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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주일미군 범죄 은폐 시도한 일본 정부

박명훈 기자 | 기사입력 2024/07/23 [22:21]

오키나와 주일미군 범죄 은폐 시도한 일본 정부

박명훈 기자 | 입력 : 2024/07/23 [22:21]

 

  © 주일미군사령부 페이스북

 

“I’m not guilty.(나는 무죄다)”

 

지난 7월 12일 일본 오키나와현 나하지방재판소(법원)에서 진행된 재판에서 나온 말이다. 이 말을 한 건 미성년자 일본인 여학생을 공원에서 유괴해 성폭행한 주일미군 병장 브레넌 워싱턴(25살)이었다.

 

7월 20일 산케이신문 보도에 따르면 워싱턴 병장은 여학생과 ‘동의에 따른 것’이었다며 유괴와 성폭행을 부정했다. 또 표정에 별다른 변화가 없이 당당한 태도를 보였고, 이런 워싱턴 병장의 태도에 방청자들 사이에서는 웅성대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워싱턴 병장이 범죄를 저지른 건 지난 5월이었다. 원래 절차대로라면 주일미군 측으로부터 이를 전달받은 일본 외무성이 오키나와현에 피해자와 가해자 정보를 공유하고 대책을 논의했어야 한다. 주일미군 사안과 관련해 일본은 정부가 관련 정보를 먼저 인지한 뒤, 이를 지방자치단체에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현에 주일미군의 범죄를 알리지 않고 은폐하려 했다.

 

워싱턴 병장이 저지른 범죄는 6월 들어 언론 보도를 통해 뒤늦게 알려졌다. 이 밖에도 지난 3월 또 다른 주일미군이 저지른 성범죄가 있었다고 한다.

 

보도 이후 논란이 커지자 7월 4일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무상은 주일미군 측과 “(이번 사건에 관한 입장을) 발표할 수 있도록 조정을 서두르고 있다”라고 밝혔다.

 

7월 5일 일본 정부 대변인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관방장관은 “가능한 범위에서 지방자치단체에 정보를 전달하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해자의 개인 정보’를 보호해야 하므로 정보가 제한될 수 있다며 모든 정보를 줄 수는 없다고 했다.

 

가미카와 외무상과 하야시 관방장관의 입에서는 주일미군이 ‘범죄’를 저질렀다거나, 미국에 ‘항의’하겠다는 말은 아예 나오지 않았다. 

 

일본 정부의 저자세를 볼 때 만약 보도가 나오지 않았더라면 해당 범죄는 조용히 묻혀버렸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러한 분위기는 지난날 주일미군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일본 총리가 사안을 직접 챙기고, 미군이 즉각 조치했을 때와는 사뭇 다르다고 한다. 

 

7월 13일 아사히뉴스네트워크(ANN)에 따르면 주일미군사령부는 2008년 해병대 대원이 여중생을 성폭행하자 오키나와현과 이와쿠니 미군기지에 주둔하는 주일미군의 외출을 금지했다. 또 2012년에는 해군 병사 두 명이 20대 여성을 집단으로 폭행하자 일본 전역 주일미군의 야간 외출을 금지했다.

 

그런데 지금은 피의자 워싱턴 병장이 속한 가데나 미군기지의 병사들이 외출도 자유롭게 하고 있다고 한다. 주일미군사령부가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손을 놓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가 가만히 있자 오키나와현 주민들이 항의와 행동에 나섰다.

 

7월 15일 류큐신보에 따르면 오키나와현 미야코지마 시민으로 구성된 ‘뜻 있는 사람들의 모임’은 기자회견에서 ▲주일미군과 관련한 사건·사고의 정보 공유 ▲재발방지책을 철저하고 신속하게 공표할 것 ▲미국에 유리한 미일지위협정 개정을 촉구하며 개정이 실현되기까지 미군은 기지 시설 밖에서 훈련, 미일합동군사훈련을 중지할 것 ▲미군의 외출을 자제시킬 것 ▲오키나와 미군기지 철거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기하라 미노루 일본 방위상, 람 이매뉴얼 주일미국대사 앞으로 보낸 항의문에서 “(일본) 정부가 ‘피해자의 개인 정보’를 방패로 내세워 필요한 정보를 은폐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며 “정부가 자신들 입맛에 따라 공표에 관해 해석하면서 여성·소녀들을 상처 입히고 있다”라고 규탄했다.

 

이후 주일미군사령부는 22일 리키 럽 주일미군사령관 명의로 성명을 뒤늦게 내놨다. 

 

럽 사령관은 “일본 국민 여러분의 압도적인 친절과 환대에 감사하며 장병과 그 가족들은 그들이 살고 일하는 지역 사회에서 선의와 연민, 우정을 계속 나눌 것”이라고 밝혔다.

 

유감 표명조차 없이 “우정”을 강조하는 성명의 내용은 피해자와 일본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주일미군 문제를 규탄해 온 ‘올(all)오키나와회의’의 관계자는 산케이신문과 대담에서 “(일본 정부는 피해자의) 개인 정보 보호를 이유로 들지만 세간에 밝히고 싶지 않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닌가”, “은폐하려 한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지난 4월 10일 열린 미일정상회담에서 발표된 미일공동성명 「미래를 위한 글로벌 파트너」는 주일미군과 자위대 간 ▲작전과 군사 능력을 물 샐 틈 없이 통합 ▲평시·유사시 운영과 계획을 강화해 지휘·통제 체계 향상 등을 강조한 바 있다.

 

주일미군을 통해 자위대의 군사작전을 보장받게 된 일본으로서는 미국의 심기를 최대한 거스르려 하지 않을 듯하다. 일본 정부가 워싱턴 병장의 범죄를 은폐하려 한 건 이 때문일 수 있다.

 

또 일본 정부가 오키나와 주민들이 반대하는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 등에 영향이 갈까 봐 범죄를 덮으려 했다는 시각도 있다.

 

일본 정부의 주일미군 범죄 은폐 시도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앞장서다가 자국민에게 피해를 준 장면으로 보인다.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법정에서 당당했던 워싱턴 병장의 태도는 자신이 일본에서 뭘 해도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 때문이었을 수 있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미국을 향해 이렇다 할 항의도 하지 않고 있다. 이는 오늘날 미국과 일본의 상하관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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