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 소속 블랙요원 명단이 북한에 넘어간 사건으로 우리나라 대외 정보사업에 일대 파란이 일어난 가운데 이번에는 정보사 소속 두 장군이 하극상과 폭행을 주고받은 뒤 서로를 고소하는 사건이 터져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사건의 내막은 이렇습니다.
지난 5월 22일 정보사 소속 여단장 박 모 씨(준장·육사 47기)가 서울 충정로에 있는 정보사 ‘안가’인 한 오피스텔 사용과 관련해 문상호 정보사 사령관(소장·육사 50기)에게 보고하였습니다. 정보사 ‘안가’란 정보사가 비밀리에 사무실로 운영하는 장소입니다. 박 여단장은 해당 오피스텔을 군사정보발전연구소라는 민간단체에게 공짜로 빌려주고 이를 문 사령관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문 사령관이 자기 승인 없이 결정했다며 박 여단장에게 “직권남용 및 배임에 해당하니 지원을 중단하라”라고 지시했습니다. 공짜로 사무실을 빌려주는 건 불법 소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박 여단장은 고소장에서 이 문제로 이미 1~2월부터 시비가 붙었다고 설명하며 법적, 절차적 문제가 없는데 사령관이 이상하리만치 집착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박 여단장은 사령관에게 “지난번에도 동일한 경험에서 무혐의로 끝났다”라고 반박했습니다.
박 여단장은 사령관 지시를 무시했고 6월 7일 두 사람은 다시 만났습니다. 문 사령관은 “무조건 (오피스텔을) 빼라”라고 지시했고 박 여단장은 “못 뺀다. 지금 어떻게 빼는가. 기획 사업 자체가 불가하다”라고 반박하면서 “이런 식으로 비전문가인 사령관이 개입하니까 공작이 안 된다”, “다른 방법으로 승인받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화가 난 문 사령관이 결재판을 집어 던지며 “보고를 안 받겠다. 나가라!”라고 했습니다.
이후 문 사령관은 박 여단장을 상관 모욕과 폭행 혐의로 국방부 조사본부에 신고했고, 박 여단장은 7월 17일 문 사령관을 폭행과 직권남용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박 여단장은 문 사령관이 부하를 시켜 자신의 출퇴근 시간을 감시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국방부는 두 사람을 업무에서 배제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정보사가 완전히 마비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봐도 우리 군의 기강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장성들끼리 어린애 싸우듯 말다툼하고 물건을 집어 던지는 모습이 상상만 해도 참으로 가관입니다. 특히 군대에서 하극상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전쟁 중에 지휘관의 명령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린다면 작전은 엉망이 될 것입니다. 물론 진짜 이런 일이 발생하면 군형법 44조에 따라 사형도 가능합니다.
더 심각한 건 박 여단장이 문 사령관을 고소하면서 고소장에 정보사의 비밀 업무를 드러냈다는 점입니다.
일단 충정로에 정보사 안가가 있다는 정보나 민간단체인 군사정보발전연구소가 정보사와 협력관계라는 정보가 드러났습니다. 군사정보발전연구소는 정보사 사령관과 국방정보본부장을 지낸 조보근 예비역 중장이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즉, 민간단체로 위장했지만 사실상 정보사의 외곽 단체인 것입니다. 그런데 문 사령관이 이 단체에 사무실을 빌려주는 걸 반대한 것을 보면 박 여단장 개인이 관리하는 사조직에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국방정보본부는 군의 정보부대를 총괄하는 곳으로 정보사의 상급 기관입니다.
고소장에는 이밖에 첩보동지회, 통일융합전략연구소 등 여러 외곽 단체 이름이 등장합니다.
가장 심각한 건 ‘광개토 사업’이라는 비밀공작이 지난 2월부터 진행되었으며 올해 하반기에 대북 공작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라는 게 드러난 것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군사정보발전연구소가 ‘광개토 사업’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며 오피스텔이 공작 활동 기반 확보에 도움이 된다는 둥 단서가 될 만한 정보가 공개됐습니다.
전문가들은 박 여단장의 이력을 토대로 이 사업을 중국 동북지방을 배경으로 집단 기획 탈북을 일으키는 공작으로 추정했습니다. 박 여단장은 과거 재판에서 “류경식당 같은 제2의 집단 탈북을 추진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가능하다면 추진할 의도를 갖고 있었다”라고 한 적도 있습니다.
자기 살자고 군의 기밀 사항을 유출한 건 사실상 역적 행위나 다름이 없습니다. 참으로 한심한 꼴입니다.
이 사건을 두고 대체로 사람들은 문 사령관과 박 여단장의 감정싸움으로 분석합니다. 박 여단장이 사령관보다 육사 세 기수 선배인 데다 정보사에서 현장 경험이 풍부한데 경험도 부족한 후배가 사령관으로 와서 지휘를 하니 감정이 쌓인 것 아니냐는 겁니다.
박 여단장은 현역 중에서는 손에 꼽히는 대북 특수 공작 전문가이자 관련 분야 최고참이라고 합니다. 특히 인적 정보(휴민트) 책임 지휘관으로 2016년 이른바 북한 식당(류경식당) 종업원 탈북 사건에도 관여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 시기에 횡령, 배임, 사기, 허위 공문서 작성, 허위 보고 등 11개 혐의로 재판을 받았는데 2022년 1월 무죄가 확정되었습니다. 그 뒤 윤석열 정부가 박 여단장을 복권하고 2023년 11월 6일에는 대령에서 준장으로 승진시켰습니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대북 특수 공작은 보안을 위해 일반적인 지휘 체계를 거치지 않고 극소수에게만 보고를 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박 여단장도 사령관과 국방정보본부장을 건너뛰고 국방부장관에게 여러 사안을 직보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박 여단장이 ‘광개토 사업’이라는 극비 공작을 준비하고 있는데 사령관이 자기도 모르게 뭔가를 하는 게 기분이 나빠서 제동을 걸었을 수도 있습니다.
