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여름 한국에서 화젯거리로 된 영화들이 《군함도》와 《택시운전사》라면, 중국에서는 단연 《전랑(战狼, 짠랑) 2(Wolf Warriors Ⅱ)》이다. 불가사의한 흥행기록들을 연거푸 세우면서 “현상급영화(现象级电影)”으로 불리고 국내 국외에서 모두 수많은 기사들을 만들어냈으며 미국언론들이 할리우드영화의 중국흥행을 걱정할 지경이다. 한국에서는 《한겨레신문》이 둬 편 평론보도를 낸 외에 무게 있는 글이 거의 보이지 않으므로, 흥행기적, 영화내용, 흥행이유, 쟁론 등을 소개하고 시사해주는 바를 지적하련다.
중국영화사상 전무한 흥행기적
《전랑 2》는 제목부터 알 수 있는바, 속편이다. 2015년 4월 2일에 개봉된 《전랑 1》은 중국인민해방군의 특수부대- 전랑(싸우는 늑대, 혹은 늑대전사)부대가 마약사범 및 마약범들이 청해온 용병들과 국내에서 싸우는 이야기를 그렸는데, 흥행성적은 5. 25억 위안(1위안은 약 한화 170원)으로서 특별히 높은 편이 아니었다. 당년의 흥행 1위로서 역사 최고기록을 세웠던 《착요기(捉妖记)》는 24. 38억 위안이었는데, 흥행조작논란이 벌어져서 미국인들이 세계영화흥행순위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계기로 되었다. 홍콩 영화인 저우싱츠(周星驰, 주성치)가 만든 《미인어(美人鱼 )》가 2016년에 33.92억 위안으로 새 흥행기록을 세웠고 2017년 7월말까지 그 기록은 깨지지 않았다.
할리우드의 관례에 따르면 속편은 1편의 80%정도 흥행하면 대성공으로 친다. 그러면 《전랑 2》는 5. 25억의 80% 즉 4억 위안 정도 흥행실적이 나모면 성공으로 볼 수 있었다. 헌데 8천 만 위안으로 시작한 투자가 모자라서 감독 및 주연 우징(吴京, 오경, 43)이 집을 저당하여 돈을 꿔서 들이밀 정도였고 결국 2억 위안을 썼다 한다.
중국에서는 투자액 대 흥행실적의 손액분기점을 대략 1: 3으로 계산한다. 즉 투자액의 3배 정도 흥행실적이 나오면 밑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전랑 2》는 적어도 박스오피스 기록이 6억 위안은 나와야 하는데, 그렇게 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제작진을 포함하여 거의 없었다. 한 회사가 미니멈 게런티기준으로 8억 위안을 발행을 담보했으나 그건 모험으로 인정되었다.
허나 《전랑 2》는 2017년 7월 28일에 공식개봉한 후 놀라운 기록들을 연거푸 세웠고 그것도 “안 된다, 안 된다”는 소리들이 그치지 않는 상황에서였다. 개봉 4시간 만에 1억 위안 돌파가 나왔을 때에는 너무 일찍 기운을 썼기에 총 4억을 절대 넘기지 못한다는 예언이 나왔다. 허나 4억은 쉽사리 돌파했고 83시간 만에 10억 위안들 돌파했다. 8일 만에 20억 위안을 돌파하니 사람들의 관심사는 《미인어》를 넘을 수 있느냐였다. 11일 만에 30억 위안을 돌파했고 12일 만에 33.92억 위안으로 새 기록을 수립했다.
연속 13일 동안 2억 위안 이상을 기록할 때까지도 일시적인 현상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꽤나 되었다. 이제 주말에 새 영화들이 나오면 기세가 꺾이고 40억은 결코 넘기지 못한다고. 그러나 스타들이 운집하고 선전도 요란스레 한 영화들은 《전랑 2》의 벽을 넘지 못했고 표를 얼마 빼앗아가지도 못했다. 16일만에 40억 위안 돌파로 전무한 기록이 나온 다음, 사람들의 관심사는 세계영화흥행순위 Top100에 들어갈 수 있느냐였다.
8월 14일에 45. 7억 위안으로 미화 6. 86억 달러에 상당하여 Top99인 《포레스트 감프(Forrest Gump)》(1994)의 6. 823억 달러를 초월했으나, 앞에서 말했듯이 세계영화흥행순위에서 중국영화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정식 명단에는 끼이지 못했다. 이는 중국인들을 한결 자극하여 남들이야 인정하든 말든 우리가 흥행실적을 더 올려주자는 호소가 상당히 먹혀든다. 1위인 《아바타(Avatar)》(2009)의 27. 880억 달러는 대단하지만 그거야 전 세계에서 벌어들인 돈이 아닌가. 한 나라에서의 흥행기록은 우리가 이미 세웠다. 60억, 80억, 100억으로 밀어주자. 이런 소리가 연달아 나오는데, 난 여러 번 보았다, 우리 집 식솔들이 다 가서 보았다, 강추한다, 20년 만에 처음 영화관에 들어갔다 등등 반향을 보면 아직도 잠재력이 크다.
