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2. 예상되는 윤석열 정권의 대처 방식
지금 정부는 전기요금, 가스요금 인상을 계속 미루고 있다. 적자가 너무 심해 인상은 해야 할 것 같은데, 인상하면 지지율이 떨어져 내년 총선에 불리할 것 같아 결단을 못 하고 있다. 하지만 공공요금 인상은 지금 한국에 닥친 경제 위기 태풍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다가오는 경제 위기 태풍을 어떻게든 피해 갈 대책을 고심하고 있을 것이다.
1) 언론 통제
윤석열 정권은 이미 집권 초반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언론 통제를 하면서 독재 정권의 길에 들어섰다. 경제 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 언론을 더욱 틀어쥐고 국민의 관심을 돌리려 할 것이다. 물론 조중동 같은 언론은 알아서 정권 비호에 앞장설 것이다.
그런데 진보개혁 언론이 경제 위기 현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또 극우보수 언론이 나서서 경제 위기 현실을 덮어버리는 데는 단순히 대통령 지지율 하락을 막는 측면만 있는 게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체제 위기를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돌이켜보자.
당시 미국 정부는 파산 위기에 몰린 금융업체들을 구제하기 위해 양적완화라는 이름으로 막대한 돈을 주었다. 그런데 금융업체 경영진은 이 돈으로 보너스 잔치를 하였다. 경제난에 시달리던 서민들은 금융업체의 이런 부도덕한 모습에 분노해 금융업체가 몰려있는 뉴욕 월가를 대상으로 투쟁에 나섰다.
2011년 9월 17일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를 들고 시작한 시위는 순식간에 미국 주요 도시로 번져갔으며 나중에는 전 세계로 퍼졌다. 뉴욕의 시위대는 즈카티 공원에서 노숙하며 농성을 시작했고 세계 곳곳에서 담요 등 농성 지원 물품을 보냈다. 이 시위는 11월 30일 경찰이 강제 해산할 때까지 한 달 넘게 이어졌으며 이후에도 간헐적으로 시위가 일어났다.
당시 시위대가 내건 구호 ‘월가를 점령하라’는 더 이상 독점자본가에게 경제를 맡길 수 없으며 국민이 직접 경제의 주인이 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들은 1% 독점자본가에 반대해 ‘우리가 99%다’라는 구호도 외쳤다. 또 ‘자본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끝났다’, ‘새로운 세상은 가능하다’와 같은 구호도 나왔다.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는 지도부나 조직이 없이 자연발생적으로 시작하고 진행했기에 결국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끝났다. 하지만 소수의 거대 금융자본이 나라를 지배하는 금융과두제나 자본주의 체제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이후 미국 내에서는 사회주의 열풍이 불었다. 민주사회주의자를 표방한 버니 샌더스 후보가 2016년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는가 하면 2018년 한 조사에서 30세 이하 미국인의 35%가 사회주의를 선호했고, 2021년의 조사에서는 18~34세 미국인 가운데 58%가 사회주의를 바람직하게 여겼다. (「극단적 불평등 시대…“미국에서 사회주의가 부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1.9.9.)
원래 경제 위기는 정권 위기를 부르는데 정권 교체로 해결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경제 위기는 체제 위기를 부르게 되어 있다. 한국에 1997년 IMF 사태를 능가하는 초대형 경제 위기가 온다면 단순히 정권 교체로 끝나지 않고 체제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윤석열 정권과 조중동 언론은 이게 두려워 철저히 언론 통제를 하고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릴 것이다.
2) 극우화
심각한 경제 위기는 한 편으로 체제 위기를 부르지만 반대로 극우화를 부추기기도 한다. 1929년 대공황이 파시즘으로 이어진 게 대표적인 사례다.
독점자본은 심각한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동자를 더 착취하고 식민지를 넓히고 전쟁을 일으킨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의 지지와 협력이 필요한데 국민이 자기를 착취하는 것에 동의할 리가 없으므로 결국 독재를 하게 된다. 그리고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극우화를 부추긴다. 극우화는 체제 변혁을 추구하는 진보 세력을 제거하고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된다.
