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멘 후티 반군이 이스라엘에 들르는 선박만 노리는 이유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이 계속되는 중동지역에서 또 다른 전쟁을 촉발할 수 있는 뇌관이 있다. 대서양과 인도양을 잇는 홍해에서 예멘의 후티 반군과 미국이 대립하는 군사 충돌이다.
중동권 유력 매체 알자지라 등 언론 보도에 따르면 후티 반군은 지난해 11월 14일(현지 시각)부터 적어도 선박 23척을 대상으로 나포와 공격을 시도했다. 모두 홍해를 거쳐 이스라엘 항구에 들르는 선박으로 이스라엘로 들어갈 물자를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보도에 따르면 후티 반군의 공격을 받은 선박이 파손됐지만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현 단계에서는 후티 반군이 공격 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후티 반군은 전 세계 3대 무역 해상로 중 하나인 홍해 근처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장악하고 있다. 후티 반군은 지난해에 이어 새해 초에도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지나 이스라엘 항구에 들르는 각국의 선박 단속을 계속하고 있다.
1월 1일 알자지라에 따르면 후티 반군은 “(이스라엘 물품을 실은 선박을 향한) 이러한 공격은 (이스라엘에 의해) 포위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기 위한 것”이며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전쟁을 중단하지 않는 한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후티 반군은 단속, 공격 대상으로 삼는 선박을 이스라엘 항구에 들러 이스라엘 측에 물품을 전하는 선박으로 제한했다. 후티의 시각에서는 ‘홍해를 지나려면 이스라엘과 친하게 지내지 말라’라고 전 세계에 통보한 셈이다.
지난해 12월 6일 후티 반군은 홍해에서 미국 상선인 유니티 익스플로러, 넘버9, 소피2 등 상선 세 척을 미사일로 공격했다. 또 미 상선을 보호하기 위해 나선 미 군함 USS 카니호도 드론 여러 대로 공격했다. 이후 12월 12일에는 이스라엘 항구로 향하려던 노르웨이 국적 유조선 스트린다호가 후티 반군의 대함 순항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12월 26일에는 이스라엘로 향하던 스위스 국적 상선 ‘MSC 유나이티드 VIII’가 후티 반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12월 31일에는 앞서 12월 15일 후티 반군의 공격을 받고 홍해 진입을 일시 중단했다가 재개한 컨테이너선 머스크 항저우호가 또 다시 후티 반군의 공격을 받았다. 이 파장으로 덴마크 국적 세계 2위 해운업체인 머스크는 홍해 진입 자체를 포기했다. 머스크 외에도 스위스 MSC, 프랑스 CMA, 독일 하파그로이드 등 이스라엘에 드나들던 세계 5대 해운업체 가운데 4곳이 후티 반군의 공격을 우려해 홍해 진입을 중단했다.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대서양과 인도양을 최단 거리로 잇는 중요한 물길이다. 전 세계 해상 컨테이너 물동량의 30퍼센트, 상품 무역량의 12퍼센트가 이곳을 거친다.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페르시아만에서 생산된 석유를 유럽과 북미로 수출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후티 반군으로서는 좁은 해협을 적극 활용해 이스라엘, 이스라엘과 경제 교류를 하는 국가들의 숨통을 조이는 군사 전략을 펴고 있는 셈이다.
2. 특징: 삼파전, 국제전
미국과 서방의 주요 언론은 후티 반군이라는 표현을 쓰며 이들이 ‘위험한 군사 집단’이라는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서구 언론에서 쓰는 후티 반군이라는 명칭은 후티 반군의 지도자 압둘말리크 알후티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후티 반군은 스스로를 예멘 또는 “알라의 지지자”라는 뜻의 아랍어 ‘안사르알라’라고 일컫는다. (※이 글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익숙한 후티 반군이란 표현을 썼다.)
반군이라고 하면 거점 없이 떠도는 열악한 부대라는 인상이 강하지만, 정작 후티 반군은 예멘의 수도인 사나를 장악해 정부의 기능과 역할을 맡고 있다.
한국방송(KBS) 프로그램 「세계는 지금」의 2021년 10월 6일 보도 영상에 따르면, 후티 반군은 2021년 9월 21일 사나 시내에서 사나 점령 7주년 기념행사를 열었다. 영상을 보면 행정이 상당히 안정돼 있고 거리도 깔끔해 보인다. 후티 반군에 의해 사나의 치안과 질서가 유지되는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다. (「격화되는 예멘 내전, 보이지 않는 탈출구」, KBS, 2021.10.02.)
