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경-1-1호 발사 실패에도 도전하는 북한
북한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은 지난 5월 27일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정찰위성 만리경-1-1호를 신형 위성 운반 로켓(발사체)에 실어 발사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1단계 로켓이 비행 중 공중 폭발해 발사에 실패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 부총국장은 이와 관련해 “비상설 위성 발사 준비위원회 현장 지휘부 전문가 심의에서 새로 개발한 액체산소+석유발동기[석유엔진]의 동작 믿음성에 사고의 원인이 있는 것으로 초보적인 결론을 내렸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북한은 발사 실패를 인정하며 실패 이유까지 밝혔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다음날인 5월 28일 창립 60주년을 맞이한 국방과학원을 방문했습니다.
이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축하연설에서 “이번 정찰위성 발사가 목표했던 결실은 달성하지 못하였지만 동무들, 우리는 실패에 겁을 먹고 위축될 것이 아니라 더 크게 분발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실패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크게 발전하는 법입니다”라며 “국가의 존엄과 인민의 삶을 위해 결사분투하는 우리의 국방과학자, 기술자들에게 있어서 실패는 어디까지나 성공의 전제이지 결코 좌절과 포기의 동기로는 될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발사 실패에도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정찰위성 발사를 독려한 점이 주목됩니다. 국가가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개선점을 찾아 만리경-1-1호 발사를 성공시키라는 당부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앞으로 북한의 과학자들과 개발자들은 만리경-1-1호 발사를 성공시키기 위해 힘을 쏟을 듯합니다. 북한은 올해 중 몇 차례 정찰위성을 발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런 만큼 개선점을 찾아 또다시 만리경-1-1호 발사에 도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실패를 통한 성공: 과학계 사례
본래 과학은 가설부터 세우고 실천을 통해 가설을 검증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검증 과정에서 실패와 시행착오도 겪습니다만, 이를 통해 성공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2021년에 나온 책 『과학자의 흑역사』 소개문은 “누구나 알 만한 위대한 과학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성실하게 연구에 매진했던 이들일수록 성공보다 실패 횟수가 훨씬 많았다”라면서 “그들이 최종적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과거 실패에 실망하거나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원래 과학기술 분야는 실패가 많습니다.
1879년 10월 21일은 백열전구가 발명된 날입니다. 미국의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은 실험과 실패를 1,000번 넘게 거듭해서 백열전구를 개발했습니다.
특히 에디슨은 백열전구의 핵심인 필라멘트 개발에 열중했습니다. 필라멘트는 전류가 통하는 가늘고 긴 선으로, 필라멘트에 전류를 흘리면 전구가 빛과 열을 뿜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필라멘트에 적합한 소재가 발견되지 않았고 기존의 전구는 몇 시간 가지 않아 꺼지기 일쑤였습니다.
에디슨은 자신의 머리카락, 말의 털, 백금을 비롯해 6,000개가 넘는 재료로 필라멘트를 만들어 백열전구에 적합한지 시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그럼에도 에디슨은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다. 단지 작동하지 않는 1만 가지의 방법을 찾아냈을 뿐”이라며 낙관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에디슨은 마침내 탄소섬유가 주성분인 대나무를 활용해 1,000시간이 넘어도 작동하는 백열전구를 발명했습니다. 오래 가는 백열전구가 등장하자 세상은 밤낮없이 환해졌습니다.
백열전구는 이처럼 무수한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쳐 개발된 것입니다. 지금은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전기자동차, 스마트폰도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이 실패를 통해 만들었습니다.
정찰위성을 우주로 쏘아 올리는 발사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발사체의 제작, 발사에 들어가는 기술은 대단히 어렵고 까다롭습니다.
1957년 8월 3일, 소련(러시아)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발사체 R-7을 개발했습니다. 그 뒤 미국, 중국, 일본, 프랑스, 인도, 영국, 이스라엘, 한국, 북한, 이란 등이 발사체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전 세계에 200여 개국이 있으니 발사체 개발에 성공한 나라가 극히 일부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은 2013년 1월, 고흥나로우주센터에서 2단형 발사체인 나로호를 쏘아 올렸는데요. 다만 나로호의 1단은 러시아에서 개발한 액체엔진이 쓰였습니다.
이후 한국은 독자 기술을 활용한 ‘한국형발사체’ 누리호 발사를 추진했습니다. 2021년 10월 21일 처음으로 발사된 누리호는 궤도 안착에 실패했습니다. 이후 2022년 6월 21일 2차 발사, 2023년 5월 25일에는 3차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지난해 북한은 정찰위성 만리경-1호 발사에 성공한 바 있습니다.
