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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평생을 쉬지 않고 민족해방과 민중해방 운동에 헌신한 권오헌 선생

‘권오헌의 가려졌던 통일 여정’ 출판기념회를 축하하며

한찬욱 사월혁명회 사무처장 | 기사입력 2023/11/20 [14:09]

[기고] 한평생을 쉬지 않고 민족해방과 민중해방 운동에 헌신한 권오헌 선생

‘권오헌의 가려졌던 통일 여정’ 출판기념회를 축하하며

한찬욱 사월혁명회 사무처장 | 입력 : 2023/11/20 [14:09]

사월혁명회의 주된 대외 활동 중 하나가 매년 4월 19일 수유리 4.19묘소에서 개최되는 ‘민족민주운동단체 합동참배식’과 보통 전날 진행되는 ‘사월혁명상’ 시상이다.

 

권오헌 선생은 2000년 제11회 ‘사월혁명상’을 수상하였다.

 

‘사월혁명상’은 사월혁명회가 1990년 4월혁명 30주년을 기하여 제정한 상으로서 매년 4월혁명상 심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4월혁명 정신을 이어받아 조국의 자주, 민주, 통일에 기여한 개인 또는 단체 중에서 선정하여 수여한다.

 

그래서 ‘사월혁명상’을 받은 개인은 항상 정기적으로 사무처장인 필자가 안부 인사와 ‘사월혁명회보’를 보내고 있다. 그분들 중에 사월혁명회의 모든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석하셨던 분이 권오헌 선생이다.

 

특히 선생은 사월혁명회 ‘민족학교’와 ‘월례발표회’ 강사로서, 회원과는 동년배로서 4월혁명의 자주‧민주‧통일 이념 구현에 함께했다.

 

 

2000년 제11회 ‘사월혁명상’ 선정 이유

 

권오헌 선생을 ‘사월혁명상’ 수상자에 선정한 이유는 양심수 석방과 후원 사업, 출소한 장기 구금 양심수 지원 사업, 국가보안법 등 반민주악법·제도 철폐 운동 그리고 민족민주운동 참여·연대활동이었다.

 

권 선생은 1982년부터 남민전 사건 구속자 가족, 재일 교포 구속자 가족 등 장기수가족협의회 회원들과 함께하며 문익환 목사님이 이끈 ‘고난받는 이들을 위한 갈릴리교회’, NCC 인권위원회의 ‘목요기도회’, 김승훈 신부님 등 정의구현사제단이 주도하는 양심수 석방을 위한 미사 등 행사와 각종 사회단체 집회에서 남민전 사건 관련자들의 반파쇼 민주화운동과 반외세 민족자주 투쟁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등 석방 운동의 조직화 체계와 민족민주운동으로의 정립에 노력했다.

 

그리고 1985년 12월 10일 구속학생 학부모협의회, 민족민주열사 유가족협의회, 장기수 가족협의회, 청년·민주인사 가족운동협의회, 노동자·농민구속자 가족협의회들이 한데 모여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로 출범하는 데 참여, 양심수 석방 운동을 한층 높은 단계로 올리며 1988년 12월 22일 남민전 사건 등 양심수(이른바 시국사범) 전원 석방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1989년 3월 19일 대전, 대구, 광주, 전주, 안동 등 교도소와 청주 감호소에 갇혀 있는 260여 장기 구금 양심수들의 석방과 후원을 위한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결성에 참여, 처음으로 이들을 양심수로 규정하고 석방 운동과 후원 활동(면회, 편지, 영치금·품, 자매결연 사업 등)을 하였고 장기 구금 양심수뿐 아니라 학생운동, 노동운동, 빈민운동, 통일운동, 사회민주화운동을 하다가 구속된 모든 양심수의 석방과 후원사업을 해오며 1999년 말까지 장기 구금 양심수 모두를 석방케 하는 데 노력했다.

 

 

민족해방과 민중해방 역사에 발자취를 뚜렷이 남긴 이론가이자 실천가

 

권오헌 선생은 병마가 덮치기 전까지는 한평생을 쉬지 않고 민족자주와 통일운동에 몸 바쳐왔다.

 

특히 공통점은 구하고(求同) 차이점은 그대로 둔다(存異)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정신으로 통일운동 단체들의 통일단결을 위해 선생은 헌신했다.

 

6.15공동선언 이후 여러 통일운동 단체는 자주·민주·통일이라는 큰 틀은 공유하면서도 구체적인 운동 방식에서는 일정한 차별성이 있었다. 이런 현상은 각 단체 간에 정세평가나 주요 현안의 인식에 있어서, 차이와 갈등 그리고 때로는 분열도 있었다.

 

그러나 선생은 운동의 차이를 긍정적으로 보고, 전술적으로나 역량 배치 면에서 바람직한 측면도 있다고 생각하고 단체들의 다양성을 존중했다. 

 

하지만 때로는 다양성이 지나쳐 혼란으로 비치는 부분에서는 선생은 단호했다. 

 

특히 선생은 북과 민족 문제에 대한 양비론에는 단호하고 엄격했다.

 

그뿐만 아니라 단체의 정치적 견해를 절대시하면서 다른 단체의 견해를 수용하지 못한다든지, 단순한 정치적 견해의 차이만이 아니라 운동을 주도하려는 분파적 패권적 경향은 선생은 용납하지 않았다.

 

원칙주의자는 아니지만, 원칙을 선생은 중시했다.

 

선생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현장을 누비며, 역사의 순간순간 고비마다 위엄 있게 행동하며 민족민주운동을 단결시켰다.

