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일침 566] 태영호 안목, 태영호 어법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8/11/05 [14:51]  최종편집: ⓒ 자주시보

 

1997년 봄에 중국과 필리핀을 거쳐 한국으로 망명한 황장엽 씨는 서울에 도착하자 전쟁을 막기 위해 왔다고 선포했다. 당시 조선(북한)이 이른바 “남침”을 준비했다가 황 씨의 망명으로 취소했다거나, 한미가 “북폭”하려다가 황 씨의 망명으로 취소했다고 여기는 사람은 지금껏 보지도 듣지도 못했으나, 망명 혹은 귀순 혹은 변절 혹은 탈북의 명의로서는 그보다 더 좋은 게 없었겠다. 전쟁을 막으려던 황 씨는 뒷날 정치적 언행이 인기를 끌지 못하니 자신의 철학을 가르친다고 나섰으나 강의효과가 시원치 않아 집어치웠다 한다. 몇 해 별 볼 일 없이 지내던 황 씨가 큰 소문을 낸 건 욕조에서의 사망 때문이다. 총리급 경호를 받는다는 사람이 죽은 뒤 한참이나 지나서야 발견된 거야 말로 기막힌 아이러니다.

 

이편에서 일정한 지위에 있던 사람이 저편으로 뜀뛰기를 한 초기에는 굉장히 거창하게 생각하다가 차츰 쪼그라드는 건 일종 법칙이다. 황장엽 사후 “고위급 탈북자”에 목말랐던 한국이 반겨 모셔온 “고위급 탈북자” 태영호 전 런던주재 조선 대사관 공사도 그런 법칙을 벗어나지 못한다. 서울에 도착해 국정원의 몇 달 조사를 마치고 공개활동을 갓 시작했던 2016년 말 2017년 초에 그는 자기가 암살당하면 통일의 기폭제로 될 것이라고 예언하면서 비장미(?)를 한껏 조성했다. 아쉽게도 같은 시기에 조선의 드라마 제작에 관해서는 한심한 오류를 드러냈기에 필자는 2017년 1월 3일자 《자주시보》글 정문일침 158 “태영호 전 공사의 실언 혹은 거짓말”(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1067&section=sc51&section2=)에서 문제점을 지적했다.

 

2018년에 남북 관계가 극적으로 호전된 뒤, 태 전 공사의 발언 충격도는 갈수록 낮아진다. 그나마 좀 놀랍다고 할 건 북한 방송을 남한에 틀어줘야 된다는 주장이다. 10월 31일 경기도 부천 서울신학대 한국기독교통일연구소가 개최한 추계세미나에서 이제는 체제 대결이 끝났기에 남한 사람들이 북한 언론을 보며 북한 현실을 그대로 직시하는 시스템을 만들 때가 됐다고 본다고 발언했다 한다. 《국가보안법》을 들춰본지 하도 오래 그런 발언이 국보법에 위반되는지 잘 모르겠는데, 어느 한국인이 그렇게 말햇다가는 정계와 언론 및 상당수 네티즌들의 날카로운 공격을 면할 리 어려우리라는 건 짐작이 간다. 그런데 태 씨의 발언은 별로 주목을 받지도 못했다. 고양 주유소 화재사건에서 스리랑카인이 모종 면죄부를 받은 것과 비슷하게 태 씨는 정치적 논란에서 자유로운 셈인데, 반면으로 일종 무시도 당하지 않는가는 느낌도 든다. 

 

한국인들의 조선 언론 자유 접촉이란 정치적 발언이 언론에 별로 실리지 않는데, 태 씨의 남북 생활비교는 그래도 꽤나 비중 있게 다뤄졌다. 지난 7월 아내의 입을 빌어 “한국에 와서 제일 좋은 게 수도꼭지를 틀 때마다 물이 나오고 스위치 켤 때마다 전깃불이 켜진다는 것”이라고 찬사를 터뜨렸기에, 필자가 7월 말에 정문일침 524 “태영호 씨 발언의 부족점”(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41027&section=sc51&section2=)에서 북에서 남으로 직접 간 사람이라면 몰라도 “길게는 여러 해나 영국에서 살아본 여자가 수도꼭지와 전등 스위치를 운운하면서 한국을 추켜올리면 조선의 얼굴이 깎일까? 영국의 체면이 깎일까?” 라고 지적했었다. 

