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이런 상황에서 1990년대를 맞이한다. 전후 거의 40년 이상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행복만을 누려온 북한사람들은 자기들 앞에 어떤 엄청난 불행이 기다리는지 거의나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병진노선을 채택한 1960년대 초부터 이상한 기미를 보이던 북한 경제와 사회생활전반은 1990년대에 들어와 끝내 더는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에 도달한다. 북한이 단행한 '고난의 행군'이 바로 이러한 사회경제적 난제를 자체의 힘으로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옛말에 복 속에서 복을 모른다는 말이 있고 어려울 때 진심이 드러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1990년대 이후 북한의 상황에 너무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인들이 이 말의 참 뜻을 새기기 바란다.
북한군의 전력, 전차병무력건설을 취급하는 이 연재에서 이런 글로 시작하는 것은 군사도 정치와 사회의 한 부분인 것만큼 당시 북한이 처한 사회경제적 형편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실지로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하는 1990년대부터 2010년까지 기간에 북한군의 전력은 한국군과 다른 나라 군대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처지는 추이를 보였고 더욱이 전차병무력건설도 가장 어려운 고비를 겪었다.
1992년 4월 북한은 두 가지 행사를 준비한다. 하나는 대규모 열병식이고 다른 하나는 인공위성발사이다. 그런데 김일성 주석이 위성발사는 시기적으로 아무런 의의도 없다고 하면서 보류시킨다. 훗날 이 위성은 김일성 주석의 서거 후 강행된 '고난의 행군'을 치른 다음 1998년 8월에 발사된다. 이에 대해서는 이 글이 미사일이나 위성관련이 아니므로 더 이상 전개하지 않는다.
1992년 4월에 벌인 열병식에서 사람들의 의문을 자아낸 것은 105전차사단이다. (참고: 1980년대 말 북한군은 820훈련소에서 105전차여단을 분리시켜 원래의 105전차사단을 복귀시킨다.) 그날 105전차사단은 누가 보아도 1980년대의 2세대 천마-1976전차와 구별되는 새로운 전차를 몰고 등장했다. 외형적으로 천마-1976전차보다 크고 무한궤도지지바퀴에 스커트가 씌워졌으며 포탑의 모양도 둥글지 않고 각진 형태였다. 첫 순간에 T-72를 연상시키는 이 전차에 대해 북한은 전혀 일언반구하지 않았으며 지어 관용TV에서도 방영을 금지시켰다. 이것이 바로 1991년 쿠웨이트사막에서 몰래 반입한 T-72를 모방하여 만든 천마-92전차이다. 그러나 천마-92는 시범적으로 105전차사단의 한개 여단에만 장비되는 것으로 끝난다.
이 전차의 등장으로 전 세계는 북한이 3세대 전차의 개발 장비에 착수했다는 것을 알게 되며 많은 관심 속에 주시한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거의 5년나마 북한의 열병식은 도보종대만 등장하고 중무기들이 등장하지 않아 서방과 한국의 비평가들 속에서는 별의별 추정과 억측이 난무해진다.
1990년대 북한이 거행한 열병식들에 대해 말이 난 김에 몇 가지 공개할 내용이 있다.
다음으로 북한이 170mm자주평사포(주체포)를 개발한 근본 이유도 전술핵무기 때문이다. 북한군은 1980년대 중엽에 새로 제정한 신규 야전규정에서 연대 이상 급에서 화학무기를, 군단 이상 급에서 전술핵무기를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군단 이상 급에서 전술핵무기를 적용하는 기본 수단이 바로 주체포인 것이다.