이런 측면에서 보면 후티 반군의 성격을 ‘후티 정권’이라고 평가하는 게 적절할 듯하다.
현재 예멘을 둘러싼 정세는 상당히 복잡하다. 서부의 사나를 중심으로 하는 후티 반군, 남서부의 아덴을 중심으로 하는 남부 과도위원회, 후티 반군에 의해 사막지대로 밀려난 동부 정권이 있다. 이 삼파전 상황을 흔히 예멘 내전이라고 일컫는다.
예멘을 둘러싼 상황은 내전에 더해 국제전이라는 특징도 있다.
현시점에서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은 후티 반군을, 수니파의 종주국인 사우디는 사막지대로 밀려난 동부 정권을 지원하고 있다. 예멘 서남부의 아덴을 장악한 남부 과도위원회는 수니파 세력이 강한 아랍에미리트의 지원을 받고, 때에 따라 동부 정권과 손을 잡고 있다. 현재 유엔은 예멘의 정식 국가로 동부 정권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후티 반군 역시 정부 수반과 외무부 등의 장관을 갖췄다는 점에서 사실상 하나의 국가로 볼 수 있다.
후티 반군은 1992년 예멘 북부의 시아파 부흥 청년운동에서 출발했다. 그러던 중 후티 반군은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당시, 미국을 지지하는 예멘의 수니파 정권을 상대로 반정부 무장투쟁을 벌였다. 친미 수니파 정권에 대항하며 세력을 크게 키운 후티 반군은 2014년 들어 예멘의 수도인 사나까지 점령했다.
애초 예멘을 혼란에 빠트린 예멘 내전의 근본 원인은 종교 교리, 부족과 상관없이 멋대로 국경선을 그은 영국 등 서구 제국주의에 있다. 종파와 부족이 다른데도 시아파와 수니파가 사는 지역을 억지로 묶어놓으니 분쟁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미국과 유럽 각국 등 서구는 예멘의 수니파 정권을 일방적으로 지원했고, 시아파 주민들 사이에서는 미국을 향한 반감이 날로 심해졌다. 예멘 내전 과정에서 후티 반군이 부상한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
특히 후티 반군이 장악한 사나 일대는 대부분이 사막지대인 예멘에서도 강수량이 일정하며 농사가 잘되고 날씨도 온화하다. 기후 조건이 좋은 만큼 후티 반군은 다른 세력에 비해 군대를 위한 식량과 물자 생산에도 상당히 유리하다. 이런 점에서 삼파전을 벌이는 예멘의 세력 가운데 후티 반군이 유리한 고지에 섰다고 볼 수 있다.
3. 예멘과 중동은 어떻게 될까?: 두 가지 전망
현재 후티 반군은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물자를 최대한 차단해 이스라엘이 팔-이 전쟁을 관두게 하는 ‘말려죽이기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후티 반군은 이스라엘로 드나드는 선박을 단속하면서도 틈틈이 이스라엘을 드론으로 공격하는 등 이스라엘을 견제하고 있다.
후티 반군이 팔-이 전쟁이 끝나야 선박 공격을 멈추겠다고 밝힌 만큼 후티 반군과 이스라엘의 대립은 팔-이 전쟁에 따라 판가름 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전 세계의 눈이 쏠리는 홍해에서의 후티 반군과 미국 간 대립은 팔-이 전쟁에 집중하는 이스라엘 대신, 이스라엘의 동맹인 ‘형님 미국’이 홍해에서 후티 반군을 상대하는 국면이다.
지금으로선 예멘을 둘러싼 상황이 어떻게 될지 예단하기 어렵지만 두 가지 측면에서 전망해 볼 수는 있을 듯하다.
첫 번째는 이스라엘과 미국이 후티 반군과 대화를 통해 한 발짝 물러설 가능성이다.
이스라엘은 팔-이 전쟁에 들어가는 막대한 전쟁 비용을 감당하기에도 빠듯한 상황이다. 지난해 이스라엘 재무부는 이스라엘이 하마스와의 전쟁 비용으로만 적어도 500억 셰켈(대략 18조 원)을 쓰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전쟁의 파장으로 건설 사업이 중단되고 물품 생산량도 전쟁 이전보다 크게 떨어졌다. (「이스라엘 재무부 “전쟁, 내년 2월까지…18조원 들어간다”」, 뉴시스, 2023.12.26.)