8월 20일 현재 50억 위안을 확보했고 관객 연인원수는 1억 명을 넘긴지 오래다. 중국의 영화표 값은 여러 가지 등급으로 나뉜다. 대도시의 호화영화관은 100위안, 180위안 짜리도 있고 다른 도시들에서는 70위안, 40위안, 35위안, 20위안 등으로 정해졌는데 1인당 30위안 정도로 보면 비슷하다. 중국의 흥행성적은 인터넷예약비도 계산에 넣기에 1억 명 정도 본다면 35억 위안 가량의 흥행성적이 나온다. 이 수자를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전랑 2》팬들은 자리가 없어서 복도에 걸상을 놓고 보는 사람들도 있더라는 등 증거를 내놓으면서 반박한다. 사실 복도표를 팔면 전산기록에 들어가지 않으므로 불법이다. 훔쳐진 흥행성적과 해적판 관람자들까지 합치면 실제 흥행성적은 공식기록보다 훨씬 높다는 게 공론이다.
중국의 연간 영화시장은 300억 위안으로 계산한다. 투자액 대 흥행성적이 1대 수십이라는 전무한 기록을 만든 《전랑 2》가 전통시장의 1/5 이상을 이미 차지했는데, 이제 연말에 가서 시장총액이 300억 위안을 훨씬 초월하는가, 아니면 300억 위안 선을 유지하는가에 따라 이 영화의 진정한 가치가 결정된다.
그러면 《전랑 2》는 어떤 내용을 담았기에 적어도 수천 만명 중국인들을 열광시키는가?
《전랑 2》의 내용
군사액션물로 정의된 《전랑 2》의 내용은 사실 복잡하지 않다. 주인공 렁펑(冷锋, 냉봉)은 희생된 전우의 골회를 안고 전우의 고향에 갔다가 전우의 고향집이 강제철거의 위험에 부딪치는 걸 목격한다. 전우의 유가족들과 전우의 골회가 용역두목의 모욕을 받으니 꼭지가 돌아버린 렁펑은 용역두목을 걷어차서 죽인다. 군적을 잃고 징역을 사는 동안 상관이자 연인이었던 룽샤오윈(龙小云, 용소운)이 출국하여 임무를 집행하다가 실종된다.
자유를 회복한 렁펑은 아프리카를 방랑하면서 막일을 하고 술을 들이키는 등 생명을 낭비한다. 물론 룽샤오윈의 실종과 직결되는 특이한 탄알을 갖고 다니면서 단서를 찾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프리카의 한 나라에서 내란이 일어나 정부군과 반정부군이 격렬하게 싸운다. 렁펑은 무고한 사람을 구하다나니 싸움에 휘말려든다. 격전을 거쳐 교민들과 일부 현지인을 데리고 중국 대사관에 갔다가 항구로 옮긴다. 항구에는 중국해군 전함들이 와 있다. 교민철수가 순조롭게 진행되어 렁펑도 이제 막 승선하려는데, 의학전문가 첸(陈, 진) 박사와 한 중국자본 공장의 수십 명 중국인들이 철수하지 못했다는 소식이 날아온다. 중국군은 당지 정부와 유엔의 허락을 받지 못했기에 정식 개입할 수 없다. 하여 렁펑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무기가 없고 신분이 불명한 상황에서 험지로 들어간다.
반정부군은 유럽에서 제일 높은 값을 받는 용병을 청해다가 첸 박사를 찾는데, 와중에서 첸 박사가 총에 맞는다. 병원에 도착한 렁펑이 첸 박사가 죽으면서 부탁한 양딸 흑인소녀와 미국인 여의사 레이첼(Richael)을 데리고 격전 끝에 탈출한다.
이제는 중국 자본 공장의 사람들을 구원해야 된다. 공장 주인은 부자집 제2대인 교만한 청년이고 공장에는 중국인과 현지인들이 있다. 예정대로는 이튿날 헬기가 와서 사람들을 실어가는데, 렁펑이 공장에 도착한 날 밤에 용병이 습격한다. 드론들이 날아다니고 총탄이 빗발친다. 렁펑은 옛 군인인 공장의 보안대장 허졘궈(何建国, 하건국)의 도움을 받으면서 싸운다. 여러 가지 원인으로 용병이 물러가지만 렁펑은 무서운 라브라 병독에 감염되었음이 발견되어 공장에서 쫓겨난다. 용병과 고용주- 반란군 사이에 모순이 생겨 충돌 끝에 이제는 용병이 주역으로 변신하여 공장으로 돌아와 렁펑과 그 일행을 내놓으라고 강요한다. 공장으로 돌아온 렁펑은 또다시 반격한다. 용병들이 일단 물러가고 헬기가 날아와 사람들을 실었으나 미사일에 격추된다. 공장에서 탱크들이 동원되는 격전 끝에 렁펑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다. 다행히도 중국 해군이 상부의 명령을 받아 미사일들을 날려 용병 무리들과 중무기들을 날려보낸다. 렁펑은 용병 두목과 맞서다가 적수가 쏜 탄알이 룽샤오윈이 남긴 탄알과 같음을 발견한다. 그는 무기를 버리고 격투로 두목을 죽인다.
