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의 옥중편지 “국가보안법은 ‘국가안전’을 위태롭게 한다”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1/07/20 [17:29]

이정훈의 옥중편지 “국가보안법은 ‘국가안전’을 위태롭게 한다”

김영란 기자 | 입력 : 2021/07/20 [17:29]

“제 사건을 간단히 요약하면, 저와 동료들을 다시 간첩으로 만들려는 사건으로 본다. 저를 간첩으로 만들기가 여의치 않자, 국가보안법상 ‘통신회합죄’로 시작한 사건이라고 본다.”

 

이는 지난 5월 14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된 이정훈 4.27시대연구원 연구위원이 종로경찰서 유치장에서 보낸 편지 중 일부이다.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공안 세력은 이정훈 연구위원에게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죄’를 적용했다. 페루 국적의 사람에게 지령을 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안탄압 저지! 국가보안법 철폐! 4.27시대 연구원 이정훈 연구위원 무죄석방 대책위원회(이하 이정훈 대책위)’는 페루 국적의 사람이 북한 공작원인지 불분명하다며 공안 세력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특히 이정훈 대책위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국가보안법 폐지 요구에 위기감을 느낀 공안 세력이 이 연구위원 사건을 조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이 연구위원이 체포된 시기는 ‘국가보안법 폐지 입법 청원’이 한창 벌어지고 있던 시기였다. 국가보안법 폐지 입법 청원은 9일 만에 10만 명을 달성했다. 그 후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을 발의했다. 

 

이 연구위원은 체포·구속된 이후에 옥중편지로 자신의 무죄와 ‘국가보안법의 문제점’ 등을 짚고 있다. 이 연구위원은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으며, 오는 8월 18일 첫 재판이 열릴 예정이다.  

 

지금까지 이 연구위원이 보내온 옥중편지를 4.27시대연구원의 동의아래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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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훈 연구위원의 첫 번째 옥중편지  

 

[옥중편지] 1. 창밖의 벗들, 동지들에게

 

지난 5월 14일 금요일 오전에 갑자기 국정원과 검찰에 긴급체포되어 3일이 지났습니다. 아침부터 저녁 전까지 조사를 받고, 저녁에 이 종로 경찰서 유치장으로 돌아옵니다. 지금은 월요일 저녁입니다.

 

이 유치장도 오랜만입니다. 1984년 2.12 총선 때 제가 ‘전두환 독재 타도, 민정당 반대’ 시위를 하다 29일간 구류를 살던 곳이 여기입니다. 1985년 미 문화원 점거 농성 후 체포되어 잠시 조사차 머물던 곳도 여기 종로서입니다. 별로 추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의 장소로 다시 왔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면회 와주신 벗들, 동지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국가보안법폐지를 위해 힘쓰고 계신 모든 분들께도 연대와 건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제 사건을 간단히 요약하면, 저와 동료들을 다시 간첩으로 만들려는 사건으로 봅니다. 저를 간첩으로 만들기가 여의치 않자, 국가보안법 상 ‘통신회합죄’로 시작한 사건이라고 봅니다.

 

차후라도 언제든지 간첩사건으로 몰고 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봅니다.

 

이 사건은 통일운동, 평등세상, 사상의 자유를 찾는 길에서 우연히 또는 필연적으로 만났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공작원, 간첩으로 다가오는 그런 사건입니다. 아마도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 이러한 악순환은 저뿐만 아니라 국가보안법 체제에서 자주와 평등을 지향하는 모든 분들께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그러나 저는 두렵기보다 다시 단련될 뿐이다는 생각입니다.

 

사람이 정보기관의 일상적 생활감시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요?

 

사람이 언제든지 진정한 자유를 위해, 역설적으로 사랑하는 벗들, 가족과 떨어져 감옥을 감수할 생각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요? 사람이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한뼘 국가보안법 상자에 가둘 수 있을까요? 이것에 익숙해지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저는 늘 제가 ‘선’ 위에 서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분단체제, 국가보안법 체제가 만들어 놓은 경계선 위에서 늘 고민합니다.

 

허나 외세와 분단 기득권 세력이 그어놓은 반쪽의 자유, 반쪽의 조국, 반쪽의 사상 안에서 결코 살 수 없기에, 매일 선을 넘어 새 세상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 선을 한사람, 열사람이 넘으려면 수 십 미터 철옹성처럼 높고 강합니다. 하지만 천사람, 만사람이 넘어서는 순간 거짓말처럼 눈벽처럼 허물어지는 벽이자 선입니다. 결국 이 선은 사람들의 공포로 유지되는 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공포를 넘는 길, 선을 넘는 길이 고난의 길임을 알기에 슬프기도 하지만, 후대들이 살아갈 ‘행복한 평화와 통일, 평등의 새 세상’을 만드는 길이기에 설레고 기쁘기도 합니다.

 

다함께 감히 ‘선을 넘는 사람들’이 되어 시대의 고난을 함께 넘기자고 말씀드립니다.

 

진정한 자유를 위하여 싸우는 모든 벗들, 사람들, 동지들을 위하여!

 

감사합니다.

 

2021.5.17. 저녁 종로경찰서 유치장 이정훈

 

▲ 이정훈 연구위원의 두 번째 옥중편지  

 

[옥중편지] 2. 국가보안법과 남북교류협력법을 단죄한다!

 

조사 14일째.

 

체포되어 조사 받은 지 14일째, 5월 27일 새벽 종로서 유치장이다.

 

나는 공안기관이 나와 동료들의 정당한 학술활동과 통일운동을 간첩사건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이미 실패하고 있으며, 저들이 적용한 ‘회합통신죄’와 나의 ‘통일표현’ 저작물을 이적표현물로 둔갑시킨 ‘고무찬양’ 시도도 모두 실패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나는 처음부터 묵비권을 행사하여 이 사건에 대해 진술한 바가 없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분노가 점차 쌓여감을 느낀다.

 

국정원과 안보수사대가 수사에서 인권보장과 적법한 수사절차를 새삼 강조하는데 쓴 웃음이 난다. 그들이 말하는 인권수사 속에는 그동안 무수히 많은 고문수사, 강제강압수사로 인한 무고한 희생자와 피해자들의 눈물과 피가 묻어있고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 희생에 내 청춘의 피도 섞여있음을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공안수사당국이 이제야 ‘고문 강압 없는’ 인권수사를 강조해도, 국가보안법이라는 전근대적 야만의 법이 존재하는 한, 이 법에 의한 태생적 원천적 인권유린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

 

고문과 강압수사로 한 개인의 정당한 학술활동과 사상의 자유를 죽이는 것이나, 분단안보논리의 조악한 논리적 비약과 조작과 침소봉대로 고문보다는 다소 부드럽게 사람을 죽이는 것이나, 그것은 본질에서 차이가 없는 인권유린이기 때문이다.

 

그러리라 짐작은 했지만 새삼 놀랄 것도 없이 이들의 수사라는 것이 원천적으로 개인의 ‘사상의 자유’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필요도 없고 인정하지도 않는다.

 

일반 사건의 초기 수사의 기본은 그 사건에 대한 피의자의 내적인 동기와 원인을 찾는 것이다. 왜 그 사람이 그런 책을 썼는지, 왜 그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지 밝히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이 사건 수사의 지향점은 내가 아니라, 처음부터 ‘북’이다. 나를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 어떻게 북으로부터 흘러나와 연결되었는가를 인위적으로 구성할 뿐이다.

 

이 수사에서 나는 독자적으로 자주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며, 늘 누군가의 지시와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 같은 이상한 존재가 된다. 이 조악한 국가보안법의 논리를 성사시키기 위해 논리적 비약과 조작은 필연이다.

 

국가보안법 사건에 ‘사상의 자유’와 ‘만남과 교류의 자유’라는 개념이 설 자리가 아예 없다. 이들은 내가 ‘주체사상’을 논하는 것과 통일운동과 북 바로알기에 대해 논하는 것이 ‘사상의 자유’에 속한다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와 인권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모른다.

 

민주질서를 파괴하는 자가 바로 본인들이라는 것을 모른다.

 

수사의 전제와 원리가 처음부터 잘못 구성되었다는 것 자체에 대한 생각이 없다.