 

또한, 선생은 민족해방과 민중해방 역사에 발자취를 뚜렷이 남긴 이론가이자 실천가였다.

 

 

양심수후원회를 민족민주운동단체로 한 단계 발전시키다

 

권오헌 선생 하면 1989년 3월 19일 창립한 ‘민가협 양심수후원회’의 양심수 석방 운동과 국가보안법 철폐 운동 그리고 비전향장기수 송환 운동을 빼놓을 수 없다.

 

양심수 석방 운동은 양심수후원회의 창립 이념이자 주된 사업이다.

 

양심수 석방 운동은 바로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이다. 

 

그리고 선생은 1999년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범국민행동연대’와 ‘국가보안법 폐지 범국민연대’ 결성을 주도했다.

 

양심수후원회는 “양심수는 개인이나 소수 이익이 아니라 보다 많은 다수의 이익, 공동선, 사회정의를 위해 양심에 따라 활동하다 구속된 사람이다”라고 정의하고 모든 양심수 석방과 사면 복권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선생은 2012년 소위 ‘이석기 내란 선동 사건’과 2013년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사건’ 구명 운동과 통합진보당을 엄호 지지하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또한 ‘이석기 의원 석방 운동’에도 적극 활동했다. 

 

▲ 2013년 11월8일 국회 앞 3일차 통합진보당 의원단 단식 농성장을 격려 지지 방문하는 권오헌 선생, 사월혁명회, 민가협.  © 사월혁명회

 

그리고 박근혜 정부 때 국가정보원이 기획하고 주도한 소위 ‘중국 저장성 류경식당 종업원들의 집단 탈북 사건’ 진상규명 및 송환 운동과 평양시민 김련희 씨 송환 운동을 주도했다.

 

또한, 선생은 양심수 석방, 국가보안법 폐지 그리고 주한미군 철수를 위한 각종 집회와 기자회견에는 거의 빠짐없이 참여했다. 원로로서 운동의 모범과 자세를 후진들에게 보여 주며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민중과 함께하려는 혁명가의 자세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러나 선생은 양심수후원회를 여기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한 단계 발전시켰다.

 

바로 ‘비전향장기수 송환 운동’이다.

 

 

이인모 선생 송환과 비전향장기수 송환 운동

 

‘비전향장기수 송환 운동’은 1989년 사회안전법이 폐기되면서 풀려난 인민군 종군기자 이인모 선생의 송환 운동으로 시작됐다.

 

‘비전향장기수’란 ‘조국통일의 염원을 안고 수십 년을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양심을 지켜온 사람들’이라 양심수후원회는 정의하였다.

 

선생은 1992년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제4차 총회에서 “인민군 종군기자 이인모 노인 송환 운동”을 특별사업으로 채택하고 기독교인권위원회를 비롯한 천주교, 불교 등 인권·종교 단체들과 ‘이인모 노인 송환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1993년 3월 17일 이인모 선생 송환을 이루어 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어 김인서, 함세환, 김영태 노인 송환 운동도 적극 추진했다.

 

선생은 이후 25여 인권·종교·사회단체로 구성된 ‘비전향장기수 송환추진위원회’를 결성하는 데 적극 참여해, 1999년 2월 25일과 12월 31일 마지막 출소한 비전향장기수 21명을 포함한 63명의 비전향장기수를 6.15공동선언 제3항에 의거, 마침내 2000년 9월 2일 북녘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는 데 일조했다.

 

그리고 63명의 비전향장기수 1차 송환대상자로서 통보받지 못한 분과 ‘강제 전향은 전향이 아니다’라며 전향 무효 선언을 하면서 2차 송환을 희망하는 분들도 반드시 송환되어야 한다고 제일 열심히 활동했다.

 

선생은 민족 분열 최대의 희생자인 고령의 장기수 선생님들의 문제는 당면해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인도적 문제라고 항상 주장해 왔다.

 

 

선생님! 윤석열을 민중이 끌어 내리는 그날을 보셔야 합니다

 

권오헌 선생은 지난 2017년 폐암 4기 판정을 받아 투병 중에도 각종 집회나 행사에 참여해 왔다. 그러나 올해는 항암치료 후유증으로 허리에 문제가 생겨 요양원에 있다가 설상가상으로 9월 인후암이 발견되어 자택에서 병원을 오가며 매일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다.

 

이번에 출판된 책은 제1권 『주한미군 강점비 부담-내쫓는 게 정답이다』, 제2권 『비전향장기수 통일원로들의 영면에 부쳐』, 제3권 『대담인터뷰 글 모음』 그리고 제4권 『평양 방문기 외 투쟁현장 답사기』 등 모두 4권으로 되어있다.

 

 

양심수후원회는 출판기념회에 대해 “팔십 평생을 양심수의 대부로, 통일운동 활동가로 현장을 누빈 실천적 기록을 만나는 자리”라고 알렸다.

 

존경하는 권오헌 선생님! 

진심으로 ‘권오헌의 가려졌던 통일여정’ 출판기념회를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출판 작업과 행사를 준비해 준 양심수후원회에 뜨거운 동지애를 보냅니다.

정말 이렇게라도 선생의 모습을 보게 되니 너무 기쁩니다.

 

사랑하는 권오헌 선생님! 

절대로 건강 전선에서 낙오나 후퇴는 없습니다.

오로지 전진과 전진뿐입니다.

윤석열을 민중이 끌어 내리는 그날까지,

진군 또 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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