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산지석] 김일성주석, 노획 미제 헬기 통째로 러시아에 제공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7/10/10 [20:58]  최종편집: ⓒ 자주시보

 

글을 쓰다나면 무심히 놓치는 세부들이 있다. 10월 초에 발표한 정문일침 341편 “북과 중국 침투 악충 미국흰나방의 교훈”(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5930)의 인용문을 급급히 옮기면서도 그런 실수를 저질렀다. 

 

“특히 소학생들을 동원하여 번데기 하나를 잡아 ’흰나방판공실‘에 가져가면 상금 1전을 주었는데, 어린이들은 활동력이 특별히 강해 구석마다 뒤지면서 겨울나이하는 번데기를 대량 잡았다.(特别是发动了小学生,捉到一个成蛹交到“白蛾办公室”,就奖励一分钱,小孩子活动力特强,翻遍各种角落,扑捉了大量过冬成蛹。) ”

 

“一分钱”을 “1전”으로 옮기는 등 틀린 데는 없으나, 그대로 옮기기만 하다나니 한국과 해외의 독자들이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워졌다. 

중국 인민폐는 100전이 1위안(元)인데, 1980년대 초반에 보통 얼음과자는 1개에 3전, 우유얼음과자는 1개에 5전이었으며 10전이면 당시 최대오락인 영화표를 1장 살 수 있었다. 어른표는 20전이고 학생표는 10전이었으니 흰나방번데기잡이의 매력이 학생들에게 얼마나  컸겠는가 짐작할 수 있다. 그 시절 노동자들의 평균 월급은 30~ 40위안 정도였으니 흰나방번데기를 많이 잡으면 집안살림에도 톡톡히 보탬이 될 수 있었다. 

 

조선인민군 공군의 엔진을 중국 공군 12공장이 수리한 건 중국산 전투기가 조선에 나갔기 때문이겠는데, 당년에 중국과 조선의 군사교류는 그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 

 

2003년 10월 15일 중국의 첫 우주인으로 된 양리워이(杨利伟, 양리위, 1965~ 사진)은 18살 나던 1983년에 공군 비행사모집에 응해 바오딩(保定, 보정)의 항공예비학교에 들어가 공부했다. 

 

▲ 중국의 첫 우주인 양리워이     © 자주시보, 중국시민


1년 공부를 거쳐 도태되지 않은 학원들은 여러 항공학교와 학원대로 분배되었는데, 키 큰 사람들이 운수기나 폭격기 등 큰 비행기를 몰게 되고, 키 작은 사람들이 추격기 등 소형비행기를 몰게 되었다. 전투기조종사로 되기를 바라던 양리워이의 공부는 조선인민군의 간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해방군출판사가 2010년 10월에 출판한 자서전 《천지구중(天地九重)》(사진)의 제2장 제8절에서 양리워이는 이렇게 썼다. 

 

▲ 양리워이의 저서 《천지구중》     © 자주시보, 중국시민

 

“1984년 여름에 나는 소원대로 소형비행기조종을 배우러 가게 됐다. 처음에 간쑤성(甘肃省, 감숙성)의 공군 제5항공학교로 전학했는데, 학교에 외국군대훈련임무가 있어서 조선 비행학원들을 받았기에 우리는 한동안 기다리다가 4개월 뒤 신쟝(新疆, 신강위글족자치구)에 자리잡은 공군 제8항공학교로 옮겨갔다. 왔다갔다 지체하다다니 우리 일행 수십 명은 실제상 동기 동창생들보다 근 1년 늦게 날았고 그 후 줄곧 그들보다 늦었다. 그들이 졸업했을 때 우리는 겨우 고등훈련기 단계에 이르렀다.(1984年夏天,我如愿去学小飞机,开始时转到了甘肃的空军第五航校,因为学校有外训任务,接了一批朝鲜飞行学员,我们等了一段时间,四个月后转到地处新疆的空军第八航空学校。来回一耽误,我们几十个人实际比同一届的同学晚飞了将近一年,此后就一直比他们晚,他们毕业我们才到了高教阶段。)” 

 

양리워이는 진급이 동기동창생들보다 늦었으나 나중에는 중좌로서 우주비행을 했고 2008년 7월에는 44살 나이로 소장으로 진급했다. 

