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 진퇴양난 미국
우크라이나 전쟁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는 오락가락하며 모순투성이다. 미국 내에서도 빨리 전쟁을 끝내자는 주장과 끝까지 버티자는 주장이 혼재되어 있다. 이는 지금 당장 전쟁을 끝내도 큰 문제고, 그렇다고 전쟁을 계속하자니 그것도 문제라서 생기는 일이다. 한마디로 진퇴양난이다.
일단 이대로 전쟁을 끝내면 러시아의 승리가 확실하다.
러시아는 애당초 목표였던 ▲우크라이나 무장 해제와 탈나치화 ▲돈바스 지역 내 러시아인 보호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저지 및 중립화를 거의 달성한 상태다.
일단 우크라이나 나치 세력은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리고 이 상태로 전쟁이 끝나면 엄청난 인명 손실은 물론 대규모 영토와 주요 산업시설까지 빼앗긴 젤렌스키 정권은 우크라이나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아마 젤렌스키 정권은 2024년 대선까지 전쟁을 지속하고 싶을 것이다.
또 러시아는 돈바스 지역은 물론 헤르손, 자포리자까지 차지해 원래 목표의 2배나 영토를 넓히는 엄청난 전과를 올렸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역시 물 건너갔다고 볼 수 있다. 인제 와서 나토가 우크라이나를 받아들이면 러시아에 선전포고하는 꼴이며, 전쟁이 다 끝난 뒤에도 부담이 돼서 우크라이나를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아가 우크라이나 국민도 전쟁이 재발할까 두려워 나토 가입을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와 반대로 우크라이나는 처참한 상태다.
일단 심각한 인구 절벽에 내몰렸다.
우크라이나 정부 통계에 따르면 전쟁 직전 우크라이나 인구는 약 4,110만 명(크림반도 제외)이었다. 이 가운데 러시아에 빼앗긴 동부, 동남부 4개 주의 인구가 약 88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1%나 차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엄청난 난민이 발생했다. 지난해 말 유엔난민기구는 전쟁으로 인한 우크라이나 해외 난민이 780만 명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전체 인구의 약 20% 정도가 해외로 나간 것이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이들은 새로운 터전에 정착하고 폐허가 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다. (「“끝없는 피란 행렬”...전쟁으로 ‘인구 절벽’ 내몰린 우크라이나」, 한국일보, 2022.12.13.)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 인구는 전쟁 전 약 4,110만 명에서 현재 2,450만 명으로 무려 40%가 줄어든 심각한 상황이다. 또 전쟁 과정에서 많은 젊은 남성들이 죽거나 다쳐서 장기적으로도 노동 인구가 회복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전쟁이 끝나도 우크라이나의 미래가 암울한 핵심 이유가 여기 있다.
경제 문제도 심각하다. 가뜩이나 유럽 최빈국 수준이었던 우크라이나는 전쟁으로 인해 막대한 손실을 보았다. 우크라이나의 지역별 산업 구조를 보면 농업이 발달한 서부와 중공업이 발달한 동부로 확연히 나뉘는데 동부가 러시아에 편입되면서 향후 우크라이나는 낙후한 농업 국가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이 상태로 전쟁이 끝나면 젤렌스키 정권은 몰락을 피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 패전은 미국에도 큰 부담이 된다. 사실상의 미러 대리전인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가 패배하는 것은 미국의 패배나 마찬가지다. 미국을 등에 업고 전쟁을 해도 남는 건 죽음과 패배뿐이라는 사실이 전 세계에 각인될 것이다. 미국 국민도 우크라이나를 지원한 미국 정부에 등을 돌릴 것이다. 그러니 미국은 당장 전쟁을 끝낼 수 없다.
그렇다고 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기도 어렵다.
일단 전쟁을 수행할 군인이 부족하다. 앞에서도 살펴봤듯 지금 우크라이나 군대는 전투 경험을 가진 병사가 대부분 죽거나 다쳐 신병들로 채워져 있다. 청년들은 대부분 징집된 상태고 나머지는 징집을 피해 해외로 도피했다. 따라서 병사를 더 늘리기 어렵다. 그렇다고 러시아의 눈치를 보는 미국이나 유럽이 파병할 수도 없다.
전쟁을 계속하려면 무기도 필요한데 해외 지원도 한계에 다다랐다. 미국에서 무기를 아끼라고 계속 압박하지만 우크라이나 처지에서는 당장 병사가 부족하고 신병 위주다 보니 무기를 쏟아붓는 수밖에 없다. 한국이 간접 지원하는 50만 발의 포탄도 석 달이면 끝날 지경이다.
이런 형편이니 전쟁을 지속하기에는 미국과 유럽도 부담이 크다. 무기 지원도 더 이상 힘들고 전쟁으로 인한 경제 위기로 자국도 고통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전쟁을 지속하면 이길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없다.
반면 러시아는 전쟁 이후 수출이 늘어나는 등 오히려 전쟁 장기화를 피할 이유가 적다. 오히려 전쟁이 길어질수록 미국, 유럽 중심의 세계 경제가 급격히 무너지면서 러시아에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다.