 

국가보안법은 한마디로 ‘웃기는 법’이다. 아니 법의 이성적 체모를 갖추지 못한, 법의 자격이 없는 법 아닌 법이다.

 

이 법이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고무신 같은 법이며 궁색한 법인지 몇 차례에 걸쳐 이야기하려 한다.

 

오늘은 첫 이야기다.

 

세계에서 가장 큰 반란단체(반국가단체)는 어디에 있는가? 국가보안법에 따르면 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이 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정부를 참칭(임의로 부름)한 반국가단체이며, 북한 주민 2,500만은 반국가단체 수괴의 지령을 받는 ‘반국가단체 구성원’들이라고 한다. 무려 2,500만명의 반국가단체 구성원, 세계 최대이다. 국가보안법의 모든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우리가 이들 북한동포들을 만나는 것은 반국가단체 구성원, 즉 간첩이나 북한 공작원을 만나는 것과 같은 의미로 쉽게 포장된다.

 

우리나라 헌법4조는 평화통일을 지향하며 북을 통일의 상대로 보고 있다. 남한의 역대 통일방안도 당연히 북을 국가로 인정하는 ‘연합제’ 방식이다. 세계 모든 나라가 북을 국가로 인정하고 UN도 북을 국가로 인정하는데 유독 국가보안법은 북을 국가나 정부로 인정하지 않는 비상식적인 법이다. 냉전시대의 낡은 섬멸적 반공논리에 기초한 ‘극한대결 법’이다.

 

이 법은 면면히 이어온 통일운동 역사와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선언들을 비웃고 있다. 이 법은 남북정상이 합의한 6.15 선언, 10.4 선언, 4.27 판문점선언을 법리적으로 부정한다. 사형대상으로 명시한 반국가단체 수괴와 무슨 합의를 하는 것 자체가 이 법에 의하면 ‘이적행위’로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상회담을 많이 해도 이 법이 있는 이상 모두 공염불 선언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비상식적 법이 왜 아직도 살아남아 판을 치는가? 응당 사라져야 할 법이 폐기되는 대신에 도리어 살아 숨 쉬게 만든 법이 바로 ‘남북교류협력법’이다. 이 법은 국가보안법의 친동생이다.

 

이 법은 친형 국가보안법의 악역을 합법적으로 가리는 ‘시다바리’ 역할을 기본으로 하는 법이다. 반공멸공 분단체제라는 아버지가 낳은 한 몸에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 같은 형제 법들이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않고 남북정상회담, 남북교류를 하는 것은 모두 법률상 불법이다. 이른바 정부의 ‘통치행위’라는 것도 법에 기반한 것이지 법을 무시한 정치행위는 그 자체가 불법이다. 법은 정부나 민간 개인이나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남북교류협력법’의 탄생이라는 묘수에 따라 이제 남북 당국 간 회담, 정상회담은 ‘내로남불’의 궁지에서 겨우 벗어나게 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남북교류협력법이 정상일리 없다. 태생부터 형 국가보안법의 악행을 보완하려고 만들어진 ‘모지리 법’, ‘시다바리 법’이기 때문이다.

 

이 법이 통일을 지향하고 있다고 하나 진정한 통일지향의 남북교류를 위한 법이 아니다. 오히려 남북교류를 통제하고 독점하기 위한 법으로 기능을 한다. 평화통일을 하려면 민간의 정치, 정당 교류를 활성화해야 하는데 이 법에는 의도적으로 정치분야 남북교류 항목 자체가 없다. 정치교류도 문화교류로 제한하고 있다.

 

이 법은 북을 합법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북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하나의 ‘북’이라는 실체에 대해 전혀 상반된 두 개의 법리가 한 국가에서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세계 법학자들이 신기해하는 이상한 나라의 법이 이들 법이다.

 

국가보안법이 위헌이라는 것은 사실 국내 법학자들도 잘 알고 있다. 단, 한정적 합헌(위헌의 요소가 있으나 그래도 합헌이라는 기이한 논리) 이상을 이야기할 용기 있는 법학자들이 없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서로 법리가 공존할 수 없는 두 법이 어떻게 적용되어 춤추는지 보자.

 

북에 사는 ‘철수’가 남에 사는 ‘영희’를 어느날 북경 또는 서울에서 통일부 사전승인 없이 만났다고 가정해보자.(반대로 남에 사는 영희가 철수를 평양에서 만나도 마찬가지다).

 

자 이 불법 만남에 어느 법을 적용할 것인가? 적용의 기준은 무엇이며 누가 판단하는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적용하면 이 만남은 무려 10년 이하 징역을 살아야 한다. 실제 많은 남한 사람들이 이렇게 징역을 살았다.

 

남북교류협력법 상 사전접촉신고 위반으로 다루면 이것은 300만원 이하 과태료 또는 3년 이하 3천만원 이하 벌금형이다.

 

법리가 상반된 두 법의 적용은 공안당국과 정부 마음이다.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면 철수가 영희를 왜 만났는지 묻지도 따질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영희는 ‘반국가단체 구성원’을 만난 것이기 때문이다. 이유 불문 만남 자체를 불법으로 여긴다.

 

교류협력법을 적용하면 철수와 영희가 왜 만나서 무슨 행위를 잘못했는지 최소한 따져 적용해야 한다.

 

만약 진보 통일운동 하는 사람이 철수와 같은 사람을 만났다면 그것은 이유불문하고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죄’로 적용할 것이 틀림없으며 그것이 통일운동을 탄압하는 피비린내나는 역사였다.

 

국가보안법도 교류협력법도 결국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권리인 평화로운 통일을 위해 남북 주민과 민족이 어떤 형태로건 접촉할 기회를 기본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공안당국은 내가 반국가단체 구성원 ‘철수’를 만나 이른바 ‘이적표현물’들을 제작 유포했다고 하는데, 나는 그를 만나기 전부터 그들이 말하는 이적표현물을 제작 유포하고 있었다. 그가 반국가단체 구성원 ‘철수’라는 것도 공안당국의 일방적 추정과 주장일 뿐 그가 외국인인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 역시 그가 철수인지 해외동포인지 알 길이 없다.

 

설사 그가 만약 ‘철수’라고 해도 국가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나의 죄는 무엇인가?

 

나는 정당한 학문과 사상의 자유, 그리고 통일운동의 자유를 주장한다. 나는 나의 ‘무죄’를 법정에서 밝힐 것이다.

 

2021.5.27. 종로서 이정훈

 

▲ 이정훈 연구위원의 세 번째 옥중편지  

 

[옥중편지] 3. 4.27시대연구원 회원 여러분께

 

4.27시대연구원 회원 여러분께

 

저도 갑작스런 일이라 경황이 없었지만, 여러분께서도 많이 놀라셨을 것 같습니다. 저를 이적표현물 제작 배포로 인한 고무찬양죄, 통신회합죄로 몰아가는 공안당국의 탄압과 수사는 모두 실패할 것이라 봅니다. 자세한 내용은 차후 재판이 진행되면서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음 주 초 6월 1~2일 경에는 서울구치소로 이감 갈 것 같습니다.

 

서울구치소는 조용한 편인데 여기 종로서는 시장판 같습니다.

 

매일 여러 명이 무슨 사연인지 모르겠으나, 새로 들어오고 나갑니다. 일주일에 두어 번은 술먹고 들어와 새벽까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사람으로 잠을 설치기 일쑤입니다.

 

4.27시대연구원은 원래 창립목표가 4.27판문점선언 실현을 위해 남북의 평화 번영 통일 방책을 연구하는 합법적 민간연구단체입니다.

 

우리가 겨레의 통일 학술사업 차원에서 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철학, 정치, 경제, 역사 등을 연구하는 것은 당연하며 그것은 우리 연구원의 고유한 업무 중 하나입니다.

 

우리 연구원은 2018년부터 북 사회과학원과 ‘남북교류협력법’ 절차와 통일부 규정에 따라 남북 공동출판과 학술교류사업을 추진해왔습니다. 비록 정세가 좋게 흐르지 못해 여러 사업이 중단된 상태이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재개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러한 사업은 4.27판문점선언 실현의 학술분야 사업의 구체적 구현으로 당국이 ‘상’을 주어야 할 내용이지 결코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봅니다. 공안당국이 이적표현물로 제시한 ‘북 바로알기 100문100답’도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라 공개적으로 제안하고 추진한 사업 중 하나입니다.