군사복무연한과 진급속도를 감안하면 1984년 당시 중국의 간쑤성에서 공부했던 조선인민군 조종사들은 지금쯤 장령으로서 활약할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일 국무위원장이 항공군부대를 시찰하는 장면이 보도될 때마다 필자는 어느 장령이 중국어를 잘 알까 추측해보곤 한다. 물론 아무런 자료도 없기에 단언하지 못하지만 추측자체가 재미있다. 

 

외국군대훈련은 중화인민공화국 역사에서 드문 일이 아닌바, 공군부분은 두 가지 형식이 존재했었다. 하나는 학교가 학원들을 받아서 중국어로 교학하고 훈련시키는 것이고, 하나는 비행장을 통째로 외국군대에 빌려주어 그들이 자국어로 훈련하도록 하는 것이다. 1950년대 항미원조전쟁기간과 그 뒤 몇 해 동안 중국 동북지역에 설치된 조선인민군의 일부 비행장과 1960년대와 70년대 항미원월(抗美援越, 미국에 항거하여 베트남을 원조한다)기간에 중국 남방에 설치된 베트남공군의 일부 비행장이 후자에 속한다. 

 

모든 전쟁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이 있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우나 엄연히 존재하는 사건들도 적지 않다. 중국인민해방군 공군에서 수십 년 복무하면서 부군장(副军长, 부군단장)까지 되었던 쑹중원(宋中文, 송중문, 1931~)이 1950년대에 미국제 국민당군 비행기들을 격추, 격상한 공훈은 꽤나 상세하게 알려졌지만, 그의 다른 공로는 세부가 공개되지 않았다. 해방군출판사가 2008년 1월에 출판한 《공중적을 섬멸(飞歼空中敌)》(사진)같은 책과 일부 인터뷰에서 간단히 언급되는 정도이다. 

 

▲ 중국인민해방군 공군전투영웅들을 취재한 책 《공중적을 섬멸》 표지     © 자주시보, 중국시민

 

▲ 중국인민해방군 공군전투영웅들을 취재한 책 《공중적을 섬멸》 412~ 413쪽     © 자주시보, 중국시민

 

이 책의 412~ 413쪽에 의하면 1968년 9월에 상하이(上海, 상해)에 주둔하던 부대가 남방의 광저우(广州, 광주)로 옮겨가면서 부사장(副师长, 부사단장)을 맡게 되었는데, 명령에 의해 미국제 F- 5A비행기를 시험비행한 적 있다 한다. 

 

“이 비행기는 베트남형제들이 싸움터에서 노획한 미국공군비행기였다. 아주 어려운 조건에서 쑹중원은 익숙하지 못한 미국 비행기를 몰고 고공, 저공, 엔진정지 시험비행을 하여 비교적 훌륭하게 임무를 완성해 영광스럽게 3등공을 세웠다.(这架飞机是越南兄弟从战场上缴获美国空军的。在非常困难的条件下,宋中文驾驶并不熟悉的美国飞机进行高空、低空、停车试飞,较好地完成了任务,荣立三等功。)”(413쪽) 

 

다른 인터뷰에서 쑹중원은 베트남인민군이 전장에서 노획한 망태기 F-5A(破F-5A)를 자신이 시험비행했다고 언급했다. 비행이란 지면지휘와 공중비행이 밀접히 연계되어야 성공하는 법인데, 시스템이 다르고 기계성능을 모르며 계기들도 익숙치 않은 상황에서 시험비행을 성공시킨다는 건 높은 기술과 목숨을 내건 각오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쑹중원이 얻은 데이터가 중국공군의 발전에 유용하게 씌었을 것은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다. 

