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8일은 북한 인민군 창건 75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북한은 이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병식을 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전날 인민군 장령들 숙소를 축하 방문하고 기념연회에도 참석하였으며 열병식 다음 날에는 열병식 참가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 전체 과정을 통해 북한 사회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1. 느낌
1) 화려하다
이번 열병식 영상을 보면 매우 화려함을 느낄 수 있다. 최근 북한의 대형 행사들이 대체로 매우 화려한데 이번 열병식은 특히 그러했다. 형형색색의 조명이 열병식이 열린 김일성광장을 대낮처럼 비추었고 불꽃놀이도 다채로웠다. 열병 대열도 수많은 깃발을 동원해 화려한 분위기를 연출했으며 ‘애국가’(북한 국가)를 비롯한 음악의 편곡도 강렬했다. 항공기 편대의 비행도 전보다 더 화려한 불꽃을 보여주었다.
열병식 전날 있었던 기념연회장도 굉장히 화려했다. 행사장을 매우 고급스럽게 꾸며놓고 음식도 최상급으로 준비하였다.
행사의 화려함은 환희와 번영을 상징하는 듯했다. 자기 군대를 만든 지 75년이 되었다는 기쁨과 경제적 여유로움을 행사에 최대한 담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열병식에 참여한 군인들의 표정에서도 드러났다. 비장함과 긴장감보다는 여유롭고 즐거운 모습이 얼굴에 가득했다. 열병식을 본 많은 이들이 군인들의 웃는 표정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하였다.
2) 질서 정연하다
열병식은 어떤 행사보다 딱 맞아떨어지는 질서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번 열병식에서도 북한은 한 치의 어긋남 없는 정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행사 초반 열병 대오가 광장에 도착하자 9시 정각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석단으로 입장하였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걸어서 행진하다보면 이동시간을 계획대로 맞추기가 매우 어렵다. 너무 일찍 도착하면 군인들이 추위에 떨며 9시가 되기를 기다려야 하고, 행사의 흐름도 끊어진다.
또 광장 바닥을 보면 줄을 맞추기 위해 일정한 간격으로 표시가 되어 있는데 정면을 주시하며 걸어가는 모든 군인의 발바닥이 신기하게도 정확히 표시를 밟는다. 매우 강도 높은 훈련을 했기에 가능한 모습이다.
질서는 규율성과 통일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규율성과 통일성은 군대의 위력을 나타내는 주요 징표다. 총탄과 포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는 병사 한 명의 실수나 개별 행동이 부대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곤 한다. 그래서 지금도 군대에 가면 가장 먼저 제식훈련부터 받는 것이다. 북한의 열병식을 보면 북한 군대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3) 충성과 애국으로 가득하다
행진을 시작하기 전에 전 부대가 한 목소리로 구호를 외쳤는데 내용은 ‘김정은 결사옹위 / 백두혈통 결사보위 / 조국 통일 / 만세’였다. 그리고 열병 대오가 주석단 앞을 지날 때도 이 구호를 반복해서 외쳤다.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입장할 때와 퇴장할 때도 광장 전체가 진동할 정도로 큰 환호성과 박수가 멈추지 않았다. 북한 군인들이 자기 최고사령관에게 충성을 다하겠다는 다짐이 열병식 내내 울려 퍼진 듯했다.
또한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국기게양식이 진행되자 모두가 ‘애국가’를 따라 부르며 일부는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영상에 나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가사를 음미하듯 눈을 감고 노래를 불렀고 귀빈석에 있던 자제와 리설주 여사도 노래를 따라 불렀다. 공군 부대가 열병 비행에 앞서 국기 앞에서 결의를 모으는 의식을 치른 것도 인상적이었다. 관중들도 북한 국기를 흔들며 환호하였다.
이날 열병식은 인민군 창건 기념일이라는 성격에 맞춰 항일유격부대를 상징하는 대오부터 시작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민군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구성이 되어 있었다. 이를 통해 삶의 터전인 나라의 중요성을 더욱 절절히 느끼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4) 자긍심
환희와 번영을 보여주는 화려함, 높은 수준의 규율성과 통일성, 충성과 애국으로 가득한 분위기를 종합하면 자기 것에 관한 자부심, 자기의 ‘위대성’에 관한 긍지가 우주에 가득 차 폭발할 것 같은 기운이 열병식 광장에서 끓어오르는 듯했다. 북한 열병식이 대체로 이런 기운을 내뿜지만 이번 열병식은 특히 강렬했다.
2. 유일
북한의 이번 인민군 창건 75주년 행사들은 세계에 없는 유일한 행사라 할 수 있다.
1) 종합 정치·군사 축전
열병식은 대표적인 군대 행사다. 하지만 북한의 열병식은 단순한 군대 행사라기에는 정치 행사의 성격이 강하다. 즉, 종합적인 정치·군사 축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열병식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연설을 하지 않았지만 대신 전날 기념연회에서 연설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연설에서 “오늘과 같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우리 군대가 조선노동당의 무장력, 계급의 전위로서 무한한 힘을 떨치고 있는 것은 철두철미 혁명무력의 1세들이 총대에 재웠던 붉은 넋과 숭고한 사명, 견결한 혁명정신과 결사 항전의 투지가 5세, 6세에 이른 오늘에도 조금도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여 ‘당의 군대’로서 인민군의 역사와 성격을 강조하였다.
이 내용은 열병식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항일유격대 시절부터 한국전쟁까지 대표적인 인물들의 사진, 당시 활약한 부대를 상징하는 종대, 당시 사용한 무기가 등장하였고 현재의 주력 부대들이 지나간 뒤 행진 종대의 마지막을 혁명학원 학생 종대로 구성한 것은 1세대의 정신을 후대가 계승한다는 의미를 상징한다.
또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운용하는 붉은기 중대의 깃발에는 “조선 인민의 철천지원수인 미제 침략자들을 소멸하라!”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미국을 겨냥한 무기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런 행사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중국과 러시아도 주요 계기에 대규모 열병식을 한다. 하지만 주로 군대의 기세나 무기를 과시하는 군사적 의미가 강하며 정치 행사의 성격은 약하다. 자본주의 국가들은 갈수록 대규모 열병식을 줄이는 추세다. 대신 대규모 대중음악 공연을 많이 한다. 초대형 공연에는 1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모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공연의 내용은 주로 개인의 쾌락에 관한 것이지 애국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2) 규모
북한 열병식 규모도 세계 최대 수준이다. 군인이 약 2만 명, 관중이 약 10만 명 정도다.
2019년 10월 1일 열린 중국의 신중국 수립 70주년 경축대회 열병식은 중국 사상 최대 규모의 열병식이었는데 군인이 약 1만 5천 명, 관중 10만여 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러시아는 보통 5월 9일 전승절(2차 세계대전 종전기념일)에 열병식을 하는데 많을 때 1만 2천 명 정도의 군인이 참여했다고 한다.
거의 매년 세계 최대 규모의 열병식을 거행하려면 국력이 그만큼 받쳐줘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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