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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태일과 2020년 우리, 더 나은 삶을 위하여

이형구 주권연구소 연구원 | 기사입력 2020/11/12 [21:22]

1970년 전태일과 2020년 우리, 더 나은 삶을 위하여

이형구 주권연구소 연구원 | 입력 : 2020/11/12 [21:22]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11월 13일. 50년 전인 1970년, 전태일 열사가 산화한 날이다.

 

전태일 열사는 1964년, 17살의 나이 때부터 청계천 평화시장에 있는 피복점에서 일했다. 하루 14시간 노동을 했지만, 그 돈으로는 하루 숙박비도 되지 않아, 퇴근 전후로 구두닦이를 하고 껌과 휴지를 팔았다. 이렇게 고생스럽게 일한 전태일 열사는 자기 자신보다도 같이 일하는 여공들을 안타까이 여겼다.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그날 기분은 우울한 편입니다. 내 자신이 너무 그러한 환경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당시 피복점들은 공간을 아끼기 위해 높이 3미터 정도 되는 방을 높이 1.5미터짜리 2개 층으로 나누었다. 여공들은 1.5미터 높이의 닭장 같은 방에 쪼그려 앉아 하루 동안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재봉틀을 돌렸다. 일거리가 밀리면 사흘 밤을 꼬박 새우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피복점 주인은 여공들에게 잠 안 오는 약을 먹였다.

 

전태일 열사는 평화시장에서 죽어가는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고 싶었다. 그래서 재단사로 승진해 보조 노동자들에게 선의를 베풀어 보기도 했고, 불법 노동행위를 노동부에 신고도 해보았다. 그렇게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노동자의 현실은 바뀌는 게 없었다.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 치오니 하나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그러던 어느 날,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이란 게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법적으로 권리가 보장되어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으나 그 법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분개했다. 무수한 실패 끝에 전태일 열사는 기어이 현실을 바꿔내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분신을 결심한 것이다.

 

전태일 열사는 분신하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라고 외쳤다. 그 후 5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 전태일 열사의 사진들  

 

▲ 전태일 열사의 장례식에서 오열하는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 1980년 4월 평화시장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청계피복노조 소속 여성 공장 노동자들.  ©

 

1970년보다 나을 것 없는 2020년

 

지난 10월 8일 새벽 4시 28분, 한진택배 노동자가 동료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주무시는데 죄송합니다”라며 시작된 메시지는 “저 너무 힘들어요”라고 끝난다.

 

메시지를 보면 이 노동자는 아침 일찍 출근해 할당된 택배 물품을 차에 실은 뒤 9시부터 배송을 시작해서 그다음 날 새벽 4시가 넘어서까지 일했다. 그러고도 그날 받은 물량을 다 쳐내지 못했다. 이 노동자는 이제 집에 가면 한숨도 못 자고 밥 먹고 씻은 뒤 바로 출근해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메시지를 보내고 4일 뒤인 10월 12일, 이 노동자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여전히 노동자는 기계처럼 혹사당하며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슴 아픈 사건이었다. 이런 현실은 택배 노동자 한 명의 일만이 아니다. 올 한해 택배 노동자만 15명이 과로로 숨지거나 목숨을 끊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전태일 서거 50주기를 맞아 여론조사 업체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10월 22일부터 26일까지 직장인 1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설문조사에 응한 노동자들은 정규직 비정규직 가릴 것 없이 법정근로시간인 주 8시간을 넘겨 초과근무를 했다. 일이 바빠서(54.7%), 돈을 더 벌기 위해서(30.0%) 그리고 강요(15.3%)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기업은 여전히 노동자들에게 너무 많은 일을 강요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강요가 아니더라도 임금이 적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추가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노동자들은 이런 현실에 힘들어하고 있다. 직장갑질119는 “전태일이 일하던 1970년대에 비해 2020년 한국 사회 노동자(직장인)의 삶과 처우가 어떻게 달라졌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설문조사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에이, 아무렴 1970년대보단 지금이 낫겠지’라는 반응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비정규직 노동자 중 단 37.8%만이 ‘좋아졌다’고 대답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중 62%는 1970년대보다 좋아진 게 없다고 여기고 있다.

