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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사우디 국교 정상화로 판 뒤집힌 중동…중국·자주 노선 ‘부각’

박명훈 기자 | 기사입력 2023/03/23 [19:32]

이란·사우디 국교 정상화로 판 뒤집힌 중동…중국·자주 노선 ‘부각’

박명훈 기자 | 입력 : 2023/03/23 [19:32]

중국 위상 확인한 이란·사우디 국교 정상화 중재

 

▲ 2023년 3월 10일, 중국·이란·사우디아라비아 삼국이 베이징에서 이란과 사우디의 국교 정상화를 약속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왼쪽부터 무사드 빈 무함마드 알 아이반 사우디 국가안보보좌관,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알리 샴카니 이란 최고국가안보위원회 위원장.  © 중국 외교부

 

지난 3월 10일, 이란·사우디아라비아 양국이 베이징에서 두 달 안에 국교 정상화를 하기로 깜짝 합의했다. 7년 동안 국교를 단절하고 반목하던 이슬람교 시아파, 수니파 종주국인 양국이 7년 만에 중국의 중재로 전격 화해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원래 중동·아랍 지역에서 ‘중재자’ 역할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수십여 년 동안 미국이 도맡아왔다. 과거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담 후세인 정권을 힘으로 찍어누르기도 했다.

 

미국은 중동의 평화를 위한다며 각국 간 협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힘을 과시했다.

 

지난 2020년 1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백악관으로 초청해 이른바 ‘중동평화구상’을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평화를 위해 내놓은 구상이라고 주장했으나 실제 내용은 평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팔레스타인의 주권을 제한하고 이스라엘에 무릎 꿇리는 내용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같은 해 9월,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대표를 백악관으로 초청해 평화 수교 협정을 맺는 이른바 ‘아브라함’ 협정도 주도했다. 이스라엘과 중동 각국의 관계를 정상화해 미국의 말을 듣지 않는 이란을 견제하겠다는 취지였다. 이 역시 평화로운 해결책은 아니었다. (인남식, 「이스라엘·UAE 평화협정(아브라함 협정)의 함의」, 『외교안보연구소』, 2020.8.28.)

 

하지만 미국 대신 중국이 새로운 중재자로 등장한 이란·사우디 합의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중국이 이란·사우디 사이를 조율하는 과정에서는 그동안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의 편을 들며 중동에 ‘감 놔라 배 놔라’ 패권을 부렸던 때와 비교되는 새로운 특징이 두드러졌다.

 

먼저 이란·사우디 양국은 앞서 3월 6일부터 10일까지 베이징에 머무르면서 중국과 함께 공동성명 내용을 긴밀하게 조율했다. 특히 양국은 중국이 제시한 ‘상호 주권존중’, ‘내정불간섭’ 원칙을 받아들였다. 서로 대립하던 국가들이 ‘중국식 국제 질서’를 받아들여 화해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中 외교부, 사우디-이란 베이징 회담 관련 대변인 명의 기자문답 게재」, 인민망 한국어판, 2023.3.13.)

 

또 중국은 오랫동안 반목해온 양국의 상황을 배려해 세심히 신경을 기울였다. 예를 들면 중국은 회담장 탁자에 까는 깔개를 이란·사우디 양국에서 모두 거부감이 없는 ‘이슬람 상징색’인 초록색으로 통일했다.

 

또 삼국은 공동성명 합의문을 영어로 작성하지 않고 각국의 언어인 중국어, 페르시아어, 아랍어로 작성해 발표했다. 그동안 국제 공용어로 통하던 영어를 일부러 쓰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이랑, 「[특파원 리포트] “미국, 보고있나! 나도 중재자” 틈새 노리는 中 전략」, KBS, 2023.3.16.)

 

이란·사우디 양국은 2년 가까이 양국관계를 조율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특별히 감사를 표시했다. 시 주석 3연임이 결정되는 날에 삼국 공동성명이 발표된 것도 이란·사우디가 중국을 존중하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시 주석은 지난 2021년 4월 중동 각국을 바쁘게 오가면서 화해와 협력, 평화 분위기를 키웠다. 시 주석은 지난 2022년 12월에는 사우디를 방문했고, 두 달 뒤인 2월에는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중국을 찾아 시 주석과 접견했다. 

 

알리 샴카니 이란 최고국가안보위원회 위원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동을 방문하는 동안 라이시 이란 대통령을 만나 이란과 사우디의 협상을 조율했다”라면서 “대화 끝에 우리는 이란과 사우디 사이 7년의 단절을 끝내고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라고 밝혔다.

 

무사드 빈 무함마드 알 아이반 사우디 국가안보보좌관도 “사우디아라비아는 이 합의가 형제 국가와 다름없는 관계 아래에서 양국에 새로운 장을 열어줄 것을 희망한다”라고 긍정했다. 그동안 이란을 맹렬히 비난하던 사우디 고위 인사가 앙숙 관계였던 이란을 ‘형제 국가’라고 부른 점이 주목된다.