여기에 후티 반군의 선박 단속으로 이스라엘로 반입되는 물자까지 차단되면서 이스라엘의 피해는 하루가 다르게 불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결국 경제난에 견디다 못한 이스라엘이 후티 반군에 먼저 대화를 요청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후티 반군이 이스라엘에 들르는 선박을 단속하는 한 미국과 유럽 각국 역시 막심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이스라엘로 가는 물품을 실은 서구 대기업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희망봉으로 한참을 빙 돌아가야 하는데, 이 경우 무역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해양분석정보 제공업체 마린트래픽에 따르면 갈수록 많은 선박들이 홍해를 피해 희망봉으로 돌아가고 있다. 물류업체 퀴네앤드나겔(Kuehne+Nagel)은 선박 330척이 후티 반군 위협의 영향을 받았는데, 이를 화물로 환산하면 6미터 높이 컨테이너 450만 개 규모라고 짚었다. 1월 4일 기준 현재까지 후티 반군의 위협으로 영향을 받은 무역 규모는 2,250억 달러(대략 296조 2,00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홍해 무역 리스크 여전히 높은 상황…“총 330척 후티 반군 위협 받아”, 이코노뉴스, 2024.01.04.)
문제는 이러한 손해마저 빙산의 일각이라는 점이다. 후티 반군이 이스라엘을 드나드는 선박을 단속하면, 버티다 못한 각국의 시민들이 대규모 시위 등으로 이스라엘과 미국에 팔-이 전쟁 중단을 강력히 요구하게 될 수도 있다.
다만 이스라엘과 미국은 하마스를 가자지구에서 완전히 몰아낼 때까지 전쟁을 지속하겠다고 거듭 강조해왔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과 미국이 후티 반군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두 번째는 예멘 사태가 팔-이 전쟁과 맞물려 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이다. 실제로 현재 예멘은 언제든 전쟁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중동과 아프리카의 이집트, 중앙아시아지역을 관할하는 미국 중부사령부는 무력으로 후티 반군을 억제하려 한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19일 한국 등 40여 개국을 상대로 연 홍해 항로 보호 화상회의에서 이른바 ‘번영의 수호자 작전’을 위한 다국적 함대의 기여를 요구했다. 미국이 주도해 동맹국과 다국적 함대를 꾸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번영의 수호자 작전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확고하게 밝힌 건 지금까지 영국뿐이다. 12월 22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에 작전 동참 의사를 밝힌 20여 개국 가운데 8개국은 자신의 이름이 공개되는 걸 거부했다. 로이터통신은 8개국이 작전의 정치적 민감성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짚었다. 이러한 상황에 비춰보면 말로는 작전 참가 의사를 밝힌 다른 국가들 중에서도 속으로는 작전에서 빠질 궁리를 하고 있을 수 있다. 어쩌면 미국 주도의 이번 작전은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홍해 항로 보호 화상회의 이후 지난해 12월 31일에는 홍해에서 사상 처음으로 후티 반군과 미국 간 교전이 벌어졌다. 아히야 사리 후티 반군 대변인은 “미국 적군이 예멘(후티) 해군 소속 보트 3척을 공격했다. 그 결과 우리 해군 병력 10명이 전사하고 실종됐다”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12월 31일 ABC뉴스와 대담에서 “후티 반군과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홍해에서 선박 보호를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또 ‘후티 반군을 선제공격할 것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선박 보호를 위해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라고 답했다. 필요하면 후티 반군과 전쟁을 벌일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현재 사우디 주변의 이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바레인은 반이스라엘-반미 성향의 시아파가 권력을 장악하거나 시아파의 기세가 높은 지역으로 평가된다. 이 가운데 예멘이 후티 반군에 의해 완전히 장악되면 이스라엘과 미국은 난감한 처지가 된다. 미국으로선 후티 반군을 제압하기 위한 선택지로 전쟁을 고려할 만한 상황인 것이다.
후티 반군을 지원하는 이란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이란 타스님통신은 1월 1일 이란 해군 94함대 소속 1,500톤급 구축함 알보르즈호가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과해 홍해로 진입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전날 후티 반군과 미국 간 교전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이란을 비롯한 중동지역의 여러 나라들이 군사 행동으로 후티 반군에 적극 힘을 실을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후티 반군과 미국의 군사 충돌은 국제전으로 번질 것이다.
예멘의 상황을 계속 예의주시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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