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지 9개월이 지난 지금, 윤석열 대통령보다 돋보이는 인물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씨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무얼 하는지 많이들 모르지만 김건희 씨의 행보는 자주 언론에 공개되다 보니 익히 알고 있을 정도다. 오죽하면 ‘김건희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올까.
이전 대통령 배우자들과 달리 김건희 씨의 행보는 국정농단에 가히 버금갈 정도다.
이번 글에서 국정농단에 버금가는 김건희 씨의 행보를 살펴본다.
“내가 정권 잡으면”
지난해 1월 김건희 씨가 인터넷 매체 ‘서울의소리’의 이명수 기자와 나눈 7시간 45분 분량의 통화 내용이 공개되었다.
김건희 씨는 해당 통화에서 “내가 정권 잡으면 거기(서울의소리)는 완전히 무사하지 못할 거야 아마. (이명수 기자 : 열린공감TV는?) 거기는 이제, 권력이라는 게 잡으면 우리가 안 시켜도 경찰들이 알아서 입건해요. 그게 무서운 거지”, “(제보할 게 있으면) 내가 (연락처를) 보내줄 테니까 거기다 해. 내가 한동훈이한테 전달하라고 할게. 몰래 해야지. 말조심해야 돼. 어디 가서 절대 조심해야 돼” 등의 말을 했다.
실제 김건희 씨와 한동훈 현 법무부 장관 간의 연락이 자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의 징계결정문에는 2020년 검언유착 사건이 불거졌을 때 있었던 일이 나와 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에 따르면 그 내용 중에는 윤석열 대통령 측근인 한동훈 당시 부산고등검찰청 차장검사와 김건희 씨가 4개월 동안 9차례 통화하고, 3개월간 332차례 카카오톡 문자를 주고받은 것도 있다고 한다.
추미애 전 장관은 이를 두고 “왜 지방 근무 중인 부하가 상관과 한 달 평균 100회의 통화를, 부인과도 수 백회 문자를 주고받았는지 이 사건들의 모의와 연관성이 명명백백 밝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당시 김건희 씨는 부인으로서 검찰총장인 남편의 공적 업무에 관심을 두고 조언하는 수준을 넘어섰을 것으로 의심된다. 그렇다면 대통령 배우자가 된 이후에는 어땠을까?
지금부터 대통령 배우자가 된 김건희 씨의 행보를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자.
지난해 4월 대통령 관저를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관저로 선정했다가 시설 낙후와 주변 환경문제 등을 이유로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변경하기로 한 결정에 김건희 씨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비판이 일었다.
김민웅 전 경희대 교수는 2022년 4월 23일 “이것이 만일 사실이라면 국정과 개인사가 아무 구별도 없이 결정되는 것으로, 앞으로도 이런 사태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을 예고하는 셈”이라며 “본질적으로 국정에 관여할 수 없는 자의 국정농단이자, 공권력 사유화의 본격적인 출발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라고 비판했다.
예상했던 대로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대로 제2부속실이 폐지되면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제1부속실에서 배우자 보좌까지 함께 맡는 상황이 벌어졌다. 대선 당시 ‘조용한 내조’를 하겠다던 김건희 씨는 그 시기부터 독단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김건희 씨는 지난해 6월 13일 첫 단독 공개 행보로 경남 김해 봉화마을을 방문하면서 당당하게 자신의 지인을 함께 데려갔다. 이른바 ‘영부인 행사’에 공적인 신분이 아니라 김건희 씨의 지인이라는 이유로 대통령 경호처의 공식 경호와 의전 속에서 참배한 것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자 대통령실 관계자는 다음 날 오전 브리핑에서 이와 관련해 “대학 교수인 지인분이 같이 가셨다고 들었다”라며 “잘 아시는 분이라 동행하게 된 것 같다”라고 밝혔다.
대통령 부인의 공식행사에 사적 지인이 동행한 것에 대해 조승래 민주당 의원은 “이게 바로 ‘비선’이고 비선은 국정농단 같은 비극을 일으키게 마련”이라고 비판했다.
조승래 의원은 “어떤 자격으로 김 여사의 봉하마을 방문 일정을 수행했는가”라며 “오히려 사사로운 인연을 공적인 일에 개입시키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조승래 의원은 “이런 식으로 국민을 기만하고 국정 질서를 어지럽히면 안 된다”라고 비판했다.