 

중동·아랍 전문가 이희수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지난 3월 15일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서 이번 합의를 두고 “굉장한 일이다. 중동에서 미국이 별 필요 없게 된 것”이라면서 “2년 동안 미국이 중동을 떠나는 추세에서 중국이 치열하게 물밑 협상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AP통신은 “중동에서 미국이 서서히 발을 빼는 것으로 걸프 국가들이 인식하는 가운데 중국의 중요한 외교적 승리”라고 평가했다. 

 

중국은 석유·천연가스 대국이자, 세계 최대 석유 물동량을 자랑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끼고 있는 이란·사우디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일대일로’를 크게 확대할 길도 열었다.

 

공동성명을 중재한 중국의 ‘외교사령탑’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은 “대화와 평화의 승리”라고 강조하면서 “앞으로도 세계의 주요 문제를 다루는 데 건설적인 역할을 지속해 주요 국가의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주 노선: 시아파 종주국 이란,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의 목표

 

본래 이슬람교를 대표하는 시아파 종주국 이란과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는 교리상 가까워질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은 사이였다. 다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친미 왕조가 들어선 사우디와 마찬가지로 이란에 친미 팔레비 왕조가 들어서 있던 때는 미국의 중재로 이런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나진 않았다.

 

하지만 1979년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 팔레비 왕조가 쫓겨나고 ‘반미 이슬람혁명’ 노선을 채택한 새로운 이란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특히 사우디는 이란이 강력한 반미 노선을 내걸며 ‘공화주의 이슬람혁명 수출’을 천명하자 전제 왕정이 뒤집힐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이란과 걸프만 사이로 맞댄 사우디는 자국에서도 이란과 비슷한 혁명이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했고 미국산 무기를 대거 사들이는 등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며 이란을 적대했다. 이란 역시 사우디를 적국으로 여겼다.

 

이런 험악한 상황에서도 이란·사우디 양국은 관계 개선을 모색하긴 했다. 하지만 지난 2016년 사우디에서 시아파 인사를 처형하고 이란과 단교하면서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뿐만 아니라 사우디 남쪽 예멘에서는 이란이 지원하는 시아파 반군과 사우디가 지원하는 수니파 정부군이 대리전을 시작했다. 미국은 사우디와 이란의 대립을 방관했다. 

 

이대로는 이란과 사우디가 안보, 경제 측면에서 받는 피해만 눈덩이처럼 불어날 뿐이었다. 마침내 양국은 중국이 중재한 공동성명에서 지금까지 미국이 부추겨온 해묵은 갈등을 해소하고 협력과 평화로 나아가기로 했다. 특히 양국은 국교 정상화와 함께 예멘 내전 종식에도 합의했다. (우수경, 「[특파원 리포트] 누가 누구의 적일까…중동 국가들 속내는?」, KBS,  2023.3.15.)

 

이란·사우디가 자주 노선으로 나아간 결정적 계기는 중동과 인근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를 꼽을 수 있다. 지난 2021년 7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에 주둔한 미군이 2021년 말까지 이라크에서 떠날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다음 달인 2021년 8월에는 미군이 탈레반에 권력을 넘기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야반도주’하는 일이 벌어졌다. 

 

미군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갑자기 철수하자 미국에 안보를 내맡겨온 사우디에서는 ‘미국이 사우디를 지켜주지 않을 것’이라는 불만이 높아졌다. 중동 전반에도 ‘미국이 중동에서 발을 빼려 한다’는 분위기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이란과 사우디는 자주 노선을 모색했다. 이란과 사우디는 각자 이른바 ‘동방정책’을 펴면서 경제력, 군사력이 강한 중국과의 관계 강화에도 나섰다.

 

한때 이란은 바이든 정권 들어 트럼프 정권이 파탄 낸 핵 합의 논의가 재개되자 제재 해소로 경제에 숨통이 트일 거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미국은 이란 핵 합의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무산시켰다. 그러자 이란은 미사일 개발과 시험 발사로 미국을 견제하는 한편, 중동 각국과 관계 개선에 나섰고 미국과 대립하는 중국과의 협력도 다방면으로 모색했다.

 

지난 2월 16일, 베이징에서는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국빈 자격으로 베이징을 찾아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했다. 이란은 공동성명을 통해 중국에게서 이란 핵 합의, 미국의 대이란 제재 전면 해제 지지를 이끌어냈다. 또 미국을 겨눠 민족 존엄 수호, 내정 간섭 반대 같은 표현을 담아 중국과 함께 미국을 규탄했다.

