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기고] 팔레스타인 민족해방 무장투쟁과 저항 문학

한찬욱 사월혁명회 사무처장 | 기사입력 2023/10/26 [15:43]

[기고] 팔레스타인 민족해방 무장투쟁과 저항 문학

한찬욱 사월혁명회 사무처장 | 입력 : 2023/10/26 [15:43]

알 아흘리 아랍병원 대참극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지난 17일(현지 시각) 가자 지구 알 아흘리 아랍병원에 폭격해 500명 넘는 사람이 숨졌다. 병원에는 환자들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폭격을 피해 민간인들이 모여 있어서 그 피해가 더욱 컸다. 

 

수술하던 중 폭격에 수술실 천장이 무너졌다고 한다. 이미 계속되는 폭격과 이스라엘의 봉쇄로 전력도 물도 의약품도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이번 공격은 명백한 전쟁범죄다.

 

하마스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이 벌이고 있는 가자 지구 공격은 당장 멈춰야 한다.

 

팔레스타인인과 한국 민중의 반제 자주 투쟁 역사는 매우 유사하다.

 

1948년. 영국과 미국에 의해 팔레스타인 땅에는 이스라엘이 건국 선언을,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에 의해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각각의 정부가 수립된다. 

 

일제의 조선 강점은 35년이었지만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강제 점령은 올해로 무려 75년이 된다. 물론 이스라엘이나 한국은 미국을 신처럼 떠받들고 있는 신식민지이다. 

 

 

중동사태의 기원, 후세인-맥마흔 협정(1915)과 밸푸어 선언(1917)

 

팔레스타인 문제는 19세기 민족주의 열풍이 불면서 대두한 시오니즘과 아랍인들에 대한 제국주의 영국과 프랑스의 배신에서 비롯되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독일 편에 섰던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1915년 아랍이 전쟁에서 영국을 지지하면 아랍 독립을 지원한다는 협정을 메카의 샤리프 후세인과 영국의 맥마흔이 맺는다.

 

이른바 후세인-맥마흔 협정이다.

 

▲ 헨리 맥마흔(좌)과 후세인 빈 알리.     

 

아랍인들은 이 협정을 믿고 오스만 제국에 대항한다.

 

그러나 이듬해인 1916년 영국은 프랑스와 오스만 제국 분할에 관한 협정을 맺어 영국과 프랑스가 아랍을 분할 지배하는 사이크스–피코 협정을 맺는다.

 

▲ 사이크스-피코 협정에 따른 분할안.     

 

또한, 1917년 유대인의 지원을 끌어내기 위해 영국 외무장관 밸푸어는 시온주의자의 요구인 팔레스타인 지역 유대인 국가 건설을 인정한다고 발표했다.

 

소위 밸푸어 선언이다.

 

이 밸푸어 선언은 2년 전에 발표한 후세인-맥마흔 협정을 부정하고 뒤집는 것이었다.

 

이후 세계 각지에 흩어진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으며, 영국은 이를 지원했다.

 

결국, 통일 아랍 국가의 꿈은 좌절되고 팔레스타인인들은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다.

 

1948년 팔레스타인인들이 살고 있던 땅에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언한다. 

 

 

1~4차 중동전쟁과 나크바(대재앙) 그리고 팔레스타인 난민

 

1차 중동전쟁은 이스라엘 건국 선포 직후 발발하며 이스라엘이 승리, 팔레스타인 영토의 8할을 점령한다. 이스라엘이 장악한 지역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은 난민으로 전락한다. 약 7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추방당하는데 아랍어로 나크바(대재앙)라 부른다.

 

오늘날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체제는 이때 만들어진다.

 

나머지 지역은 이집트가 가자 지구를,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요르단강 서안 지구는 요르단이 점령한다.

 

특히 1948년 4월 9일 데이르 야신이라는 마을에서 무저항의 팔레스타인 민간인 254명이 이스라엘의 시온주의자 군사 조직인 하가나(Haganah)에 학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 1948년 데이르 야신 학살의 참상.     

 

이 사건으로 고향을 떠나는 70만에서 100만에 이르는 최초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발생한다.

 

2차 중동전쟁은 1956년 7월 26일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가, 영국이 부당하게 차지해 온 수에즈 운하 국유화를 선언하면서 발발한다.

 

그러자 구(舊) 제국 영국과 프랑스는 이스라엘을 부추겨 10월 29일 2차 중동전쟁(수에즈전쟁)을 일으킨다. 그러나 소련이 이집트를 돕기 위해 핵무기 사용을 암시함으로써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은 승리하나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다. 

 

3차 중동전쟁은 1967년 6월 5일부터 10일까지 이스라엘이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를 상대로 선제공격을 감행, 단 6일 만에 대승을 거두는 소위 “6일 전쟁”이다. 

 

그리고 가자 지구, 시나이반도, 요르단 서안 지구, 골란고원을 점령하고 동예루살렘을 병합하여 이스라엘 정착촌을 건설한다. 