대공황 당시 독일 경제는 만신창이였다. 1928년 연평균 140만 명이던 실업자가 1929년에 190만 명, 1930년 310만 명, 1931년에 450만 명, 1932년 560만 명으로 급증해 실업률이 30%로 치솟았다. 1931년에는 유럽 은행들의 파산 위기 여파로 독일 은행들이 연쇄 파산하고 기업들도 덩달아 파산했다. 1932년 독일의 산업생산량은 1928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심각한 경제난은 대중의 관심을 사회주의로 쏠리게 하였다. 1930년 총선에서 사회민주당은 24.53%로 제1당이 되었고 공산당은 13.13%로 제3당을 차지했다. 독일이 사회주의 체제로 넘어갈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때 등장한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는 경제 위기의 책임을 금융회사를 장악한 유대인과 공산주의자에게 돌렸다. 나치는 대중의 지지를 얻으며 급격히 세력을 키웠고 마침내 1932년 총선에서 중산층이 대거 지지한 결과 37%를 득표해 제1당으로 올라섰다. 1933년 히틀러가 총리에 취임했고 내각 11명 가운데 3명(총리 포함)이 나치에 배당되었다.
당시만 해도 나치는 아직 정권을 장악할 만큼 압도적인 세력을 갖지 못하였다. 그러나 나치는 대중을 선동하는 기술이 탁월했다. 나치는 의사당 방화 사건을 명분으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공산당을 포함해 나치에 반대하는 세력을 공격했다. 나치의 준군사조직인 돌격대(SA)는 경찰을 무시하고 직접 테러, 납치, 고문, 살해를 일삼았다. 공포 분위기 속에서 나치는 전권위임법을 통과시켰고 그 뒤로 공산당 해체, 사회민주당 금지, 노조 활동 금지 등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진보 인사들은 집단수용소에 끌려가 살해당했고 모든 공직을 나치 당원이 독차지했다. 히틀러는 총리 취임 후 단 6개월 만에 독일을 장악했다.
이처럼 독일이 파시즘에 휩싸였던 것은 독일인이 원래 극우 성향을 가졌기 때문이 절대 아니었다. 경제 위기가 체제 위기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독점자본가들이 국민을 속이고 공포 분위기를 만들어 나라 전체를 광기에 물들게 만든 것이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나치 독일은 전쟁과 학살에 미친 극우 국가였지만 당시 독일인들은 극우화가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독일을 부흥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라 여겼을 것이다.
지금 한국에도 극우가 기승을 부린다.
전광훈과 같은 극우 목사가 여당을 흔들고, 김재원·태영호 같은 국힘당 최고위원이 4.3항쟁이나 5.18항쟁을 두고 막말하는 것도 모두 극우화의 현상이다. 삼일절에 일장기를 게양하고 “대일본제국 덕”을 주장하는 자가 나타나질 않나, 4.3 추념식에 서북청년단의 이름을 계승한 극우 무리가 나타나 난동을 부리는 일도 있었다. 극우 유튜버들은 경찰의 보호와 협조 아래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 앞에서 온갖 패륜 망언을 쏟아내고 촛불집회에 와서도 갖은 욕설과 막말을 하며 색깔론을 퍼뜨린다.
최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학교폭력 문제도 극우화와 연관이 있다.
윤석열 정권이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던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은 동급생을 1년 가까이 괴롭혔는데 피해자에게 “제주도에서 온 돼지 새끼”, “좌파 빨갱이” 등의 폭언을 했다. 특정인을 지목해 낙인을 찍고 혐오하는 것은 전형적인 극우 행태다. 나치가 유대인 혐오를 조장한 것과 다르지 않다. 어른 사회의 문화가 학생 사회에도 고스란히 전파된 것이다.
많은 시청자가 공감했던 ‘더 글로리’라는 연속극도 학교폭력을 소재로 한다. 피해자가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라고 묻자 가해자들은 “그래도 아무 일 없으니까. 아무도 널 보호하지 않는다는 소리야. 그걸 다섯 글자로 하면 ‘사회적 약자’”라고 답한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를 혐오하는 극우 문화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대통령이 스승으로 모신다는 의혹이 있는 천공은 유튜브에서 “노동자 퇴치 운동”을 하자고 선동하며 노동자 혐오를 부추기고, 대통령은 여성가족부 해체를 공약으로 내걸며 여성 혐오를 부추기고, 여당 대표는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시위를 두고 ‘비문명적 불법 시위’라며 장애인 혐오를 부추긴다.