 

몇 달 뒤 태 씨는 남북 생활 비교를 훨씬 구체적으로 진행한 다음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물론 한국에도 힘들게 사는 주부도 많겠지만, 최소한 내 눈에 한국 주부는 천국에서 사는 것처럼 보였다.” 

 

일부 사람들의 구미에 꼭 맞고 반북 선전용으로는 최상급 주장이다만, “헬조선”이라는 말이 큰 공감을 얻고 “*포 세대”들이 늘어나는 한국에서 “천국”운운은 어딘가 우습다. 

 

비슷한 방식의 비교는 역사가 제법 오래다. 1990년대 초 외국을 거쳐 귀순한 어느 운동선수는 남에 와서 여자들이 세탁기로 쉽게 빨래하는 걸 보니 찬물로 빨래하던 여동생이 불상하더라는 주장을 신문에 발표했다. 한국에서 퍼진 설대로라면 그 사람의 탈북으로 여동생을 비롯한 가족들이 “정치수용소”에 끌려가거나 총살당했을 텐데, 고작 찬물 빨래를 운운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닐까? 근 30년 지난 지금 그 귀순자가 세탁기의 업그레이드판 “천국”론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1990년대 초에는 중국에서 세탁기가 비교적 드물었으나 이제는 과잉생산되어 중고품이 값을 받지 못할 지경이다. 또한 태영호 전 공사는 채소 사기 등으로 한국 주부의 생활을 천국에 비겼는데, 중국 엔간한 도시의 주부들이 그 정도 생활은 하고 있으니까, 태 씨의 논리대로라면 중국 주부들도 천국에서 사는가? 

이 생각 저 생각이 많아져 태 씨의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를 펼쳐들었다가 풉 웃었다. 프롤로그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의 한 대목을 보고서였다. 

 

“다행히도, 또한 고맙게도 한국 정부는 내게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이라는 과분한 직책을 주었다. 감히 말을 꺼내지는 못했지만 탈북을 결심하던 무렵부터 꿈꿔왔던, 통일을 위해 나의 마지막 힘까지 보탤 수 있는 자리다. 나는 더 이상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지 않는다.” (15~ 16쪽) 

 

5월 15일 나온 1판 1쇄본에서 “마지막 힘까지 보탤 수 있는 자리”를 운운한 뒤 반 달 도 지나지 않아 5월 말에 그는 그 연구원에서 나왔다. 그 책이 꽤나 팔렸다는데 후에 다시 찍은 판본들에서는 윗 대목을 삭제하거나 고쳤는지 모르겠다. 고작 반 달 뒤의 변화도 내다보지 못한 게 태영호 씨와 출판사의 안목이다. 태 씨 자신은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내보낸 게 아니라 자신이 사직서를 내고 내왔노라고 8월 중순 모 언론과의 대담에서 밝혔는데, 자신의 마음이 반 달 사이에 바뀔 줄을 몰랐다면, 그 심경이 이후에 어떻게 변할지 누가 알랴 싶다. 

책을 뒤적이면서 전날 표기해둔 대목들을 보고 수없이 웃었다. 이러저러한 부족점과 오류들이 존재하는 대목들이었다. 베스트셀러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다. 일일이 밝히려면 애보다 배꼽이 더 큰 꼴이 나올까봐 두 군데만 골라본다. 

423~ 424쪽에는 1977년에 중국 주재 조선 대사관 전명수 신임 대사가 베이징에 있는 조선 소년학생들을 중국의 외국어학교에 넣기 위해 수를 쓰는 대목이 나온다. 

