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기업 시리즈②] 조선인을 전쟁의 용광로로 밀어 넣은 신일철주금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
기사입력: 2019/08/16 [13:35]  최종편집: ⓒ 자주시보

 

전범기업 득세에 던지는 질문 해방은 왔는가?’

 

해방된 나라에서 살고 싶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어르신 분들의 호소

 

815, 광복절 74주년을 맞지만 진정한 해방은 오지 않았다.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유족의 한이 완전히 풀리는 그날이 와야 역사의 초침은 비로소 해방을 가리키리라.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1945815일부터 20198월 현재까지 신일철주금에 손해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수물자를 만든 일제 제철소에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온 청춘 시절부터, 흰머리가 성성한 노인이 된 오늘까지. 다른 가족들을 대신해 억지로 붙들려 간 피해자들은 노예노동을 강요당했다.

 

70여 년 동안 겹겹이 덧쌓인 장면 장면마다 일본은 잘못을 인정하라는 분노가 가득 서려있다. 이춘식 할아버지(95)는 이와테현 가마이시 제철소에 동원됐다. 이춘식 할아버지는 기술을 배울 수 있다고 했는데 기술은커녕 임금 한 푼 받지 못하고 강제노역에 시달렸다고 증언한다.

 

신일철주금이 벌인 만행은 서울고등법원이 낸 2012년 판결문에 자세히 나와 있다. 이춘식 할아버지를 비롯한 조선인들은 일본인들을 대신해 펄펄 끓는 화로, 철 파이프 속으로 들어가 석탄을 뒤섞고 찌꺼기를 제거해야 했다. 매 번 목숨을 걸어야 했고 화상 정도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우리는 기억한다. 전쟁을 시작한 일제가 군수물자를 만들기 위해 조선인들의 숟가락, 젓가락, 놋그릇(살림살이)을 빼앗아간 역사를. 제철소의 조선인들이 가족친지들의 살림살이로 전쟁무기를 만들고, 전쟁터의 조선인들이 무기를 들고 죽어간 참상. 그 한복판에 신일철주금이 있었다.

 

피해자들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앞서 199712월 이춘식 할아버지 등 강제동원 피해자 4명은 오사카 지방재판소(지방법원)에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20여 년이 지난 현재, 생존자는 이춘식 할아버지뿐이다.

 

20133, 일본 법원에 신일철주금에 대한 배상 소송(‘2차 소송’)을 제기하고 배상과 사죄를 기다리던 곽 모 어르신 등 7분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이밖에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 분들의 나이는 90세를 훌쩍 넘는다. 일제강점기를 직접 겪은 역사의 산증인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끝내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를 대신해 전범기업에 배상과 사죄를 촉구하는 딸도 있다. 올해 76세인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보추협) 공동대표는 젖먹이 때(1944) 헤어진 뒤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아버지를 찾아 헤맸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버지의 사망 기록이다. 딸은 1992년이 되어서야 19456월 중국에서 있던 전투에서 아버지가 숨졌다는 기록을 발견했다.

 

이후 딸은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함께 배상과 사죄 촉구에 힘을 보탰다. 특히 이희자 대표가 포기하지 않았기에 20181030, 신일철주금에 손해배상을 하도록 명한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 낼 수 있었노라고 힘주어 강조한다.

 

이처럼 한국에서 열띠게 이어지는 배상운동에도 신일철주금은 꿈쩍도 않는다. 그 뒤에는 일본 정부와 사법부가 똬리를 틀고 있다. 이미 2003109,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는 고 신천수 님과 고 여운택 님이 제기한 배상 판결에서 신일철주금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더욱이 신일철주금이 홈페이지에 떡하니 올려놓은 일본 1위 철강업계라는 선전은 괘씸하기 짝이 없다. 미쓰비시와 마찬가지로 전쟁범죄의 흔적을 아예 없던 것처럼 꾸몄다. 이렇듯 조선인을 짓밟은 과거 속에서 이룬 영광 따위를, 어찌 진솔한 반성과 사죄에 배기겠는가.

