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이 발발하고 11월 2일(현지 시각)까지 8,5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희생됐다. 최근 가자 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한 이스라엘이 민간인을 무차별 공격하면서 희생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양상이다.
1. 상반된 주장 속 무차별 폭격의 진짜 의도는?
전쟁이 한 달 가까이 이어진 가운데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 북부 자발리아 난민촌을 공격해 하루에만 수백 명의 주민이 희생당했다. 이에 관해 하마스와 이스라엘은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
11월 1일 이스라엘군은 성명을 통해 “공습 이후 자발리아의 하마스 근거지를 소탕하고 고위 사령관을 사살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관해 리처드 헥트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미국 CNN과 대담에서 “이스라엘이 공격한 것이 맞다. (이번 작전에서) 하마스의 상급 지휘관을 공격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라며 많은 희생이 있을 줄 알면서도 민간인 거주 지역을 공격했다고 인정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러한 작전이 ‘하마스 섬멸’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땅굴에 거점을 둔 하마스의 거점 위쪽에 민간 시설이 있어서 민간인의 희생은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하마스 측은 “우리 지휘관 중 공습이 이뤄진 시간대에 현장에 있었던 이는 없다”라며 “(하마스의 지휘관을 사살했다는 이스라엘군의 발표는)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가자 지구 내무부는 “난민촌 사망자가 100명으로 늘었다”라면서 “자발리아에서만 400명의 희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다”라고 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하마스의 정치 지도자인 이스마일 하니예는 11월 1일 연설을 통해 이스라엘의 공격은 “(이스라엘의) 패배를 숨기기 위한 학살”이라면서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만 하니예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패배했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이와 관련해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10월 31일 페이스북에서 하마스가 가자 지구 북서쪽 베이트 라이아 지역을 점령한 이스라엘군에 맞서 박격포를 장착한 전투차량과 저격수 등으로 이스라엘군의 후방을 공격했다고 짚었다.
이 전투는 이스라엘의 잔혹한 공세 속에서도 팔레스타인이 그리 밀리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하니예의 ‘이스라엘 패배’ 언급은 이 전투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하니예는 연설에서 “미국은 인도주의적 휴전을 방해하는 파시스트 정부(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라면서 휴전을 할 수 있다는 의사도 드러냈다. 하니예의 발언을 종합하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상대로 거둔 ‘성과’를 바탕으로 이스라엘에 휴전을 압박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듯하다.
10월 30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가자 지구에서 휴전은 없다”라면서 오히려 가자 지구에 투입하는 지상군을 늘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로부터 이틀 뒤 나온 하니예의 ‘휴전’ 발언은 네타냐후 총리를 향한 압박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스라엘군은 10월 13일 “가자시티 내 모든 민간인에게 스스로 안전과 보호를 위해 집에서 남쪽으로 대피할 것을 촉구한다”라고 통보했다.
하지만 평생 고향에서 살아온 가자 지구 주민들에게 무작정 ‘남쪽으로 떠나라’라는 건 폭력적인 일방 통보라는 시각이 있다. 게다가 애초 가자 지구의 도로를 따라 병력을 배치한 이스라엘군 때문에 주민들이 남쪽으로 이동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이스라엘군의 대피 통보는 사실상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기만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이스라엘이 민간인을 무차별 공격하는 배경에는 팔레스타인을 완전히 장악하려는 ‘진짜 의도’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0월 31일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이스라엘 정보부의 유출 문서를 근거로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에는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을 이집트 시나이 사막으로 쫓아내고,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주민들 역시 쫓아내 팔레스타인 전역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즉, 처음부터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노린 게 아니라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노린 것이라는 뜻이다.
2. 난민촌부터 교회까지…무차별 폭격에 따른 참상
이스라엘의 공격 이후 현장을 찍은 사진을 보면 가족의 죽음을 알고 울부짖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참상이 전해진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겪는 실제 상황은 훨씬 더 끔찍할 것으로 보인다.