렁펑과 미국의사, 흑인소녀 그리고 공장사람들은 트럭들에 분승하여 항구로 향한다. 정부군과 반란군들이 싸우는 지대에 이르러 렁펑은 중화인민공화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오른팔에 끼고 휘두른다. 공장사람들이 가졌던 소총들은 땅에 던져지고 트럭대열은 비무장상태로 격전지에 들어선다. 교전 쌍방은 중국 국기를 보더니 싸움을 그치고 트럭대열을 놓아보낸다.
트럭들이 항구에 이르러 렁펑은 임무수행을 끝낸다. 구체적인 세부들을 다 얘기하면 재미없으므로 대충 이 정도로 줄거리를 소개한다. 보다시피 외로운 영웅의 이야기다. 서방영화 특히 미국영화들이 수없이 만들어낸 영웅(히어로)전설이다. 영국의 어느 신문은 중국의 민족주의를 드러낸 영화라고 평했고, 《한겨레신문》은 “중국판 람보”라면서 “세계는 중국이 구한다?’”는 의문을 던져 중국 네티즌들의 반격을 불러왔다. 외국인들의 감수는 중국인들과 다르기 마련이다. 수많은 중국인들이 이 영화를 왜 좋아하느냐를 이해하려면 중국 영화인들이 걸어온 길들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중국 영화인들이 걸은 몇 갈래의 길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해서부터 수십 년 동안 중국영화는 대체로 국영영화촬영소들이 “문학예술은 정치를 위하여 복무해야 된다”는 중국공산당의 문예방침에 따라 만들어냈다. 이는 국영촬영소들이 영화를 만들면 국가 영화발행공사가 전국에 보급하는 체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성공작들도 적잖았으나 실패작들도 수두룩했고 1980년대 초반부터 벌어진 “사상해방”으로 하여 그 문예방침에 대한 회의와 반론들도 늘어났다.
1980년대 초반에 중국 대륙의 촬영소들이 홍콩 영화인들과 합작하여 무술영화, 무협영화를 찍으면서부터 주로 흥행을 겨냥한 작품들이 나타났고, 1988년에 장이머우(张艺谋, 장예모)감독이 베를린영화제에서 금곰상을 수상한 다음에는 중국영화인들이 대체로 네 갈래의 길을 걸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외국의 상을 겨냥하여 영화를 만들어 외국에서의 명성을 얻은 다음 다시 국내에서의 영향력을 갖는 길이다. 이른바 “수출이 내수로 돌아온다(出口转内销)”는 식이다. 장이머우와 마찬가지로 이른바 “제5대 감독”에 속하는 첸카이커(陈凯歌, 진개가) 감독도 이 길을 걸었고 국제상 수상으로 일약 유명해진 감독들이 여럿이다. 대체로 중국 역사나 현실에서 부정적인 면들을 부각하면서 중국과 중국인들의 낙후성을 강조하여 서방을 중심으로 하는 외국인들 마음속의 “중국인 이미지”와 일치시키거나 그런 이미지를 강화하는 게 특징이었다.
다른 하나는 국내의 정부상을 노리고 영화를 만드는 길이다. 일단 상을 받으면 행정급수가 올라가고 사업이 여러 모로 편해진다. 중국혁명사나 현대 중국의 좋은 면들을 다루는 이른바 “주선율영화(主旋律电影)”들이 주로 이런 부류에 속한다.
또 다른 하나는 감독이나 어느 영화인의 개성을 강조하면서 보는 대로 내키는 대로 영화를 만드는 길이다. 제5대 감독 중의 한 사람인 톈쫭좡(田壮壮, 전장장)이 1980년대 중반에 자기 영화《말도둑(盗马贼)》이 평론가들과 관객들의 냉대를 받으니 자기 작품은 21세기 사람들을 위해 만든 것이라고 말한 게 내키는 대로 찍은 영화의 전형이라고 하겠다. 국영영화사의 거액 자금을 쓰고서 그런 말을 했다는 건 아주 무책임하다. 그 뒤에 자금줄이 여러 가지로 늘어나면서 이른바 “독립영화”, “지하영화”들이 만들어졌고 중국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비밀리에 외국으로 필름을 날라다가 외국영화제에서 상영하면서 수상을 노린 영화인들도 나타났다. 제5대 감독들의 성공을 복제하려는 시도였는데, 지하영화들은 중국 정부의 규제를 받기 마련이었고 지금까지 필자가 알기로는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둔 영화인이 없다.
