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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 후기] “‘윤석열 타도’의 투쟁거점, 연대의 출발점이 된 농성단”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3/02/25 [13:48]

[참가 후기] “‘윤석열 타도’의 투쟁거점, 연대의 출발점이 된 농성단”

김영란 기자 | 입력 : 2023/02/25 [13:48]

촛불행동은 지난 18일부터 서울 숭례문 인근에 ‘이재명 구속영장 전면 거부, 윤석열 타도 범국민 단식농성단’(아래 농성단)을 꾸린지 8일째이다.

 

18일부터 지난 24일까지 농성단에 함께 한 시민은 247명이었다. 하루 농성부터 5일까지 시민들은 자기의 처지에 맞게 농성단에 결합했다.

 

지난 24일 반나절 동안 농성단에 함께 했다.

 

▲ 정세토론하는 농성단.  © 김영란 기자

 

농성단의 24일 일정은 오전 10시 정세토론,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농성장 앞에서 ‘윤석열 퇴진 범국민 100만인 선언’(아래 범국민 선언) 선전전, 오후 1시 촛불행동 기자회견 참여,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촛불의 길’, 오후 5시 저녁 촛불문화제 준비, 오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촛불문화제 참여와 정리, 오후 10시까지 하루 평가, 자정 취침이었다. 

 

정세토론은 농성단 참가자가 준비한 내용을 발제하고 토론하는 형식이었다. 이날은 북한의 전략 순항미사일 발사, 윤석열 정권의 민주노총 등 공안 탄압, 민주당 안의 이재명 대표 불체포 특권 포기 요구에 관한 내용이었다.

 

농성단은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된 후에 북한의 대응에 대한 것과 윤석열 정권의 선제타격 등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윤석열 정권의 탄압에 모든 세력이 단결해서 투쟁해야 할 것과 촛불의 힘을 키울 것을, 국민의 요구에 맞춰 민주당이 자기 역할을 다하기 위한 개혁과 이른바 ‘수박’들이 개혁의 걸림돌로 된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농성단 모두 국내외 현안에 대해 날카롭게 분석했다.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범국민 선언에는 20대부터 60대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시민들은 “윤석열 때문에 못 살겠다”, “이재명 대표 구속영장은 정치 보복”, “물가가 너무 올라 힘들다” 등의 이유로 범국민 선언에 참여했다. 

 

▲ 범국민 선언에 참여하는 시민들.  © 김영란 기자

 

이날 범국민 선언에 대해 홍보하던 농성단(마포구 거주)은 “이번 달 난방비가 20만 원 나왔습니다. 아이가 있어도 최대한 아껴 썼는데 20만 원이 나왔어요, 그런데 윤석열은 보일러를 안 틀면 된다는 어이없는 말을 합니다. 이런 윤석열 대통령 괜찮으신가요?”라고 말하자 지나가던 시민들이 공감하며 범국민 선언에 참여했다. 

 

또 다른 농성단(강남구 거주)은 “윤석열이 자살 방지 대책으로 번개탄 생산 중지를 이야기한다. 이런 어처구니없고 멍청한 대통령을 그냥 놔둬야 합니까”라고 시민들에게 윤석열 퇴진의 이유를 호소하기도 했다.

 

오후 12시 30분이 되자 농성장 앞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촛불행동이 오후 1시에 주최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부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참여하기 위한 시민과 이를 촬영하기 위한 유튜버들이 모인 것이다. 

 

부부가 같이 온 시민은 “기자회견에 힘이 되기 위해서 나왔다. 경찰이 며칠 전에 농성단을 연행했다. 잠시라도 시간이 생기면 온다”라고 말하며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그리고 주말에 촛불대행진의 자봉단으로 활동하는 분도 “근처에서 일하고 있는데 오후 1~2시간 정도 온다. 농성장을 지키기 위해서 왔다”라고 말했다. 

 

지난 21일 남대문경찰서는 불의에 농성장을 철거하려다 이를 막으려던 농성단 3명을 연행했다. 연행된 사람들은 하루 뒤인 지난 22일 모두 석방됐다. 

 

경찰이 또다시 농성장을 침탈할까 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시간을 내서 농성장으로 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경찰의 침탈이 있었던 날 이후로 농성장 주변 곳곳에 있는 나무나, 공간이 넓은 곳에 경찰 펜스가 처져 있었다. 경찰의 의도는 농성장 확대 설치를 막는 것과 동시에 주말마다 열리는 촛불대행진 공간을 좁게 만들려는 의도로 보였다. 펜스가 놓인 곳은 촛불대행진 자봉단 천막이나 커피, 깔개 등을 나눠주는 천막이 설치된 자리였다. 

