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일침 609] 허점과 오류투성이인 한국 전문가들의 글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9/09/09 [10:34]  최종편집: ⓒ 자주시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이 여러 해 전에 받은 표창장 진위를 놓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는 기이한 광경을 보고 들으면서 저렇게까지 할 가치가 있는 일이냐는 의문(정문일침 608편 참조 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47041&section=sc51&section2=)외에, 한국인들이 무슨 일이나 주장을 놓고 진지하게 다툴 자격(?)이 있느냐는 의문도 들었다. 한국에서는 허술한 주장들이 난무해도 신경 쓰는 사람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비교적 가까운 사례로. 《중앙선데이》 652호에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593>”이 실렸는데 이렇게 시작된다. 

 

“1991년 10월 8일, 김일성이 베이징을 찾았다. 총서기 장쩌민(江澤民·강택민)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며칠 후 난징(南京)에서 신해혁명 80주년 기념식이 열린다. 강남 유람 겸해 같이 가자.”

 

저자는 역사연구에 많은 품을 들이는 분인데, 아쉽게도 짧은 대목에서 세 군데나 틀렸다. 첫째로 김일성 주석은 10월 8일 베이징을 찾은 게 아니라 10월 4일 오전에 도착하여 오후에 장쩌민(강택민) 총서기와 회담했다. 그리고 김일성 주석이 그때 방문에서 난징에 간 것은 맞지만 장쩌민 총서기의 “뜻밖의 제안”은 아니다. 저자는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 방문에서 원촨(문천) 대지진 현장을 방문하겠다고 억지로 밀어붙여서 가던 사례에 비춰서 짐작한 모양인데, 중국과 조선은 최고지도자의 방문 노정을 놓고 많은 시간을 들여 연구하고 조절하고 준비한다. 당시 김일성 주석은 베이징을 떠나 산둥성(산동성)의 지난시(제남시), “취부시(곡부시), 타이안시(태안시, 태산이 있는 곳)을 거쳐 장수성(강소성)의 난징시(남경시)에 이르러서 활동을 전개했고, 그다음에는 장쩌민 총서기의 고향인 양저우시(양주시)를 방문한 다음 10월 13일 오후 귀국 노정에 올랐다. 여기서 중점은 양저우시였는바, 몇 해 전 덩샤오핑(등소평)이 김일성 주석을 자기 고향 스촨성(사천성)으로 안내한 전례에 비췄고, 장쩌민 총서기로서는 그 기회를 빌려 고향을 세상에 자랑했다. 

 

그리고 장쩌민 총서기의 “신해혁명 80주년 기념식” 운운은 필자가 그럴 리 없다고 단언할 증거가 없으나, 아랫부분의 “10월 10일 저녁, 난징의 진링(金陵)호텔에서 쌍십절 기념 연회가 열렸다”는 분명히 틀렸다. “쌍십절(双十节)”이란 중화민국 정부가 신해혁명을 기리어 제정한 국경기념일로서 조선과 아무런 상관이 없고, 당시 김일성 주석의 난징 방문에서 중국은 10월 10일을 신해혁명이 아니라 조선노동당 창건 46돌 경축에 의미를 두고 연회를 베풀었기 때문이다. 김일성 주석과 장쩌민 총서기의 활동을 보더라도, 오전에 장쩌민 총서기가 기차로 난징에 도착한 김일성 주석을 맞이하고 회담하고, 오후에 김일성 주석과 함께 저우언라이(주은래)총리가 활동했던 곳에 가서 참관하고, 밤에는 진링판점(금릉호텔)에서 큰 연회를 베풀어 조선노동당 창건 46돌을 경축했으니 신해혁명 관련 행사에 참여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리고 신해혁명의 시초로 되는 봉기는 10월 10일 후베이성(호북성)의 우창(무창)에서 시작되었으므로 난징에서 기념식을 연다는 자체가 이상하거니와, 신해혁명과 상관없는 김일성 주석을 위해서다. 올해에 김일성 주석의 방문을 날마다 중국 신문과 조선 《로동신문》을 통해 보았고, 2017년 초에는 [타산지석] “한밤중에 중국 난징에서 북 사람들이 뛰어다닌 이유 ”(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1134&section=sc3&section2=)도 쓴 필자로서는 상식에 위배되는 내용에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국에서 생산되는 글이나 책들에는 오류가 너무나도 많다. 특히 남들이 잘못 알았고 자기만이 잘 안다는 식으로 쓴 글과 책들의 오류는 황당한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여름에는 탈북자들 가운데서 잘나가는 주성하 기자가 “철원 비무장지대를 다녀온 소감”이라는 글을 발표했는데, 앞에서는 잘 나가다가 오류를 드러냈다. 

 

“땅굴을 보고 철원 전방의 전망대에 갔습니다. 북한군 진지들이 코앞에 보였습니다. 멀리 제 친구가 살던 평강군도 보였습니다. 그 친구의 아버지가 5군단 고위 간부였는데, 지금은 아마 은퇴했겠죠. 전망대 옆에 있는 산들은 다 6.25 때 치열한 격전지였습니다. 전망대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백마고지만 해도 1952년 10월 한국군 9사단과 중국지원군 38군 3개 사단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입니다. 중국에선 상감령이라고 하죠. 열흘 동안 고지 주인이 24번이나 바뀔 정도였습니다.” 