 

연구원에 대한 조사가 중심도 아니지만, 공안당국이 조사를 해봐야 연구원 사업의 모든 활동이 정당하며 지극히 합법적이며 정상적이라는 것만 확인할 뿐입니다. 되지도 않는 ‘통신회합죄’는 제 선에서 재판을 통해 무죄를 증명할 것입니다.

 

저들의 연이은 공안탄압으로 본의 아니게 우리 연구원이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위한 투쟁과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의 한 복판에 서게 된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자주, 통일, 평등 세상을 위한 연구사업도 투쟁 속에서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이 난국을 더 단결하고 더 단단해지고 성장하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았으면 합니다.

 

4.27시대연구원은 어떤 시련에도 자주, 민주, 통일의 붓대, 자주사상의 붓대를 결코 놓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를 믿듯이, 저는 여러분을 굳게 믿습니다. 바쁘신 가운데 면회를 와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다시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21.5.30. 종로서 이정훈

 

▲ 이정훈 연구위원의 네 번째 옥중편지  

 

[옥중편지] 4. 왜 국가보안법이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파괴하는가?

 

조사 17일째.

 

5월 30일 일요일 오전이다. 국정원 조사는 마무리 단계이다.

 

일반사건의 조사 기간은 경찰 조사 10일, 검찰 조사 10일 합쳐서 20일인데, 유독 국가보안법 사건은 국정원(경찰) 조사 20일, 검찰 조사 30일이다. 조사 기간만 무려 최장 50일이다. 긴 조사 기간 자체가 고문에 가깝다.

 

갑자기 하늘이 보고 싶다. 평소 한 번 쳐다보지도 않던 하늘이 왜 보고 싶을까. 구치소와는 다르게 유치장은 ‘창’이 없다. 사방이 막혀 굴 같다. 운동시간도 따로 없다. 조사실도 창이 없다. 사람이 하늘을 오래 못 보면 하늘도 그리워진다는 것을 새로 알았다.

 

오늘 오후에는 향린교회 주관으로 여기 종로서 앞에서 나의 ‘무죄 석방 거리기도회’를 열고 면회를 오신다니, 다시 국가보안법 철폐 연대 인사와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겠다. 너무나 고마운 벗들 동지들이다.

 

오늘은 국가보안법 이야기 두 번째로, 왜 국가보안법이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파괴하는가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한다.

 

공안 당국은 입만 열면 ‘국가 안전’과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를 이야기하는데, 국가보안법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의 파괴자이자 장애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는 다른 말로 ‘일반민주주의’ 또는 사회과학적으로 ‘부르죠아 민주주의’라고 한다. 모두 유사한 개념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유럽 민중들이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봉건적 신분제를 깨고 쟁취한 주권재민의 근대시민사회 구조(공화정)와 원리를 말한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는 모든 권력은 왕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주권재민의 원리’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헌법 1장 1조의 내용이며 세계 여러 나라 헌법의 기본정신이다. 이 주권재민의 원리를 구현한 형태, 형식이 의회주의와 선거이다.

 

자유민주주의의 또 다른 핵심 가치는 ‘사상의 자유 원칙’이다. 모든 권력의 주인인 국민의 다양한 사상, 견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주권재민의 원리가 내용적으로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국민들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선거를 많이 해도 국민들의 요구와 의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 따라서 ‘주권재민’과 ‘사상의 자유’ 원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운영하는 두 개의 마차 바퀴이다.

 

그러면 ‘사상의 자유’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양심의 자유가 주로 개인 내면의 가치 판단과 견해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을 자유라고 한다면, 사상의 자유는 반대로 개인의 생각과 견해를 밖으로 드러내는 자유이다. 표현하지 않는 이불 속 나만의 생각은 사회적으로 아무런 영향력도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상의 자유’는 반드시 ‘표현의 자유’를 동반한다.

 

사상이란 철학적으로 어떤 사물 현상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 관점, 입장, 태도를 의미한다. 즉 같은 사물 현상에 대해 사람들이 다른 견해와 입장을 갖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사상의 자유의 기본 내용이다. 또 이것을 강제로 억압하거나 힘으로 탄압하지 않는다는 것도 사상의 자유 실현의 기본 원칙이다.

 

단, 예외적으로 어떤 사람의 견해와 사상이 테러, 살상, 폭파와 같은 ‘명백히 현존하는’ 위협으로 될 경우에는, 그것을 법이 미리 정한 항목, 즉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따라 그 ‘행위의 결과’를 규제하고 처벌할 수 있다는 보조 원칙을 두고 있다. 그러나 어디에도 일반적 사상과 견해 자체를 미리 예단하며 처벌하는 ‘사상의 자유’ 제한과 금지 규정은 근대법에 없다.

 

사상의 자유를 표현하는 다양한 형태가 바로 언론, 출판, 집회, 결사, 학문, 예술, 종교의 자유 등이다. 만약 생각하고 표현하는 사상의 자유라는 민주주의의 알맹이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선거…등의 자유는 형식과 껍데기에 불과하게 된다.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민주주의는 ‘속 없는 만두’이다. 탄산이 없는 김 빠진 사이다이다.

 

‘사상의 자유’ 문제가 맑스주의, 주체사상 등 추상적 운동권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이것은 우리 일상생활을 규정하는 가장 흔하고 일반적인 문제이다.

 

자, 구체적으로 국가보안법 문제로부터 제기된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 관점, 입장, 태도’의 문제, 즉 북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과 사상을 예로 들어보자.

 

Ⓐ견해: 국가보안법이 보는 북에 대한 규정은 ‘반국가단체’이다. 따라서 적이며 섬멸대상이라는 입장과 태도를 취한다.

 

Ⓑ견해: 헌법과 세계시민, 일반 남한국민의 상식적 견해는 북은 당연히 ‘국가’이다. 따라서 평화통일의 상대이며, 공존과 통일 그리고 교류협력의 대상이라는 입장과 태도를 일반적으로 취한다.

 

Ⓐ가 과거지향적이고 파괴적이며 반헌법적 견해라면 Ⓑ는 미래지향적이며 화해 협력적, 통일 지향적 견해이다. 여하간 사람들은 Ⓐ와 Ⓑ 모두 자기 견해로 선택하고 표현할 자유가 있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은 Ⓑ의 견해와 입장을 처음부터 원천적으로 강제적으로 전면 부정하는 법이다. 북을 반란단체로 규정하고 모든 북한 주민을 반국가단체 구성원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관점에 서면 북한 바로 알기는 ‘반국가단체 바로 알기’로 되며 북한 주민과의 교류와 만남은 공작원, 간첩과의 회합, 통신으로 된다. 국가보안법 자체가 Ⓑ의 견해를 힘으로 강제로 원천 부정하는 관계에 있다. 토론하는데 줄 풀린 도사견이 어슬렁거리는 것과 같다.

 

헌법이 정한 평화통일을 하려면 북을 통일의 상대로 연구해야 하며, 북을 연구하려면 ‘주체사상’을 연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또 노동신문, 북 사회과학원 공식 출판자료들을 제대로 연구하는 것은 국가의 역할이기도 하다.

 

이러한 연구에 북에 대한 긍정적, 부정적 다양한 견해가 있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이것을 ‘이적표현’으로 몰아가는 것은 ‘사상의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포기하겠다는 것과 같다.

 

정치토론과 학술 향연으로 처리할 일을 상식 이하의 전근대적 법으로 밥상을 걷어차고 발언자의 목을 비트는 만행은 중단되어야 한다. 이 법이 있는 한 한국사회는 아무리 경제적 물질적 부가 늘어나도 민주주의가 꽃 필 수 있는 사회로 나갈 수 없다.

 

민주주의가 정착한 어떤 나라도 사회주의, 주체사상, 맑스주의, 북한, 중국에 대해 찬성하든 반대하든 그것을 결코 법으로 처벌하는 나라는 없다. 그것은 근대 시민혁명이 이룩한 자유민주주의 기본 원리를 원천 부정하는 전근대적 야만이기 때문이다.

 

나는 자유민주주의와 일반민주주의를 부정하지 않는다.