 

▲ 경찰은 시청역부터 숭례문 근처 인도 곳곳에 펜스를 설치했다.  © 김영란 기자

 

기자회견이 진행되자 시민 한 분은 조용히 범국민 선언 가판대를 지키며 응원을 보냈다.

 

농성단에 물품을 기증하는 시민도 있다. 이날도 단식농성에 필요한 생수를 기증한 시민, 밤에 추울까 봐 침낭을 들고 온 시민도 있었다.

 

기자회견을 마친 뒤 농성단은 잠시 쉬었다가 ‘촛불의 길’을 걸었다. 촛불의 길은 농성장부터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시민 합동분향소(아래 분향소)를 지나 미국대사관, 일본대사관 뒤의 평화의 소녀상까지 ‘윤석열 타도’ 선전물을 들고 시내를 행진하는 것이다.

 

농성단은 이태원 참사 시민 합동분향소에 조문하고 유가족과 분향소 지킴이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다시 행진을 이어갔다. 

 

분향소에서 눈에 띄는 것은 시민이 부착한 꽃들이다. 서울광장에는 겨우내 있었던 야외스케이트장 철거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공사를 가리기 위한 철판 가림막이 설치돼 있었다. 시민들은 이곳에 어느 날 꽃과 함께 다짐의 의미를 담은 글귀가 적힌 스티커를 부착했다. 꽃들이 마치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것처럼 보였다.

 

 © 김영란 기자

 

평화의 소녀상에 도착한 농성단은 소녀상 지킴이들과 대화를 나눴다. 지난 2015년부터 반일행동과 희망나비 회원들은 8년 동안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윤석열 정권 들어 친일극우 세력의 난동이 심해졌다고 한다. 

 

농성단은 젊은 청년들이 천막도 없이 농성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하면서 연대의 의지를 피력했다. 

 

농성단은 이곳에서 “친일 매국, 윤석열을 타도하자”라는 구호를 외친 뒤 촛불의 길을 마감했다.

 

촛불의 길을 함께 걸은 촛불행동 관계자는 숭례문 인근에 농성장을 차린 뒤 서울광장의 유가족들과 연대의 기운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숭례문 인근, 서울광장, 일본대사관 근처 평화의 소녀상 지킴이, 모두 윤석열 정권을 반대하는 마음이 같기에 서로에 응원을 보내고 더 크게 투쟁의 현장에 만날 것을 다짐하는 듯했다.

 

농성장으로 돌아오니 어느덧 오후 3시 40분이었다.

 

농성단에게 인사를 드리고 반나절 농성을 마쳤다. 비록 점심 한 끼 안 먹을 뿐인데 속이 허전하고 기운이 없는 듯 느껴졌다.

 

그런데 4일, 5일 단식농성을 하면서 매일 실천 활동을 하는 시민들은 오히려 더 기운이 넘쳐 보였다.

 

단식농성 4일째인 용산구 주민인 박 모 씨는 “시민들이 윤석열에 분노가 크지만 아직 광장으로 나오시지 못하는 분이 많다. 그분들이 편하게 광장에서 ‘윤석열 퇴진’, ‘윤석열 타도’를 외칠 수 있도록 우리가 광장을 지키고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리려고 농성에 결합했다”라고 말했다.

 

월차를 내고 수원에서 와 단식농성 5일째인 이 모 씨는 “검찰의 이재명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수백 곳을 압수수색했는데 범죄를 입증할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라며 검찰의 행태를 비판했다.

 

이어 “검찰은 ‘허위경력·주가조작’ 김건희 씨를 왜 수사하지 않는가. 영부인이기 때문인가. 윤석열이 계속 대통령으로 있으면 검찰의 이런 행태는 계속될 것 같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농성에 결합했다”라고 덧붙였다.

 

시민들의 반응은 어떠냐는 질문에 이 모 씨는 “며칠 동안 보니 시민들은 농성단 활동을 관심 있게 지켜보신다. 농성장 근처를 오가며 농성단을 보던 직장인들은 조용히 와서 범국민 선언에 참여하시고 모금을 해주신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윤석열에 대한 분노가 크다는 것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촛불행동은 농성장을 ‘윤석열 타도’의 범국민 여론 형성장으로, 투쟁거점으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농성단은 여론 형성장으로, 투쟁거점으로, 연대의 출발점으로 되는 듯하다.

 

▲ 24일 진행된 기자회견 모습.  © 촛불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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