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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인 안영학 선수가 ‘조선적’을 간직하는 이유

박한균 기자 | 기사입력 2021/12/13 [10:44]

재일조선인 안영학 선수가 ‘조선적’을 간직하는 이유

박한균 기자 | 입력 : 2021/12/13 [10:44]

‘우리학교와 함께 하는 동포모임’(이하 우함동)은 ‘꿈은 이루어진다, 안영학 선수와의 간담회’를 12월 4일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일본에서 재일조선인 3세로 태어난 안영학 감독은 한국, 조선(북한), 일본에서 프로축구 선수로 뛰었으며, 현재는 여러 우리학교 축구팀을 방문하며 청소년들의 축구감독으로, 일본 학생들도 많이 참여하는 축구캠프의 축구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우함동은 해방 이후 현재까지 일본정부로부터 끊임없는 차별과 탄압에도 우리말과 문화를 지키고 조국의 평화와 통일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재일동포와의 교류와 협력을 도모하고자 2020년 2월에 첫 모임을 시작으로 결성된 미주동포단체이다.

 

통일뉴스에 실린 린다 모 미주 동포가 기고한 글을 아래에 소개한다. (*기고한 글은 통일뉴스 동의 하에 게재합니다.)  

 

“‘조선적’으로도 인생목표 달성할 수 있다”

[기고] 안영학 감독과의 간담회를 마치고 - 린다 모

 

미주지역에서 활동하는 동포단체 ‘우리학교와 함께 하는 동포모임(이하 우함동)’는 ‘꿈은 이루어진다, 안영학 선수와의 간담회’를 12월 4일 온라인 행사로 마련했다.

 

캐나다를 포함한 미국의 뉴욕, 엘에이, 워싱턴, 뉴저지 등 한인 밀집 지역은 물론이고 한국과 일본, 뉴질랜드, 멕시코 등 여러 지역에서까지 참여하였다. 대담 중에도 계속해서 올라오는 대화창에는 격려와 질문이 쏟아져 예상시간을 훨씬 지나 간담회를 마쳤다.

 

우함동은 해방 이후 현재까지 일본정부로부터 끊임없는 차별과 탄압에도 우리 말과 문화를 지키고 조국의 평화와 통일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재일동포와의 교류와 협력을 도모하고자 2020년 2월에 첫 모임을 시작으로 결성된 미주동포단체이다.

 

양현승 대표는 본인 스스로 어린 시절 도일을 시도했던 경험으로 현재는 미국 워싱턴에 살지만 마음속으론 항상 재일동포들에게 빚진 마음을 가지며 살았다며 안영학 선수는 곧 다가올 통일을 미리 경험한 축구 선수로서 해외동포들에게 큰 자극제가 되는 간담회가 될 것이라는 격려의 환영인사를 했다.

 

지난 10월 가나가와 우리학교의 디지털 교육장비를 위한 후원금을 전달한 우함동에 대해서 가나가와 박재수 부이사장님의 감사인사와 더불어 가나가와 학교의 현재 상황을 자세히 들을 기회도 가졌다.

 

가나가와 우리학교는 현재 총 재학생 115명 중에서 온라인 수업을 위한 기기 공급이 겨우 50명의 학생에게 지급되었고 나머지 65명의 학생은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고 하셨다.

 

일본정부는 팬더믹으로 공립학교는 물론이고 사립학교, 각종학교, 외국인학교까지 모두 인터넷 교육을 위한 지원사업을 하고 있지만 유일하게 조선인 우리학교만 제외하는 차별정책 때문에 학교의 운영에 큰 어려움이 있다.