마지막 하나는 순전히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찍는 길이다. 앞에서 거들었듯이 중국 대륙의 영화촬영소들이 홍콩과 합작하여 무술영화, 무협영화를 찍은 게 그 시초이고 후에는 “주먹, 베개, 총”으로 집약되는 액션물과 색정의 변두리에 닿은 영화들도 자체제작 혹은 합작하다나니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1980년대까지는 일본을 비롯한 나라들의 영화인들이 투자와 흥행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중국영화인들을 무척 부러워했는데, 제도가 차츰 바뀌었다. 특히 1995년부터 중국이 그해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트영화(중국어로는 “好莱坞大片”)들을 10~20부 직수입하면서 국산영화들이 시장에서 심하게 밀렸고 영화제작은 아무런 발행보장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이른바 “시장화개혁”인데, 작품이 시장에 던져지는 상황에서 영화인들의 인식과 제작방식은 심각한 변화를 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다.
외국영화제상은 이젠 최우수영화상, 미술상, 촬영상, 감독상, 배우상 등을 비롯하여 하도 많이 받았고 수상작품들도 별로임이 확인된 경우가 적잖다다니 예전 같은 거대한 매력을 갖지 못한다. 결과 수상만 노리는 영화제작은 길이 좁아졌다. 장이머우 감독의 평생 소원이 미국 오스카상 수상이건만 아직도 꿈을 이루지 못했다는 우스개가 나온지 여러 해인데, 설사 누군가 오스카상을 받더라도 중국인들이 대단한 쾌거로 여기면서 그 영화를 무작정 높이 평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 국내상은 영화인들의 소속이 다원화됨과 더불어 역시 매력이 많이 떨어졌다. 개성적인 영화들은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하므로 전망이 밝지 못하다. 앞의 몇 갈래 길이 좁아지다나니 결국 영화인들은 돈을 벌자는 네 번째 길에 몰려들었고 국내, 국외의 자금들도 돈벌이를 위하여 집중되었으며 흥행실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진짜 뉴스, 가짜뉴스들을 만들어내면서 여론몰이를 하는 게 관례로 되었다. 또한 영화내용보다는 감독과 배우들의 호소력에 의지하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근년에는 특히 “샤오샌러우(小鲜肉, 꽃미남의 중국식 표현)” 배우들에게 매달려 영화나 드라마의 흥행을 노린다.
영화시장의 구조가 이와 같이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기에 주선율영화에 속하고 슈퍼스타들이 없으며 샤오샌러우들도 등장하지 않는 《전랑 2》를 쓴 외 보듯 한 사람들이 많았다. 사실 주선율영화로 꼽힐 《전랑 2》는 투자유치가 어려웠고, 어떤 사람들은 아무개, 아무개 샤오샌러우를 영입하면 얼마를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한다. 우징은 얼마나 많은 중국영화들이 자본에 강간되었던가고, 이젠 또 나를 강간하겠다는데 싫다고 거절했다.
지금 중국 영화, 드라마계에서는 투자액의 60%가 배우들에게 지불되는 게 관례다. 심한 경우에는 70%를 윗돌기도 한단다. 그러니까 공식투자액(여기에는 과장이 섞일 때가 많다)이 아무리 높더라도 실제 제작에 들어가는 돈은 공식투자액의 40%이하이다. 중국영화가 거칠다는 비평을 듣는 게 이상하지 않다. 게다가 스타들의 얼굴에 흥행을 걸다나니 시나리오도 시원치 않다. 근년에는 관중들이 이런 배우들을 좋아하려니 어림짐작하고 대충 만들어서 요란스레 선전해 시장에 내놓은 영화, 드라마들이 적지 않다. 사실 그런 전략이 어느 정도 먹혀들어 유명배우들이 출연한 영화나 드라마들이 짭짤한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단 금년에는 인기드라마 《인민의 명의(人民的名义)》와 《전랑 2》에 밀려 흥행저조에 시달린다.
우징은 시나리오를 직접 쓰면서 내용을 충실하게 만들려 애썼고 돈을 가급적으로 제작에 많이 쓰려고 노력했다. 워낙 정했던 여자주역 배우가 촬영 하루 전에 보수를 올려달라고 요구했을 때, 엔간한 사람들은 양보했을 텐데 우징은 단호히 거절하고 전에 손잡은 적 있는 혼혈배우 루징산(卢靖姗, 노정산, 영어이름 Celina Jade, 32)과 연락하여 대답을 받고 기용했다. 보수를 묻지도 않고 출연한 루징산은 1년 뒤 상상할 수 없는 인기를 누리게 되었고 《전랑 2》의 최대수혜자로 불린다. 한편 우징의 결심을 얕보았던 혼혈배우 쉬쟈원(徐嘉雯, 서가문)은 안목이 없는 재수덩어리로 꼽힌다.