북한은 2023년 5월 31일, 8월 24일 두 차례 정찰위성을 발사했으나 실패했습니다.
이 가운데 북한은 2023년 9월 26~27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9차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회의를 주재했습니다. 북한은 회의를 통해 위성 및 로켓 연구개발 기관인 국가우주개발국을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으로 개편하는 안건을 채택했습니다.
다시 두 달 뒤 북한은 세 번째 시도에서 마침내 정찰위성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2023년 11월 21일, 북한은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 위성 발사장에서 만리경-1호를 신형 위성 운반 로켓 천리마-1형에 실어 발사했습니다. 미국도 북한이 발사에 성공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6개월 만에 “새로 개발한 액체산소+석유발동기[석유엔진]” 발사체 기술을 적용한 만리경-1-1호 발사를 시도했습니다. 발사는 실패했지만 북한은 발사 시도를 계속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액체연료를 바탕으로 한 발사체 엔진은 내부에서 강한 화학 반응이 일어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또 최대한 무게를 줄여야 높은 성능을 낼 수 있기에 제작이 어렵습니다. 새롭게 개발한 엔진을 발사체에 성공적으로 적용하려면 실패를 각오한 실험도 되풀이해야 하는데요.
북한이 만리경-1호 발사에 성공한 뒤에도 ‘새로운 도전 목표’를 세웠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남의 기술에 기대지 말고 자기 힘 길러야
한국군은 2023년 12월 2일, 미국 캘리포니아 반덴버그 우주군기지에서 군사정찰위성 1호기(이하 1호기)를 발사했습니다. 한국군은 올해 4월 8일에는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군사정찰위성 2호기(이하 2호기)를 발사했습니다.
항공우주연구원과 국방과학연구소, 국내업체가 1호기와 2호기를 제작했습니다. 한국이 자체 기술로 정찰위성을 제작한 점은 평가할 만합니다.
하지만 미국에 돈을 주고 발사체를 빌렸다는 한계점도 뚜렷합니다.
1호기와 2호기 모두 미국인 사업가 일론 머스크가 경영하는 스페이스X사의 팰컨9 로켓에 실려 우주에 진입했습니다. 발사 과정 전반도 미국 기술자와 과학자의 지도 아래 이뤄졌습니다. 아쉬움이 큰 이유입니다.
당장 기술력이 부족하면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아 정찰위성을 발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까지고 다른 나라의 기술을 빌린다면 과학기술 수준은 제자리걸음에 머무르게 됩니다.
정찰위성 발사 성공의 핵심은 우주로 진입하는 발사체 기술입니다. 이 기술을 다른 나라에 의존하면 한국 자체의 우주 진출 역량을 갖추기 어렵습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따르면 “우주발사체는 국가 간 기술 이전이 제한되어 있어 독자 기술로 우주발사체를 개발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개발 비용이 필요하고 기술적 어려움이 많아 기술 확보까지는 많은 시행착오가 요구된다”라고 합니다.
따라서 국가의 지원 아래 꾸준히 쌓아온 과학계의 기술력, 국민의 성원이 발사체 제작의 필수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관한 윤석열 대통령의 생각을 살펴봅시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월 30일 경남 사천시 우주항공청 임시 청사에서 열린 개청 기념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2032년 달에 우리 탐사선을 착륙시키고 2045년 화성에 (착륙해) 태극기를 꽂기 위한 스페이스(우주) 광개토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라면서 “500년 전 대항해시대에 인류가 바다를 개척해 새로운 역사를 창조했듯 이제 우리가 우주 항로를 개척해 새로운 시대를 열고 ‘스페이스 스탠더드(우주 표준)’를 선도해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포부는 거창해 보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윤 대통령의 말처럼 한국이 ‘우주 표준’이 되려면 미국의 기술력을 넘어서야 합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자체 기술로 정찰위성을 쏘아 올릴 발사체를 만들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우주 개발 그리고 관련 과학기술은 아직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지 않은 무한경쟁 분야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과학계에 끝까지 힘을 실어주는 지원이 절실합니다. 그래야 한국이 주도해 우주를 개척하는 힘도 기를 수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앞장서서 과학계의 연구개발 예산을 뭉텅 깎은 장본인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과학계의 무수한 실패가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국가가 과학계의 성공을 기다려주고 뒷받침할 수 있을까요?
과연 윤 대통령이 ‘자신의 모순’을 인식하고 우주 개발 이야기를 꺼낸 것일지 궁금합니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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