2022년 8월 19일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중앙경찰학교 순경 공채 311기 졸업식에 참석해 각각 졸업생 대표에게 경찰 훈장을 수여한 후 따로 여성 졸업생들과 간담회 일정을 수행했다. 같은 시간에 대통령과 따로 배우자가 간담회 일정을 수행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신현영 민주당 의원은 김건희 씨가 이날 별도의 간담회를 가진 데 대해 “김건희 씨가 자신이 윤 대통령과 동격이라고 여기는 것인지 황당하다. 국민이 뽑은 것은 윤 대통령이지 김 여사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2022년 9월 15일 대통령실이 878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새 영빈관을 짓는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도 김건희 씨의 국정 개입 의혹이 제기되었다.
사람들은 대선 기간 서울의소리 기자와 김건희 씨의 통화 내용에 나온 얘기를 떠올렸다. 당시 이명수 서울의소리 기자가 “내가 아는 도사 중에 총장님이 대통령 된다고 하더라, 근데 그 사람이 청와대 들어가자마자 영빈관으로(을) 옮겨야 한다고 해”라고 말하자 김건희 씨는 “응 옮길 거야”라고 했다. 이 기자가 거듭 확인하자 김건희 씨는 “응”이라고 답했다.
안귀령 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2022년 9월 17일 “대통령실 이전과 관련한 수상한 수의계약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김 여사의 말대로 영빈관 신축이 결정된 것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더해 대통령실 관계자들도 영빈관 신축 계획을 몰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의혹은 증폭되었다.
중앙일보는 2022년 9월 19일 자 보도 「조코위 만찬 뒤 추진한 ‘878억 영빈관’...수석들도 몰랐다」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6일 철회를 지시한 ‘878억 원 영빈관’ 신축에 대한 복수의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들은 ’언론에 나오고서야 알았다‘고 반응했다”라고 전했다.
한겨레도 이날 사설에서 “김 여사 개입이 사실이 아니라면 더더욱 누구 주도로 이런 황당한 예산 편성이 이뤄졌는지 대통령실이 앞장서 추진 경과를 밝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뒤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밀실 추진을 알고도 추인했다면 최종 책임을 져야 하고, 몰랐다면 국정 무능을 뼈아프게 돌아봐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이날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영빈관을 짓는 데 드는 878억 원 예산을 알고 있었는가’라는 서영교 민주당 의원 질문에 “저는 몰랐고 신문을 보고 알았다”라고 밝혔다.
이어 서영교 의원이 ‘대통령은 영빈관 신축 계획을 알고 있었나’라고 묻자, 한덕수 총리는 “대통령하고 그 문제를 논의할 시간은 없었다”라면서 “최고 통치권자가 모든 걸 파악하고 예산이 결정되는 건 아니다”라고 답했다.
한덕수 총리의 말이 맞는다면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모르는 영빈관 신축 계획을 누군가가 추진했다는 말이 된다.
김건희 씨의 공개적인 정치 행보는 지난해 말부터 점차 노골화되었다.
대통령실은 이날 서면 브리핑을 통해 “이 자리에서 김건희 여사는 ‘최근 베트남으로 여행을 가거나 베트남에서 일하는 많은 한국인이 비자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언론 보도를 봤다. 주석님께서 이 문제를 관심 있게 살펴봐 달라’고 부탁했다”라고 밝혔다.
대통령이나 외교부 장관이 아니라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 씨가 타국 정상에게 외교정책 문제를 직접 언급한 것이었다.
또한 대통령실이 공개한 사진에는 김건희 씨가 베트남 주석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고 있는 반면 윤석열 대통령은 김건희 씨 옆에 가만히 있는 모습이 담겼다. 이와 같은 사진만 여러 장이어서 마치 김건희 대통령과 대통령 배우자 윤석열을 보는 듯했다.
설을 앞둔 2023년 1월 11일 대구를 단독 방문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김건희 씨는 이날 서문시장을 찾아 떡, 카스텔라를 사고, 어묵과 떡볶이, 납작만두 등을 맛보는 등 마치 선거 기간 정치인을 방불케 하는 행보를 펼쳤다.