 

백마고지와 상감령은 전혀 다른 곳이다. 백마고지 전투는 중국인민지원군 38군이 치렀고, 오성산에 있는 상감령을 놓고 벌어진 전투는 중국인민지원군 15군과 12군의 일부가 치렀다. 날짜도 다르다. 백마고지 전투(중국에서는 394. 8고지 진공전투라고 부름)가 중국의 계산으로는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진행됐고, 상감령 전투(금화공세)는 10월 14일부터 11월 25일까지 진행됐으며 한국군 9사단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 

 

기자는 뒤이어 조선이 1211고지 전투를 강조하는 이유를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혹평했는데, 백마고지를 상감령으로 헷갈리는 수준에 비춰보면 그 주장을 믿어주기 어렵다. 혹시 전망대의 해설자가 잘못 알았더라도 한국에 흔해 빠진 전쟁 서적들을 잠깐 뒤적이면 백마고지와 상감령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알 수 있을 테고 하다못해 인터넷 검색을 둬 번 하더라도 “백마고지= 상감령”이라는 오류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주 기자보다 앞서 장원재라는 분은 “북한의 ‘노래 가사 바꾸기’와 金父子의 표절”을 통렬히 비판했는데 이 글에는 오류가 많았다. 

 

“박수를 가장 많이 받는 것은 찬양 노래를 개사해 사람들을 웃기면서 노래하는 것이다. 김정일의 선군정치를 찬양한 노래 ‘발걸음’의 ‘총창(銃槍)은 번쩍 발걸음 척척’을 ‘총칼은 스텐(스테인리스강) 박죽(개머리판)은 나무’로 바꿔 부르는 식이다. 배 속은 굶주렸는데 스텐과 나무로 만든 총을 들고 다니려니 힘들어 죽겠다는 개사가 뒤로 이어지는데, 비속어의 사용 빈도가 너무 높아 여기에 옮기지 못한다.”

 

혹시 그렇게 개사하여 부르는 사람들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노래 가사와 제목이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발걸음》(리종오 작사 작곡)이란 세상에 제일 먼저 알려진 김정은 찬가로서 남에서도 상당히 잘 알려졌다시피 “척척 척척척 발걸음 우리 김대장 발걸음/ 2월의 정기 뿌리며 앞으로 척척척/ 발걸음 발걸음 힘차게 한번 구르면/ 온 나라 강산이 반기여 척척척”구조로 된 가사에 총창이 나오지 않는다. “총창은 번쩍”이란 가사는 “김정일 선군정치”라는 개념이 생겨나기 훨씬 전인 1992년에 창작된 노래 “우리를 보라”(작사 전동우, 작곡 황진영, 악보사진)에 나온다. 

 

▲ 노래 <우리를 보라> 악보 [사진제공-중국시민]     

 

보다시피 가사는 “발걸음 척척”이 아니라 “발구름 쩡쩡”이다. “발구름”을 《현대조선말사전》에서는 “1, 발을 세게 구르는 것. 2. 여러 사람이 줄을 지어 걸을 때에 발자국을 떼여놓는 소리의 울림”이라고 풀이한다. 정말 북의 어떤 사람들이 비속어 사용빈도가 높은 엉터리 노래를 불렀고 또 남의 장원재 씨에게 들려줬다 하더라도 노래 제목과 가사마저 제대로 알지 못하니까 그 수준을 알만하다.

 

장원재 씨는 또 “권리를 박탈한 자본사회에”로 시작되는 노래가 윤극영의 《고드름》을 개사하여 나왔고 《적기가》는 외국 노래인데 북에서는 김일성 주석이 직접 창작했다고 가르친다고 주장했다. 

 

윤극영의 《고드름》이 《녀성해방가》로 변한 과정은 중국 조선족 음악가 김덕윤 선생이 글을 써서 설명한 적 있는데 찾지 못해 일단 생략하고, 필자가 지금까지 본 조선의 수많은 책에는 《녀성해방가》나 《적기가》를 김일성 주석의 창작이라고 한 내용이 없다. 이 두 노래는 “혁명가요”로 분류되는바, 1910~ 1930년대에는 기성곡에 가사를 붙여서 부르는 게 일종 유행이어서 의병, 독립군, 항일유격대들이 즐겨 불렀다. 하기에 “... 억천만 번 죽더라도 원쑤를 치자...”가 들어있는 노래가 《용진가》 혹은 《유격대 행진곡》으로 불리면서 가사도 여러 가지 판본들이 존재한다. 심지어 조선에서 인정하는 “혁명가요”들 중에도 곡이 같으나 가사와 제목이 다른 노래들이 있으니, “설한풍이 휩쓰는 험한 산중에”로 시작되는 《혁명군의 노래》와 “세찬 바람 몰아치는 광막한 들에”로 시작되는 《옥중투쟁가》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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