우징도 루징산도 다른 배우들도 모두 1선의 슈퍼스타는 아니었다. 그러면 흥행기적은 어떻게 이뤄졌는가?
흥행의 이유—— 현실성과 수요
많은 사람들은 흥행성공의 첫 이유로 개봉시기를 꼽는다. 중국인민해방군 건군 90돌인 8월 1일을 겨냥했고 7월 30일에는 마침 시진핑 국가주석이 주르허(朱日和)에서 전에 없는 형식의 열병식을 진행했기에 그 덕을 보았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중국과 인도가 국경에서 대치하는 상황도 흥행에 도움을 주었다고 평한다. 모두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같은 시기를 겨냥하여 건군과정을 직접 다룬 《건군대업(建军大业)》은 스타들이 더 많이 등장했고 선전이 훨씬 더 요란스레 진행됐으나 개봉 20일이 넘도록 흥행실적이 4억 미만인 것은 시기가 절대적인 요소가 아님을 보여준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전랑 2》가 “국산영화 보호의 달”인 8월을 앞두고 개봉했기에 성공했다고 설명한다. 물론 외국영화가 상영되지 않는 시기가 유리하지만, 《전랑 2》는 어느 시즌에 개봉해도 성공할 영화이고 흥행은 주로 입소문과 인터넷에서의 관람기, 관람평에 의거했다.
8월 중순에 《전랑 2》의 전국 영화관 상영기일이 9월 28일까지 연장되었으니, 9월 1일 《덩케르크》를 비롯한 외국영화들이 개봉된 뒤에는 보다 혹독한 환경에서 경쟁을 해보겠는데, 지금까지의 상황에 비춰보면 처음부터 정면대결했더라도 밀리지는 않았을 것 같다.
《전랑 2》의 성공은 우선 현실성이다. 전투들이 비현실적이라는 비평들에 대해 우징은 왜 외국영화 주인공들은 혼자서 한 개 사단을 이기고 총알에 아무리 맞아도 죽지 않는데, 내가 십여 명을 이기면 비현실적이고 총에 맞으면 꼭 죽어야 하는가고 반박했다. 우징은 중국 영웅을 그리려 했고 그 의도가 현재 중국인들의 심리에 적중했다.
중국이 낙후하고 중국인들이 미개하다는 영화에 식상했고, 무술영화, 무협영화, “항일신극(抗日神剧, 항일을 희화화한 드라마들)”들이 신물이 났으며, 외국의 우수한 영화들을 보면서 부러워했던 사람들이 중국의 현실과 중국인의 꿈을 담은 영화를 보았기에 감동한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 인도영화, 한국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할 때마다 나왔던 말-- “우리는 왜 저런 영화를 찍지 못하느냐”가 이제는 쑥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 만이 찍을 수 있는 영화가 나왔다는 자부감이 예전의 좌절감을 대체했다.
《전랑 2》 이야기의 핵심은 “교민철수(撤侨)”인데 실제로 중국은 근년에 교민철수들을 성공적으로 진행했고 외국에서 재난이 벌어졌을 때에도 자국민 철수를 남 먼저 진행했다. 큰 사건들만 꼽아보면 2011년 2월에 시작된 리비아 내란에서 3만 여명 교민과 중국인들을 철수. 2015년 3월에 일어난 예멘 난리에서 군함들을 동원하여 571명 중국공민들을 철수. 2015년 4월에 일어난 네팔 대지진 직후 항공기들을 대량 동원하여 5685명의 중국공민들을 철수. 2016년 11월 뉴질랜드 대지진 후 직후 중국이 동원 가능한 헬기들을 모조리 세내어 근 1000명 중국인들을 철수.
2015년의 예멘사건은 《전랑 2》 교민철수이야기의 원형으로 되었다. 4월 6일 미국이 예멘에 있는 미국공민들을 도와 철수할 수 없고, 공항도 폐쇄되었기에 미국인들이 외국배를 타고 출국하기를 바란다고 선포한 것은 《전랑 2》에서 미국을 비꼬는 기초로 되었다.
병원에서 탈출한 다음 레이첼은 갓 알게 된 렁펑에게 미국 대사관으로 가자고, 세계 최강 미군 해병대가 거기 있다고 주장한다. 차를 운전하는 렁펑은 그들이 왜 당신을 구조하러 오지 않았는가고 비꼰다. 레이철이 미국대사관에 전화를 거나 기계녹음이 울리고, 렁펑은 자신이 항구에서 바라보았는데 바다로 가는 배에 성조기가 날리더라고 말한다. 레이첼은 분해서 차를 세우라 소리지르고 차에서 내리나, 부근에서 사자가 어슬렁거리기에 부득이 다시 차에 올라 렁펑을 따라다닌다. 이런 설정이 먹혀드는 건 바로 현실에서 미국의 자국민포기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에서 정부군은 물론 반란군도 중국과 중국인들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은데, 반란군 두목이 말했듯이 중국이 유엔 안보리 이사국이므로 그들이 정권을 잡더라도 중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정치적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중국이 아프리카나라들과 아프리카인민들을 수십 년 전부터 무상으로 도와주고(의료팀 파견활동이 특히 유명함) 현실적으로도 내정불간섭 원칙을 견지하면서 경제협조를 정치와 결부시켜 선결조건들을 내걸지 않으므로 중국과 중국인들이 믿을 만 하다는 평을 받는다. 하기에 영화에서 중국 국기로 교전구역을 무사통과한다는 설정이 설득력 있다. 또한 실제로 오성홍기를 들고 위험구역을 벗어난 사례들이 적지 않다. 단 영화만큼 극적이 아닐 따름이다.
