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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오 재일동포 “조국의 민주화, 조국의 통일이 재일동포와 직결된다”

김복기 통신원 | 기사입력 2021/12/06 [17:01]

김창오 재일동포 “조국의 민주화, 조국의 통일이 재일동포와 직결된다”

김복기 통신원 | 입력 : 2021/12/06 [17:01]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추억은 구름 따라 흐르고

친구여 모습은 어딜 갔나

그리운 친구여 

 

옛일 생각이 날 때마다 

우리 잃어버린 정 찾아 

친구여 꿈속에서 만날까 

조용히 눈을 감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 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추억은 구름 따라 흐르고 

친구여 모습은 어딜 갔나 

그리운 친구여”

 

“1987년 유월 항쟁 때 이한열 열사가 돌아가셨다. 그때 당시 연세대학교 학생을 비롯한 사람들이 이한열 열사를 추모해서 이 노래를 많이 불렀다고 들었어요. 6월 10일 국민행동의 날, 6월 26일 국민대행진(이었다). 6월 26일에 날짜 시간 딱 맞춰서 오사카 영사관에 대해 항의 활동을 했어요. 항의 활동할 때 체포를 당했죠. 15일 동안 오사카 구치소에 있었는데, 구치소 안에서 면회도 금지이고 신문도 읽지 못하는데... 바깥세상과 경로는 유일하게 12시에 나오는 NHK 방송, 라디오 방송만이었어요. 뉴스 방송 속에서 한 거예요. ‘오랫동안 생사의 경계를 헤매던 연세대학교 이한열 학생이 죽었다.’ 순간 독방에서 계속 울었어요. 그런 기억이 있어서 이 노래가 각별합니다.”

 

‘민족위가 만나다’ 두 번째의 주인공은 ‘나는 조선사람입니다’에 출연한 재일동포 김창오 선생이다.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김철민 감독도 함께했고, 백자 자주민주평화통일위원회 상임운영대표가 진행을 맡았다. 

 

김창오 선생은 현재 한통련(한국민주통일연합) 사무국장으로 일본에서 오랫동안 통일운동을 해온 인사이다.

 

▲ 김창오 선생(왼쪽)가 백자 민족위 상임운영대표(오른쪽)의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제공-민족위]  

 

눈물이 흐르고, 또 눈물을 흘리고

 

가고 싶던 고국 땅을 밟지 못했던 그에게 기회가 왔다. 그는 해외민주인사의 명예회복과 귀국보장을 위한 범국민 추진위원회의 노력으로 2003년 9월 19일 서울 땅을 밟았다. 그동안 일본을 방문했던 인사들이 ‘다음에는 서울에서 만납시다’라고 얘기했는데 그것이 드디어 성사되었다.

 

“한국에 가기 전날, 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인 임종인 변호사와 통화했다. (중략) 그때 임종인 변호사가 마지막에 한 말이 ‘내일 서울에서 만납시다’. 그 순간 눈물 났어요. 오랫동안 ‘다음은 서울에서’ 그렇게 10년 20년 30년 왔는데. ‘내일 서울에서 만납시다.’”

 

서울을 방문하는 날 아침에 세수하면서도 눈물을 흘리고, 기차 안에서 딸의 편지를 보면서도 눈물을 흘리고, 비행기 창문을 통해 본 조국 땅을 보면서도 울고. 공항에 도착해서도 사람들을 보고도 또 울고. 매 순간이 눈물이었던 고국 땅 첫 방문. 김창오 재일동포는 통일운동에 어떻게 나섰을까?

 

▲ 김창오 선생이 2003년 9월 19일 고국 방문 당시의 신문. [사진출처- 민족위 tv 화면 갈무리]  

 

평생 민주와 통일을 위해 살겠다

 

김창오 선생은 중학교 시절까지 우리말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그는 조선사람이라는 것을 숨기며 살아왔다. 대학에 들어간 1974년 8월, 6살 위의 친형이 자신을 불렀다. 친형은 8월 15일에 도쿄에서 8.15광복 집회에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김창오 선생은 한국 사람이란 것을 숨기며 살아서 그런 문제에 관심이 없었기에 절대 안 간다고 했다. 그 당시 중일 국교 정상화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중국 정부가 우애의 상징으로 일본에 판다를 보내주어 우에노 동물원에 판다가 있었다. 그래서 김창오 선생의 형은 도쿄를 같이 가면 우에노 동물원에 가서 판다를 보여주겠다고 다시 얘기했고, 김창오 선생은 ‘그러면 가겠다’고 한다. 그가 도쿄에 간 이유는 8.15광복 집회가 아니라 판다를 보기 위해서였다.