 

“중국 외교부장 황하를 대사관 연회에 초청했다.”(423쪽)

로 시작하여 황하가 몇 번 등장한다. 그런데 중국 외교부장을 맡았던 유명한 외교관의 이름은 황화(黄华, 1913~2010)로서 중국어 발음과 우리말 한자음이 꼭 같은 특이한 사례를 만든다. 원명 왕루메이(王汝梅)인 황화는 20대 초반인 1936년에 에드가 스노우가 산베이(陕北섬북)의 중국공산당과 홍군을 취재하여 《중국의 붉은 별》을 쓸 때 통역을 맡았던 특별한 경력을 가졌고 1970년대 초중반에는 5년 동안 유엔 주재 대표단에서 활약하여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 유명 외교관의 이름을 소년 태영호가 듣기만 하고 중국의 제2대 강인 황하(黄河황허)의 영향 탓으로 “황하”라 잘못 기억할 수는 있다. 그러나 북이 깊숙한 비밀을 파헤친다고 표방한 책에서도 그렇게 그릇된 기록을 남기면 안된다. 외교부장까지 맡았던 황화(黄华)의 이름이야 인터넷 검색 한두 번으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지 않겠는가. 

외국에 나가서 인터넷의 편리함을 알게 되고 곧잘 이용했다는 태영호 씨의 주장이 무색하게 만드는 오류였다. 

1980년대 후반까지 여러 가지 직무로 활약한 황화는 필자가 어린 시절 중국의 신문과 방송에서 하도 많이 보고 들은 인물이기에 오류를 대뜸 파악할 수 있었으나 다른 하나의 오류는 예전 자료들을 찾아보고서야 문제를 확실히 밝혀냈다. 

 

“2005년 7월 북한 고려항공 헬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북한 국영보험회사는 보험금으로 소정의 유로를 지불해 달라고 유럽 재보험회사에 요구했다. 내 기억으로는 4, 000만 유로였다. 헬기가 인도주의 지원물자가 보관된 창고 위로 추락했다고 속이고 지원물자에 대한 보상까지 받아내려고 했던 것이다.”(216쪽)

 

뒤이어 태 씨는 조선의 사기가 먹혀들었다는 식으로 서술하면서 본의와 달리 개입하게 된 자의 신분으로 개탄했는데, 이 사건은 당년에 중국 신문 《참고소식》이 외신보도를 전재하면서 소개했고 필자가 또한 둬 번 다룬 적 있기에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4, 000만 유로라는 수자도 필자의 인상과는 차이가 나므로 《자주시보》에 발표한 내용들을 찾아보았다. 수자가 확실히 차이가 났고 시간도 달랐다. 

글은 두 편이었다. 

2007년 2월 7일에 발표한 “북한엔 보험금 3천만파운드 못준다?” 

2008년 12월 15일에 발표한 새록새록 단상 108편 “북, 드디어 보험금 받게 돼” 

 

《자주민보》사이트가 폐쇄된 후 현재는 글들을 인터넷에서 볼 수 없기에 독자분들의 사건 이해를 돕기 위해 두 편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다. 

 

“3천만 파운드 보험금, 조선에는 줄 수 없다? 

 

간만에 조선이 외국에서 소송을 벌이고있다 한다. 사건의 일방은 조선국영보험회사, 다른 일방은 영국 재보험회사들. 

1월 28일자 중국신문 <참고소식>을 보고 조선에도 보험회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조선의 경제생활구조로 하여 백성들은 보험과 거리가 멀겠지만 적어도 대외경제활동에서는 보험이 필요한 법이니 보험회사의 존재는 당연한 노릇이겠으나 아무튼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외국의 재보험회사에 재보험까지 들어 필요한 방어조치는 다 취했다니 그 전문수준도 높았다. 헌데 영국 <타임스>지의 사이트에서 옮겨왔다는 보도는 필자의 분격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영국 회사들이 조선에서 보험사기를 친다면서 보험금지불을 거절하기 때문이었다. (기사는 뒤에 첨부함)[이번 인용에서는 첨부하지 않았음]

영국기자의 보도 제목은 <조선에서 “3천만 파운드 보험사기극”을 설치>였는데, 중국 신문에서는 중성화시켜 “영국 재보험회사가 조선이 사기극을 설치한다고 질책(英再保險公司指責朝設騙局)”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이제 소송이 진척되는데 따라 후속보도가 나온다면 또 어떤 식으로 묘사될지 궁금하다. 