 

4차 중동전쟁(욤 키푸르 전쟁, 욤 키푸르는 유대교 전통의 속죄일)은 1973년 발발한다. 1970년 이집트 나세르가 심장마비로 급사하자, 뒤를 이은 안와르 사다트는 군 조직의 개편과 훈련을 통해 대반격을 준비한다. 그리고 1973년 기습적인 대규모 공격으로 이스라엘은 ‘나라가 망한 거 아니냐’는 절망에 빠졌을 정도로 초반에 대패한다. 

 

이스라엘은 궁지에 몰리게 되자 핵미사일을 사용할 준비를 하고, 이집트 또한 소련으로부터 지원받은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스커드 미사일로 반격할 준비를 한다.

 

이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최대의 전면 핵전쟁 위기였다.

 

 

팔레스타인 민족해방투쟁 1차 인티파다(민중봉기)

 

인티파다(انتفاضة, Intifada)는 봉기·반란·각성을 의미하는 아랍어로, 팔레스타인인들이 민족 정체성을 확립하고 진행한, 독립투쟁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민중봉기, 민족해방 무장투쟁을 말한다.

 

인티파다는 1차(1987~93년)와 2차(2000~2005) 민중봉기로 나뉜다.

 

1차는 1987년 12월 최대의 난민캠프인 자발리아에서 발생한다. 

 

특히 인티파다가 더 확대된 것은 같은 달 가자 지구에서 일어난 팔레스타인 소녀 살해 사건이었다. 

 

팔레스타인 소녀가 학교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근처에 사는 유대인 정착민이 재미로 쏜 총에 살해된다. 그런데 이스라엘 법원은 무죄로 석방한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사법부의 불공정성과 민족 차별 그리고 멸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고, 팔레스타인인들을 분노하게 했다.

 

이 사건의 영향으로 아이들의 투쟁은 점령지 전체를 자극하여,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 전체로 인티파다를 확대하는 계기가 된다. 

 

특히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 인구의 60% 이상이 미성년자였고 청소년층이었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이집트가 차지하던 가자 지구와 요르단이 차지하던 서안 지구를 점령한 이후에 태어났고, 줄곧 이스라엘의 민족 차별과 탄압에 시달려 왔다.

 

1987년 시작된 인티파다는 오슬로 협정이 있었던 1993년까지 이어졌고, 이 기간에 이스라엘의 강경 진압으로 팔레스타인은 수만 명이 부상하고, 1,603여 명이 죽었는데 이 중 17세 미만이 273명이었다.

 

 

2차 인티파다와 오슬로협정(가자·예리코 잠정 자치협정)

 

1차 인티파다는 1993년 9월 오슬로협정에서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를 포함한 점령 지역의 팔레스타인 자치안에 서명함으로써 막을 내린다.

 

그러나 실제 협정의 내용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계속해서 희생과 굴욕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2차 인티파다는 2000년 9월 28일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리쿠드당 총재가 예루살렘의 알아크사 사원을 방문하면서 “동예루살렘도 이스라엘에 완전히 병합해야 한다”라고 연설한 것이 발단되어 2차 인티파다(알아크사 민중항쟁)가 일어난다. 

 

2차 봉기는 1차 때와 달리 팔레스타인 전 지역이 동조했고, 그 규모와 저항이 1차보다 더 컸다. 특히 1996년 반 오슬로 협약파 인사인 베냐민 네타냐후가 총리로 취임하며 더 강경한 대응을 보이고, 유대인 정착민 수도 전보다 더 늘어난 것이 팔레스타인인들의 항쟁에 불을 지폈다.

 

2차 민중항쟁으로 팔레스타인은 3,334명이 사망하고 5만 3천 명이 부상했다. 경제 또한 팔레스타인인들의 대량 실직으로 고사 상태가 되었고, 이스라엘 역시 피해가 만만치 않아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해 1,074명(시민은 773명, 군인은 301명)이 사망한 데다 심한 재산 피해를 보았다. 

 

▲ 2차 인티파다 기간에 경계근무 중인 이스라엘 병사.  © 이스라엘방위군

 

이후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 분리 장벽을 건설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의 자치권 보장을 추진하기로 한 뒤 철군했다. 2006년 가자 지구에서 하마스가 선거로 집권했지만, 이후로도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를 군사적으로 봉쇄하고 통제해 왔다.

 

 

팔레스타인 저항 시인 마하무드 다르위시(1941~2008)

 

일제강점기 조선의 대표 저항 시인이 이육사라면, 팔레스타인인에게 마하무드 다르위시가 있다.

 

▲ 베들레헴 대학에서 강연하는 다르위시.  © Amer Shomali

 

팔레스타인 작가이자 미술평론가인 마하무드 아부 하시하시는 “아라파트를 팔레스타인 혁명의 상징으로, 나세르를 지난 세기 아랍혁명의 상징으로 얘기한다면, 다르위시는 팔레스타인 문화가 아니라 아랍 문화의 상징으로” 이야기한다고 평한 바 있다.

 

‘팔레스타인의 계관시인’이라 불리는 다르위시는 1,500년 전통의 아랍 시를 새로운 현대 시 형식으로 표현했다. 그의 시 주제는 나라를 잃어버린 슬픔, 이스라엘 군대의 억압적 지배와 폭력에 대한 분노와 저항, 암울한 현실 속에 바라보는 희망, 팔레스타인 민족 정체성 확인 등이었다.

