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일침 460] “집단탈북 사건” 의 허강일과 황장엽 등의 닮은 꼴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8/05/13 [21:43]  최종편집: ⓒ 자주시보

 

▲ jtbc 방송에 출연해 북 해외식당 종업원 탈북 사건은 국정원의 지휘 아래 진행되었다고 밝힌 허강일 [사진 방송화면 캡쳐]     

 

한동안 잠잠하던 “북한 식당 집단탈북사건”이 지난주 목요일 방영된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때문에 뜨거운 화제로 떠올랐다. 지배인 허강일과 몇 명 여성 종업원들의 증언으로 “집단자진탈북”이 아니라 국정원이 개입한 “기획탈북”이 밝혀져, 조선(북한)이 2016년 4월 사건 발생 직후부터 해온 주장이 옳았음이 증명되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일부 사람들은 탈북의 정당성을 떠들면서 송환절대불가를 부르짖는다. 

허강일 씨의 말들에서 일부가 주목을 끌어 필자는 주말에 자료들을 뒤적이게 되었다. 

 

 "(국정원 직원이) 종업원들 데리고 같이 오라고 했다. 무조건 같이 오라고 혼자서는 오지 말라고 했다. 같이 안 오면 북쪽 대사관에 날 신고하겠다고 했다. 신고 할테면 해라 안가겠다 그랬더니 한 시간 뒤에 사죄했다. 자기도 말 못한 사연이 있는데 큰 작전이 있다고 했다. 여기 오면 훈장도 주고 국정원에서 같이 일하고 원하는 건 다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요즘의 국정원 직원이 어떤 방식으로 말하는지는 모르지만,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 사람들이 한 말, 한 짓들에 비춰보면 허 씨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1992년 한국으로 망명하여 김현식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해온 전 평양 김형직 사범대학 교수는 1990년대 초반 소련 러시아국립사범대학에 교환교수로 가있을 때 그에게 접근하여 망명을 권한 한국 정보원과의 대화를 김영사가 펴낸 《나는 21세기 이념의 유목민》에서 이렇게 적었다. 

 

“나는 대학교숩니다. 평생 가르치고 연구하는 일만 해온 사람이란 말이오. 내가  남조선에 가서 무얼 하며 살겠소?” 

“서울에 가시면 교수님은 당연히 남한 최고의 대학에서 일하시게 될 겁니다. 그건 저희가 보증하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교수님의 실력이라면 여기저기서 모셔가느라 야단이 날겁니다.”(16쪽) 

 

그러나 어렵사리 한국에 도착한 후 그는 안가에 보내져 강도 높고 무례한 조사를 받았다. 

 

“사람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같은 조선 땅인데도 평양에 살던 내가 서울에 정착해 사는 것은 러시아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나는 매일같이 내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넘어왔는가. 이 땅이 평양과 마찬가지로 조선 땅이 맞긴 맞는 건가. 러시아에서 정보일꾼이 망명을 권하며 단단히 약속했던 것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신분을 공개하지 않고 북한 연구를 하면서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강의할 수 있게 해 준다던 약속은 부질없는 꿈에 지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교수가 될 수 있을지, 언제부터 강단에 설 수 있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도무지 무얼 해야 좋을지 모른 채 하루하루를 힘겹게 견뎌야 했다.”(39쪽)

 

무진 애를 썼으나 교단에 서보지도 못했던 그는 여러 달이 지나서야 몸을 담은 안기부 산하 연구소의 소장과 정보대학원 원장이 바둑을 두는 걸 우연히 구경하다가 원장에게 소개되어 강의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시험강의가 성공한다.

 

“연구소장 덕분에 하루아침에 교수가 된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토록 애를 써도 안 되던 일이 어떻게 바둑을 두며 나눈 몇 마디의 말로 성사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동기동창으로 막역한 사이라고 했다. 남한 사회에서는 인맥과 학맥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더니 정말로 그렇구나 싶었다. 나야말로 두 사람 사이의 인맥과 학맥에 도움을 받은 게 아닌가.”(145~ 146쪽) 

 

국정원 직원이 허강일 씨에게 한국에 가면 “훈장도 주고 국정원에서 같이 일하고 원하는건 다 가질 수 있다”고 장담한 건 안기부 선배들의 자랑찬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보아야겠다. 허 씨가 꾸며냈다고 보기에는 1990년대 안기부 직원의 약속과 2010년대 국정원 직원의 보증이 너무나도 비슷하지 않은가. 자신의 권한범위를 벗어나는 수표를 남발하면서 일단 망명을 성사시키고 보자는 수법이다. 

