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해난디동동 2"
신지원 작가
기사입력: 2019/05/15 [15:27]  최종편집: ⓒ 자주시보

 

▲ 해난디동동의 장면     ©대학생통신원

 

4.3 민중항쟁을 다룬 신지원 작가의 소설 <해난디동동연재를 시작합니다.

 

소설 <해난디동동>은 2018년 4.3항쟁 70주년을 맞아 기획한 대학생창작집체극 해난디동동을 각색한 작품입니다.

 

자주시보 독자 분들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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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하는 걸핏하면 어머니에게 두들겨 맞았다. 맞다가, 맞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날엔 항아네로 달음박질 쳤다. 삼화 삼촌은 하나뿐인 아들을 회초리질로 키웠다. 제주에선 먼 친척을 성별 가리지 않고 삼촌이라 불렀다. 엄마를 일찍 잃은 항아와 아버지의 얼굴은 본 적도 없는 용하는 친남매같이 지냈기에 항아는 용하의 어머니를 스스럼없이 삼촌이라 불렀다. 삼화 삼촌이 매타작을 하는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용하는 사내아이답지 않게 자주 울어서, 학교에서 너무 일찍 돌아와서 혹은 너무 늦게 돌아와서 같은 이유로 맞았다. 용하가 긴 다리로 겅충겅충 뛰어 항아네로 뛰어오면 그 모습이 꼭 놀란 노루새끼 같아 꼴이 볼만했다. 어쩔 때는 그 처지가 퍽 짠해 보이기도 했으나, 대부분 울음을 그칠 때까지 항아에게 놀림을 당했다. 삼화 삼촌은 애비없는 자식은 어디 내놔도 티가 나는 법이라 엄하게 길러야 한다고 했다. 그 티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삼촌이 의도한대로 어쨌든 용하는 애비없는 애보단 틈만 나면 어미에게 두들겨 맞는 애로 기억되긴 했다.

 

삼화 삼촌은 다리를 저는 잠녀였다. 헤엄을 치는데 불편한 다리는 별달리 방해가 되지 않는지 삼촌은 원산, 청진, 백령도까지 원정물질을 나갔다. 그녀는 유달리 체구가 크고 힘이 좋아서 잠녀들 중에서도 으뜸 목소리가 켰다. 제주 여자들이 그렇듯 삼화 삼촌도 아홉 살 무렵부터 물질을 시작했는데, 자맥질만 쳤다하면 씨알 굵은 전복을 척척 캐왔다. 해서 자연스럽게 잠녀들의 대장 노릇을 떠맡았다. 삼촌이 가장 큰 소리를 낼 때는 일본인 선주와 싸움이 붙을 때였다. 멀리까지 원정을 나갈 적에는 보통 작은 어선 하나를 빌려 나가는데, 선주들이 대부분 일본인이었다. 배를 빌리는 비용이 적지 않아, 보통은 일본인 업자가 잠녀들을 모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툭하면 저울 눈금을 속여 사기를 치거나 일당을 제대로 쳐주지 않았다. 잠녀들이 수확물을 팔아 번 돈의 6할은 선주가 가져가고 나머지 4할을 잠녀들이 나눠 가져야 했다. 보통 한번 원정을 나갈 때 여섯 일곱명이 함께 가기 때문에 모두 나눠 갖고 나면 남은 돈이 참으로 쥐꼬리만 했다. 해가 갈수록 일본인 선주들의 수탈은 심해졌다. 조선인이라며 멸시할 뿐만 아니라 살을 훤히 보이며 일한다고 번번이 잠녀들을 희롱했다. 수확물이 적어 망사리가 가벼운 철에는 잠녀들에게 고리대를 놓았는데 이자 붙는 속도가 어찌나 빠르던지 조금 과장해 자맥질 한번 했다 숨 쉬러 나오면 곱절로 불어있었다.

 

그때마다 잠녀들을 위해 큰 소리를 내던 사람이 삼화 삼촌이었다. 아무리 대가 센 그녀지만 나라도 빼앗기던 때에 일본인에게 대들기란 보통 각오를 하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삼화 삼촌은 죽으면 죽었지 억울한 일은 참지 않았다.

 

"해 날 띠부터 질 띠까졍 바당에서 씨름해신디 고작 따개비 한줌 값이 말이 됨수까?"

 

삼화 삼촌이 이토록 당당한 이유는 한 가지 더 있었다. 삼촌은 하나라도 더 배워야 소라 한 개라도 덜 뺏긴다며 야학에 다니곤 했다. 하도 강습소라는 야학이었는데 일이 바빠 자주는 갈 수 없었지만, 그곳에서 글 읽는 방법뿐만 아니라 계몽서도 함께 읽고 저울 눈금 읽는 법까지 배웠다. 체격도 좋고 셈도 빠른 삼촌이 선주들에게 눈엣가시로 여겨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어떤 날엔 망사리 채로 도둑맞기도 하고 그녀를 죽이려 드는 업자들까지 있었다.