 

한국은 아직 자유민주주의조차 완성치 못한 국가로 보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적 기초로부터 더 발전된 진보적 민주주의가 실현되는데,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 한국은 결코 완성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진보의 과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나라 합리적 보수, 합리적 민주주의자들이 추진해야 할 미완의 시민혁명적 가치이다. 만약 헌법 위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국가보안법이 폐지된다면 나는 비로소 이 나라 자유민주주의가 성립되었다고 판단한다.

 

내가 쓴 책 ‘주체사상 에세이’와 공저로 쓴 ‘북 바로알기 100문100답’은 어디 국제적으로 말하기도 민망스러운 ‘이적표현물’이 아니라 ‘통일표현물’이다.

 

분단체제의 경직성으로 국가가 할 일을 민간연구단체에서 한 것을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이적표현물로 탄압하니 한국 민주주의 수준에 한숨만 나온다.

 

촛불투쟁으로 등장한 현 정부가 국가보안법 하나 폐지할 의지와 능력이 없이, 오히려 이 법으로 진보 민주 세력을 탄압하니 이 정부를 ‘민주정부’로 부를 수는 없다.

 

민주나 진보는커녕 ‘합리적 보수’ 수준에도 자격이 없다.

 

다시 말하지만, 국가보안법은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의 간판을 단 ‘자유민주주의의 파괴자’이다. 이 나라 헌정질서와 자유민주주의를 유린하는 이 법은 폐지되어야 한다.

 

다음 주에는 서울구치소로 이감 갈 것 같다.

 

다음 주에는 공안당국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북한의 ‘대남 적화통일 전략’의 허구성에 대해서 논할 예정입니다.(편집자주: 높임말은 원문임.) 

 

2021.5.30. 종로서 이정훈

 

ps. 바쁜 시간 면회와 석방기도회에 나오신 분들께,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힘쓰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와 연대의 인사를 드립니다.

 

▲ 이정훈 연구위원의 다섯 번째 옥중편지  

 

[옥중편지] 5. 국가보안법은 '국가안전'을 위태롭게 한다!

 

조사 25일째, 서울구치소에서

 

6월 2일 아침 종로서에서 서울구치소로 이송되었다. 20일간의 국정원, 경찰조사가 끝났고, 검찰조사가 시작되었다.

 

지난 경찰 20일 조사과정에서 나의 구속수사와 련관하여 새로 찾은 의미있는 증거는 없었다고 본다. 10여일만에 비밀번호를 알아내 열어본 내 아이폰 내용도 그저 그런 일상적 생활과 연구활동과 연관된 내용들 뿐일 것이다. 물론 내 컴퓨터에는 북한관련 1차 연구자료들이 다량 발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에서 합법적으로 구한 자료들이 대부분이다. 결국 돌아보면, 나는 인멸할 증거를 가진 것이 없었던 것이다. 도주 우려는 더더욱 있을 이유가 없다. 구속영장에 도주할거라 여겼던 동료들은 전부 면회를 찾아와 구속이유를 의아해 했다. 경찰이 출석요청을 했다면, 찾아가 해명했을 사건을 왜 굳이 구속수사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여하간 나는 23살 대학생 청년시절 미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으로 여기 처음 들어오고, 15년 전 2006년에도 국가보안법 사건으로 이곳 서울구치소에 왔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여기는 그동안 얼마나 시설과 인권이 개선되었을까?

 

입소하는 첫 날 첫 순간부터 나의 기대는 산산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입소 첫 절차는 신원확인> 개인 소지물 압수 후 영치> 심신이상 확인> 검신(옷을 모두 벗기고 몸을 검사하는 과정) 등이다. 그동안 교도소에서 계속 인권문제가 되었던 것은 주로 ‘검신’ 과정이었다. 전두환 군사정권 때에는 입소자 10여명을 일렬로 세워놓고 팬티까지 전부 벗긴 채로, 교도관이 일어나 앉아를 반복케 하면서 검신을 하였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에 이런 비인권적 만행은 사라졌으나 여전히 관복을 입은 교도관이 입소자의 신체를 완전히 벗겨놓고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부분적 관행은 쉽게 근절되지 않았다. 이번 서울구치소 입소과정에서 보니, 입소자 속옷(팬티 속) 검사를 위해 따로 검신용 탐지기계를 마련하고 있었다. 검신과정에서 팬티를 벗어도 이는 촬영되지 않는다는 문구도 보였다. 이것까지는 개선되어 좋다고 보았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과정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영치과정’이었다. 입소자 모두 개인 소지품과 입은 옷을 전부 영치(개인소지품을 모두 교도소에 보관하는 것)시키는 과정에서 교도관이 책상에 앉아서 “옷을 전부 벗으라”라는 것이다. 영치과정에서 왜 가림막도 없이 옷을 벗냐고 하자, 다시 팬티까지 전부 벗으라는 것이었다. 한 교도관은 책상에 앉아서 나를 보고 지시를 했고 또 한 교도관은 내 옆에서 영치 보조역할을 하며 나를 보고 있었다.

 

순간 아, 아직 멀었구나, 저 검신기계는 왜 도입했는지 의아한 순간이었다. 솔직히 나는 수치심보다 분노가 먼저 일었다. 입소 순간부터 벌거벗고 이 놈들과 한판 떠야하는가, 순간 고민했으나 잠시 참기로 하였다. 대신 교도소의 모든 비정상적 행정을 다시 생생한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일이 앞으로 또 하나 주어진 나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난 번에 교도소에 들어왔을 때도 교도소가 법을 편법적으로 안 지키는 것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고 교도소부터 법을 지키라고 수없이 요청하였다. ‘양심수를 위한 수용자 처우에 관한 법’이라는 일명 ‘양심수 감방 길라잡이’를 책으로 낸 적이 있다. 이번에 개정판을 내야 할 것 같다.

 

일단 서울구치소가 입소과정에서 ‘검신’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알려주어야 할 것 같다. 개선이 없다면 소송대상이 된다.

 

1) 입소과정에서 체포, 구속, 차후 재판관련 공식서류는 영치하지 말고 바로 지급해야 한다.

 

2) 검신과정에서 입소자 수치심을 유발하지 않게 검신 담당을 따로 배치하며 검신 기계를 활용하며 한다.

 

3) 영치과정은 검신과정이 아니다. 따라서 영치 담당 교도관이 그 앞에서 ‘옷을 팬티까지 벗으라’는 지시는 하지 말아야 한다. 대신 새로운 관급 팬티와 런닝을 주고 ‘가림막이 있는 장소’에서 ‘갈아입고 나오시라’고 요청해야 한다. 현장에 가림막이 있으나 이들은 엉뚱한 곳에 가림막을 치고 있었다. 아마도 가림막을 치라는 지침은 있는 모양이다.

 

묻고 싶은 말이 있다. 이명박, 이재용, 박근혜가 이 구치소에 입소할 때, 이들도 이렇게 입소했는지 묻고 싶다.

 

잘하고 있는 것도 보였다. 교도관 말투가 지시체, 명령체, 반말들이 사라지고 ‘경어체’로 바뀌었다.

 

입소 절차를 마치고 1.75평 좁은 방으로 들어왔다. 아~ 이 방으로 내가 다시 들어왔구나. 15일간 코로나 격리 사동에 있다가 일반 사동으로 옮긴다고 한다. 방의 크기는 대략 싱글침대 크기 정도로 보면 된다. 싱글침대 위 공간에서 하루종일 생활한다고 보면 된다. 서울구치소는 군사정부 시절 만들어져서 일제 형무소의 징벌적 하드웨어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큰 창이 있어서 계절과 바람과 하늘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서설이 너무 길었다. 이번에는 국가보안법 세 번째 이야기로, 이 법이 제 1조 1항에 명시한 ‘국가안전’을 어떻게 이 법 스스로 위태롭게 하는지 알아보려 한다.