결국 미국은 뭘 해도 끔찍한 결과만 기다리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 힘과 힘의 대결 결과
전쟁은 가장 극단적인 힘과 힘의 대결이다. 전쟁은 기본적으로 힘센 나라가 이긴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미국과 러시아를 비교하면서 당연히 미국이 러시아보다 훨씬 강한 나라라고 여겼다. 2022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명목)은 미국이 러시아의 11배가 넘고, 국방비는 12배가 넘는다. 동맹으로 확장하면 차이는 더 벌어진다. 유럽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미 깊숙이 개입했고 일본, 한국도 열심히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을 위해 러시아를 지원하는 나라는 없다.
그런데 전쟁 결과는 러시아가 미국을 이기고 있다. 운이 좋았다고 평가할 근거도 없다. 그렇다면 결론은 눈에 보이는 수치와 달리 러시아의 국력이 미국을 앞선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만약 미국의 국력이 러시아를 앞선다면 미국이 직접 참전해 러시아를 박살 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참전 불가’를 선언하고 거리를 두었다. 미국이 러시아와 직접 충돌을 꺼린 이유는 이미 전에 여러 차례 패배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2014년 4월 10일 미국의 이지스 구축함 도널드쿡이 흑해에 진입하자 러시아 공군의 수호이(Su)-24가 출동한 사건이 있었다. 수호이-24는 90분 동안 도널드쿡 상공을 근접 저공 비행하며 12차례나 공격할 것 같은 위협 행동을 하였다. 도널드쿡은 여러 차례 경고를 보냈지만 수호이-24는 응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갑자기 도널드쿡의 이지스 체계가 꺼지면서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되어버렸고 서둘러 루마니아 항구로 도피해야만 하였다. 러시아는 수호이-24에 장착한 종합 전파장애 체계인 ‘히비니’의 전자 교란 공격이 성과를 냈다고 주장했다.
흑해에서 미러 사이의 군사적 대치는 이후에도 자주 있었다. 2015년 5월 흑해에 진입한 미 유도미사일 구축함 USS로스를 겨냥해 수호이-24가 발진해 경고를 보냈다. 2020년 8월 미 공군 B-52 전략폭격기에서 불과 30미터 떨어진 거리로 러시아 군용기 2대가 접근, 근접 비행으로 난기류를 일으켰다. 또 2021년 1월 수호이-24가 흑해에 진입한 도널드쿡 인근을 저공 비행했다. 이때마다 미군은 러시아가 도발한다며 항의했지만 충돌을 피하려고 물러서는 것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2016년 6월 16일에는 미군 특수부대가 사용하는 시리아 반군 비밀기지를 러시아가 폭격하는 사건도 있었다. 폭격을 받은 미군은 러시아 측에 공격 중단을 요구했지만 러시아는 90분 후 비밀기지를 다시 폭격했다. 그런데 미국은 사태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이 사건을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이런 역사는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 3월 14일 우크라이나 남쪽 흑해 상공에서 러시아군 전투기 수호이-27의 공격에 미군 무인 항공기(드론) MQ-9 리퍼가 추락하는 사건이 있었다. 러시아에 의해 미군 공군기가 추락한 건 냉전 이후 처음이라며 미국이 발칵 뒤집혔고 전 세계가 긴장하였다. 미국은 즉각 러시아에 항의했지만 러시아는 미군의 정찰이 문제라고 반박했다. 그리고는 보란 듯이 전투기 조종사 2명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반면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우리는 러시아와 군사적 갈등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며 미 공화당은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한 게 문제라며 당장 전쟁을 끝내라고 주장했다. 결국 미국은 무인정찰기 비행경로를 이전보다 러시아에서 더 멀리, 더 높은 고도로 수정했다. 미국 정부 관계자는 “러시아를 자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美무인기, ‘러 전투기 충돌 사태’ 후 흑해 상공 정찰 경로 변경」, 동아일보, 2023.3.29.)
미국과 러시아의 국력 차이는 외교력으로도 드러난다.
미국은 전 세계를 돌며 열심히 대러 제재를 요구했다. 경제제재는 경제 영역에서 한 나라를 포위하는 것이다. 그리고 포위는 강자가 약자를 공격하는 방식이다. 만약 미국의 국력이 러시아보다 강하다면 대러 제재가 성공할 것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대러 제재는 실패했다. 미국의 동맹 혹은 친미 국가로 꼽히던 사우디아라비아, 인도, 튀르키예 같은 주요 나라들이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다. 미국과 대치 중인 중국 역시 제재에 불참했다. 이들 나라는 제재에 불참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러시아와 더 밀착했다. 대다수 제삼세계 나라들도 대러 제재에 불참했다. 사실상 대러 제재에 동참한 나라는 유럽 일부와 캐나다, 일본, 한국뿐이다. 게다가 이들 나라 안에서도 일부 기업은 제재 불참을 선언하기도 했다.
● 독점과 배척의 시대는 끝났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미국의 국력이 심각한 수준으로 무너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쟁이 당장 끝나든, 장기전으로 가든 미국을 기다리는 것은 재앙뿐이다. 미국의 몰락은 독점과 배척이 부른 필연적 결과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 남을 무너뜨리겠다는 자세가 결국 미국의 몰락을 불렀다.
미국이 살아남으려면 독점과 배척을 버리고 공존과 공영의 자세로 돌아서야 한다. 공존과 공영의 정신은 2018년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에 담겨있다. 미국은 6.12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을 다시 찬찬히 읽고 거기서 살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끝)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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