 

▲ 나는 21세기 이념의 유목민 책 표지     © 자주시보,중국시민

 

어떤 이들이 김현식 씨의 사례만으로는 위의 결론을 내리기에 부족하다고 여길지도 모르니까, 가명으로 활동하는 전직 교수 김씨보다 본명으로 움직였고 직급과 지위도 훨씬 높은 황장엽 씨와 동행자 김덕홍 씨의 사례를 보탠다. 1997년 2월에는 안기부보다 더 높은 김영삼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2월 12일 오전 10시에 베이징 주재 한국 대사관으로 황장엽 씨와 함께 들어갔던 김덕홍 씨는 《나는 자유주의자다》(집사재)에서 이렇게 적었다. 

 

“1997년 2월 13일 아침 한국의 신문보도세례와 함께 우리가 받은 것이 또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대한민국 김영삼 대통령이 황장엽 형님과 내게 보낸 친서였다. 그 친서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었다. 

‘북한문제가 해결될 때가지 대한민국 정부가 책임지고 황장엽과 김덕홍의 민간차원 대북사업을 지원하고 신변안전을 보장하며 황장엽에게는 장관급 대우를 김덕홍에게는 차관급 대우를 해주겠다.’ 

김영삼 대통령이 대한민국 정부의 명의로 우리에게 약조했던 사안들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신변안전약속’만을 남겨놓고 모두 사라졌었다.”(298쪽) 

 

문맥상으로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때문에 다른 약속들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고, “신변안전약속”만은 지켜진 것으로 보이는데, 황장엽 씨가 이명박 정부 시절에 욕조에서 죽은 뒤 상당 시간이 지나서 발견되었다는 보도를 참조하면 그 무슨 “총리급 경호”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셈이다. 

“전쟁을 막으러 왔다”고 호언했던 황장엽 씨의 과대망상에 비기면 김현식 씨의 교수 꿈이나 허강일 씨의 국정원 입사 꿈은 소박한 편이다만, 보증했던 사람들이 약속을 현실로 만들 권한이 없거나 권한을 잃을 수 있음을 홀시한 점은 세 망명자가 꼭 같다. 

허강일 씨가 한국 드라마나 영화만 보지 않고 “탈북선배”들의 저서(?)들을 진지하게 보았더라면 국정원 직원의 말들에 쉽게 넘어가지 않았을 텐데, 이제는 뉘우쳐야 소용이 없게 되었다. 

 

그리고 허강일 씨는 탈북성원과 시기에 대해 당초 2016년 5월 30일 본인과 부인만 귀순하기로 했으나 국정원 직원이 4월 3일 밤 갑자기 전화해 "종업원까지 다 데리고 들어오라" 지시했고, 불가능한 일이라고 대답하자, 상대방은 북 보위부에 정보원 활동한 걸 신고하겠다고 협박하더니 뒤이어 "종업원까지 데리고 오면 보상하겠다"고 회유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원래 5월 30일로 약속했다. 갑자기 4월 3일 밤에 전화 와서 긴급 상황이 발생했는데 4월 5일 날 무조건 출발하라고 했다." 

 

4월 5일 닝보 류경식당의 조선 사람들 중 3명이 빠진 상황에서 억지로 출발한 13명은 6일 말레이시아를 거쳐 7일 인천공항에 입국하여 탈북자 입국시간 신기록을 세웠는데, 그때까지도 지배인은 집단 탈북을 서두른 진짜 이유를 몰랐지만 한국에 도착 해 보니 탈북 발표 닷새 후가 총선이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북을 공격하는 큰 작전인 줄 알았는데 결국 총선, 그걸 이기겠다고 조작한 거였다. 난 뉴스를 보고 알았다. 민주당은 종북 세력이라 그걸 이기려고 언론에 공개했다고 했다."

 

탈북시기의 급작스런 변동 역시 황장엽 사건과 닮은꼴이다. 김덕홍 씨는 책에서 분통을 터뜨렸다. 

 

“1997년 2월 13일 아침 조선일보를 비롯한 한국의 모든 신문이, 마치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우리의 정치망명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대서특필로 관련기사들을 쏟아냈다. 신문들에는 내가 황장엽선생의 정치망명을 도모하기 위해 여러 달 전부터 연계했던 한국의 지인들과 주고받은 대화내용들, 관련 문서들, 심지어 황장엽 형님이 그들에게 극비리에 보낸 쪽지서신(내가 전달해줌)까지도 거의 낱낱이 공개되어 있었다. 나와 황장엽 형님에게는 생사가 걸린 문제에 처음부터 그들은 다른 목적으로 접근했던 게 아닐까 하는 심한 불신과 분노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무거운 진통을 일으키며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그것으로써 나는 우리의 4월 정치망명계획이 불시로 앞당겨진 원인이 비단 홛장엽 선생의 수양딸인 조선족 박** 여사의 비밀누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깊이 존경하고 굳게 믿고 생사까지도 의지했던 한국 지인들의 사심에도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대한민국에 들어와서는 무슨 사건이요, 무슨 사태요 하면서 여야가 격렬하게 대치했던 한국의 정치정국이 우리의 망명을 앞당기는 게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297~ 298쪽)