 

국가보안법이 적대적 냉전논리로 북을 국가나 정부가 아니라 반란단체(반국가단체)로 규정하며, 이것이 모든 비상식과 불행의 시작이라는 점은 지난 번에 얘기했다. 오늘은 남한은 ‘정부’이고 북한은 ‘반란단체’라는 규정과, 이 논리로부터 생겨난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라는 비현실적 주장과 법적 규정은 전부 수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얘기하려 한다. 즉 한반도에는 통일과정에서 과도적으로 불가피하게 존재하는 남북 2개의 정부를 모두 인정하고, 그 방향에서 통일과 남북관계를 다루어야 한다는 점을 얘기하려 한다. 만약 그렇지 않고 국가보안법과 같은 적대적 대결 논리와 체제 대결이 계속된다면, 대한민국의 국가안보와 국민생활 안정은 크게 위협받을 것이며 군사적 긴장과 전쟁위기는 반복될 가능성이 높게 될 것이다.

 

또 국가보안법과 대한민국 ‘한반도 유일합법정부론’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유일한 평화적 통일방안인 ‘연방연합제’ 통일 방안을 부정하고 있다. 연방연합제(또는 연합연방제) 통일 방안은 남북 정상이 합의한 6.15공동선언 2항에 기초한 유일한 평화통일 방안으로 나는 생각하고 있다.

 

정전협정 70년이 가까이 되면서 시대도 격변했고 세대도 바뀌었다.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남북을 동시에 합법정부로 인정하고 있다. 또 남북관계도 변화하는 현실에 맞게 서로를 상호인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현실적으로 정부로 인정하고 있으며, 북도 대한민국을 현실적 정부로 인정하고 있다. 그 결과물로 나타난 결실이 6.15선언, 10.4선언, 4.27판문점선언이다.

 

이미 모든 현실은 한반도에 존재하는 남북 합법정부를 사실상 인정하며 멀리 나간지 오래되었는데, 국가보안법과 헌법의 일부 조항은 여전히 70년전에 머물러 있다. 이것이 국민들의 법 상식과 정서에도 크게 괴리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국가보안법과 공안당국의 국가보안법 공소장이 70년 이상 앵무새처럼 외우고 있는 북한 대남 적화통일전략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남한의 통일방안 역시 점차 바뀌어왔다.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보자.

 

남한도 자본주의 방식의 흡수통일 대신에 남북공존을 모색하는 연합제(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방안을 내놓기 시작했으며, 김대중 정부는 이러한 흐름의 한계를 약간 넘어선 6.15선언 통일방안까지 북과 합의했다.

 

남한이 그동안 주장한 ‘연합제’ 통일방안은 사실상 통일방안이라기보다는 남북이 분리된 독립국가연합에 가까웠다. 독립국가연합은 통일된 국가가 아니다. 분단된 남북 국가가 오히려 그대로 영구합법화 될 수도 있는 위험성이 있는 방안이다.

 

우리가 6.15선언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상호 정부를 인정할 뿐 아니라 북의 ‘연방제’와 남의 ‘연합제’가 갖는 공통성을 기초로 ‘하나의 나라’로 통일국가를 이루자는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국가보안법 공소장 공식인 북한의 ‘적화통일전략’의 허구성에 대해서 얘기하려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러한 북의 전략은 현실에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가능하지도 않은 허구적 개념이다.

 

적화통일전략이란 북한이 남한을 ‘사회주의 체제’로 전복해 통일한다는 전략, 즉 사회주의 ‘제도 통일전략’을 의미한다. 북이 현재 주장하는 통일방안은 ‘적화통일방안’이 아니라 ‘연방제’ 통일방안이다.

 

공안당국은 연방제 통일방안도 적화통일전략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터무니 없는 이야기다. 정확히 말하면 연방제 통일방안은 적화통일(또는 제도통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 제안한 ‘남북 체제 공존형’ 통일방안이다. 쉽게 말해 연방제 통일방안은 현존하는 남한 자본주의와 북한 사회주의를 그대로 공존시키며 하나의 나라 안에 각자 남북 자치정부를 두자는 합리적 제안이다.

 

연방제 통일방안이 적화통일전략이라거나, 위장평화 통일전술이며 숨은 목적이 따로 있다는 국가보안법 공소장의 앵무새 주장은 어떤 통일도 반대하는 분단 기득권 세력, 분단 영속주의자들의 궤변일 뿐이다.

 

다음은 한국진보진영의 사회운동과 통일방안 역시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상당히 변하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려 한다. 한국 진보의 통일 방안은 ‘평화적 통일방안’ 외에는 없으며 무력 통일을 수행할 의향이나 능력이 현실적으로 없다.

 

한국 진보는 대체로 남북체제 공존형 ‘연합연방제’ 통일에 동의하는 편이다. 한국 진보 중에 남한체제를 사회주의로 전복하여 북과 통일하자는 주장은 없으며 들어 본 적도 없다. 오히려 통일운동 자체에 관심이 없는 사회주의자나 진보세력은 좀 있는 편이다. 따라서 적화통일전략은 남북 어디에도 현실적 정치주장이나 세력으로 존재하지 않는 허구적이며 가상의 주장일 뿐이다.

 

나 역시 남한 적화통일, 즉 통일을 위해 남한을 사회주의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치도 가능치도 않다고 생각한다. 즉 나는 ‘적화통일 반대론자’이며, 남북공존형 통일인 ‘연방연합제’ 통일 찬성론자이다. 크게 보면 남북 정상이 합의한 6.15선언 2항의 통일원칙을 가장 수준이 낮은 연방제 통일방식의 하나로 해석하고 지지한다.

 

다음은 한국 진보가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를 보는 관점이나 입장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정부 수립 당시 남로당은 남한 단독정부를 처음부터 부정하였다. 그러나 현재 이러한 관점, 즉 대한민국 정부의 정체성을 원천부정하고 체제 전복하려는 한국 진보세력은 거의 없다고 본다. 특히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사독재 정권이 무너진 이후 세대가 바뀌고 민주화, 자주화 운동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체제전복 운동은 거의 사라지고 진보적 정권교체 운동으로 전환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2000년대 이후 한국 진보세력 중에서 ‘내란’ 또는 ‘무장투쟁’ 등 변란의 방식으로 정부를 전복하자는 주장이나 세력을 들어본 적이 없다. 대신 한국 진보의 투쟁목표와 방법도 ‘선거’와 ‘대중투쟁’ 중심으로 바뀌었다. 즉 대중투쟁과 선거를 통해 한국 정부를 좀 더 자주적이며 민주적 정권으로 교체하자는 흐름이 대세가 되었다. 부분적으로 대중투쟁을 강조하며 ‘전 민중항쟁’ 수준으로 대중투쟁의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은 있어도 무장투쟁으로 정부를 전복하자는 주장은 2000년대 이후 들어보지 못했다.

 

즉 한국 진보의 주요한 정치노선은 대한민국 체제 전복이나 타도 전략과 무관하며, 대한민국 정부를 더 높은 수준의 자주적 정부, 민주적 정부로 교체 전환하자는 노선이다. 그리하여 유일한 평화통일 방도인 연방연합제 통일을 평화적으로 실현하자는 입장이다.

 

시대에 뒤떨어지고 현실에 맞지 않는 국가보안법 체제와 한반도 유일합법정부론은, 유일한 공존형 남북평화 통일방안을 전면 부정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누구도 원치 않는 남북 긴장고조와 무력통일 가능성을 부추겨서 대한민국 국가안보와 국민생활 안정을 갈수록 위협하는 존재가 되고 있다.

 

한반도 주변 강대국 어느 나라도 남북 통일을 바라는 나라는 없다. 특히 미국은 한반도 분단의 장본인이다. 중국과 러시아도 우리의 통일을, 즉 새로운 통일 강대국이 출현하는 것을 달가와 하지 않는다.

 

일제로부터 나라를 잃었을 때 독립이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열망이었듯이, 나라가 외세로부터 분단되었을 때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숙제는 통일이다. 다음 세대는 평화 번영의 통일 강대국 시대에 반드시 살아야 한다.

 

나의 옥중 통일 이야기는 매주 재판이 끝날 때까지 계속 될 것이다.

 

추신: 감옥으로 전자우편 서신을 보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인사 드립니다. 큰 힘이 되었습니다.

 

2021.6.8. 서울구치소. 이정훈

 

▲ 이정훈 연구위원의 여섯 번째 옥중편지  

 

[옥중편지] 6. 국가보안법 7조는 관심법이다!

 

조사 32일째, 서울구치소에서 

 

비정상적 교정행정과 '검찰조사 일시중지' 요청

 

국정원, 경찰 조사 20일에 이어서 검찰조사가 10여일째 진행중이다. 6월 14일 월요일에도 검찰조사가 예정되어 있으나, 나는 심신상태이상으로 ‘검찰조사 일시중지’를 요청하였다.