이쯤 되면 북한의 핵무기개발실태와 북한군의 실제 전력에 대하여 독자들이 스스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 40t급의 전차무게
- 다중복합장갑
- 유압식 운행제어시스템
- 고출력고속디젤엔진
그런데 이때부터 북한은 더 큰 난관에 부닥친다. 1993년 3월 미사일발사와 뒤이은 핵위기를 기화로 그전까지 첨단기술을 수입하던 나라들과의 과학기술교류가 완전히 차단된다. 게다가 1980년대 말부터 경제가 질식직전에 이른 상태에서 설상가상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자연재해까지 겹쳐 사회경제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의 상태에 직면한다. 오죽하면 그때까지의 체면을 다 던져버리고 국제사회에 인도주의 지원을 요청했겠는가? 그것뿐이 아니다. 그때까지 북한을 영도해 온 김일성 주석이 1994년 7월 8일에 뜻밖에 서거한 것은 북한의 사회정치상황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끝내 북한은 1995년 초부터 '고난의 행군'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로 하여 북한의 국방공업도 위기에 처한다. 이 영향으로 3세대 전차개발도 1990년대 중엽부터 침체상태에 빠진다. 이에 대해서는 당시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인 김정일 위원장이 자강도를 지도하는 여러 동영상들에서 나오는 어수선한 북한 군수공장들의 상황을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되어 이 지경이 되었는가 하며 가슴을 쥐어뜯으며 피눈물을 흘리던 그때의 상황을 북한 사람들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수백만의 국민이 굶주리고 에너지와 원료부족으로 북한 경제가 파탄직전에 이르렀을 때 김정일 위원장은 독특한 선군정치로 북한의 정치상황을 유지하는 한편 부닥친 경제난과 민생난을 돌파하는 기본 고리가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짧은 기간에 자체의 첨단과학기술을 개발하는데 있다고 보고 운명적인 '도박'을 한다. 즉 얼마 안 남은 북한의 모든 밑천을 몽땅 첨단기술개발에 투입하는 것이다. 이것을 북한말로는 'CNC기술개발'이라고 하는데 필자의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표현이 좀 부족한 감이 난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가장 표현력이 풍부한 언어로도 그 정도밖에 표현 안 된다니 정말 서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북의 입장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의 이 역사적 공적을 좀 더 진실하게 서술할 단어가 없음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도박'이 결국 성공하여 1990년대 말에 이르러 북한은 가장 어려운 고비를 극복하며 특히 국방공업이 짧은 기간 내에 일정한 첨단수준에 올라선다. 특히 컴퓨터와 로봇을 비롯한 첨단정보기술이 놀라울 정도로 상당히 발전한다.
피눈물의 언덕을 넘으며 간고하게 개발하고 마련한 CNC기계들과 로봇, 컴퓨터들이 도입되면서 북한의 3세대 전차개발에서는 변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새로운 3세대 전차인 천마-98이 개발되어 105전차사단의 한개 여단에 시범장비되었다.
드디어 2000년대 초에 천마-216전차가 개발된다. 이것은 시범개발로 이어진 3세대 천마호전차계열의 마지막 기종이다.
천마-216이 개발된 후 북한은 이것을 105전차사단에 우선 공급하고 점차 다른 부대들에도 공급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105전차사단에서 한개 여단에만 시범장비되는 것으로 끝난다.
이처럼 북한이 1990년대에 개발하여 105전차사단에만 시범적으로 장비한 신형전차들은 5종(천마-92, 천마-98, 천마-214, 천마-215, 천마-216)이다. 2000년대에 들어와 거의 해마다 벌여 진 북한군의 열병식에서 신형전차의 형태가 매번 바뀌고 105전차사단을 제외한 다른 전차부대들에는 도입되지 못한 현실의 의미를 이제는 독자들도 어지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서방과 한국의 사람들은 똑똑히 알아야 한다. 북한말로 '고난의 행군'시기에 최악의 경제난과 생활난 속에서 피눈물을 삼키며 세계최정상전차를 개발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친 북한의 국방부문 사람들은 북한 입장에서는 역사에 길이 남을 영웅들이다. 높은 정신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을 해 낸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3세대 최첨단 전차는 여전히 부족점을 드러내고 있었다.
과연 3세대 전차를 개발하려는 북한의 노력은 이렇게 시범개발장비로 끝나야 하는가?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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