 

1970년대보다 나을 것 없는 2020년. 이것이 노동자가 느끼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잘릴까 봐 말하지 못했다”

 

청년이 놓인 처지도 비슷하다.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공부하는데 딱딱하고 어렵게 쓰여 있어서 “대학생 친구가 하나 있었으면 원이 없겠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고 한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 이 사실을 알게 된 많은 대학생이 노동자의 친구가 되어주기 위해 공장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오늘날 대학생을 비롯한 청년 대부분은 아르바이트생이 되었다. 여성가족부가 2018년에 발표한 ‘청소년 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19세에서 24세의 청년 중 76.8%가 아르바이트를 해봤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알바를 하면서 어떤 경험을 할까? 아르바이트문제 해결 콘텐츠 제작 동아리 ‘알맹’이 올린 아르바이트 수기에 이런 내용이 올라와 있다.

 

“오늘 일은 뉴코아 백화점 주차장 수신호 알바였다.… 모자 안쪽엔 곰팡이가 슬었다. 바지는 헐렁하고 옷에 땀 냄새가 그윽하다.…차량이 막 들어오고 나가는 때가 있다. 날도 더운데 정신이 하나도 없다. 물이라곤 아이스박스에 든 물병 두 개뿐. 이 일만 저녁 9시 정도까지 했다. 내가 오늘 무슨 일을 한 건지…”

 

“화장품 회사 단기 인턴에 붙었다. 학교 연계 인턴은 최저보다 못 받고 경험 쌓는 용으로 한다. 인턴 공고 올라온 금액도 그렇고 열정페이라는 걸 알고 ‘설마 일을 더 시키겠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인턴을 지원하였다. 내 생각은 틀렸다. 일이란 일은 다 시키고 회식까지 참여 시켜 억지로 술도 마셨다. 학벌과 외모로도 까였다.”

 

전태일 열사가 그토록 바라던 대학생 친구는 오늘날 대학을 나왔으면서도 학벌에 따라 차별과 무시를 받고 있다. 심지어 업무와 하나도 상관없는 외모로 비난을 듣는 처지이다. 대학생은 옷도 깨끗하지 못한 걸 지급받고 더운 날 밖에서 물 두 병으로 하루를 보내며 헐값에 일하고 있다.

 

대학생 정치사회탐구 동아리 ‘너와내가’에서 올린 아르바이트 수기도 살펴보자.

 

“근무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매장 전화가 울렸다. 편의점 사장님이었는데 방금 나간 손님이 무슨 이야기를 했기에 그렇게 오래 걸렸냐고 물어봤다. 별문제는 아니어서 말했더니 알겠다고 하고 끊으셨는데 순간 CCTV로 내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에 소름이 돋았다. 나중에 찾아보니 CCTV로 노동자를 감시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하지만 잘릴까 봐 말하지 못했다.”

 

이 사람은 편의점 사장으로부터 감시를 받았다. 불법이었지만 항의할 수 없었다. 직장이 아닌 알바인데도 불법 행위를 당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해고가 무서워 항의하지 못한 것이다. 법보다 해고가 무서운 세상에서, 법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 너와내가(위)와 알맹(아래)이 올린 알바 수기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전태일 열사는 분신 후 친구들에게 “우리가 하려던 일, 내가 죽고 나서라도 꼭 이루어주게.…내 말 분명히 듣고 잊지 말게.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라고 당부했다. 어머니에게도 “내가 못다 이룬 일 어머니가 꼭 이루어주십시오”라고 부탁했다. 전태일 열사가 하려던 일은 평화시장 여공들, 우리와 같은 평범한 노동자가 인간답게 사는 것이다.

 

전태일 열사의 꿈,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것은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예를 들면, 10월 12일 한진택배 노동자의 과로사가 온 나라에 화제로 떠올랐다. 택배회사들은 앞으로 과로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며 입장을 밝히기 바빴다.

 

그러나 10월 27일, 또 한 명의 한진택배 노동자가 과로사했다. CJ대한통운은 영업소 택배기사들을 모아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서를 쓰게 했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언론에서 화제가 되었다고 저절로 바뀌는 건 없다는 걸 분명하게 보여준다.

 

전태일의 꿈을 실현해주는 건, 우리의 삶을 바꾸는 건 결국 우리들이다. 우리가 행동하지 않고선 1970년과 별반 다르지 않은 오늘은 변하지 않는다.

 

아르바이트하는 청년들은 알바노조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하고 최근엔 아르바이트문제 해결 콘텐츠 제작 동아리를 만들기도 했다. 청년들이 알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여나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민주노총은 11월 14일 토요일 여의도에서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2020 전국노동자대회를 연다. 민주노총은 전국노동자대회에서 택배 노동자인데도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노동권을 누릴 수 없는 현상을 개선하는 방안 등이 들어 있는 전태일 3법과 노동개악 저지를 주장할 예정이다.

 

1970년 전태일 열사의 꿈을 이제는 실현하기 위해 2020년을 사는 우리가 전태일 열사와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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