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러캐머라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이 3월 20일 미 하원 군사위원회가 개최한 안보태세 점검 청문회에 출석했습니다.
여기서 그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량파괴무기, 즉 핵무기를 개발한 의도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러캐머라 사령관은 “(북한은) 생존에 필요한 대량파괴무기를 개발하고 있고 그것으로 제재를 완화하려고 한다. 자기 나라를 방어하려고 준비하고 있고, 그게 최우선 순위”라고 답했습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 최우선 목적이 국가 방어라는 것입니다.
러캐머라 사령관은 북한을 깎아내리려고 한 말이겠지만 그의 말에서 복잡한 심경이 느껴집니다.
북한은 그간 자위적 억제력을 위해 핵무기를 개발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0년 7월 27일 제6차 전국노병대회에서 “우리의 믿음직하고 효과적인 자위적 핵 억제력으로 이 땅에 더는 전쟁이라는 말은 없을 것이며 우리 국가의 안전과 미래는 영원히 굳건하게 담보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주장은 최근까지도 이어졌습니다.
주영철 제네바 주재 북한대표부 참사관은 2월 28일 유엔 제네바사무소에서 열린 군축회의에서 “북한의 국방력 강화는 유엔 헌장 등에 부합하는 정당한 자위권 행사”라며 “북한의 핵 억지력은 미국의 핵위협으로부터 안전을 지키려는 목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미국은 북한이 도발과 위협을 목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2023년 1월 미 국가정보국은 「북한: 2030년까지 핵무기 활용 시나리오」라는 제목의 국가정보평가를 작성했습니다.
여기서 국가정보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억제력으로만 사용하면서 강압적인 위협이나 공격적인 행동을 자제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라고 하였습니다.
2023년 9월 미 국방부는 「2023 대량파괴무기 대응 전략」이라는 보고서를 공개했는데 여기서도 “북한은 미국 본토와 역내 동맹, 파트너를 위험에 빠뜨리는 이동식 단거리, 중거리, 대륙 간 사거리의 핵 역량을 개발하고 실전 배치하고 있다”라면서 “분쟁의 어느 단계에서도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모두 북한이 핵무기를 도발과 위협 목적으로 개발했다는 분석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러캐머라 사령관은 ‘자위적 억제력’이라는 북한 주장을 정확히 그대로 대변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그간 미국이 북한을 핵무기로 위협해 왔다는 것을 사실상 시인한 것으로 됩니다.
누구나 인정하듯 핵무기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는 핵무기밖에 없습니다.
미국의 핵무기에 대항하여 소련이 핵무기를 개발하였고, 인도의 핵무기에 대항하여 파키스탄이 핵무기를 개발했습니다.
러캐머라 사령관이 한 ‘북한은 국가 방어용으로 핵무기를 개발했다’는 말에는 미국이 그동안 북한을 핵무기로 위협해 왔다는 전제가 들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북한이 핵무기를 방어용으로 개발했는데, 누구도 북한을 핵무기로 위협하지 않은 상황에서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라고 답해야 했을 것입니다.
사실 그동안 미국은 공공연하게 북한을 핵무기로 위협해 왔습니다.
한국전쟁 중에 핵공격을 하려고 준비한 것부터 시작해서 1958년 주한미군에 핵무기를 배치해 북한을 겨냥했고, 매년 전략무기를 한반도에 보내 훈련했습니다.
또 북한이 핵개발을 하기 전인 2002년에 발표한 「핵태세검토보고서」에서 북한을 핵 선제공격 대상으로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북한 역시 미국의 핵위협이 핵무기를 개발한 배경이라고 주장합니다.
북한 최고인민회의가 2013년 4월 1일 채택한 법령 「자위적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데 대하여」 1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핵무기는 우리 공화국에 대한 미국의 지속적으로 가증되는 적대시 정책과 핵위협에 대처하여 부득이하게 갖추게 된 정당한 방위 수단”이라고 명시하였습니다.
한편 러캐머라 사령관의 답변보다 질문 내용이 더 흥미롭습니다.
질문자는 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도가 궁금했을까요?
북한은 미국이 자기를 건드리면 미국 본토로 핵미사일을 날리겠다고 미국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런 북한의 주장에 실제 미국이 위협을 느끼고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만약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굳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도를 파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질문자는 ‘실제로 북한의 핵미사일이 미국에 위협이 되는지’, ‘진짜로 북한의 핵미사일이 미국 본토로 날아올 가능성이 있는지’가 가장 궁금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한반도 최전선에서 북한을 상대하고 있는 주한미군사령관의 생각을 들어보려고 물었던 것입니다.
미국은 북한이 도발과 위협을 목적으로 핵미사일을 개발했다고 그동안 주장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최전선에 있는 주한미군사령관은 “북한의 핵미사일은 미국을 위협하고 공격하기 위한 것”이라고 답변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러캐머라 사령관이 저렇게 답변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다음 질문은 당연히 그것을 막을 방법일 것입니다.
북한의 핵미사일을 막을 방법이 없다면 제대로 답변할 수가 없게 되며 사령관으로서 책임을 추궁당할 겁니다.
러캐머라 사령관은 북한의 핵미사일을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에, 방어책이 있냐는 다음 질문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그냥 ‘북한 핵은 방어용’이라 답변한 것은 아닐까요?
아마 윤석열 대통령이나 신원식 국방부장관이었다면 “북한의 핵미사일이 발사되기 전에 킬 체인으로 핵미사일 발사대를 파괴할 것이고 즉·강·끝 압도적으로 응징할 것”이라고 씩씩하게 대답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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