 

"말은 못 해도 얼마나 겁이 나신지 불턱에서 쉴 적에도 한 손엔 빗창은 꼭 쥐고 있언 마씸. 누가 해꼬지 하카부덴"

 

삼촌이 다리를 절게 된 이유도 이런 고집스런 성격과 신념 때문이었는데, 그 전설 같은 이야기는 세월이 한참이나 흘러서야 명확히 들을 수 있었다. 

 

봄이 오고 잠녀들은 더욱 바쁘게 헤엄쳤다. 날은 따뜻해졌을지 모르지만 그게 그들의 삶까지 덥히지는 못했다. 갈수록 미쳐 날뛰는 자들이 많아졌다. 버는 것은 하나 없고 빼앗기는 것들만 늘어갔다. 내놓을 것이 없으면 뼈와 가죽이라도 내놓아야 하는 판이었다. 삼화 삼촌은 이 곤궁한 상황 속에서도 용하를 소학교에 집어넣었다. 무식쟁이들은 자기 줏대가 없어 휘둘리기도 쉬우니 머리통에 뭐라도 하나 집어넣고 있어야한다는 지론이었다. 척박한 섬에 살며 새끼들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는 어미가 어디 한 둘이었을까.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는 잠녀들의 속담처럼 그들은 저승에서 헤엄쳐 이승의 자식들을 먹여 살렸다. 애석하게도 자식들은 그 마음을 쉽게 헤아려주지 않았다. 용하는 툭하면 학교를 빼먹고 산 중턱에 앉아 돌 장난이나 치며 시간을 때웠다. 항아는 저는 가고 싶어도 못 가는 학교를 가기 싫어 죽을 쓰는 용하가 얄미워 삼촌에게 일러줄까 하다가, 오죽했으면 싶어 좋게 타이르곤 했다. 그때마다 용하는 속도 모르고 잔소리를 한다며 도리어 투덜거렸다.

 

공부할 의욕이 생기크냐? 일장기 내건 학교에서.”

 

항아는 용하에 말에 더 이상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래, 진짜 공부할 맛 안 나겠네 싶었다.

 

삼촌 알면 경을 칠텐디.”

 

용하는 평생 맡아온 어머니 몸에 밴 짠 내가 싫었다. 그 냄새를 피해 자꾸 산으로, 숲으로 도망쳤지만 발밑을 구르는 작은 돌 하나에도 바다 냄새가 났다. 그래서 집에서 아무리 멀리 달아나도 어쩐지 늘 삼화 삼촌 손바닥 위에 있는 기분이었다.

 

용하는 큰 돌들을 쭉 세워 놓고는 손톱만한 돌들을 주어 던졌다. 딱 딱 소리를 내며 백발백중으로 큰 돌을 맞췄지만 던지는 돌이 너무 작아 뒤로 넘어가지 않았다. 항아가 옆에서 그럴 거면 차라리 큰 돌을 던져라, 했지만 고집스럽게 작은 돌들만 주어다 던졌다.

 

봐라. 이건 일본놈 선주들.”

 

큰 돌은 넘어가지 않았다. 용하는 다시 돌을 던졌다.

 

이건 앞잡이 놈덜.”

 

제법 큰 소리를 내며 큰 돌과 부딪친 작은 돌은 부서지며 사방으로 날아갔다. 용하는 다시 돌을 집었다.

 

이건 왜놈 순사들!”

 

큰 돌들은 여전히 서 있었다. 용하는 달려가 돌에 발길질을 해댔다. 그제야 세워뒀던 큰 돌이 전부 쓰러졌다.

 

게난 처음부터 큰 돌을 던지라 안했냐.”

 

무사 작은 돌은 안되나? 큰 돌만 돌이라? 작은 돌도 돌이라!”

 

용하는 혼자 성을 내며 알 수 없는 말들을 해댔다.

 

항아 너는 모른다게 아무것도 몰라.”

 

나가 뭘 모르나! 게믄 알려주던가!”

 

작은 돌도 분명 돌이고, 잠녀도, 거렁뱅이도, 무식쟁이도 다 똑같은 사람이라!”

 

누게가 너보고 사람 아니랜 고랐나! 기여 너 사람이다!”

 

무사 다들 그걸 모를까

 

모르면 알려주면 되주!”

 

용하는 항아의 속없는 대답에 답답해 돌이나 계속 던졌다. 용하의 복잡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항아는 돌무더기 틈에 핀 들꽃을 따다가 용하에게 건넸다.

  

아무리 단단한 돌 틈에서도 꽃이 자라나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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