영화는 마지막에 중국 여권을 보여주면서 뒷면에 글자들을 타이핑한다.
해외에서 위험에 부딪치면 포기하지 마시라! 기억하시라, 당신의 뒤에는 강대한 조국이 있음을.”
이 내용이 맹목적인 애국주의를 고취한다느니 따위 비평을 불러왔다. 반박도 곧 나왔다. 중국 여권을 갖고 무비자로 갈 수 있는 나라는 60여 개에 불과하지만, 이 여권을 가지면 세계 어디에서든지 빨리 안전히 귀국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실제 일어난 철수사건들을 열거하기에 설득력도 강하다.
중국의 발전변화를 느끼는 사람들이 은근히 바라왔으나 영화나 드라마에 반영되지 않던 사건들을 영화방식으로 엮어서 보여준 게 바로 《전랑 2》이다. 어떤 논자들은 중국의 굴기를 반영하는 영화라면서 세계질서의 개편을 은유한다고도 평하는데, 보통 관객들은 그렇게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고 대리만족과 더불어 영화를 즐긴다.
그러면 우징은 어떤 사람이기에 뭇사람과 호흡을 맞췄는가?
무술운동원 출신의 액션배우
1974년 4월 3일에 베이징에서 태어난 우징은 6살 때부터 스차하이(什刹海, 십찰해)체육학교에서 무술을 배웠으니, 그의 스승은 바로 무술명수 리롄제(李连杰, 이연걸)을 배양한 우빈(吴彬)이었다. 15살 때 베이징시 무술대에 들어갔고 1991년과 1994년에 전국무술시합엘리트경기 창술(枪术)과 대련(对练, 맞서기) 1등을 따낸 우징은 1995년에 영화 《쿵후총각의 감정관 넘기(功夫小子闯情关)》를 주연하면서 연예계에 들어섰다.
1998년에는 드라마에 진출하여 《태극종사(太极宗师)》를 주연했고 이듬해에는 위안허핑이 감독이 된 무협드라마 《소리비도(小李飞刀)》를 주연하면서 다방면의 무술실력을 과시했다. 그후에도 꾸준히 이러저러한 영화와 드라마들을 찍었지만 현상급 작품은 만들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어린이얼굴(娃娃脸)”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는데, 일리가 있다. 장신옌이나 위안허핑은 리롄제, 청룽의 성공을 복제할 심산으로 우징을 스타로 만들려 애썼으나 희극도 정극도 억지스러운 느낌을 주곤 했다. 우징의 작품 중 《태극종사》를 제일 먼저 본 필자는 어딘가 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아서 근 20년 동안 그를 관심하지 않았다.
홍콩무술영화들에도 참가하고 국산 드라마 《나는 특수부대병사(我是特种兵) 2》도 주연했으며 무술과 액션을 두루 하던 그는 2008년 특수부대소재 영화 《늑대이빨(狼牙)》부터 감독으로도 되었다. 베이징체육대학 졸업생인 그는 정식 영화를 배운 적 없이 순전히 현장경험으로 감독이 되었는데 지금도 아마추어로 꼽힌다. 2015년 4월에 감독 겸 주연을 맡은 《전랑》이 흥행성적과 입소문이 괜찮아 그해 9월 7일 제20차 화정상(华鼎奖) 최수우시나리오상과 최우수신예감독상을 받으면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게 되었고, 이듬해 목숨을 걸고 《전랑 2》를 찍어 2017년에 대성공했다. 중년에 이르러 성숙미가 돋보이면서 우징이 자신의 설자리를 찾았다는 게 정평이다.
특수부대원을 연기하기 위해 군대에 가서 실제 특수부대원들과 똑같이 뛰고 훈련하고 먹고 잤기에 군대의 신임을 받았고 그런 유대는 《전랑 2》에서 여러 가지 무기들을 동원하고 군사연습화면을 쓰는 허락을 받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영화에서 중국군함들이 바다에서 움직이고 미사일을 쏘는 장면은 군사연습화면이다.
