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에 의하여 좌우되는 한국의 반민족 예술
정설교 화백
기사입력: 2017/11/26 [09:03]  최종편집: ⓒ 자주시보

 

▲ 김은호, 김기창으로 이어지는 친일작가들의 작품은

현실과는 거리가 먼 반민족 일본식민지 미화 작품들이다.    © 정설교 화백

 

▲  식민지 현실과는 거리가 먼 친일 김은호의 작품

김은호는  김기창의 스승이다. 이런 자들이 한국의 미술계 중추다.  © 정설교 화백

 

▲  예수는 손에 굳은살이 박힌 목수다.

하지만 김은호의 작품은 그런 예수와는 거리가 먼 귀족으로 보인다.   © 정설교 화백

 

 

▲친일작가   춘원 이광수와 여인들  

그는 지식인으로  식민지 시절 노동자농민의 참상을 과연 알 수 있었을까.

그의 주변은 반민족 친일작가들이 모여들고  이광수가 수괴지만 한국의 문단이 지금도 변한 것이 없다.

  © 정설교 화백

 

▲ 밀레의  만종 

밀레는 일하지 않고도 잘 먹는 귀족을 그리지 않았고 힘든 농사일을 하고도 못 먹는 농민의 모습을 그렸다.  그가 위대한 그 이유다.© 정설교 화백


 

▲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곡식은 귀족들이 차지하고

뼈빠지게 농사하고도 배고픈 농민들의 이삭줍기는 그래서 감동적이며

밀레의 위대함이 느껴진다.    © 정설교 화백

 

한국의 그림은 서울대와 홍익대를 나와야 잘 그린다는 것인지 한국의 회화는 서울대와 홍익대의 작품을 최고로 알아준다. 또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은 화가가 될 수 없으며 그저 아마추어로 분류한다. 한국 사람들은 예술이 대학으로 결정되며 예술은 그저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이다.

 

예술이란 무엇이고 예술로 만드는 건 무엇인가? 프랑스에서 추앙받는 밀레의 작품은 예술이란 데 거의 논란이 없다. 밀레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예술이라 데는 동의한다. 밀레는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농민으로 살아갔으며 밀레는 미술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지만 키질하는 사람, 이삭줍기, 만종, 씨 뿌리는 사람, 걸음마, 실 잣는 여인, 괭이를 가진 남자 등 밀레는 귀족이 아니라 숙명처럼 농민생활을 그림으로 그렸다.

 

밀레가 만약 한국에 태어나 농민으로 살아가며 농민들의 생활을 그렸다면 거의 알려지지도 못했을 것이고 그의 그림은 아마추어로 인정받지도 못했을 것이다. 피카소도 마찬가지다. 그는 그림 외에는 성적이 좋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과 같다면 인 서울대학에 갈 수 없었을 것이고 그의 작품은 인정받지 못했을 것이니 한국은 학력이라는 지연, 학연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 간판만 내세우는 예술이 판을 치는 형국이다.

 

늘 반복하는 이야기지만 예술은 시대를 깨우치는 의미요 사상이다. 돌, 나무등걸 하나라도 예술가의 손이 가면 무한이 많은 발언을 내포할 수 있다. 돌 하나에도 예술의 개념이 다르고 관람객은 저마다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예술가의 손이 가지 않은 돌은 그저 돌일 뿐이다.

 

예술은 자신의 인상, 경험, 체험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창조적인 활동으로 학교와 학력은 예술과 무관하지만 대학입시만 되면 서울대를 정점으로 줄서기를 하는 모습은 대한민국에서는 인재가 날래야 날 수 없는 구조다. 

 

이제 교육부도 우리교육에 대하여 뭔가 말을 하고 우리의 백년대계 교육이 크게 달라져야 되지만 한국은 통째로 고황지질에 적폐자체라고 할 것이니 예술다운 예술이 없고 정치적으로도 부정부패에 의하여 안정되지 못하니 한국인은 언제나 진실을 볼 수 있을지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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