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촛불대행진’이 시작되자 전국 곳곳의 뜻있는 사람들이 자기 지역에서도 촛불을 들기 시작했다.
강원도 춘천에서도 토요일이 되면 시내 중심가에 촛불이 켜졌다.
지금은 매월 첫째 주 토요일에 진행하는 춘천촛불대행진은 오는 7일 45차를 맞는다.
춘천촛불행동은 촛불대행진 외에도 난타 모임, 소식지 모임 등 회원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이 가운데 소식지 모임은 격주 목요일 저녁에 진행한다.
기자는 8월 22일 춘천 아리랑 인문지식 연구소에서 열린 소식지 모임에 참석했다.
이날 모임에는 기자를 빼고 4명이 모였는데 이길재 강원촛불행동 공동대표는 평소에는 이보다 두 배 정도 많이 오는데 이날따라 개인 사정들이 겹쳤다며 아쉬워했다.
모임 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해 둘러보니 사무실 한쪽 벽에 손 글씨(캘리그라피)가 쓰인 부채가 잔뜩 전시되어 있었다.
사무실이 시원했다.
먼저 와 있던 회원 박명옥 씨가 “목사님이 우릴 위해 에어컨을 틀어놓고 가셨나 보다”라고 했다.
남 목사는 평소에도 소식지 모임이 있는 날이면 일찍 와서 부족한 게 없는지 살펴보고 늘 신경을 쓴다고 한다.
모임 시간이 다가오자 박명옥 씨는 책장 위에서 뭔가를 꺼내서 펼친다.
다 펼쳐놓고 보니 소식지 모임 현수막이다.
소식지 모임이 잘되기를 바라며 박명옥 씨가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모임을 할 때마다 이 현수막을 벽에 걸어놓는다는데 소식지 모임을 향한 회원들의 애정이 느껴졌다.
여기는 소식지를 미리 읽어오기 때문에 소식지 내용을 자세히 발제하지 않고 주제만 소개한 뒤에 바로 토론에 들어간다고 한다.
토론은 생각보다 훨씬 깊이 있고 열띠게 진행되었다.
이날 소식지 모임에 처음 나왔다는 이지은 회원은 평소 오페라에 관심이 많았다며 논란이 된 「나비부인」의 작품 배경과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KBS가 광복절에 이 작품을 방영한 게 왜 문제인지를 논증하였다.
민주당 대의원이기도 한 임재규 회원은 자기가 생각하는 윤석열 정권의 친일매국 배경을 설명하다가 국제 정세로 넘어가 미국 대선이 한국에 미칠 영향까지 분석하는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막힘없는 입담을 과시했다.
토론이 끝나고 몇 가지 공지를 한 뒤 그 자리에서 곧바로 뒤풀이를 시작했다.
회원들은 미리 사 온 막걸리와 푸짐한 안주를 탁자에 펼쳤다.
안주는 보통 박명옥 씨가 직접 마련해서 가져오는데 이날은 춘천촛불행동 대표가 최근 반찬가게를 열었기 때문에 일부러 거기서 사 왔다고 했다.
박명옥 씨는 “나는 배움이 짧아서 토론할 때 얘기할 게 별로 없다. 그래서 내 자식들 먹인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먹거리 담당을 하고 있다. 사람이 뭐든 다 잘할 수는 없는데 나는 다른 건 못해도 살림은 잘한다”라고 이야기했다.
춘천촛불행동 소식지 모임은 뒤풀이 안주에 진심이라고 하는데 회원들 스스로 ‘제사보다 젯밥 모임’이라 할 정도라고 한다.
지난 정월 대보름 때는 뒤풀이 음식 준비 얘기로 단체 채팅방에 불이 날 정도였다.
실제로 오곡밥에 나물, 반찬, 과일, 홍어 무침 등 온갖 안주와 각종 술이 즐비해 어디 가서 구경해 보기 힘들 정도로 푸짐했다고 한다.
