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칼럼] 알바에 취직할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

청년 김 씨 | 기사입력 2021/08/14 [10:55]

[노동칼럼] 알바에 취직할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

청년 김 씨 | 입력 : 2021/08/14 [10:55]

스무 살이 되면 가장 경험해보고 싶은 일 중의 하나가 바로 아르바이트였다. 

스스로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은 마치 미지의 영역에 발을 디디는 것 같은 설렘을 주었다. 공부하는 학생이 아닌 사회에 발을 디딘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 가장 인기 있었던 알바는 카페나 빵집 같은 유명한 프랜차이즈 업종이었는데 그 두 곳을 찾아가 면접을 보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카페에서 시작하게 된 첫 알바는 주말 이틀 동안 10시간씩 일했다. 커피 제조를 처음 배워보기도 하고 점장님이 잘 대해주어서 힘든 줄도 모르고 일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봐도 요즘 어느 알바 자리와 비교해도 참 좋은 곳이었다. 당시 최저시급이 4천 원대였는데 6천 원 정도의 식비도 챙겨주고, 한가해지면 앉아서 쉬라고 권유도 해주었다. 첫 알바의 기억은 그 프랜차이즈에 대한 좋은 기억이 되었다. 그렇게 알바는 나에게 첫 사회생활이자 새로운 취미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처음 시작하며 느꼈던 그 재미와 설렘이 아직 생생할 정도이다. 

 

그러나 고된 노동과 낮은 시급의 알바가 마냥 좋을 수는 없었다. 학업과 병행하기 때문에 아무리 재미있어도 알바를 하러 가는 주말이 힘들었다. 특히 시험 기간에 알바를 빼지 못하면 ‘왜 이러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바는 단순히 취미가 될 수 없는 고된 노동이었다. 10시간 동안 서 있느라 다리는 퉁퉁 부었고, 손님이 몰리는 시간엔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뛰어다니고, 가끔 만나는 ‘진상손님’ 때문에 감정소비도 크다. 알바를 하러 가야 한다는 생각에 친구들과 만남도 벅찼다. 인간관계도 단절되었다. 

 

가정형편이 넉넉지 못하다 보니 등록금을 감당해주던 부모님께 식비나 교통비, 생활비까지 받는 게 죄송했다. 적어도 내가 쓰는 비용은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알바비는 용돈이 되고, 생활비가 되고, 생계비가 되었다. 결국 알바를 그만둘 수 없게 됐고, 그렇게 알바의 굴레에 빠졌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청년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요즘에는 ’취준생‘에 ‘준’이 더 붙은 ‘취준준생’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취업을 준비하기 위해 비용을 미리 마련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취준준생이 된 큰 이유는 ‘비용부담’이다. 취업 준비에 전념하기 위해 그 기간에 필요한 생활비와 교육비, 시험응시료 등의 비용을 미리 마련해 놓는 것이다. 그렇다고 취준준생이 취준생이 되고 취직이 되는 잘 닦여진 길은 여전히 없다. 청년들은 취직의 그 아래 어딘가에서 떠돌기만 한다. 그렇게 청년들의 꿈이 바스러진다.

 

좀처럼 풀리지 않는 취업난과 사실상 인정받지 못한 취직은 알바를 강요하고 투잡, 쓰리잡을 요구한다. 결국 단시간 노동이라고 불리던 알바 자리에 취직한다. 직업적 알바가 늘어난다. 2013년 직업적으로 알바를 선택한 알바노동자가 500만 명 정도라고 한다. 지금은 그 두 배를 넘지 않았을까. 이것은 문제이다. 그냥 그렇구나 하고 지나가면 안 된다. 알바에 취직한다는 것은 최저시급 노동자가 최저임금, 저임금 노동자가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비정규직이고 또 다른 사회적 약자이다. 노동법의 빈틈인 5인 이하 사업장에 취직했다면 더 아찔하다. 보장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막도 없다. 알바가 많아지고 있는 이 사회를 누군가는 경계해야만 한다. 계층 간에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고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은 그 노동의 가치도 훼손시킨다. 

 

‘알바노동자’라는 단어가 국어사전에 등록되었다. 아르바이트 하며 생긴 소득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 또 다른 단기 계약직 비정규직 노동자의 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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