이런 혐오는 북한, 중국, 러시아를 향한 혐오로 이어진다. 다른 나라, 다른 민족과 같은 외부를 향한 혐오는 극우의 특징이다. 이런 혐오는 전쟁을 일으킬 명분을 만들어 준다. 윤석열 정권은 북한 혐오를 부추기며 한반도 군사적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언론이 앞장서서 러시아 혐오를 부추긴 뒤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지원한다. 또 윤석열 정권은 중국 혐오를 부추기며 일촉즉발의 대만 전쟁에 개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
윤석열 정권은 경제 위기가 심해질수록 진보로 쏠리는 민심을 왜곡하고 독재와 전쟁의 발판을 만들기 위해 극우화에 더욱 힘을 쏟을 것이다.
3) 노동탄압
윤석열 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노동탄압에 열을 올렸다. 그 이유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조직력을 가진 단체가 민주노총이며, 경제 위기가 심각해질수록 피해가 집중되고 따라서 저항도 가장 클 집단이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윤 대통령이 집권하기 전부터 반노동 정책 공약을 제시한 것을 규탄하였으며 인수위 시절 반노동 행각을 두고도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혔다. 또 취임 한 달도 안 돼 윤석열 정권의 반노동·반민중 성격을 확인하고 ▲강력한 투쟁 태세 구축 ▲차별 없는 노동권, 질 좋은 일자리 쟁취 ▲사회 공공성 강화와 한반도 평화 실현 ▲전 민중적 요구를 건 사회적 투쟁 전선 확대 ▲진보정치 계급 기반 강화, 진보정치 대단결을 기치로 내걸고 7월 전국노동자대회를 시작으로 반정부 투쟁에 나섰다. 특히 2015년 민중총궐기가 2016년 박근혜 퇴진 촛불로 이어졌음을 강조하면서 노동자 투쟁으로 불평등을 타파하고 체제 교체를 위한 연대 전선을 만들 것을 제안하였다.
민주노총은 정권 규탄, 심판 투쟁을 하면서도 아직 정권 퇴진 투쟁에 나서지는 않고 있다. 이는 최저임금위원회 등 여러 정부위원회에 참가하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 위기가 커짐에 따라 윤석열 정권의 반노동·반민중 정책도 극심해질 것이며 민주노총을 향한 탄압도 거세질 것이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이 정권 퇴진 투쟁에 나서는 건 시간문제라 할 수 있다. 만약 민주노총이 정권 퇴진 투쟁에 나서면 지금 진행 중인 윤석열 퇴진 촛불과 만나 폭발적인 힘을 발휘할 것이며 윤석열 정권도 버티기 힘들 것이다.
민주노총뿐 아니라 한국노총도 윤석열 정권에 비판적이다. 한국노총은 지난 19대 대선에 이어 20대 대선에도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다. 또 지난 2월 14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위원장이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 정권의 반노동 정책과 노동탄압에 맞서 함께 투쟁하겠다고 선언했다. 양대 노총 조합원을 합하면 250만여 명에 달한다. 윤석열 정권이 위협을 느낄 만하다.
이에 따라 윤석열 정권은 노동탄압에 더욱 힘을 쏟을 것이다. 이미 파업 등 노동자 투쟁에 강경히 대응하는 것은 기본이고 간첩 조작 사건과 같은 탄압, 노조 회계 장부 제출을 요구하며 부정부패로 여론 몰이, 건설노동자를 ‘건폭(건설 폭력배)’으로 낙인찍어 고립시키는 등 다방면적인 탄압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민주노총을 해체 수준으로 무력화할 때까지 공격할 것이다. 전교조를 하루아침에 법외노조로 만들고 원내정당을 해산시킨 경험이 있는 국힘당이 잡은 정권이니 민주노총 해체도 못 할 게 없다고 여길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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