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미회담을 둘러싸고 미국 내 여러 정치세력들 간의 난타전이 벌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는 중간선거에서 상원을 지켜내고 하원을 빼앗긴 후 북미회담을 지속하겠다는 인상을 주었던 반면 미국 내 친 민주당 언론들은 북한의 숨겨진 미사일 기지가 드러났다며 시끌벅적이다. 이런 와중에 한미해병대연합훈련이 진행되는가 하면 한국 내 보수세력들의 준동도 만만치 않다.
이런 상황을 놓고 미국의 대북정책이 대화에서 대결로 돌아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들도 나오고 있다. 이런 우려의 근저에는 미국의 정책변화가 한반도에 큰 충격을 줄 것이고 북미 역학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 발짝 물러서서 보면 미국의 정책변화는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아니라 북한의 공세에 밀린 결과일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작년에 북한은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완성하였고 미국은 괌이나 하와이에 있는 미군기지가 타격을 받을 것을 크게 우려하는 상황이었다. 북한의 화성-15형 미사일은 초대형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미국 전역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이런 상황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은 트럼프가 말한 대로 북한의 핵시험이나 미사일 발사를 막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고 이를 통해서 중국을 압박하려는 의도도 담고 있었다.
미국경제의 몰락과 중국의 부상으로 트럼프에게는 북미정상회담이 한 편으로 북한의 도발적 행동을 막고 다른 한 편으로 중국을 압박하는데 북한을 끌어당길 수 있는 일석이조의 방책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트럼프는 북미정상회담 진행 과정에 중국이 판을 깨고 있다느니 중국이 도움을 안 준다느니 하면서 중국전용기를 타고 정상회담에 나타날 정도로 강화된 북중 우호관계를 질투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대화 정책은 자신이 목적한 실익을 못 보았다.
그렇다면 제재와 전쟁 정책도 실익을 볼 수 있는가. 올해 미 언론에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트럼프는 집권하자마자 북한에 대한 전쟁계획을 세우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대화에 나선 것을 보면 북한과의 전쟁이 가져올 파국적 결과를 보고 좌절과 분노, 그리고 공포를 느꼈던 것이 확실해 보인다. 마지막 남은 수단이 체제붕괴 공작이다. 하지만 이것도 만만치 않고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미국 스스로 잘 알고 있다.
한마디로 북한을 상대할 모든 수단들이 날이 무뎌지고 현실성이 없고 실효가 없는 지경에 처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수단을 쓰든 북한에게 주는 충격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에 북한을 방문한 여러 인사들이 증언하듯 북한의 경제는 미국의 제재 속에서도 천지개벽을 하고 있다. 그런 마당에 북한의 미사일 계획을 막아야 한다느니, 인권 문제를 더 들이대야 한다느니, 제재를 유지해야 한다느니 하는 것이 과연 실효성 있는 정책인지 미국 스스로도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대북정책의 균열은 출로가 없는 미국 내 정책혼란 양상에 다름 아니라고 하겠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주한미대사로 거론되었다가 낙마한 빅터 차가 북한의 비밀 미사일 기지를 운운하며 트럼프 행정부와 한국 정부를 노골적으로 비난하는가 하면 ‘새로운 병진노선’의 등장을 예고한 북한의 입장을 접한 트럼프는 갑자기 ‘(북한의 비밀 미사일 기지 보도는) 거짓 뉴스에 불과하다’며 논쟁을 잠재우기 위해 애를 썼다. 이러다 보니 한국 내 보수 세력들도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할지 모르는 형국이다.
미국은 연방제 국가이다. 많은 정치학자들이 미국이 강한 연방제의 전형이라고 하지만 미국의 정치 시스템 자체는 느슨한 연방제의 전형이다. 주별로 주방위군을 두고 독자적인 과세권을 가지고 있으며 미 대통령 선거도 주별 선거인단 선출이라는 복잡한 절차를 두고 있으며 주별 대표 연합체의 성격을 가지는 상원의 역할은 미국의 의회정치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꼽히고 있다. 그동안 미국의 군사력, 경제력, 그리고 그것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으로 인하여 미국은 매우 강한 일치성을 가진 국가로 인식되고 있으나 역사적으로나 전통적으로나 그 반대인 것이 미국이다.