이 영화는 외국과 국내의 상을 겨냥하여 만들지 않았으나 여러 가지 상을 획득할 확실한 전망이 보이고, 자신이 보고 느낀 것들에 기초하여 찍고 싶은 작품을 찍었으나 내키는 대로 장난치지 않았으므로 흥행기적을 낳았으며, 관중들의 기호에 맞추려 아첨하지 않았지만 관중들의 은밀한 욕망을 만족시켰으므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무술운동원으로서 대다수 중국인들보다 일찍 출국경험을 가졌던 우징은 미국 대사관에서 사증이 거절된 일부 중국인들이 실망하고 지어는 통곡하는 장면들을 보면서 여러 모로 불만이 많았었다. 또한 연예인으로서 활동하면서 중국의 변화를 피부로 느꼈기에 그것을 어떻게 영화로 표현하겠느냐 고민하다가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방식을 골라낸 것이다. 《전랑 2》로 우징의 팬이 되었다는 사람들이 인터넷에 수두룩하다. 이제 《전랑 3》을 찍는다는데 그 흥행도 보증수표를 받은 셈이다.
《전랑 2》가 얼마나 특이하냐 하면 예전에는 아무리 유명한 영화들도 해적판을 보거나 인터넷판을 보자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이 영화는 해적판장사꾼마저 해적판을 팔기가 좀 무엇하다고 고백할 지경이다. 우징이 하도 열심히 찍었기에 “양심작”이라 불리고 공짜로 보는 걸 수치로 여기는 중국인들이 많다.
물론 《전랑 2》가 완벽한 작품은 아니다. 이야기의 불합리성을 내놓고도 여러 가지 원인으로 불만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면 어떤 쟁론들이 일어났을까?
《전랑 2》를 둘러싼 쟁론
《전랑 2》는 흥행한 만큼 쟁론도 많았다. 좌, 중, 우의 공격을 골고루 받은 것도 특이하지만 그런 공격들을 받으면서도 흥행세가 멈추지 않은 건 더구나 희한하다.
처음에는 《전랑 2》를 우습게 대하던 사람들이 대다수였다가 개봉 나흘 미만에 4억 위안을 넘기니 네거티브작전이 벌어졌다. 어느 장면은 표절이다. 우징은 본인이 외국국적이고 아내와 아이도 중국국적이 아닌데 애국을 설교하니까 우습지 않은가? 어느 대목이 허술하다, 어느 대목은 황당하다. 우징은 애국주의를 구실로 돈벌이를 한다.... 이런 식의 공격은 효험을 보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번에는 즉시적인 반격에 부딪쳤다. 우징 본인의 해명을 내놓고 영화를 본 네티즌들의 관평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역사상의 민족갈등을 들먹이면서 만주족이 찍은 영화를 좋아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는 비난도 웃음거리로 되었다. “중화민족대가정”이라는 개념이 다수 중국인들의 공동한 인식으로 된지 오래기 때문이다.
저질공격이 먹혀들지 않으니 전문가가 나서는 보다 교묘한 방식이 동원되었다. 변호사가 나서서 중국 여권의 뒤에는 그런 글자들이 없는데 그런 장면을 만들었으니 위법혐의가 있다고 지적했다. 자칭 군사전문가가 나서서 어느 장면은 현실적이 못된다고 비평했다. 자칭 특수효과전문가가 나서서 어느 장면은 탄알에 명중된 게 아니라 안에서부터 폭발시킨 게 드러난다고 비꼬았다. 영화전문가가 나서서 아무리 흥행성적이 높아도 형편없는 폭력영화이고 우징은 변태라고 욕했다. 《전랑 2》에 피가 많이 튀기는 건 사실이다. 사망자수는 집계해보지 못했는데, 필자가 영화를 보면서 렁펑이 죽인 사람들만 세여보니 약 60명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을 많이 죽였다는 비평을 받은 《람보 2》처럼 살인을 위한 살인, 살인기술을 과시하기 위한 살인은 없었다. 모두가 자신과 남을 지키기 위한 방어용 살인이다. 때문에 렁펑이 살인마라는 인상은 주지 않는다. 좀 특별한 비평은 영화시장을 다투는 경쟁 차원에서 나왔다. 우징과 비슷한 부류의 영화를 찍는 다른 배우들의 팬들, 개봉예정 신작의 주연배우들의 팬들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아무개가 제일이다, 우징은 쓰레기다 식으로 매도했던 것이다. 헌데 그 역시 별 효험을 보지 못했다.
한편 우익들은 중국군의 열사유가족이 찬밥신세로 되었는데 그런 나라를 위해 나서 싸운다는 설정자체가 우습다는 식으로 영화의 주제를 비난했다. 좌익들은 영화의 반정부반란군이 붉은 스카프를 두른 홍건군(红巾军)으로 그려져 중국혁명과 직결되는 붉은 색을 부정적인 상징으로 쓴 것부터 시작하여 미국영화의 꽁무니를 따라갔다, 미국영웅의 아류다, 특수효과야 미국팀을 데려다가 만들지 않았는가, 아프리카의 난리 근원을 밝히지 못했다, 중국의 미래방향을 제시하지 못한다. 등으로 비판했다.