 

도쿄 8.15광복 집회장에 들어선 김창오 선생은 매우 놀랐다. 그는 “열기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단상에서는 아저씨들이, 내가 이해하지도 못하는 한국말로 열띤 연설을 하는 거예요. 들어보니까 조국의 장래, 민주화, 통일. 그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옆에서 설명을 해줬어요) 내가 깜짝 놀라서. 내가 아는 조선사람은 가난하고, 육체노동하고 지친 몸(으로) 값싼 소주를 많이 마시고… 야만하고 가난한 그런 모습이었어요. 영 다른 모습, 충격을 받았어요. ‘아 이런 세상이 있구나.’ 그날을 계기로 재일한국청년동맹, 한청에 참가하고 처음으로 한국말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그는 역사 공부, 특히 4.19혁명을 통해서 깨달은 것이 많았다고 한다. 김창오 선생은 “같은 나이 또래 조국의 학생들이 이렇게 살고 있고나”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한평생 민주와 통일을 위해서 결심했다”라고 한다. 공부하면 할수록 조국에 대한 사랑이 깊어졌다고 한다.

 

▲ 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의 김철민 감독(왼쪽), 김창오 선생. [사진제공-민족위]  

 

노란 리본

 

대담에서는 영화에서 김창오 선생을 본 사람들이 인상 깊었던 것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노란 리본. 지금도 그의 가슴에는 노란 리본이 달려있다. 영화 인터뷰를 할 때도 유독 눈길을 끄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노란 리본이었다. 많은 사람이 이에 눈길이 갔다고 한다.

 

“박근혜 정권 때 가장, 독재 정권 때문에 피해를 본 분들이 세월호 학생들이고 유가족이잖아요. 그렇지만 박근혜 정권하였으니까 정말 어려운 투쟁, 경찰 기동대의 탄압을 받으면서 노란 스카프, 노란 셔츠 입고 투쟁을 했죠. 그 모습을 보면서 감동 많이 받았고. ‘우리도 함께해야 한다’ 하면서 연대 투쟁해 왔는데 그 세월호 유족분들의 투쟁이 결국은 촛불시위로 발전된 거 아니에요? 그런 의미에서 촛불 혁명의 주인공은, 나는 세월호 유족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하고 연대해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항상 붙이고 다닙니다.”

 

그가 영화에서 “조국의 민주화, 조국의 통일이 재일동포와 직결된다”라고 한 말도 매우 궁금했다.

 

이에 대해 김창오 선생은 “일본에서 재일동포가 민족차별을 받고 있어요. 이걸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1945년 조국이 해방된 후는 남에 있건 북에 있건 조국 땅에 있던 동포들은 조선사람,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이유로 박해를 받는 것은 없어졌죠. 유독 식민지 종주국(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동포만이 70년 이상 조선사람이라는 것을 이유로 차별과 박해를 받는 거예요. 그 고통은 언제 끝날 수 있느냐? 그것은 통일된 조국이 일본하고 대등한 관계, 서로가 정말로 존중하는 그런 시대가 와야 민족차별이 없는 사회가 실현된다. 그런 의미에서는 조국 분단의 가장 심한 피해자가 재일동포이고, 조국통일의 가장 큰 은혜를 받는 존재가 재일동포라고 생각을 해요.”

 

대담에서는 통일이 개인의 바람이 아니라 재일동포, 온 민족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 확신하는 김창오 선생과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김창오 선생이 출연한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는 12월 9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12월 9일 오후 7시 인디스페이스에서 영화 상영 후 진행되는 ‘감독과의 대화’에서 그를 또 만날 수 있다. 이날 ‘감독과의 대화’에는 김조광수 감독의 진행으로 김철민 감독, 김창오 선생, 안창림 유도선수가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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