 

내 심신상태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국정원, 경찰, 검찰조사 때문이 아니다. 서울구치소의 비정상적 교정행정 때문이다. 복잡하지 않은 문제를 처리하지 않는 구치소 행정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문제는 간단하다. 서울구치소에 들어온 이후 야간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기 때문이다.

 

원인도 간단하다. 각 방마다 설치된 인터폰 스피커가 수시로 고장상태라, 야간에 스피커 기계음의 요란한 삑삑거림 소음으로 도무지 잠을 잘 수 없는 것이다.

 

들어보니 내 방뿐 아니라 여러 사동 여러 방에서 동일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것은 피할 수 없기에, 수면방해를 넘어 일종의 정신고문에 가깝다.

 

이미 일주일 전에(6월 7일) 서면(보고전)으로 개선책과 소장과 보안과장 답변을 요청하였으나 일주일이 지나도 개선도 답변도 없다.

 

시설이 고장났으면 임시대책을 세우든지, 일단 수용자 ‘수면방해’와 ‘소리고문’은 중지시키는 것이 정상 아닌가? ‘참으라, 귀막고 자라’는 말이 정상인가?

 

만약 아파트에서 관리소 인터폰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그날로 개선되었을 것이다. 이리 방치한다면 관리소장은 당장 파면감이다. ‘잦은 고장에 불러도 업체에서 오지 않는다’고 하는데 누가 그런 업체와 계약하고 시공하라고 했는가? 수리 전까지 임시대책을 마련하는 지침을 내리는게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일인가?

 

여하간 이런 상태가 10일 이상 지속 되면서 수면 부족과 소리 고문으로 인한 심신 이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만약 이런 상태가 계속 방치된다면 나는 검찰 수사와 재판을 정상적으로 받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일단 검찰 ‘조사 중단’을 요청했다. 차후 정상적 재판을 받을 수 없는 문제와 그에 대한 피해보상과 이해할 수 없는 비정상적 구치소 행정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물을 예정이다.

 

사람을 구속했으면 제약이 있더라도, 소리고문 없이 잠을 제대로 잘 수 있는 환경은 마련해주어야 정상 아닌가? 인권이 도대체 무엇인가?

 

국가보안법 이야기 네 번째

 

수면부족과 소음 스트레스로 정신이 맑지는 않으나 네 번째 국가보안법 이야기는 계속 이어가야겠다.

 

이번에는 이른바 ‘이적표현물’과 국가보안법 7조의 고무, 찬양, 동조와 관련한 내용에 관한 얘기다.

 

국가보안법 전체가 근대법의 원칙인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벗어나고 있지만, 특히 7조는 법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고무줄 법, 관심법(觀心法: 사람의 속 마음을 읽는 법)으로 악명 높다. 법은 ‘자’와 같은 엄밀성, 객관성을 생명으로 하는데, 이 법 조항은 사람의 행위가 아닌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추측하고 재단하며 처벌의 범주를 손오공의 여의봉처럼 맘대로 줄였다 늘였다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에 따라, 경우에 따라 그때 그때 법 적용이 다르다.

 

가령 내가 ‘주체사상 총서’나 김일성 주석의 ‘세기와 더불어’를 소지하고 이에 관한 글을 쓴다면 이것은 이적표현물 소지, 배포죄에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나의 ‘주체사상 독후감’인 ‘주체사상 에세이’가 그렇게 기소대상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 철수가 같은 책을 소지하고 유사한 글을 써도 ‘이적표현물’로 걸지 않을 수 있다. 그 판단은 공안당국 마음이다. 공안당국이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판단해서 ‘이적행위’와 ‘이적표현물’이라 결정하면 기소대상이 되는 것이다.

 

근대 법이론에 따르면 최소한 ‘생각’이 아니라 ‘생각의 결과’가 행위로 나타날 때, 사람들에게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이 될 때 죄로 성립되는데, 이 법은 그냥 읽고 소지만 해도 죄가 되는 법 아닌 법이다.

 

이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국가보안법은 4~5페이지 분량으로 그렇게 길지 않으나, 처음 만들 때부터 워낙 졸속으로 만들어서 이상한 표현이 적지 않다.

 

그중 대표적 문구가 “~한다는 정을 알면서”이다. 아마도 정은 한자 정(情)을 뜻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일상적으로 잘 쓰지 않는 말이지만, 법률용어로도 거의 나오지 않는 희귀한 용어이다. 세어보니 국가보안법 전체에 이 구절이 무려 8번이나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한마디로 국가보안법은 ‘정을 알면서 법’이다.

 

‘정을 안다’는 말은 북한(조선)이 반란단체(반국가단체)라는 사정(事情)을 알면서, 북 주민(반국가단체 구성원)을 만나고 반란단체가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 동조, 고무, 찬양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참고로 ‘정’을 안다는 표현은 국어사전을 찾아봐도 없는 용어로 ‘사정, 정황’을 안다는 의미로 파악된다.

 

그런데 문제는 만약 시대의 변화와 함께 사람들이 그 ‘정’을 모르거나, 그 ‘정’에 대해 다르게 판단한다면 이 법은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이다.

 

실제로 나는 북한(조선)을 반란단체(반국가단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북은 정부를 참칭한 반란단체가 아니라 헌법에 따라 움직이는 정부이며 국가라고 생각한다. 또 우리 민족의 절반으로 헌법이 정한 통일과 상생의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또 이러한 생각과 판단은 나뿐 아니라 상당수 일반 국민들의 판단이기도 하다. 즉 어느 순간부터 이 관심법의 전제로 되는 ‘정을 알면서’가 무너지고, 그 정을 모르거나 그 정을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미 ‘~정을 알면서’ 규정은 시대와 더불어 사문화된 문구로 되었다.

 

형법의 내란, 외환죄가 ‘무장폭동’이라는 구체적 행위를 처벌하려 한다면, 국가보안법 7조는 사람들의 내면의 생각과 판단, 사상과 표현의 자유 전반을 포괄적으로 처벌한다.

 

공안당국이 이 법으로 내가 저술한 ‘주체사상 에세이’와 ‘북 바로알기 100문100답’(공저)을 기소하려면, 적어도 나는 나의 행위가 ‘국가존립과 안정’,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情)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나는 북이 반란단체라는 것을 부정하고 있으며, 반대로 평화통일과 국가안정, 자유민주주의적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확대할 목적으로 이러한 활동을 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공안당국이 나를 기소해 처벌하려면 나의 실제 생각과 목적과는 다르게, 북한의 대남적화통일전략에 따라 내가 책을 저술했다는 70여년 국가보안법 ‘기소 공식’에 나의 생각을 억지로 끼워 맞추어야 한다. 나의 숨은 ‘적화통일’ 의도를 찾아내어 공소장을 구성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평소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해왔다.

 

1) 남,북,미(중) 평화협정 체결하고 주한미군은 철수해야 한다.

 

2) 한미 예속관계의 핵심인 ‘군사주권’을 회복해야 하며, 그 첫 과제가 ‘군 작전지휘권’ 반환이다.

 

3) 평화통일의 방도는 ‘연방제’ 또는 ‘연방연합제’(6.15공동선언 원칙)가 유일한 대안이다.

 

이 주장은 나의 평소 일관된 주장이기도 하지만, 한국 진보 다수가 주장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러한 나의 주장이 한국을 미국의 신식민지로 규정하는 북의 주장이나, 적화통일전략과 같아 이적행위, 이적표현이 된다는 것이 공안당국 공소장의 관행적 요지이다.

 

그런데 이러한 공소장 공식이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왜곡하는 것이 있다. 한국 진보는 한국 사회운동에 대해 주체적이며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한다는 점이다. 한국 진보의 ‘사회변혁운동론’, ‘통일방법론’, ‘대미관’은 다양하며, 북의 주장과 유사한 주장도 있다. 그러나 한국 진보는 북의 주장을 단순히 반란단체의 주장으로 보지 않는다. 합법적 국가와 정부의 주장과 입장으로 해석한다. 중국, 일본 등 주변국의 주장과 성명과 같은 차원에서 받아들이고 해석한다.