 

신일철주금이 일본제철로 이름 바꾼 이유

 

신일철주금이 전쟁과 식민침탈로 얼룩진 구질구질한 과거에 매달리고 있다는 아주 분명한 증거가 있다. 우선 신일철주금의 고백을 들어보자.

 

“201941, 당사는 일본제철로서 새로운 출항의 날을 맞이했습니다. 당사는 201210월에 ()신일본제철과 ()스미토모금속공업의 통합으로 신일철주금을 설립한 이후 국내외에서 적극적인 사업전개와 재편을 힘 있게 추진해 왔습니다.”

-신일철주금 홈페이지에 실린 하시모토 에이지(橋本英二) 일본제철 대표이사 사장의 소개글

 

한국에 철강업계 1위 포항제철이 있다면 일본에도 비슷한 입지의 일본제철이 있다. 이제야 밝히지만 일본제철이 곧 신일철주금이다. 신일철주금은 201941월 일본제철그룹으로 이름을 바꿨다. 여기에는 일제의 화려한 영광을 계승하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담겨있다.

 

신일철주금은 1934년에 설립된 반관반민 국영회사 일본제철(日本製鐵)주식회사가 그 뿌리다. 일제 주도로 7개 일본 철강업계가 합병해 덩치를 키웠는데, 그 목적은 철저히 전쟁이었다.

 

일본제철은 일제와 결탁해 군수물자 제작, 강제동원으로 중일전쟁·태평양전쟁에 적극 가담했다. 일본제철은 1941년 설립된 일본 정부 직속 철강통제회의 핵심이었고, 일본제철 사장은 철강통제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바로 철강통제회가 조선인 노동자를 강제동원해 제철소로 내몬 장본인이다. 이렇듯 일본제철(신일철주금)은 영원토록 씻을 수 없는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일제 패망 뒤 전범기업들은 강제로 해체됐다. 그 결과 1946, 일본제철은 두 회사(후지제철·야와타제철)로 쪼개졌다. 하지만 두 제철회사는 1970년 합병해 신일본제철로 부활한다. 이후 2012년 신일본제철과 스미토모금속공업이 합병해 신일철주금이 탄생한다. 그러더니 최근에는 아예 대일본제국 시절의 옛 이름인 일본제철로 되돌린 것이다. 상식으로는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과거를 반성했다면말이다. 게다가 지난 42일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하시모토 에이지 사장은 상호 변경 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한국) 사법부의 판단은 당연히 승복할 수 없으므로 숙연하게 대응해 갈 것.”

 

애초 이름을 전쟁시절로 되돌린 이상 반성과 사죄를 기대하긴 무리다. 정반대로 결단코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제국의 영광을 되찾고 말리라는 심지 굳은 의지마저 느껴진다. 정부와 기업이 함께 발 맞춰 전쟁침탈에 나선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신일철주금의 모습은 아베 정권이 7년 넘도록 장기집권하고 있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

 

돌아보면 신일철주금 측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아무리 도쿄 본사의 문을 두드려도 만남 자체를 거부해 왔다. 떳떳하다면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토록 과거가 당당하다면, 잘못이 없다면 직접 만나 그런 일 한 적 없다고 딱 잘라 얘기했으면 끝났을 일이다. 뒤가 켕기는 태도를 보이는 신일철주금의 작태야말로 스스로 전범행위를 입증하는 꼴이다.

 

신일철주금의 핵심사업은 과거에도 오늘도 어김없이 제철이다. 제철기술을 활용한 철도차량용 바퀴를 일본 국내에 100% 비율로 공급하는 굴지의 대기업으로 군림하고 있다. 그 기술이 어디에서 왔을까? 일본 정부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전쟁침탈에 나섰던 시기 발전시킨 기술을 요긴하게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전범기업들이 조선인들의 피와 희생을 발판 삼아 발전했다는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피해자들이 70여년 만에 배상 판결을 이끌어냈듯 역사는 점차 진실의 승리로 나아가고 있음을 상기하자. 우리 국민이 펼치는 <노아베 항일운동>과 함께 머잖아 신일철주금에게도 강제 속죄라는 역사의 철퇴가 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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