 

지난해 사우디의 실질적 권력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사우디 왕세자는 ‘석유 감산’ 조치를 요구하며 직접 찾아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요구를 거부하고 푸대접했다. 정반대로 지난 2022년 12월, 무함마드 왕세자는 시진핑 주석을 매우 극진히 대접하며 일대일로 동참을 선언했다. 또 양국 간 관계를 격상하는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에도 서명했다.

 

특히 시 주석과 무함마드 왕세자의 만남에서 사우디가 위안화를 석유 결제 통화 중 하나로 결정한 점이 눈에 띈다. 이전까지 사우디는 미국과의 합의에 따라 달러로만 자국 석유를 거래할 수 있었다. 그랬던 사우디가 중국과 힘을 합쳐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흔든 것이다.

 

이란과 사우디는 지난 2022년부터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브릭스(BRICS), 안보에서는 마찬가지로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안보 협력체 상하이협력기구(SCO) 가입을 추진해왔다. 이러한 흐름도 양국이 안보협력협정, 무역·경제·투자 정상화가 포함된 공동성명에 합의한 배경으로 보인다.

 

사우디는 조만간 라이시 이란 대통령을 초청해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란과 사우디의 국교 정상화가 앞으로 중동에 어떤 변화의 바람을 불러올지 관심을 끈다.

 

좌절한 미국과 이스라엘…물거품 된 ‘중동판 나토’의 꿈

 

중동 각국, 각 진영은 이란·사우디 국교 정상화 소식에 일제히 환영했다.

 

이라크는 외무부 성명에서 “새로운 장이 열렸다”라고 환영했다. 바드르 알 부사이디 오만 외무장관도 트위터에서 “모두를 위한 ‘윈-윈’으로 지역과 세계 안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걸프협력회의(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오만, 바레인) 소속 국가들은 물론 레바논의 무장 정파 헤즈볼라 등도 한목소리로 국교 정상화를 환영했다.

 

이란의 정치 분석가 디아코 호세이니 씨는 지난 3월 11일(현지 시각) 중동권 매체 알자지라에서 이란·사우디 국교 정상화로 “예멘,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의 긴장을 완화해 양측 모두에게 광범위한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라면서 기대감을 드러냈다. 

 

시아파와 수니파의 맹주인 이란·사우디가 관계를 정상화하면 다른 중동 각국도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앞으로 이란과 사우디가 어떻게 협력하느냐에 중동 전 지역에 갈등과 대립이 아닌 평화와 안정, 번영이 올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반면 미국과 미국을 대신해 중동에서 입김을 키우려 한 이스라엘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미국은 이라크 미군 철수와 아프간 야반도주를 기점으로 한계를 느꼈고, 이란과 으르렁대던 이스라엘과 사우디를 묶어 이란·중국·러시아를 견제하는 이른바 ‘중동판 나토’를 구상했다. (인남식, 「사우디아라비아·이란 관계 정상화의 함의」, 『외교안보연구소』, 2023.3.15.)

 

하지만 이번 삼국 간 합의로 중동판 나토가 사실상 물거품이 되면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처지는 난처해졌다. 

 

특히 유럽에서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북아시아에서는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를 통한 아시아판 나토, 중동에서는 사우디와 이스라엘을 묶은 중동판 나토 구상으로 대중·대러·대이란 포위망을 짜려던 미국의 포위망 전략에 구멍이 뚫렸다.

 

이런 흐름 속에서 중동의 또 다른 강국인 튀르키예와 이집트가 지난 3월 18일, 11년 만에 외교 장관 회담을 통해 국교 정상화에 합의했다. 지난 3월 19일, 친이란 정책을 펴온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도 UAE에 방문해 ‘아랍연맹’ 복귀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는 지난 3월 21일 유튜브 채널 ‘언더스탠딩: 세상의 모든 지식’에서 “미국의 체면이 완전히 끝장났다. 미국이 중국을 포위하려 한 상황에서 중국이 유유히 빠져나갔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뭘 할 수 있나”라고 평가했다.

 

중국은 올해 연말, 걸프협력회의 소속 6개국 정상을 베이징으로 초청해 중동 각국을 한데 모으는 구상도 추진하고 있다. 걸프협력회의 6개국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중동판 나토에 끌어들이려 한 국가들과도 일치한다.

 

이란·사우디 관계가 안정화되고 다른 중동 각국이 중국의 중재 아래 하나로 모인다면, 중동 지역에서 이권을 놓지 않으려는 미국과 이스라엘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

 

이를 두고 국립외교원장을 지낸 김준형 사단법인 외교광장 이사장은 지난 3월 15일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서 “미국이 중국을 배제하려다가 역설적으로 스스로 배제당하게 된 것”이라고 쓴소리를 던졌다.

 

앞으로 중동 각국에서 자주 노선을 바탕으로 국익과 평화는 물론 공리, 공존, 공영을 극대화하려는 움직임이 커지리라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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