그래도 《전랑 2》팬들은 끄떡없다. 비판자들이 입만 까졌지 뭘 할 줄 아는가? 네가 잘 났으면 어디 볼 만한 영화나 내놓은 다음 얘기하라, 그놈의 소리들을 반박하기 위해서라도 내 오늘 한 번 더 보아 흥행실적을 위해 이바지하겠다, 이런 식이다.
《전랑 2》는 정치적인 이유들로 좌익과 우익의 비난과 공격을 받는 반면, 현실적인 영향력으로 하여 중앙급 매체들의 거듭되는 찬양도 받는다. 사실 중국과 주변정세가 복잡한 지금 《전랑 2》보다 더 나은 전투동원도 찾아보기 어렵고, 징병제를 실시하는 중국에서 금년에 응모자가 넘쳐나리라는 것 또한 당국자들이 좋아할 전망이다.
《전랑 2》는 무엇을 시사해주는가?
《전랑 2》는 중국 영화인들이 외국(주로 미국 할리우드)의 영화기법을 충분히 배우고 흡수하여 외국인들이 만든 룰에 기초하여 외국대작들과 비길 수 있는 “중국영웅”영화를 찍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한때 중국영화인들은 자금부족을 탓했으니 1억 달러를 주면 대작을 만들 수 있겠는데 식으로 불평을 부린 감독도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경험교훈이 보여주듯이 돈만 처바른다 해서 볼만한 영화가 나오는 게 아니다.
한때 중국영화인들은 국내 특수효과기술의 낙후성을 나무라면서 자신의 의도가 필름에 관철되지 못한다고 투덜거렸다. 내외합작이 많아진 다음 국외기술이 많이 들어왔으나 그렇다 해서 영화수준이 갑자기 오르지는 않았다. 특수효과를 위한 특수효과들이 오히려 영화감상을 해치는 예들도 많았다. 필자는 2002년 말에 《영웅(英雄)》을 본 다음 장이머우 감독의 작품을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시각효과는 기막히게 좋으나 내용이 창백했고 주제가 괴상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그 영화는 장 감독이 부시 미국 대통령을 위하여 찍은 거라고 농담했는데 전혀 근거가 없는 소리는 아니다.
《전랑 2》는 열심히 쓴 시나리오, 목숨을 걸고 찍은 장면들, 자금의 최대한 활용, 분명한 주제, 풍성한 볼거리를 두루 갖추면서 여러 가지 계층의 수요를 만족시켰고 중국 영화사에서 새 페이지를 썼다. 《전랑 2》가 풍기는 강렬한 인상은 강렬한 자신감이다. 렁펑의 일거일동, 일언일행이 그러하고 전반 내용도 자신감이 차넘친다. 이런 자신감을 경계하는 외신들도 있다만, 보통 중국인들의 느낌과는 많이 다르다. 힘은 세나 함부로 쓰지 않는다는 절제의 미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전랑 2》는 중국의 현실에 기초했기에 자신감을 드러내도 위화감이 들지 않는다. 또한 관중들에게 중국의 일들이 앞으로 더 잘 되리라는 희망도 안겨준다. 이런 점들이 깊은 인상을 남겼으므로 근년의 한국 흥행영화들과 자연스러운 대조를 이룬다.
2016년의 《암살》과 《밀정》은 독립운동을, 2017년의 《군함도》는 일제의 강제징용을, 《택시운전사》는 광주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모두 수십 년 지어 근 100년 전의 일들일 다룬다. 국뽕영화인 《국제시장》과 《인천상륙작전》등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과거를 들추거나 과거에 매달리는 영화들이 흥행한다는 게 과거사청산이 잘 되지 못한 상황에서 필연적인 결과이기는 하다만 미래지향견지에서는 상당히 위험하다. 한국인들이 뒤를 돌아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서로 다툴 때, 중국인들은 앞을 내다보면서 달려간다. 차이가 얼마나 심하게 벌어지겠는가.
물론 현실이나 미래를 다루는 한국 흥행성공작들이 없지는 않다. 헌데 남북관계를 그린 작품들은 예전의 간첩영화들부터 금년에 흥행이 기대된다는 《브이아피》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부터 배역설정에 이르기까지 억지스러운 느낌을 많이 주고 결말들도 별로 시원치 않다. 이렇게 나가면 관객들이 밝은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10여 년 동안 한국영화인들은 중국영화가 한국영화보다 몇 수 아래라고 얕보는 경향이 심했다. 이번 《전랑 2》를 계기로 중국영화를 다시 인식하고 한국의 현실을 담으면서 한국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영화를 만들지 않다가는 중국영화에 멀리 뒤떨어질 날이 멀지 않을 것이다. 한국영화가 괜찮다는 자화자찬에서 깨날 때가 되었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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