사건 자체는 복잡할 게 없었다. 2005년 4월에 조선 고려항공회사의 헬기 한 대가 평양에서 떠나 어느 섬으로 가서 한 여성을 맞아오는 도중에(조선에서 이렇게 비행기가 뜰 때에는 병자나 임신부를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 평양 교외의 어느 창고에 떨어졌는데 화재가 일어나 인도주의원조물자가 대량 타버렸다는 것이다. 고려항공은 창고 소유자에게 배상을 했고, 조선 국영보험회사는 또 고려항공에 배상금을 지불했다 한다. 인명사고도 있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보도에 나오지 않으니 모를 노릇인데, 여기까지는 순조롭게 진척되었다. 조선 국내문제이니까. 헌데 위험부담을 덜기 위해 미리 재보험에 든 조선국영보험회사가 런던에 있는 재보험회사에 배상을 요구하자 말썽이 벌어진 것이다. 

재보험회사의 지불거절이유는 간단하다. 조선정권의 성격으로 보아 믿을 수 없기에 배상요구는 사기행위로서 급히 필요한 외화를 벌기 위해서라는 것. 

워낙 순전한 경제사건이건만 현실적 정치환경으로 하여 조선이 불이익을 당하는 상황이다. 조선 측에서 상세한 서류와 자료를 제시했기에 아무런 하자도 없으나, 이런 완벽함이 오히려 트집잡히고 말았다. 충분한 자료를 내놓은 이 사실 자체가 아주 범상치 않기에 의심을 자아낸다는 것. 말하자면 재보험회사의 심증이다. 만약 조선에서 제시한 자료가 허술했더라면 재보험회사에서는 당연히 서류불충분으로 지불을 거절했을 테니, 아무리 보아도 줘야 할 돈을 내주기 싫어 구실을 다는 게 뻔하다. 

계약과 배상관련서류 그리고 이치로는 물론 조선이 당당하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조선이 유엔의 명의로 된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 문제가 쉽게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작년 말부터 조선이 타이를 비롯한 나라들에 황금과 백은을 수출해 외화를 해결한다는 보도들이 속속 나오면서 겨우 연간 천만 달러 단위의 장사에 “황금통로”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던 것이 서방의 기자들이요, 그것을 막지 못해 몸살이 나 하는 것이 서방의 정객들이다. 일부 미국인들은 아마 제재안을 통과시킬 때 품목에 황금과 백은 장사를 넣지 않은 것을 후회하겠지만 그걸 덧붙여 넣기는 힘든 노릇이다. 어떤 장사를 금지품목에 보태더라도 “제재”를 수십 년 받아온 조선에서는 또 새로운 길을 뚫어 문제를 풀 것이다. 조선과 패권주의자들의 싸움이 치열한 상황에서 런던의 법정이 영국 재보험회사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은 충분하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기본으로 지켜야 할 계약을 어기면서라도 말이다. 

그러면 조선에서는 어떻게 경직된 국면을 풀어야 할까? 여러 해 꼬박꼬박 만만찮은 보험료를 재보험회사에 냈고 또 보험사기전례도 없는 조선의 국영보험회사가 그저 당하고만 있을 리는 없다. 사건 자체가 사기극이라고 주장하는 재보험회사의 논리는 서류와 물질증거로 풀 수 있겠지만, 상대방에서 조선에 파운드가 들어가게 해서는 안된다고 억지주장을 펴면 법관과 배심원들에게 먹혀들 수 있다. 하기에 필자는 이렇게 생각해본다. 우선 정면으로 부딪쳐 사건의 진실성을 법관과 배심원들에게 확인시킨 다음, 비상수단으로 전에 조선이 성공적으로 써먹은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다. 

우리가 외화를 가져오기 위해 이런 놀음을 한다고? 우리가 외화를 가지면 안된다고? 좋다. 그러면 3천만 파운드에 상당한 식량을 내놓으라! 식량마저도 군량으로 충당할 수 있다는 이유로 거절한다면 군용에 쓸 수 없는 생필품을 내놓으라! 

금창리 핵시설의혹사건 때 미국이 식량으로 관람료를 지불하도록 만든 협상법의 진수를 발휘하는 것이다. 물론 이번 경제사건은 순 정치군사사건인 금창리 사건과 질적으로 다르다. 