2023년 1월 27일과 30일엔 국힘당 여성 의원 21명 전원을 서울 한남동 관저에 초청해 오찬을 함께 했다. 이들과의 오찬은 김건희 씨가 정치권 인사들과 단독으로 가진 첫 정식 만남이었다. 이를 두고 정계 일각에서는 ‘조용한 내조’를 표방했던 김건희 씨가 본격적으로 정치 행보를 시작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2023년 1월 31일엔 기존과 달리 하루에만 세 개의 공식 일정을 진행했다. 경기도 성남 분당구에서 열린 디자인계 신년 인사회에 대통령 없이 단독으로 참석한 데 이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주한 외교단을 위한 신년 인사회에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참석했다. 그리고 같은 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14살 옥 로타 군과 그의 가족을 만났다. 옥 로타 군은 지난해 11월 12일 김건희 씨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선천성 심장질환 아동 위문’을 명목으로 집을 찾아 사진을 함께 찍었던 아이다.
2023년 2월 1일엔 대통령실 실무직원 30여 명을 불러 관저에서 도시락 오찬을 했고, 2일엔 장관 등 국무위원 배우자들을 서울 한남동 관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지금까지의 정황을 보았을 때 김건희 씨가 국정 운영에 개입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김건희 씨 관련 의혹마다 발끈하는 윤석열
김건희 씨와 관련한 의혹이 나올 때마다 윤석열 대통령은 발끈하거나 아예 문제를 회피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대통령 후보 시절에는 김건희 씨의 허위 학력 의혹이 불거지자 “시간강사는 공개 채용하는 게 아니다”라며 취재진에게 손가락질하며 벌컥 화냈다. 김건희 씨가 봉하마을에 방문하면서 지인을 동행한 점이 논란이 되자 윤석열 대통령은 “저도 대통령을 처음 해보는 것이라 공식, 비공식을 어떻게 나눠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또한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을 고발과 압수수색 등으로 탄압했다.
지난해 8월 24일, 9월 1일에는 김건희 씨 관련 의혹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시민언론 더탐사’를 대대적으로 압수수색 했다.
윤석열 대통령 관저 이전지를 외교장관 공관으로 변경하는 과정에서 김건희 씨가 영향을 끼친 듯한 정황이 여럿 있다고 보도한 한겨레 신문 기자도 지난해 9월 5일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조사를 받았다.
지난해 11월엔 장경태 민주당 최고위원이 캄보디아 순방 당시 김건희 씨가 앞서 언급한 14살 옥 로타 군을 안고 찍은 사진에 ‘조명 사용 의혹’을 제기했다가 고발당했다.
올해 1월 26일 뉴스타파가 “김 여사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2차 작전세력이 주가를 관리한 또 다른 종목의 주식도 거래했다”라며 “김 여사가 ‘우리기술’ 주식을 20만 2,162주 매도했고, 매매자 명단에 김 여사 모친 최 씨도 있었다”라고 김건희 씨 주가조작 의혹을 보도했다. 이어 27일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을 통해 “다른 작전주 ‘우리기술’에도 김 여사, 최 씨(김 여사 모친 최은순 씨) 계좌가 활용됐다는 것이 담당 검사를 통해 밝혀졌다”라고 김건희 씨 주가조작 의혹에 불을 지폈다.
그러자 대통령실은 김의겸 대변인을 고발하겠다고 나왔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1월 29일 “(김의겸 대변인) 고발을 포함해 법적 검토를 하는 것으로 안다”라며 “고발할 경우 시점은 다음 주 초반”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 날(30일) 김의겸 대변인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유독 윤석열 정부가 김건희 씨 관련 의혹에 예민하게 대하는 건 왜일지 의문스럽다.
대통령실이 언론에 공개하는 사진에서 윤석열 대통령보다 김건희 씨가 더 돋보이는 구도를 사용하는 것도 주시할 부분이다. 특히 대통령 내외가 한 사진에 같이 있을 때 김건희 씨를 가운데 두거나 베트남 국가주석을 만났을 당시의 사진처럼 김건희 씨가 대화를 주도하는 듯한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김건희 씨가 비선으로 국정농단을 벌이고 있다면 제2의 최순실 사태 그 자체다. 그렇다면 박근혜처럼 윤석열 대통령 역시 국정농단을 좌시하고 국민을 기만한 것으로 퇴진해야 마땅하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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