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액체 연료의 장단점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인 화성포-14·15·17형은 모두 액체 연료를 사용한다. 이는 고체 연료를 사용하는 미국의 미니트맨 III과 뚜렷이 다른 점이다.
우주 공간에서도 날아갈 수 있도록 만든 로켓은 외부의 산소를 공급받을 수 없으므로 연료와 함께 산화제를 실어야 한다. 액체 연료의 경우 액체 연료와 액체 산화제를 별도의 통에 싣고 연소실로 보내 연소시킨다. 고체 연료의 경우 연소관에 고체 연료와 산화제가 섞인 추진제가 들어있어 연소시킨다.
액체 연료는 힘이 좋고 정밀한 조종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엔진 구조가 복잡해 만들기 어렵고 연료와 산화제를 보관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연료는 등유, 하이드라진, 액체수소가 쓰이는데 하이드라진은 맹독성 물질이며 액체수소는 보관이 어려운 단점이 있다. 둘 다 폭발 위험도 크다. 산화제에는 불소, 질산, 과산화수소, 액체산소가 쓰이는데 불소나 질산은 부식성이 강해 금속 산화제 통을 녹여버린다. 액체산소는 보관이 어렵고 폭발 위험도 크다.
이처럼 액체 연료와 산화제는 보관이 어렵기 때문에 보통 로켓 발사 직전에 주입한다. 폭발 위험이 있어서 빠르게 주입하기도 어렵다. 연료 주입에 빠르면 30분, 길게는 24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이게 우주 로켓의 경우에는 상관이 없는데 군사 무기로는 큰 약점이 된다. 급하게 미사일을 발사해야 하는데 연료와 산화제를 주입하느라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도 기존의 액체 연료 미사일을 대체하는 고체 연료 기반의 미니트맨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개발한 것이다.
북한은 액체 연료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앰풀 방식을 도입하였다.
2021년 9월 28일 북한이 발사한 극초음속 미사일 화성-8형에 처음으로 앰풀 방식이 도입됐다. 연료통과 배관 안쪽을 유리로 씌우고 밀봉해 부식을 막은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하면 연료와 산화제를 넣은 상태로 장기간 보관할 수 있다.
액체 연료 로켓의 앰풀 기술은 1960년대 소련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R-36이 처음 도입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큰 미사일인 R-36은 발사 전에 연료를 주입하지 않고 공장에서 생산할 때 연료를 주입한 상태로 출하하며 연료 보관 기간은 5년이다. 또 다른 대륙간 탄도미사일인 UR-100 역시 앰풀 기술을 도입했는데 보관 기간이 최대 22년이다. 이들 미사일은 발사 명령이 떨어지면 곧바로 발사할 수 있다.
북한의 앰풀 기술도 이와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북한은 고체 연료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도 하고 있다.
북한은 2016년 3월 대출력 고체 연료 로켓 엔진 지상 분출 시험에 성공했다. 현장에서 현지지도를 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로켓 공업 발전에서 새로운 도약대를 마련했다”라고 하였다. 당시 개발한 엔진으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북극성-1형을 개발한 것으로 보인다. 이듬해 2월에는 지대지 탄도미사일인 북극성-2형을 발사했으며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우리의 로켓 공업이 액체 로켓 엔진으로부터 대출력 고체 로켓 엔진에로 확고히 전환됐다”라고 선언했다.
북한은 2022년 12월 15일 140톤힘 대출력 고체 연료 엔진 지상 분출 시험에 성공했다. 80톤힘인 ‘백두엔진’이나 미니트맨 III의 1.75배나 된다. 북한은 이 엔진으로 고체 연료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개발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2021년 1월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지상 고체 엔진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사업을 계획대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올해 1월 1일 공개된 노동당 중앙위 제8기 제6차 전원회의 확대회의 결과에도 “신속한 핵 반격 능력을 기본 사명으로 하는 또 다른 대륙간 탄도미사일 체계를 개발”하는 과제가 있다. 이 역시 고체 연료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 다탄두 미사일
다탄두 미사일이란 미사일 하나에 여러 개의 탄두를 장착해 한 번에 여러 목표물을 공격하는 미사일이다. 미국의 미니트맨 III의 경우 3개의 탄두를 장착할 수 있지만 전략무기감축협정에 따라 1개만 장착한다.