 

이번 해외동포들의 관심과 보내준 후원금은 학교 관계자는 물론이고 학생들에게도 큰 격려가 되었고, 무엇보다 세상에 자신들만 있는 게 아니라 자신들을 지켜주고자 하는 동포가 있다는 것을 경험하는 큰 계기가 되었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가나가와 중고는 작년 11월 21일 온라인문화교류제를 학생들이 진행할 만큼 온라인과 컴퓨터 교육에 앞서나가는 우리학교다. 매년 열리는 문화교류제는 현지 일본인들도 큰 관심을 보이는 중요 행사인데 코로나 감염방지를 위하여 진행된 당일 행사에는 약 2,6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온라인 문화교류제를 관람하였다고 하는 뉴스보도도 있다.(조선신보 참고)

 

간담회는 ‘하늘색 심포니’라는 우리학교 학생들이 조국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박영이 감독님이 먼저 안영학 선수의 활동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하여 안영학 선수와 박영이 감독의 대담 형식이었고 이후 참여자들의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다.

 

일본에서 재일조선인 3세로 태어난 안영학 선수는 어린 조선인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은 축구밖에 없었고, 이왕 하는 운동을 다른 사람들보다 잘해보자고 결심하고 대학을 졸업한 이후 프로 축구 선수로 활동하면서 남북은 물론이고 일본팀 안에서도 오직 실력으로만 자신을 인정받아야 했던 마음을 나누어주었다.

 

현재는 여러 우리학교 축구팀을 방문하며 청소년들의 축구감독으로, 일본 학생들도 많이 참여하는 축구캠프의 축구코치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조선인 출신으로 한국과 조선, 일본에서 프로축구 선수로는 첫 번째 선수이며, 또한 조선인으로서 일본 프로축구로 나선 선수로는 4번째라고 한다.

 

조선에서 축구선수가 된 경위는 고 3학년 첫 평양게임에 참여하는 기회로 시작되었으며 2005년 남북축구 단일팀 구성에서 북쪽 대표선수로서 참여하게 되었다고 했다.

 

프로 축구선수로서 각 나라의 대표팀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에 대한 안영학 선수의 대답은 우리나라의 통일이 왜 필요한지, 민주정부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한반도가 분단되기 이전 ‘조선’이라는 국명으로 조부모님이 일본에 정착한 이후 조선인 4세인 독자인 아들도 ‘조선적’으로 산다. 조선적으로는 해외원정 게임이나 훈련 시에는 국제공항에서 항상 별도의 심문과 조사를 받아야 했고, 부산 프로축구팀에서 활동하는 4년 동안에는 6개월마다 일본으로 돌아가 한국으로 재입국심사를 받아야만 했다. 또한 이명박 정권 때에는 한국에서 함께 활동하던 친구들의 결혼식은 물론이고 여러 곳에서 초대장을 받았지만 아예 입국이 거부되기도 했다. 여러 어렵고 불편한 조건에도 ‘조선적’을 간직하는 이유는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자신의 모토처럼 조선인이 ‘조선적’으로도 자신이 원하는 인생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소망을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조선적’ 때문에 겪는 어려움은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지키는 장기적인 목표이기 때문이다. 재일 조선인들과 학생들은 자신들에게 관심을 두고 함께 하고자 하는 해외동포들이 있다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이번 간담회처럼 해외동포들과 함께 할 기회가 많아진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여건을 준다면 해외동포들과 동네축구라도 함께 뛰어볼 기회가 있으면 꼭 참여하고 싶다”라며 해외동포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안영학 감독과의 대담 중에 현재 일본에서 산다는 참여자는 일본에서 차별을 견디면서 살기도 힘든데 조선적으로 난관을 헤치면서도 성공한 감독님께 감사하다는 격려의 메시지가 꾸준히 올라왔다.

 

또한 조국이 분단되어 재일동포들이 감당해 내는 어려움을 처음 알게 되었다며 미안함을 올려준 분들도 많았다.

 

마지막 순서로는 가나가와 인터넷 교육을 위한 2차 후원금 모금에 대한 안내를 이용식 운영위원장님이 해주셨다. 가나가와 우리학교의 인터넷 교육시설을 위한 후원금 동참이나 문의 주시길 독려했다.

 

또한 일본 현지에서 2013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교육투쟁인 금요행동에 해외동포들의 동참과 2022년 새해 첫 행사로 1월 22일 예정된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온라인 영화 상영에 많은 참여를 부탁하며 약 2시간의 간담회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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