11월 1일 알자지라 보도와 가자 지구 보건부 발표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난민촌, 병원(암센터와 산부인과 등), 빵집, 교회 등 민간인이 있는 곳을 겨눠 표적 공격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자녀 3명을 한꺼번에 잃은 아버지 알수리 씨는 알자지라와 대담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집인 이곳(성 포르피리오스 교회)이 우리의 마지막 안전한 피난처라고 생각해 찾았다”라면서 “그들(이스라엘군)은 나의 천사들을 아무런 경고도 없이 폭격해서 죽였다. 그들은 우리 아이들, 사촌들과 친척들의 아이들을 죽였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지난 16년 동안 팔-이 충돌로 희생된 팔레스타인 주민은 6,407명(이스라엘인은 308명)이었다. 그런데 이번 전쟁이 발발하고 나서는 불과 20여 일 만에 지난 16년보다 1.6배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10월 29일 국제아동권리 비정부기구인 세이브더칠드런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이후 전 세계 분쟁 지역에서 발생한 연간 어린이 희생자의 총합보다 더 많은 어린이들이 가자 지구에서 희생됐다. 이스라엘에 의해 희생된 팔레스타인 어린이의 수는 4,000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10월 31일 뉴욕타임스는 이스라엘군이 가자 지구에서 건물 3만 8,200채~4만 4,500채를 파괴했다면서 이는 21세기 들어 폭격에 따른 가장 큰 파괴 사례라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무차별 공격하면서 ‘21세기 최악의 전쟁범죄’가 현재진행형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11월 1일 스테판 뒤자리크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은 “오늘 아침 많은 기자가 가자 지구 자발리아 캠프 폭격에 대한 반응을 물어왔다”라면서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여성과 아동 등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죽이는 행위를 포함해 가자지구의 폭력 사태가 격화하고 있는 것에 경악했다”라고 밝혔다.
제임스 엘더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 대변인은 “(어린이들이 희생된) 수치는 매일 크게 증가하고 있다”라면서 “가자 지구가 아이들 수천 명의 묘지가 됐다”라고 개탄했다.
가자 지구에 7년 동안 거주했던 한국인 가족들도 참상을 전했다.
11월 3일 연합뉴스는 가자시티에 거주하던 중 피난한 한국인 가족의 사연을 보도했다. 최모 씨, 팔레스타인계 남편 ㄱ 씨 부부와 자녀 3명인 5가족은 이스라엘의 폭격을 피해 가자 지구 남부를 거쳐 이집트로 들어왔다. (연합뉴스, 「[인터뷰] 가자탈출 한국인 “겨울 옷가방만 들고 도망…집 폭격, 다무너져”」, 2023.11.3.)
최모 씨는 대담에서 “여기저기서 폭발음이 들리고 집이 흔들려서 두려웠다. 하지만 우리 집 바로 옆만 아니라면 괜찮겠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이스라엘 정부에서 나가라고 하니까 소리 없이 폭격당해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를 느꼈다”라면서 “여기(한국)서 상상하는 것, 텔레비전에서 보는 것보다 더 상황이 심각하다. TV에 나오는 장면은 심각한 곳만 찍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진짜 그렇지 않다 더 심각하다”라고 했다.
또 “우리 집도 폭격을 당해서 다 무너졌다고 지인에게 들었다. 오갈 데 없는 상황이다. 시누이들 집도 다 공습을 받았다고 한다. 완전히 무너져 내린 데도 있고 일부만 무너진 곳도 있고 거의 모든 집이 폭격받았다고 보면 된다”라면서 “2021년에도 전쟁이 있었는데 당시엔 이스라엘이 위험하다고 생각한 지역만 공격했는데 지금은 무차별적이다. 병원도, 교회도, 학교까지 공격을 안 하는 곳이 없다”라고 했다.
또 최모 씨는 남쪽으로 대피한 뒤에도 전기, 가스, 차량 연료 부족에 시달려야 했고 이집트 근처 국경에서도 이스라엘의 폭격이 계속돼 안전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이스라엘군은 가자 지구 주민들에게 ‘공격을 피하려면 남부로 가라’라고 공지했다면서, 민간인의 희생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식으로 발뺌하고 있다. 미국도 이스라엘이 민간인의 희생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믿는다며 전쟁범죄를 두둔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앞으로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얼마나 더 큰 희생과 피해가 닥칠지 가늠하기 어려워 보인다.
한편 10월 29일 일본 매체 조슈신문에 따르면 이란,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시리아, 이집트, 요르단, 방글라데시 등 이슬람권 각국에서는 팔레스타인을 지지, 연대하는 시민 수만~수십만 명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중동 각국에서 이런 대규모 시위 물결은 유례가 없는 것이다.
시위에 동참한 시민들은 “이스라엘이야말로 나라가 아니다. 테러리스트다”, “가자에 자유를, 팔레스타인에 자유를”, “이스라엘은 미국과 서방의 지지를 받아 어린이들을 죽이고 있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앞서 10월 27일 열린 유엔 총회에서는 120개국이 찬성해 유엔 총회에서 팔-이 전쟁 휴전 결의안이 압도적으로 가결됐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미국 등 14개국이 반대해 대비되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은 기권했다.
엑스(옛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이스라엘의 폭격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참상을 알리면서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글과 영상이 시시각각 올라오고 있다.
국제사회와 인터넷 공간 전반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며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여론이 힘을 받고 있는 추세다.
이와 관련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공범들을 국제형사재판소에 전쟁범죄 혐의로 기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전쟁범죄 공범’ 이스라엘과 미국은 결코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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