여러 전문가는 화성포-17형을 다탄두 미사일로 추정한다. 크기를 봐도 그렇고 이미 미국 본토 전역을 공격할 수 있는 화성포-15형이 있는데 굳이 더 큰 미사일을 개발한 이유를 생각해봐도 다탄두 미사일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2021년 1월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국방과학연구 부문에서 다탄두 개별 유도 기술을 더욱 완성하기 위한 연구 사업을 마감 단계에서 진행” 중이라고 하였다. 또 2022년에만 화성포-17형을 2번 발사해 모두 성공했는데 두 번째 발사 성공 직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또 다른 최강의 능력을 확보”했다고 하여 두 번째 발사를 통해 다탄두 시험을 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한호석, 「모의열핵탄두 비행 흔적과 붉은기 중대」, 자주시보, 2022.11.28.)
● 차량 이동식 발사대
미국과 달리 북한은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차량에 싣고 다니면서 바로 발사한다. 차량 이동식 발사대는 적이 언제, 어디서 미사일을 발사할지 알 수 없게 하여 요격 등 대응을 어렵게 만든다. 현재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차량 이동식으로 운용하는 나라는 북한 외에 러시아, 중국뿐이다.
미사일을 싣고 다니다가 바로 발사까지 할 수 있는 차량을 TEL이라 부른다. TEL을 만드는 기술도 미사일 못지않게 어려운 기술이다. 일단 어마어마하게 크고 무거운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싣고 달려야 하며, 미사일 발사 시 고열과 진동도 견뎌야 한다. 전쟁 시에는 도로가 파괴될 수 있으므로 비포장도로나 들판을 달릴 수도 있어야 하며 좁은 도로에서 회전할 수 있게 회전반경도 작아야 한다.
북한이 초기에 공개한 TEL을 두고 국내 전문가들은 중국산 차량을 개조한 것이라는 분석을 주로 했다. 하지만 화성포-17형 발사 차량은 바퀴가 11축이나 되는 세계 최대 TEL이라서 북한이 자체 개발했다는 것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한편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 차량은 너무 커서 기동성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있다. 시사인 남문희 기자는 “중국과 러시아에서 이동식 미사일을 싣는 차량의 최대치가 보통 바퀴가 8개짜리”라면서 “8축 차량만 해도 기동성에 제약이 있다. 회전 반경이 커 웬만한 도로에서는 주행하기 어렵다”라고 했다. (「북한 미사일 엔진은 뜯어볼수록 미스터리」, 시사인, 2017.12.25.)
그런데 북한이 2022년 3월 24일 화성포-17형 발사차량을 운행하는 영상을 보면 의외로 회전 반경이 작아서 폭이 10미터가량인 도로에서도 90도 회전을 한다. 길이 30미터에 달하는 11축 차량이 저런 곡예 운전을 할 수 있는 것은 앞쪽 바퀴 4개 축이 동시에 회전하기 때문이다. 영상에서 확인할 수는 없지만 뒤쪽 바퀴 축도 회전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TEL도 8축 가운데 앞뒤로 3축씩 총 6축이 회전할 수 있다.
차량 바퀴 배열을 보면 뒤쪽 3개 축과 나머지 사이에 칸막이 같은 게 있는 것으로 보아 뒤쪽 3개 축이 회전하지 않을까 싶다. 이 분야에서 가장 기술력이 높은 회사는 독일회사로 9축 중 7축을 동시에 작동할 수 있다고 한다. 북한이 11축 중 7축이 작동한다고 하면 세계 최고 기술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차량을 설계하려면 바퀴마다 회전 각도가 달라야 한다. 방향을 조종할 수 있는 차축을 늘리기는 상당히 어려운 기술이다. 오스트리아의 민간연구단체 오픈뉴클리어네트워크는 2020년 10월 16일 보고서 「북한의 신형 ICBM과 수송 트럭」에서 여러 축을 효과적으로 작동시켜 운전할 수 있게끔 미사일 발사 차량 조종 체계를 설계하고 제조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도전 과제라고 설명했다. (이상 회전반경 관련 내용은 이형구, 「화성포 17형」, 자주시보, 2022.3.29. 참조)
한편 2022년 11월 21일 화성포-17형 개발 관련 과학기술자, 노동자, 일꾼은 공동명의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11월 27일에 공개한 편지 내용을 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발사대차의 자행화 문제와 지하 발사장 준비 문제”를 지도하였다고 나온다. 이를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TEL 개발을 직접 지도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 지하 발사장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지하 발사장이 단순히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실은 TEL을 보관하는 지하 보관 시설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미니트맨 III처럼 지하에서 곧바로 발사하는 발사장을 말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지하 발사장’이라고 하면 당연히 후자를 의미한다. 여러 장점이 있는 TEL 기술이 이미 있음에도 굳이 고정식 지하 발사장을 준비하는 것은 특별히 구상하는 모종의 핵미사일 전략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음 편에서는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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