 

국가보안법은 북의 성명서를 ‘삐라’ 수준의 이적표현물로 해석하지만 나는 공식 정부의 입장으로 해석한다. 한국 진보가 북의 주장에 대해 독자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하는 것은 한국 진보 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 문제이다.

 

6.15선언, 10.4선언, 4.27판문점선언은 주로 북의 제안을 받아들여 남측이 이에 ‘동조’해서 만든 결과물이다. 그것을 남과 북에서 온 국민과 전 민족이 함께 고무, 찬양하였다. 전부 국가보안법 위반 대상이다.

 

나는 북한(조선)이 일본의 후안무치한 위안부(성노예) 문제, 독도 문제 처리에 대한 ‘은혜를 배은망덕으로 갚는 섬나라 족속들’이라는 혹독한 비판을 동조, 고무, 찬양한다. 북의 이스라엘 비판과 시리아 정부지지, 미국에 대한 강도 높은 비난에 대해 적극 동조한다. 철천지 원수 일본과도 때로는 동조하는데 도대체 왜 북의 주장을 동조하면 안되는 것인가?

 

북의 주장과 같다는 이유로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70여년 탄압하고 통제한 결과, 한국에서 북에 대한 연구는 완전히 황폐화되었다.

 

대학에 있던 얼마 안되던 북한학과는 이명박, 박근혜 시절에 거의 폐과되었으며 전문연구자 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있다는 통일부 관번학자들의 주장도 앵무새 같은 ‘국가보안법’ 논리와 거의 같다.

 

실제 사실에 기초한 연구 부족으로, 주체사상, 북 조선노동당의 정책적 의도, 북 주민들의 여론에 대해서는 거의 소설과 같은 주장들뿐이다.

 

북이 ‘사과’를 ‘사과’라고 부른다고, 남쪽에서 ‘사과’를 ‘복숭아’로 부를 수는 없지않는가? 1980년대 북은 전두환 정권에 대해 ‘군사파쇼’ 정권이라고 하였고, 한국 민주진보진영도 동일하게 ‘군사파쇼’ 정권이라고 하였다. 그때도 나는 북과 같은 주장을 한다고 국가보안법으로 거의 3년 옥고를 치루었다.

 

북이 남한을 ‘미국의 신식민지’로 규정하는 표현이 타당하지 않고 거슬린다면, 문제의 원인이 되는 실제 예속적 한-미 관계문제를 해결하면 그러한 표현도 사라지게 되어 있다. 미국이 군 작전지휘권을 한국정부에 반환하고, 한국정부의 요구에 따라 미군을 배치하면 된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전쟁 발생 70년이 넘어도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한국에 넘길 의사가 전혀 없다. 오히려 이제 유령의 UN군 사령부를 활용해 ‘군 작전지휘권’을 영구히 소유하려 하고 있다.

 

한 나라의 자주권 중에서 군사주권처럼 중요한 것이 어디에 있는가? 한국 대통령은 한국 국민의 생사존망이 걸린 ‘전쟁개시’ 권한이 없다. 전쟁을 막을 군사적 권한도 없다. 이것을 남에게 맡기는 바보 나라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는가? 군사주권이 없으면 그것이 정치, 외교적 주권도 침해하며 경제적 종속으로 이어지는 것도 상식이다.

 

세계 경제 10위 대국 한국이 왜 아직까지 미국에 의존해 살아가며 제 나라 하나 지키지 못하는가?

 

나는 ‘민족공조론자’이다. 역사상 어느 민족도 한반도에서 우리 민족을 위해 들어온 외세는 없다. 있다면 우리 민족을 분할하고 지배하기 위해, 제 잇속을 챙기기 위해 들어왔을 뿐이다. 남북의 분열은 일시적이며, 다시 통일될 우리 민족은 영원하다.

 

평화협정 체결하고 마지막 외국군대 주한미군은 철수되어야 한다. 그래야 미국에 빌붙어 사는 한국 사대주의자, 분단 기득권 세력들이 사라지며 한국의 군사, 정치적 자주성이 회복되고 한국 민주화가 더욱 빠르게 진척된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나의 저술물들은 ‘이적표현물’이 아니다.

 

‘통일표현물’들이다.

 

2021.6.14. 서울구치소에서 이정훈

 

▲ 이정훈 연구위원의 일곱 번째 옥중편지  

 

[옥중편지] 7. 새로운 청년세대가 만들어 갈 통일을 꿈꾸다

 

조사 41일째, 통일의 꿈

 

6월 23일, 조사 41일째이다. 검찰은 조사기간을 다시 10일 더 연장하였다. 결국 공안당국은 총 조사기간 50일을 다 쓰고 있다. 국가보안법에만 특별히 있는 50일 조사기간을 아무리 비정상적이고 반인권적 조사기간이라고 지적해도, 법이 있는 한 이렇게 쓰게 된다.

 

조사 40일만에 처음으로 폐쇄된 좁은 방을 나와 하늘을 보며 운동을 했다. 조사기간 40일 동안에 운동시간을 전혀 보장하지 않는 종로서 유치장 구금시설과 여기 서울구치소의 행정편의주의적 교정행정에 대해 기록하고 시정을 요청하고 있다. 인권이고 민주주의고 저절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편법, 불법과 비정상적 관행에 대해서는 모두 기록하고 면밀히 검토해서 국가인권위와 국회에 따로 진정서와 시정요청서, 실태확인조사를 요청할 것이다.

 

달력을 보니 오늘이 생일이다.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니 나의 꿈과 인생을 한마디로 얘기하면 ‘조국통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자유도 혁명도 노동해방, 인간해방도, 행복도 조국통일 없이는 가능치 않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오늘 나의 꿈, 우리의 꿈 통일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국가보안법의 반통일 논리가 어떻게 대한민국과 새로운 청년세대의 꿈을 망치고 있는가를 얘기하려 한다.

 

많은 사람들은 궁금해 한다. 통일은 과연 언제 될 것인가? 되기는 하는 것일까 내심 회의적이다.

 

통일을 원한다고 통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통일은 통일을 원하는 사람, 세력(힘), 여론이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 세력, 여론을 압도할 때, 비로소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면 그때가 언제일까?

 

나는 세대에서 세대를 이어간 긴 투쟁 속에서 이제 거의 종착역에 다다르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현실에서 통일과 반통일의 힘의 대결은 구체적 통일정책과 통일방안의 대결로 드러난다. 현실에서 주장되는 통일정책과 통일방안은 다음 3가지이다.

 

1) 첫 번째는 서로 먹고 먹히는 이른바 흡수통일과 제도통일이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전쟁과 정권전복을 전제로 한 방식으로 우리는 이미 한국전쟁을 겪었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개시할 권한을 가진 주체는 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이다. 한국 진보가 전쟁을 반대하는 것 이외에 달리 이에 개입할 의향과 능력이 없기에 이는 논외로 한다.

 

2) 두 번째는 연방제, 또는 연방연합제(연합연방제) 통일정책과 통일방안으로, 나는 이것이 유일한 한반도 평화통일방안이라고 판단한다.

 

현재 평화통일의 현실적 방도는 남과 북 상호 정부 실체를 인정하고, 그 기초 위에서 남과 북에 현존하는 제도를 용인하고 상호 민족대단결과 민주주의 원칙 하에 하나의 나라 안에 각각 남북 자치정부로 통일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 이러한 원칙에 충실한 방안이 ‘남북연방제’와 ‘연방연합제’(6.15공동선언 합의안)이다.

 

3) 세 번째 통일방안으로 ‘남북연합제’가 있다. 이것은 주로 1990년대 이후 역대 남한 정부가 주장한 방안이다. 나는 이를 ‘사이비 통일방안’이라 부른다. 이것은 통일방안이 아니라, 남북이 두 나라로 계속 공존하자는 사실상 ‘분리공존방안’ 합법화 방안이다. 결과적으로 ‘반통일’ 방안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남북관계를 한일관계처럼 다른 나라, 외국처럼 만드는 방안이다.

 

북이 반란단체가 아니라 정부라는 것을 인정한 것은 진일보했으나, 북을 외국으로 만들고 있다.

