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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정상회의 승자는 중국?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4/05/28 [17:53]

한·중·일 정상회의 승자는 중국?

김영란 기자 | 입력 : 2024/05/28 [17:53]

▲ 27일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발언하고 있다. (맨 오른쪽)  ©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27일 서울에서 4년 5개월 만에 ‘제9차 한·중·일 삼국 정상회의’를 열고 38개 항에 이르는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윤 대통령이 집권한 뒤에 한국은 미국의 외교 정책을 따라 중국을 반대하는 의견을 줄곧 냈기에 이번 정상회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 관심이 쏠렸다. 

 

38개 항에 이르는 공동선언에는 인적교류, 기후변화 대응 등을 통한 지속 가능한 발전, 경제·통상, 보건·고령화, 과학기술·디지털 전환, 재난 구호·안전 등 6개 분야에 대한 협력사업 등이 담겼다. 또한 정상회의를 정례적으로 열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하지만 이번 공동선언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한·중·일이 미국의 패권을 지적했다는 점이다.

 

스푸트니크 코리아는 27일 「미국이 싫어할 한중일 합의들…한반도비핵화·WTO·유엔중심」기사에서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유엔과 세계무역기구(WTO), 파리협약 등을 회피해온 점을 삼국이 함께 비판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라고 보도했다. 

 

한·중·일 정상은 공동선언 3항에서 “우리는 유엔 헌장의 목적과 원칙 및 법치와 국제법에 기반한 국제질서에 대한 우리의 약속을 재확인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국가들이 국제법과 국가 간 협정상 약속을 준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 공감하였다”라고 적시했다.

 

여기서 볼 것은 ‘국제법에 기반한 국제질서’다. 이 표현은 중국과 러시아 등이 즐겨 쓰는 표현이다. 

 

미국은 ‘규칙 기반 질서’란 말을 자주 사용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특별군사작전을 펼쳤을 때도 미국은 ‘규칙 기반 질서’의 수호를 주장하며 동맹국을 모았다. 또한 중국을 겨냥해서 ‘자유롭고 개방된’ 질서와 ‘규칙에 기반한 질서’를 강조하며 동맹국을 규합했다. 그래서 북대서양기구(나토)와 유럽, 한국, 일본도 ‘규칙 기반 질서’를 강조했다.

 

그런데 이번 정상회의 공동선언에 미국이 즐겨 쓰는 말이 아닌 중국이 쓰는 ‘국제법에 기반한 국제질서’가 등장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제법 기반 국제질서”가 “다극화 국제질서”라면서 “이번 중러공동성명에도 똑똑히 박혀 있고 이전부터 되풀이되는 문구”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 한·중·일 삼국이 미국을 배신(?)하고 미국이 그토록 싫어하는 ‘국제법 기반 국제질서’에 합의했다. 믿기 어려운 일”이라며 “규칙 기반이 뭔지, 국제법 기반이 뭔지 도무지 알 리 없는 틈을 중국 외교팀이 노린 것이 분명하다”라고 주장했다. 

 

한·중·일은 공동선언에서 미국의 보호주의 무역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공동선언 23항에는 “우리(한·중·일 정상)는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한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포용적이고 비차별적이며 규칙에 기반한 다자 무역체제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한다”라는 내용이 있다. 

 

미국은 자국 기업의 보호를 위해 중국뿐만 아니라 우방인 나라에서 미국에 들어오는 물품에 대한 관세를 높이고 있어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미국의 국내법을 세계무역 규범보다 우선시하고 있다. 

 

공동선언 23항은 미국의 행태를 비판하는 문구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브뤼셀 거버넌스 스쿨의 통피 김 연구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에 “한일이 미국의 대중국 관세 인상에 맞서 명시적으로 중국과 손을 잡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일방적 정책은 한일이 중국에 더 다가가도록 등 떠밀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줬다”라고 해석했다.

 

이번 공동선언에는 대미 관계, 새로운 국제질서에 대한 중국의 의견이 반영됐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중국은 이번 한·중·일 정상회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 같다.

 

중국 관영 매체인 환구시보는 27일 논평을 통해 이번 한·중·일 정상회의와 관련해 “협력이 부활했다”라면서 “의도적으로 기대치를 낮추려는 외부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이번 회의에서 얻은 성과와 파급력은 매우 컸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삼국 간 성과 외에도 양자 간 차원에서도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라고 해석했다.

 

중국 국제방송은 28일 기사에서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한·중·일 정상회의의 개최는 삼국의 협력에 대한 바람과 의지를 보여주고 한일 양국의 대중국 정책의 이성적인 회귀 및 삼국 간 정치 분위기의 회복을 반영했다”라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반면 일본은 긍정과 부정이 섞인 반응을 보인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8일 이번 정상회의에 대해 “긴장이 높아지는 동아시아에서 정상급이 얼굴을 맞대는 의의는 크다”라면서 “대화 재개를 지역 안정으로 살려야 한다”라고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4년 반 만에 대면으로 대화한 것을 계기로 지역 안정을 위해 구체적인 협력을 쌓는 일이 중요하다”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그러면서도 “안보에 대해서는 일한 양국과 중국 사이의 깊은 골도 다시 부각됐다”라고 짚었다.

 

일본의 NHK와 아사히신문은 부정적인 평가를 했다.

 

NHK는 “다음 의장국을 맡는 일본은 중국, 한국과의 현안이 존재하는 가운데 회의를 정례화하고 관계 강화를 도모할 수 있을지가 과제”라며 FTA와 관련해 중국의 불투명한 경제 관행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아사히신문은 한·중·일 정상회의 결과에 대해 경제협력을 중심으로 결속을 확인했으나 회의를 정례화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중·일 삼국 관계가 ‘동상이몽’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으며 앞으로 줄타기 같은 동아시아의 외교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미국은 중국의 의도가 앞으로 한·중·일 정상회의에 반영되지 않기를 바라는 속내를 드러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의 보호주의 탈피 요구에도 불구하고 세 나라는 무역 보호주의 탈피에 대한 계획에 합의하지 못했고 대신 수출통제 분야에서 소통을 지속할 필요성에 공감했다”라면서 “중국은 미국의 동맹들이 더 강한 대중국 무역 관계를 추구하도록 설득함에 있어 계속 제한에 직면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중국은 자국 시장에 대한 접근 확대를 제공함으로써 일본과 한국의 환심을 사고,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할 수 있다고 본다”라며 중국이 한·중·일 삼국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가속화 논의에 동의한 것이 그와 같은 목적에 따른 포석이었다고 부정적으로 해석했다. 

 

이런 속에서 미국은 오는 31일(미국 현지 시각) 워싱턴 D.C.에서 한·미·일 삼국 외교 차관 회의를 개최한다. 미국은 이 회의에서 한·중·일 정상회의 결과와 관련한 논의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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