문을 격파 혹은 적 기관총 화력점을 5개 이상 소멸한자(坦克乘员,击毁敌人坦克两辆或大炮两门,或消灭敌人机枪巢五个以上者, 3장 10조 26항)

그리고 비행사가 적 탱크 2대를 격파해도 2등공이었다.(3장 10조 30항) 

 

음미해보면 다루는 무기가 강한 사람들은 약한 무기를 다룬 사람보다 더 큰 전적을 얻어야 같은 수준의 공로로 취급했음을 알 수 있다. 

1등공과 특등공은 전적 수자와 직결하지 않고 전투임무의 승리에 중대한 역할을 한 점을 강조했다. 

예컨대 1등공은 지휘원과 전사를 갈라서 중대한 공적을 강조했는데, 전사부분을 보면 

전사로서 작전 중 개인의 지혜와 용감성과 기술로 중대한 공적을 세워 전투의 승리를 위해 중대한 역할을 한 자(凡战士在作战中,以个人的机智勇敢和技术,创有重大功绩,对战斗胜利起有重大作用者, 3장 11조 3항)

특등공은 간거한 전투에서의 특수한 공훈과 결정적역할을 강조했다. 특히 전사는 본보기를 내세웠다. 

간부로서 어느 간거한 전투임무를 조직지휘하거나 집행하면서(전투근무를 포함) 특수한 공훈을 세워 작전승리나 전투임무완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 자.(凡干部在组织指挥或执行某一艰巨的战斗任务中(包括战斗勤务),创有特殊功勋,对取得作战胜利或完成战斗任务,起有决定作用者, 3장 12조 1항) 

전사로서 간거한 전투임무의 완성에서(전투근무를 포함) 특수한 공훈을 세워 그 사적이 전군의 본보기로 될 만한 자.(凡战士在完成艰巨战斗任务中(包括战斗勤务),创有特殊功勋,其事迹堪为全军榜样者, 3장 11조 2항) 

 

다음으로 영웅모범 기준은 공을 세운 차수에 따라 정해졌다. 

2급영웅모범은 2등공을 3차례 이상 세웠거나 1등공 이상의 공을 세운자(建立三次以上二等功或建立一等功以上之功者 4장 13조 1항) 

군(군단) 혹은 군에 해당한 범위에서 대표성이 있어 기치로 될 만한 자(在军或相当于军之范围内,有代表性,堪为旗帜者, 4장 13조 3항)

1급영웅모범은 2차례 이상 1등공을 세웠거나 특등공을 세운 자(建立两次以上一等功或建立特等功者, 4장 14조 1항) 

지원군 범위에서 대표성이 있어 기치로 될만한 자(在志愿军范围内,有代表性,堪为旗帜者, 4장 14조 3항) 

특급영웅모범은 

특등공을 1차 이상 세운 자(建立特等功一次以上者, 4장 15조 1항) 

전국 전군 범위에서 대표성이 있어 기치로 될만한 자.(在全国全军范围内,有代表性,堪为旗帜者, 4장 15조 3항) 

 

만 번 양보해서 심일 소대장과 특공대의 무훈담이 사실이라 치더라도 탱크 혹은 자주포 3대를 격파한 공로를 나눠가지면 지원군의 기준으로는 심일 소대장은 2등공이나 딸 것이다. 그리고 특수한 공훈으로 전투의 승리를 위해 이바지하지 못했으니까(춘천 전투의 결말이 뻔하므로) 특등공은 아예 불가능하다. 영웅 또한 가망이 없다. 

 

1951년 전사 후 소령으로 추서된 심일 소령이 6· 25전쟁영웅의 첫 줄에 있다는데, 그 무용담을 배우면서 자랐거나 심일상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무척 불쾌하겠다만, 중국인민지원군의 영웅모범들과 비기면 무용담을 믿어주더라도 공로가 별거 아니다. 한국의 어떤 사람들이 과민한 반응을 보여 《자주시보》에 누를 끼칠까봐 다른 어느 군대의 영웅들과는 비교하지 않겠다. 

 

한국인들은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는 말을 곧잘 하던데, 속임으로 부풀린 우상 거품 터져 깨진다 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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