 

한국 정치, 군사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미국은 첫 번째 통일방안과 세 번째 통일방안을 지금까지 지지해왔고 한국도 따랐다. 그리고 두 번째 방안을 탄압하고 반대해왔다.

 

정확히 말하면 역대 한국 정부는 ‘흡수통일’ 이외에 다른 ‘평화적 통일방도’를 추진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사실상 현실적 통일방안을 반대하며, 남과 북이 2개의 나라로 연합하는 ‘사이비 통일방안’을 줄기차게 추진해왔다. ‘연합제’도 통일에 이르는 한 ‘과정’으로 주장하지만, 이는 ‘하나의 국호, 하나의 국기’ 아래 최소한의 남북 자치 조절기구도 부정하는 반통일 주장이다.

 

남한정부가 현실성 없는 ‘흡수통일방안’과 ‘사이비 통일방안’을 지금까지 수 십년간 추진해왔기 때문에 남한의 통일여론은 실제로 계속 후퇴를 거듭했다. 정부가 나서서 헌법이 정한 평화통일정책을 적극 펼쳐야 했으나, 정반대로 ‘통일여론’과 ‘민족통일’에 부정적 여론과 교육을 체계적으로 벌이고 유포해왔다. 대신 북을 외국처럼 대하고 교류하는 남북 경제, 문화 교류협력을 적극 권장해왔다.

 

“같은 민족이라고 꼭 통일이 필요한가? 원래 ‘민족’은 허구적 개념이다. 통일비용은 누가 감당할 것인가? 청년세대가 통일비용 부담 세대이다.” 이러한 체계적 반통일 여론을 조성한 당사자들이 분단기득권 세력과 역대 통일부이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역시 이러한 논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역사는 이를 기억할 것이다.

 

결국 대한민국 정부가 청년세대와 국민들이 ‘민족통일’을 원치 않는다는 여론을 수없이 유포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세대는 어느 순간 이 사이비 통일정책을 깨고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닥쳐올 즐거운 사변이라고 본다.

 

청년세대에서 GDP 수치는 숫자놀음에 불과하다. ‘분단전시체제형’ 한국 자본주의는 한계에 봉착했고 청년세대는 이를 절감하고 있다. 일자리, 주택 주거권, 결혼 육아, 교육 등 기본적 생존권조차 박탈하는 국가가 무슨 선진 국가의 자격이 있는가? 선진국이 아니어도 좋다. 제발 국민의 기본 생존권리를 보장하는 기본 국가부터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들 새로운 세대의 움직임이 아직은 이념성을 띠지 않고 자기 세대의 생존권 문제에 집중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들이 이 나라 근본문제로 접근해가는 것은 시간 문제이며 자명한 역사의 이치라고 본다.

 

광주민중항쟁 이후에 등장한 ‘6월 항쟁 세대’(이른바 X86세대)의 등장도 미리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때가 되면 새로운 역사의 주도세력이 새로운 시대와 함께 등장하듯 노동대중 속에서 청년대중 속에서 새로운 세력이 전면 등장할 것으로 나는 예상한다.

 

지난 세대와 6월 항쟁 세대가 그러했듯이, 이들은 기존 세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혀 다른 역사적 환경에서 새로운 역사의 주체로 설 것으로 예상한다. 새로운 역사적 환경이란 통일시대, 즉 4.27 판문점 선언을 만든 시대적 조건을 말한다.

 

4.27시대란 통일의 힘이 반통일의 힘을 넘어서는 역사적 시기라고 나는 해석한다.

 

한반도에 70여년을 누르던 반통일의 기운은 힘을 다했고, 평화, 번영, 통일의 새 기운이 압도하는 새로운 시대가 처음으로 열리고 있다고 나는 판단한다.

 

평화통일의 현실적 힘과 방도는 두 가지 흐름에 의해 결정된다.

 

1) 한국 정부를 친 통일 자주적 진보 정부로 변화시키는 것이 하나다. 이 과제는 이제 민주당과 사이비 자주 세대인 구 세대(X86세대)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들은 한국 사회 근본문제인 노동 문제, 미국 문제, 통일 문제, 사상의 자유 문제에 대해 이미 포기하였다. 낡은 사이비 자주 세대는 힘을 쓰고 새로운 세대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2) 두 번째 한반도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은 북-미관계에서 나오고 있다. 이는 북-미가 70년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협정을 맺어 북미관계를 정상화하고 미국은 한반도 문제를 남.북 우리민족에게 맡기고 더 이상 통일문제에 간섭하지 않고 떠나는 그런 힘과 힘의 충돌에 대한 분석과 예상이다.

 

이 흐름의 발전으로 4.27 판문점 선언과 6.12 북미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합의되었다.

 

이 두 가지 흐름은 서로 분리된 듯 보이지만, 서로 상승작용을 하며 세대와 세대를 이어가며, 남과 북을 이어가며 하나의 통일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통일이 반통일을 극복하고 압도하는 역사는 아무리 숨기고 감추려해도 결국 현실로 다시 떠오르는 우리 민족 현대사 최대의 지상 과제이다.

 

새 세대는 반쪽 분단전시체제 사이비 선진국 모델의 위선과 한계를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새 세대는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새 시대를 가로막는 모든 낡은 논리를 깨고 새 세상, 통일 세상의 주역으로 나갈 것으로 나는 본다. 통일 강대국으로 새로운 인류문명을 창조할 우리 남북의 새 세대를 막을 힘은 없다고 본다. 나는 단지 그것을 조금 먼저 이야기할 뿐이다.

 

2021.6.23. 서울 구치소에서 이정훈

 

▲ 이정훈 연구위원의 여덟 번째 옥중 편지  

 

[옥중편지] 8. “통일표현물/소위 ‘이적표현물’ 배포 시민행동” 발족식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현대사” 출판기념회를 축하드리며

 

그리운 동지들, 벗들 모두 안녕하신지요? 국가보안법 폐지와 저의 무죄석방을 위해 힘쓰시는 모든 분들에게 연대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감옥에서 이 책을 출간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평소, 일반 국민들은 물론이고 진보진영조차 ‘북 현대사’를 바르게 알 수 있는 교양도서가 없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 역시 잘 아시다시피 국가보안법의 폐해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절망시키는 것은 법도 법이지만, 국가보안법에 짓눌려 아무 것도 시도하지 않는 무기력한 한국 지식인 사회입니다.

 

진보적 정당, 연구단체, 진보적 지식인들도 이 비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봅니다.

 

일제에 의해 우리나라의 웅혼한 역사가 시간적으로 반토막나고 공간적으로 ‘반도의 역사’로 갇히게 된 것도 억울한데, 이제 스스로 ‘국가보안법’에 의해 우리나라 ‘북쪽’ 역사를 마치 남의 나라 이상한 역사처럼 대하면서 우리 역사를 다시 반토막 내고 있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현대사’는 남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 자신 절반의 역사입니다.

 

국가보안법에 의하면 이 책의 제목 자체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보일 것입니다. 불법 반란단체의 역사를 고무, 찬양, 미화한다고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진보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중국의 동북공정 뿐 아니라, 우리 내부의 분단 분열주의자들의 반통일 관점의 북 현대사 왜곡과도 과감히 맞서 싸워야 한다고 봅니다.

 

이 책의 공동저자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김동원 연구위원의 참신한 시도, 꼼꼼한 검토, 젊은 소장파 안광획 연구위원의 사료를 찾는 발품과 열정이 없었다면 이 책은 부실했을 것입니다. 이승규 연구위원의 참여, 한충목 대표님의 응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출간하고 보니 역사서로 흠결도 있고 부족한 것도 많지만 큰 보람을 느낍니다. 출간에 힘써주신 분들, 또 앞으로 배포에 힘써주실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통일표현물/소위 ‘이적표현물’ 배포 시민행동” 발족식을 축하합니다. 통일표현물/소위 ‘이적표현물’ 배포 시민행동이 우리나라 남북 통일 현대사 바로 알기, 사상의 자유 쟁취 운동의 한 획을 그을 것을 기대합니다.

 

저도 옥중이지만 감옥을 ‘집필실’로 삼아 진보와 자주, 민주, 통일 그리고 사상의 자유를 위한 붓대를 결코 놓지 않을 것입니다.

 

무죄 석방되어 동지들, 벗들을 다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7.3. 서울구치소에서 이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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