전에 어느 쿠바 관원은 중국기자를 보고 쿠바가 외국과 장사를 열 건 하자면 아홉 건은 미국의 방해로 튄다고 말했다 한다. 조선은 쿠바보다도 더 막심한 봉쇄와 “제재”를 받으니 외국과의 장사에서 백 건의 아흔아홉 건쯤 튄다고 보아야 할까? 

1990년대 초에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나라들이 붕괴한 다음, 중국의 어떤 사람이 한 말이 있다. “사회주의는 새벽추위에 떨고 자본주의는 저녁노을을 불태운다”고. 세계경제에서 당분간 자본주의가 지배적 지위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조선이 이후에도 여러 모로 불이익을 당할 것은 뻔한 노릇이다. 설사 이른바 “개혁개방”, 즉 서방세계가 바라는 식의 경제제도개변을 실시하더라도 이윤추구를 절대화하는 자본가들이 조선의 기업을 곱게 볼 리 없는 법이다. 필자가 조선의 기업운영자들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철저히 나라의 주권과 존엄을 첫 자리에 놓으라는 것. 그래야만 경제이익을 수호할 수 있지 돈 몇 푼에 눈이 멀어 양보하기 시작하면 어디까지 밀릴 지 모른다. 중국에서 “개혁개방”을 시작하던 1980년대 초반의 유명 메이커들이 거의 다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당년의 유명 기업들이 다국적기업 산하에서 스러져버린 교훈은 지금 중국의 좌파들이 가장 가슴아파하는 현상이다. 

“여우는 같은 덫에 두 번 걸리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여우보다 현명한 인간은 남이 걸린 덫에 걸리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2007년 1월 31일” 

 

보다시피 외신은 사건이 2005년 4월에 일어났다고 보도했는데, 태영호 씨는 2005년 7월에 일어났다고 썼다. 다음으로 수자는 

 

“새록새록 단상 108: 

북, 드디어 보험금 받게 돼

 

 

12월 10일에 인터넷에서 《北, 보험소송 승소..5천100만달러 받게 돼》라는 제목의 연합뉴스 기사를 보았다. 조선이 유럽의 재보험사들과 법정 공방에서 이겨 알리안츠 등으로부터 4천만 유로(미화 5천100만 달러)의 보험금을 받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전날 필자가 이 사건 때문에 글을 한 편 썼기에 더욱 감명 깊었다. 헌데 서류를 뒤져보다가 깜짝 놀랐다. 작년 1월 말에 《조선에서 “3천만 파운드 보험사기극”을 설치》라는 외신보도를 보고 분개하여 쓴 글이었던 것이다. 어느덧 근 2년이란 세월이 흘러가다니! 

그때 필자는 이렇게 적었다. 

“재보험회사의 지불거절이유는 간단하다. 조선정권의 성격으로 보아 믿을 수 없기에 배상요구는 사기행위로서 급히 필요한 외화를 벌기 위해서라는 것. 

워낙 순전한 경제사건이건만 현실적 정치환경으로 하여 조선이 불이익을 당하는 상황이다. 조선 측에서 상세한 서류와 자료를 제시했기에 아무런 하자도 없으나, 이런 완벽함이 오히려 트집잡히고 말았다. 충분한 자료를 내놓은 이 사실 자체가 아주 범상치 않기에 의심을 자아낸다는 것. 말하자면 재보험회사의 심증이다. 만약 조선에서 제시한 자료가 허술했더라면 재보험회사에서는 당연히 서류불충분으로 지불을 거절했을 테니, 아무리 보아도 줘야 할 돈을 내주기 싫어 구실을 다는 게 뻔하다. 

......

조선과 패권주의자들의 싸움이 치열한 상황에서 런던의 법정이 영국 재보험회사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은 충분하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기본으로 지켜야 할 계약을 어기면서라도 말이다. 

그러면 조선에서는 어떻게 경직된 국면을 풀어야 할까? 여러 해 꼬박꼬박 만만찮은 보험료를 재보험회사에 냈고 또 보험사기전례도 없는 조선의 국영보험회사가 그저 당하고만 있을 리는 없다. 사건 자체가 사기극이라고 주장하는 재보험회사의 논리는 서류와 물질증거로 풀 수 있겠지만, 상대방에서 조선에 파운드가 들어가게 해서는 안된다고 억지주장을 펴면 법관과 배심원들에게 먹혀들 수 있다.” 