 

그의 대표작으론, 팔레스타인 민중의 분노와 아픔을 형상화한 ‘신분증’이 단연 첫손에 꼽힌다.

 

“적어둬라!/ 나는 아랍인/ 내 등록번호는 50000번이다/ 아이가 여덟이고/ 아홉 번째 아이가 올여름 태어난다/ …적어둬라!/ 나는 아랍인/ 내게 직함 따윈 없다/ 인내하라, 그곳/ 분노한 이들이 사는 곳에선. …내게 증오는 없다/ 남의 권리를 앗을 마음도 없다/ 하지만 내가 굶주린다면/ 착취자의 살점이 내 밥이 되리라/ 조심하라/ 조심하라/ 내 굶주림을/ 내 분노를.”

 

1969년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회의는 다르위시에게 로터스 상 선정 이유를 “도시 전체가 감옥이 되고, 집은 감방이 되고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이고, 철사에 묶이고, 총구의 과녁이 되고, 이 모든 것보다 더 지독한 상황, 즉 저들이 뒤집어씌우는 증오와 자신을 짓누르는 압살적 억압과 그의 노래들을 무용지물로 만들려는 끊임없는 말살 정책 때문에 궁지에 몰려 있으면서도 그는 시를 썼다.”라고 밝혔다.

 

다르위시는 1972년에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1964년 설립)에 가입하지만, 오슬로협정을 비판하며 모든 PLO 당직을 사임한다. 

 

 

팔레스타인 저항 민족 작가 가산 카나파니(1936~1972)

 

한국의 대표 민족 작가가 남정현이라면, 팔레스타인인에게는 가산 카나파니가 있다.

 

▲ 팔레스타인 지역에 있는 카나파니 헌정 벽화.  © Justin McIntosh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불볕 속의 사람들』은 1963년에 발표되어, 1971년에 영화로도 만들어진다.

 

내용은 살아남기 위해 쿠웨이트로 밀입국을 기도한 팔레스타인 난민 세 사람의 죽음을 그리고 있다. 

 

빈 급수차 탱크에 몸을 숨기고 있던 그들은 운전사가 국경 관리의 변덕에 걸려들어 예상외로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살려달라는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뜨거운 사막의 태양 아래 물탱크 속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그 역시 팔레스타인인이었던 운전사는 세 사람의 시신을 쓰레기장에 버리고 떠나며 울부짖는다. 

 

“왜 당신들은 탱크 벽을 두드리지 않았소? 왜? 왜?” 

 

팔레스타인인이라는 것 외에 그 어떤 신분이나 자격도 가지지 못한 민중의 이러한 희망 없는 죽음을 고발한 것이다. 

 

카나파니는 아랍 민족주의를 고취하여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려던 조지 하바시가 창설한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의 대변인으로 일하면서, PFLP 기관지 『알하다프』를 창간하고 편집인이 된다.

 

그는 이스라엘을 겉으로는 비난하지만, 석유를 기반으로 한 이익을 지키기 위해 팔레스타인을 지원하지 않는 기존 아랍 세계가 파쇼 왕정과 프티 부르주아 군사 정권으로 양분되어 있다고 보았으며, 아랍 전체에서 혁명이 일어날 때만 팔레스타인 해방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카나파니는 1972년 7월 18일 아침, 베이루트에서 그의 차에 설치된 부비트랩이 폭발하는 바람에 36세로 세상을 떠났다. 곁에 있던 조카 라미스 역시 그의 동행이 되었다.

 

 

당장 전쟁을 멈춰라!

 

보름을 넘긴 중동사태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모든 가자 지구 주민들에게 이스라엘군 명의로 “당장 남부로 떠나지 않으면 ‘테러리스트’로 간주하겠다”라는 전단과 음성메시지가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또한, 현지 매체인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이스라엘군이 ‘전투 확대 계획’을 승인했으며 조만간 가자 지구 지상전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상전을 선언한 이상, 이스라엘은 주변 이슬람 세력과의 전면전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태의 발발과 함께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한 원조와 무기 지원을 공약하고, 세계 최대 핵 추진 항공모함인 ‘제럴드 포드호’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호’를 가자 인근 해역으로 급파했다.

 

지난 21일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은 성명을 통해 “현지 미군 보호를 위해 중동 전역에 걸쳐 사드 포대 배치 및 패트리엇 대대 추가 배치를 시작했다”라고 밝혔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이어 서아프리카의 군사혁명,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중동에서 전쟁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미국이 현재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네타냐후를 사임시키고, 평화협상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라크와 시리아의 미군기지에서 철수해야 한다.

 

미국의 몰락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미국은 점점 쇠퇴하고 고립되어 가고 있다.

미국의 동맹은 서유럽의 일부 국가와 아시아 지역의 한국과 일본 그리고 대만뿐이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즉각 학살을 멈춰라!

당장 전쟁을 멈춰라! 

반제·자주·평화애호 세력은 총단결하라!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