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기 그대는 조국의 청춘
박해전
기사입력: 2018/12/29 [10:2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고 이창기 기자 묘소 앞에 놓인 영정사진.     © 사람일보

 

한해를 보내며 이창기 그대를 추모하네.

 

이창기. 비록 육신은 그토록 바랐던 방북 취재를 하지 못하고 애석하게도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대는 조국의 청춘으로 겨레의 가슴 속에 빛나고 있네.

 

그대 문병 날짜를 기다리던 참에 날아온 부고가 믿기지 않았네. 반드시 병마를 딛고 일어나 <자주시보>를 더욱 잘 꾸리리라 다짐하지 않았던가.

 

장례식장 영전에서 눈물 보이지 않고 조국에 바친 그대의 빛나는 삶에 경의를 표하려 했지만 원통하게 국가보안법에 묶여 고통받은 그대가 떠올라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네.

 

조국 분단의 역사에서 국가보안법으로 두 차례나 투옥된 <자주민보> 언론인 이창기.

 

그대는 1999년 어느 봄날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을 위한 99통일대축전 10차범민족대회(범민족통일대축전) 남측추진본부 대변인을 맡고 있던 나를 찾아와 언론사업을 해보겠다며 조언을 구했었지. 제호를 자주민보로 하면 좋겠다는 뜻을 받아들여 그해 8월15일 창간준비호를 발간했던 일이 생생하게 떠오르네.

 

<자주민보> 창간준비호는 발행사에서 “우리는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을 위한 99통일대축전 10차범민족대회를 기념해 자주민보를 펴낸다”며 “자주민보는 민족자주언론 건설과 조국통일언론 실천을 위하여 힘찬 첫걸음을 내딛는다”고 밝혔지 않은가.

 

그대는 시인 홍치산의 열정으로 앞장서서 창간사 그 약속대로 민족자주와 조국통일의 필봉을 높이 들고 국가보안법에도 굴함없이 역사적인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판문점선언과 9월평양공동선언 이행에 힘써 조국과 민족이 부여한 소임을 다한 장한 민족언론인의 길을 걸었네.

 

민족자주와 조국통일에 헌신한 강희남 의장과 박창균 통일선봉대장, 김양무 통일애국열사, 김승교 변호사와 함께 그대는 조국의 청춘으로 살아 숨쉬며 범민련과 한총련의 역사를 결코 잊을 수 없는 애국청년들의 심장의 고동을 높뛰게 하리라.

 

그대는 유고에서 우리 겨레의 민족자주와 조국통일, 인류사적 모범의 실현을 확신하며 행복한 미소 가득한 얼굴로 언제든 눈을 감을 수 있다고 했지. 마지막 순간에 스스로 이렇게 결산했듯이 그대의 한생은 마침내 승리했고 빛나고 있네.

 

이 땅의 수많은 청년들이 그대의 빛나는 삶을 따라 배우며 하나같이 이창기가 되자고 결의하고 있지 않은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공동서명한 역사적인 판문점선언과 9월평양공동선언을 목숨 걸고 관철하는 것이 이창기 동지를 사랑하는 길이라고 다짐하는 모습을 보고 있지 않은가. 그대 든든하지 않은가.

 

그대를 위하여 몇해 전 서울구치소에서 백승배 범민련미주본부 의장과 함께 면회할 때 불러준 노래 <동무생각>을 기억하는가.

 

통일조국의 청라언덕에 흰나리꽃 피어날 적에 조국의 청춘 그대는 행복한 미소 가득한 얼굴로 이창기 동지로 살아온 애국청년들을 반겨주리라.

 

 

2018년 12월 29일

 

<사람일보 회장 박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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