뭐 하나 부족 할 것 없이 챙기는 푸짐한 마음이 모여 같이 밥 먹는 그야말로 ‘식구’ 같은 모임이다.
아무튼 이날은 뒤풀이에서도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주로 춘천촛불행동 활동을 더 잘하기 위한 이야기들이었다.
특히 춘천은 군사도시라서 군인이 많고 보수적인 정서가 강하기 때문에 이런 특성을 어떻게 반영해야 할지 적극적인 의견이 많이 나왔다.
또 춘천을 넘어 강원촛불행동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들도 논의되었다.
뒤풀이가 아니라 무슨 대책 회의를 보는 느낌이었다.
이길재 공동대표는 소식지 모임이 시작될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처음 소식지 모임을 시작했을 때 두 달 정도는 혼자 있거나 한두 명 참가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한파가 극심하던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모임 장소로 향하다 모임 시간 5분 전까지 차 안에서 이런저런 다른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추위도 심하고 모임 공지에도 회원들이 별 반응이 없어 ‘오늘도 몇 명 안 오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다 돼 가보니 8명의 회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소식지 모임에 사람들이 많이 나오지 않는 것 같아 늘 마음이 쓰였다고 했다. 그날 기다리고 있던 회원들을 봤을 때 마음이 잊히지 않는다. 그 이후로 4~5명의 회원이 고정적으로 참가하며 두 달에 한두 번은 10여 명이 모이고 있다.”
요즘엔 소식지 모임 공지가 안 올라오면 ‘소식지 모임 해야 하지 않냐’는 문자도 올 정도라고 한다.
회원들이 소식지 모임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언젠가 소식지 모임과 지역 콘서트 날짜가 겹친 적이 있었다.
평소 소식지 모임에 나오던 참가자 가운데 몇 명도 이 콘서트에 갔다.
그런데 소식지 모임을 시작하고 얼마 안 돼 콘서트에 간 회원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단체 채팅방에 올라온 소식지 모임 사진을 보니 사람이 너무 없어 공연 도중에 왔다는 것이다.
나중에 들은 말로는 콘서트가 대단히 즐거웠는데도 중간에 나왔다고 한다.
회원들은 소식지 모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박명옥 씨는 “나는 공부하러 모임에 나온다. 소식지를 읽으면서 궁금한 거 물어봐야지 하고 오는데 물어보기 전에 벌써 다들 술술술 얘기하니까 공부가 된다. 여기서 배워서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실력을 키우겠다”라고 했다.
임재규 씨는 “같이 모여서 이런 토론하는 건 좋다. 같이 대화할 소재를 촛불행동이 던져주면 일방적으로 강의를 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방식이 좋다”라면서 “내가 아는 걸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토론에서 적극적으로 발언한다”라고 했다.
이지은 씨는 “작년까지 학교 교사 신분이어서 촛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작금의 사태가 굉장히 심각하게 흘러가다 보니까 나라도 나와서 무언가 도움이 되어야겠다 싶어서 나오게 됐다. 오늘 소식지 모임이 정말 좋았다. 다른 분들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줘서 배울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은 모임이다. 또 내가 뒤풀이 때 많은 의견을 냈는데 긍정적으로 받아줘서 굉장히 좋다. 앞으로도 소식지 모임에 계속 참여해 춘천촛불을 환하게 밝히고 싶다는 게 내 소감이다”라고 하였다.
이길재 공동대표는 “소식지 모임을 해보니 무엇보다 회원들과 가까워짐을 느낀다. 회원들과 정이 통하니 뭘 하든 반갑고 기다려진다. 또 촛불행동 방향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회원들과 합의가 높아지니 하자고 하는 일도 많아지고 잘 된다. 무엇보다 소식지 모임에 나오시는 회원들이 주도적으로 의견을 내고 앞장서준다. 춘천촛불행동 모든 사업에 이들의 역할이 절대적이다”라고 하였다.
참가자들이 애정을 가지고 갈수록 풍성하게 만들어가는 춘천촛불행동 소식지 모임, 앞으로 또 얼마나 발전한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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