 

김영삼 정부가 왜 2월 망명을 강행했는지에 대해서는 당시 한국 정국을 살펴보면 분명해지는 바, 엔간한 한국인들이 다 아는 내용이므로 구태여 일일이 열거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주체사상 창시자”로 부풀린 황장엽의 망명으로 김영삼 정부에 불리한 이슈들을 덮어버리기 위해서였다. 결과적으로 보면 김영삼 정부와 안기부의 수법은 당시 꽤나 먹혀들었다. 

 

▲ 황장엽     © 자주시보,중국시민

 

19년 뒤의 박근혜 정부와 국정원은 총선의 판세를 뒤집으려고 했으나 선거에서 여당이 졌으니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 실패가 허강일씨의 찬밥 신세를 정해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허 씨는 한국에 와서야 자기가 정치적으로 이용당했다고 느꼈고 2년 동안 국정원에 속았다는 것을 알았다면서 올해 초까지도 "빨갱이 문재인 정권이 바뀌면 들어줄 수 있다"라고 하는 등 계속된 거짓말에 분노를 느꼈으며, 거짓말과 협박으로 끌고 온 종업원들에게도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이제라도 진상 규명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인터뷰에 응했다고 밝혔다. 

 

전직 고관인데다가 철학자로 알려진 황장엽씨는 마지막까지도 모종 가치를 가졌고 김현식 씨는 러시아어 전문가로서 능력을 발휘할 교단이 있었다. 그들과 달리 허강일 씨는 해 본 일이라는 게 식당경영이고 그나마 중국에서 잘 하지 못해 빚을 졌다니까 어디 가서 뭘 해보겠다고 나설 자격이 부족하다. 2년 남짓한 동안 무슨 돈으로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도 궁금하다만, 전격폭로로 국정원과 철저히 결렬한 이제부터는 생존자체가 커다란 문제로 나서기 마련이다. 북에서 2016년부터 악인으로 찍힌데다가 남에서도 버림을 받으면 여권에 1980년 3월 생으로 기록되어 40살 미만인 허강일 씨가 이제 어디서 어떻게 살아갈까?

 

필자로서는 또 하나의 의문사항이 있다. 허강일 씨가 닝보의 중국인들에게 진 빚이 120만~130만 위안(약 2억1200만~2억3000만원) 규모라고 보도되었었는데, 그 빚을 어떻게 처리할까? 2년 동안 그 빚을 누가 갚기나 했는지? 국정원의 기획탈북이 확인되어 중국인들이 상환능력이 없는 허 씨를 젖혀놓고 국정원을 상대로 소송이라도 건다면 국정원이 어떻게 대응할까? 

 

남북해빙에서 서훈 국정원장이 활약하면서 국정원 이미지가 제법 좋아지는 모양이었는데, 전전임인가 전전전임인가 싸놓은 똥을 처리하기가 버거워지게 되었다. 어찌 보면 국정원 내부 개혁보다도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서훈 원장이 잘못을 시인하고 바로잡을 용기를 보여줄지 주목된다. 보수들의 반대와 공격에 신경 쓰느냐 아니면 다수 국민들의 의지에 따르느냐가 정보원의 정보원다운 거듭 나기가 실패하느냐 성공하느냐를 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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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납치한 식당처녀13명은 즉각 부모품으로 돌려줘야..... 김삿갓 18/05/13 [22:53] 수정 삭제
  해방후 남에서 월북한 많은 문화예술인들...그리고 북에서 도주해온 많은 탈북자가 있어 민족 분단의 비극을 보여주고있다....그런데 탈북자들은 대부분 북에서 살인, 미성년자강간,공금횡령등 반역자 아니면 흉악범이나 파렴치범이 대부분...물론 부로커에게 속아서 온 김련희씨같은 예외도있지만.....
한번이 슬픔 18/05/15 [19:54] 수정 삭제
  박정희 중앙정보부는 그토록 자국민을 못살게 굴더니, 대를 이어갈수록 이제는 북한사람을 목표로 했단 말인가. 처음이 잘못되면 과정, 끝도 안좋은 법이다. 전격 해산한 다음, 완전히 새롭게 새로 창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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