이런 미국 연방제의 느슨한 성격은 미국의 패권이 강할 때는 드러나지 않지만 미국의 패권이 약해지는 경우 더 노골적인 형태로 드러날 수 있다. 트럼프가 당선되었을 때 미 서부 일부 주에서는 ‘트럼프는 우리의 대통령이 아니다’는 구호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정치적 반대 의사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실제 독자 행정부를 구성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근거에 바탕을 둔 것이다. 미국 경제를 이끌고 있는 서부 주들의 경제 규모는 상상을 초월하는데 심지어 캘리포니아주는 주 자체로 미국, 중국, 일본, 독일, 영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큰 경제단위다.
미국 내 독점자본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지만 정보기술과 금융을 기반으로 하는 독점자본과, 석유와 군수자본을 기반으로 하는 독점자본의 행동양태가 다르며 마찰과 갈등도 내재되어 있다. 정보기술과 금융자본은 세계 자본의 자유화에 큰 가치를 두고 있으나 석유와 군수자본은 보호주의적 성향이 강한 편이다.
그런데 미국 내 독점자본은 주마다 차이가 있다. 대표적인 정보통신기업인 애플, 구글, 페이스북, 오라클 등의 본사는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미국 북서부의 워싱턴주 시애틀에 있다. ‘IT 하면 서부’인 셈이다. 반면 텍사스주는 석유자본으로 유명하다.
이런 조건에서 장기적으로는 정보기술 자본이 많은 미 서부의 일부 주가 독립을 선포하고 대북외교에서도 독자노선을 통해서 안전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날 수도 있다.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해서 느끼는 서부와 동부의 강도가 차이가 있거니와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에서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할 때, 미국의 각 주들이 말 그대로 각자도생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미국 내에서 벌어지는 정치논쟁과 갈등들, 그것을 수렴하는 정책토의가 존재하지 않기에 이런 전망이 충분히 가능하다. 이런저런 방법을 통해서 어떻게든 북한을 압박하고 제압할 수 있다면 미국 내에서의 이런저런 토론도 나름 생산적이라고 생각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방법이 모두 답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거나 미국 내 정치 갈등이 더 심화되는 방향으로 나간다면 과연 그 끝이 어디로 갈 것인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하는 한 축, 텍사스와 시카고를 중심으로 하는 한 축, 그리고 자유도시로서 뉴욕이 한 축이 되어서 미국이 삼등분된다고 하여도 그리 이상한 모습이 아닐 것이다. 많은 이들이 만약 미국이라는 나라가 망한다면 연방이 해체되고 여러 주가 독립하는 형태로 진행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다시 처음 얘기로 돌아가보자. 백악관 내 행정 관료들이 트럼프의 정책을 막기 위해서 온갖 치졸한 짓을 하고 있고 트럼프는 미국 내 언론기관들을 가짜 뉴스의 양산소라고 공공연히 비난하고 있다. 트럼프와 손을 잡고 부통령이 된 펜스는 대북붕괴공작을 떠드는가 하면 트럼프는 북의 최고지도자와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이런 모습이 과연 한쪽에서는 어르고 한쪽에서는 겁을 주는, 이른바 ‘착한 경찰-나쁜 경찰’이라는 전형적인 이중정책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이중 정책도 목표와 방향이 뚜렷할 때, 그리고 상호협력이 가능할 때 성공할 수 있고 실제 효과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의 어떤 대북정책도 효과가 뚜렷하지 않아서 그 목표와 방향을 뚜렷이 할 수 없고 미국 내 주요 집단의 협력이나 합작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하겠다.
결국 지금 미국이 보여준 모습은 핵분열 양상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핵분열이 결국 미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느슨함에 충격을 주어 미국이라는 나라 전체를 뒤흔들고 나아가 분열을 낳을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승자의 깃발 밑에는 여러 세력이 모이지만 패자의 깃발 아래에서는 분열만이 있을 뿐이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북미관계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아침햇살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