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침략 원흉, 이명박근혜 굴욕 외교
이형구 주권연구소 연구원
기사입력: 2019/08/10 [23:54]  최종편집: ⓒ 자주시보

 

자유한국당은 일본의 경제공격이 문재인 정부가 한일관계를 소홀히 한 탓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따지고 보면, 한일관계를 망친 시작은 국민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맺은 박정희이다. 우리는 사과와 반성 없는 일본과 아무런 이유도 없이 관계정상화를 해버렸다. 당시 한일 회담에서 독도 문제가 불거지자 김종필은 독도를 폭파해버리자고 일본에 제안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구태여 196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이명박근혜 정권이 한 대일 굴욕 외교를 보면 대일 외교 참사를 일으킨 것이 누구인지 잘 알 수 있다.

 

일본 군국주의 부활 시도 묵인한 이명박

 

이명박 전 대통령은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형 이상득이 뼈속까지 친일·친미라고 공언했던 사람이다. ‘뼛속까지 친일·친미인 사람답게 이명박은 취임하자마자 나는 일본에 대해 사과하라고 요구하지 않겠다라며 굴욕외교를 외교 정책으로 삼았다.

 

실제로, 이명박은 2008225일 취임 첫날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부터 열었다. 그 후 같은 해 4, 이명박은 일본을 방문하여 일왕을 천황이라 부르고 고개를 숙여 두 번씩이나 절을 했다. 그리고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와 새로운 한일관계를 만들자고 약속했다.

 

일본은 이명박의 뒤통수를 쳤다. 이명박 일본 방문 후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일본이 중학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는 일본의 고유영토라고 명기한 것이다. 이명박이 일본에 사과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일본이 군국주의 부활을 묵인하겠단 신호탄 역할을 한 셈이다.

 

이명박은 일본 군국주의 부활 행보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일본에 실망해서 맞서 싸웠을까? 그렇지 않다. 위키리크스에서 공개한 외교문건에 따르면 이명박은 20087G8 정상회의에서 후쿠다 총리를 만나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애원했다.

 

이명박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고 국민소송단은 청와대가 그런 말을 했을리 없다며 최초 보도한 요미우리 신문사에 소송을 걸었지만 패소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AP통신은 20091월에 있은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 더 이상의 사과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서약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친일 행각을 가려보려고 낯 뜨거운 국민 기만을 시도했지만 사실만 확인한 꼴이었다.

 

이명박은 자기 임기 내에 위안부와 강제 징용 문제를 끝내려고 무척 애를 썼다.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이명박이 일본에 요청하여 임기 마지막 해인 20128, 위안부 문제에 대해 협의해 타결 직전까지 갔다. 그러다 일본 총리가 중의원을 해산하고 선거에 들어가게 되었고 한국도 대선 국면에 접어들면서 가까스로 무산되었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이명박은 한일군사정보협정을 추진했다. 201112월에 한 한일정상회담에서 이명박과 노다 요시히코 당시 일본 총리가 만난 이후 2012629일 한일군사정보협정 공식 서명하기로 약속까지 했다. 이는 다행히도 국민이 거세게 반대하여 이명박은 서명 50분전에 극적으로 취소했다.

 

이명박이 추진한 대일 굴욕외교를 국민이 막지 못했다면, 지금쯤 자위대가 이미 한반도에 상륙해 제멋대로 군사훈련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탄핵 전 망국 협상 체결한 박근혜

 

이명박의 뒤를 이은 박근혜는 더 굴욕적인 외교를 했다.

 

2015228,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한일 위안부협정을 체결했다. 10억 엔을 받고 다시는 절대로(최종적, 불가역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꺼내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심지어 박근혜는 이면합의까지 맺었다. 정부가 소녀상 설치 등 위안부 피해자 단체의 활동을 지원하지 않기로 하고, 성노예 등 용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실제 201616일 박근혜는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 유산 등재 사업에 대한 정부 지원을 철회했다.

 

그리고 20161123, 한민구 국방장관과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 대사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에 서명했다. 129일 국회에서 박근혜 탄핵안이 가결되기 보름 전이었다. 지소미아는 박근혜가 한 마지막 일이자 유산이다.

 

지소미아에 서명한 것은 국방장관과 주한 일본 대사였다. 한일 수반이나 국방책임자 같은 동일 성격의 담당자끼리 체결한 게 아니었다. 기형적인 서명식이었다. 박근혜 정권이 급하게 졸속적으로 체결하려다보니 최소한의 구색도 맞출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지소미아를 졸속으로 추진한 것은 20161024일에 최순실 태블릿 PC’ 보도가 있은 후 탄핵을 직감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박근혜는 1027일 지소미아 논의 재개를 발표하고 일사천리로 진행시켰다. 111일 첫 실무협의를 가진 후 2주일만인 14일 가서명을 했다.

 

이어 1122일 국무회의 의결 및 박근혜 재가를 거쳐 23일에 부랴부랴 서명식을 하였다. 6년 동안 진행해도 결국 못 했던 토착왜구의 숙원 사업을 한 달 내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일사천리로 완결시켰다.

 

이명박은 반발을 우려해 중단시켰지만 박근혜는 어차피 탄핵당할 마당에 주저 없이 마음 속에 간직했던 친일의 혼을 깡그리 불태웠다.

 

이 합의가 굴욕합의라는 것은 두 말하면 입 아플 일이다. 김종대 의원에 따르면,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 날인 82일에도 방위성 간부가 국방부를 방문해 북한 미사일 발사 정보를 받아갔다. 김종대 의원은 치가 떨린다며 분개했다.

 

촛불은 끝나지 않았다

 

위안부합의를 맺고 지소미아를 체결해도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사과나 반성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역사왜곡도 계속해 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위안부합의·지소미아 체결굴욕외교에 책임이 있는 탄핵잔당, 국정농단 부역자들인 자유한국당이 일본의 경제공격을 친일로 이겨내자고 주장하는 것은 뻔뻔해도 너무 뻔뻔하지 않은가?

 

자유한국당은 부끄러움에 국민 앞에 얼굴을 들지 못 하고 다녀도 시원치 않을 판에 일본에 대들면 어떻게 하냐며 머리를 빳빳이 쳐들고 언성을 높이고 있다.

 

일본은 도리어 한국은 위안부합의를 파기했다’, ‘청구권협정을 지켜라라는 식으로 우리나라에 책임을 돌린다. 자유한국당이 굴욕외교를 했기 때문에 일본이 우리를 우습게 보고 더 날뛰는 것이다.

 

굴욕외교 주범인 탄핵잔당이자 토착왜구, 일제 부역자 자유한국당을 하루라도 빨리 청산해야 한다. 자유한국당 청산이 진정한 자주독립을 위한 오늘날 우리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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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르지않을낌더 19/08/11 [09:42]
이명박문도 하나 추가요 조만간에 본색을 드러내낄미더. 1도 다르지안타카는걸. 지쏘미안가 먼가 카는 협정연장해놓고 지딴엔 머라꼬 변명하는지 지켜보입시더. 너거 상전이 그래하라꼬 시키더나?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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