뒤이어 필자는 만일의 경우에 쓸 비상수단도 제시(?)했다. 

“우리가 외화를 가져오기 위해 이런 놀음을 한다고? 우리가 외화를 가지면 안된다고? 좋다. 그러면 3천만 파운드에 상당한 식량을 내놓으라! 식량마저도 군량으로 충당할 수 있다는 이유로 거절한다면 군용에 쓸 수 없는 생필품을 내놓으라! 

금창리 핵시설의혹사건 때 미국이 식량으로 관람료를 지불하도록 만든 협상법의 진수를 발휘하는 것이다. 물론 이번 경제사건은 순 정치군사사건인 금창리 사건과 질적으로 다르다.” 

어느 독자가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보험까지 이 꼴이 되었느냐고 댓글을 단 기억이 난다. 

이번 연합뉴스의 보도를 보면 현금으로 결재하게 된 모양이니 비상수단이 필요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조선국영보험회사(KNIC)를 대리하는 영국의 법률회사 엘본 미첼이 대단한 실력을 발휘한 것 같다. 

보도에 의하면 

《북한의 조선국영보험공사가 받는 보험금은 지난달 12일부터 시작된 재판에서 북측이 요구한 보험금 4천500만 유로(6천600만 달러)의 95%에 해당한다.》 

환율에 깜깜인 필자로서는 작년의 3000만 파운드와 금년의 4500만 유로가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른다만, 시간이 결국 올바른 편에 섰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금액이야 늘었던 줄었던 조선이 사기를 쳤다던 엉터리주장은 시장을 잃어버렸다. 이 점만으로도 조선은 이겼다고 보아야겠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말더듬이》설이 200년 6월 부터 남쪽에서 시장을 잃어버렸듯이, 조선에 대한 오만가지 악설들도 하나둘 죄다 시장을 잃어버리리라고 믿어 마지 않는다. 

 

2008년 12월 11일” 

 

그러고보면 보험금 쟁의는 3000만 파운드로 시작하여 소송에서는 4500만 유로가 언급되다가 결국 4000만 유로를 조선 국영보험회사가 받는 것으로 끝났다. 4천만 유로란 마지막 결과일 뿐 기나긴 쟁의와 소송과정에서는 다른 수자들이 쟁점이었다. 태영호 씨가 그 주장처럼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다면 3천만 파운드나 4500만 유로가 더 기억에 생생할 텐데, 결과인 4천만만 언급하는 게 이상스러울 뿐더러, “내 기억으로는 4, 000만 유로였다.”고 쓰고 출판사가 그렇게 찍어낸 건 더구나 한심할 지경이다. 조선의 보험금 소송과 결과는 전에 없는 사건이어서 한국 언론들도 보도했고 지금 인터넷에서 검색해도 얼마든지 정확한 과정과 수자들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그 편하다는 인터넷 검색도 하지 않고 기억에만 의존했으니 말이 되는가? 문학계에서는 그런 글쓰기 습관을 문풍이 거칠다고 표현한다. 

 

저자와 출판사가 검색과 확인이 가능한 문제마저 그토록 거칠게 다룬 탓으로 객관적인 확인이 불가능한, 저자의 조선 생활과 경력에도 물음표를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저자가 내린 판단들은 더구나 고개가 저절로 비틀어지는 내용이 수두룩하다. 

 

태영호 씨 안목의 허점은 둘째 치고라도 그가 기억에 의존하는 습관을 바꾸지 않는 한, 그의 경력을 내세우면서 열심히 받아쓰기를 하는 언론들과 더불어 동반망신하는 사건들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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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호 18/11/06 [19:27]
태영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않아도 의견분란이 심각한 한국에서 또다른 분란을 제공하는 사람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자기 의견, 소신을 말할 권리가 명예훼손죄에 걸릴 정도가 아니라면 그에게 주어져 있다. 책을 쓰는 것은 기본적으로 기억에 의존하기 마련이다. 과학기술전문잡지에 논문기고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책을 써서 자기의 의견을 표명하려고 한것 뿐이다. 북한을 조심하라, 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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