 

▲ F-5A 전투기     © 자주시보, 중국시민

 

그런데 필자가 그 사적을 접하면서 놀란 건 미국 비행기가 베트남을 거쳐 중국에 들어오기까지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쳤겠느냐이다. 전장에서의 비행기노획자체가 어렵거니와 이동도 어렵다. 베트남전쟁에 대해 수십 년 째 쏟아져나온 자료들이 엄청나지만 그 F-5A가 원래 어느 부대 소속이었고 조종사 이름이 무엇이었냐 등은 알려지지 않았으며 베트남인들의 전투과정과 운송릴레이도 전해지지 않았다. 

 

하긴 그보다 앞선 6. 25전쟁에서도 비행기노획이 있었고, 문학예술작품들에도 반영되었다. 문학예술출판사가 2005년 11월에 펴낸 총서 불멸의 역사 장편소설 《전선의 아침》(박윤 지음, 사진)은 제목이 말해주다시피 주로 전쟁과정을 다뤘는데 적기를 노획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 김일성 주석을 주인공으로 하는 총서 불멸의 역사 장편소설 《전선의 아침》     © 자주시보, 중국시민


미8군 사령관 밴플리트의 조카이며 헨리 밴플리트가 비행사로서 북을 폭격하다가 실종된다. 미군이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찾는 걸 알아챈 인민군은 헨리의 생존을 위조하여 적이 신형직승기(헬기)를 투입해야 구출가능한 상황을 조성한다. 두뇌전과 실력전 끝에 직승기를 고스란히 노획하고는 해체하여 후방으로 운반한다. 그보다 앞서 그 신형직승기의 출현에 위협을 느껴 치열한 활동을 벌려왔으나 아무런 소득도 없던 소련이 직승기 날개조각이라도 줄 수 없겠느냐고 조심스레 문의해오니, 김일성 최고사령관은 그 말을 전하는 사람들을 나무란다. 

 

“남일동무, 최영환동무, 뭘 그리 잴게 있소. 날개쪼각이라니… 우리 병기부문동무들이 다 알아봤으면 통채로 주시오. 형제국가들사이에 무슨 아낄게 있는가. 

... 

민주진영, 사회주의진영의 강화견지에서 우리 혁명가들은 비록 이것이 사소한 문제같지만 넓게 생각해야 하오.

원자탄개발에서 미제에 뒤진것으로 쏘련이 얼마나 고심했소. 쓰딸린동지와의 친분관계로 봐도 그렇고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원칙에서 봐도 이건 필요한 일이라고 봅니다.“(102쪽) 

 

직승비행기가 모스크바 이와노브광장에 도착했을 때 스탈린은 직접 나가 직승기동체를 만져보고, 1952년 4월에는 김일성 최고사령관 생일에 즈음하여 밀가루 5만 톤을 선물로 보낸다. 

다른 어느 장편소설에서는 직승기 포획이 달리 그려진다. 소설들은 물론 허구가 들어가지만 당시 전쟁에서 직승기- 헬기노획은 실제로 존재했고 그것도 1대에 그치지 않았다. 

헬기는 그래도 엔간한 공터만 있으면 이착륙할 수 있으니 노획이 이해되는데, F-5A같은 비행기가 어떻게 베트남인민군의 손에 들어갔는지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전쟁의 불가사의는 불가사의한 인간들이 창조하는 법이라면, 전쟁을 막기 위한 인간들의 불가사의한 노력이 불가사의한 무기장비들을 만들어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미국의 자랑거리이자 미군이 크게 믿는 드론이 이란에 고스란히 나포된 사실에 비춰보면, 반도에서의 군사대결이 치열해질 때, 미국제 드론들이 평양의 전시장에 나타날 확률이 상당히 높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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