한편 신원식 국방부장관은 ‘광개토 사업’에 관해서는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더 파고들면 인사 문제가 나옵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병주 민주당 의원은 “인사 참사가 배경에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7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김 의원은 “작년은 휴민트 담당 보직 장군 인사 때가 아니었는데 (박) 여단장을 진급시켰다”라며 “휴민트, 820이라는 특수정보 주특기 원스타(준장) 보직은 딱 1명으로 임기제 장군(2년 복무 후 전역)이다”, “지난해 보직 준장 임기가 아직 1년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박) 여단장을 진급시키고 기존 장군은 다른 기관으로 보내 티오(정원) 1명에 장군이 2명이나 된 꼴이 됐다”, “육사 49기급이 들어가야 하는데 47기를 진급시켰다”라고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박 여단장이 정상적이지 않은 진급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걸 보면 박 여단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총애를 받는 것 같습니다.
김 의원은 “예외적 진급 등으로 정보병과 진급 체계가 완전히 흐트러져 버렸다”라며 “통상 장관들은 1개 병과 진급 체계를 흔드는 일은 하지 않는다. 따라서 장관 윗선(에서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하여 국방부장관이 아닌 대통령이 개입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즉, 대통령이 개입한 무리하고 부적절한 인사가 정보사 내부의 갈등을 유발했고 결국 이 사단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봐도 의문은 남습니다.
일단 윤 대통령이 박 여단장을 꽂은 것으로 보이긴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문 사령관 역시 윤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윤 대통령은 북한과의 전쟁 불사를 외치며 대북 강경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북한 붕괴나 전쟁을 위해서는 대북 공작이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대북 공작을 하는 정보사의 사령관에 자기가 믿을 만한 사람을 임명했을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정보사의 핵심 인물인 박 여단장과 새 사령관이 협력해서 자기가 원하는 대북 공작을 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협력이 아니라 갈등을 빚고 심지어 고소까지 하는 파국이 벌어졌냐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두 번째 의문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두 번째 의문은 이 사건이 블랙요원 명단 유출 사건과 같은 시기에 터졌는데 두 사건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어쩌면 사무실 공짜 임대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고 사실은 명단 유출 문제가 갈등의 진짜 이유일 수도 있습니다.
명단 유출 문제를 다시 돌아봅시다. 피의자는 5급 군무원으로 블랙요원 명단에 접근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언론에서는 내부 조력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블랙요원은 점조직 형태로 운영된다고 합니다. 즉, 블랙요원 각자는 자기 상급과 하급만 알뿐 다른 요원을 알 수 없고 자기 상급의 위에 또 누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최고 책임자가 아닌 이상 블랙요원 명단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정보사에서 블랙요원 명단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블랙요원을 직접 지휘하는 최고 책임자인 박 여단장 혹은 정보사 전체 책임자인 문 사령관일 것입니다. 그리고 피의자가 명단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준 내부 조력자도 둘 중의 한 명일 수 있습니다. 지휘부에 있는 사람이 명단 유출에 협조했다면 돈에 매수되었을 가능성보다는 아마도 부정부패 사실을 들켜서 협박을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입니다.
아무튼 문 사령관도, 박 여단장도 이런 사실을 쉽게 유추할 수 있으니 어쩌면 서로를 의심하고 있었을 수 있습니다. 문 사령관은 블랙요원 총책임자인 박 여단장이 명단 관리를 제대로 안 해서 이런 사건이 터졌다고 의심할 것이고, 박 여단장은 문 사령관이 평소에 블랙요원 공작을 싫어하더니 일부러 명단을 유출한 것 아닐지 의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 상대가 자기를 의심하고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기 위한 신경전을 벌였을 수도 있습니다. 명단 유출 사건은 매우 위중한 사건이므로 피의자만 처벌받고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조직 책임자도 처벌받거나 아니면 불명예 전역을 당할 수 있습니다. 원래 장성들은 전역 후 서로 편의를 봐주는 모임들에 들어가 여생을 편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불명예 전역을 하면 이런 혜택도 제대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상대에게 어떻게든 책임을 떠넘기고 싶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지난해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는 제보가 있습니다. 8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김병주 의원은 “제가 제보받기로는 작년에도 이런 (비밀 유출) 사례가 있었는데 전 여단장이 덮었다고 한다. 자기 일신을 위해서”라고 공개하였습니다.
물론 초반에는 서로 이 문제를 덮자고 무언의 합의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피의자의 범행을 정보사가 4월에 이미 확인하고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다가 언론에 공개된 후에야 부랴부랴 방첩사를 동원해 피의자를 구속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7월 들어 뭔가 갈등 요소가 생겨서 ‘무언의 합의’가 깨진 것으로 보입니다. 제보자가 김민석 민주당 의원에게 적극적으로 제보한 것이 결정적 요인일 수 있습니다. 제보자는 블랙요원 명단 유출이라는 중대 사건이 윤석열 정부 인사들에 의해 덮이는 것을 보며 분개해 정부·여당이 아닌 야당에 제보했을 것입니다. 이건 제보자 처지에서는 인생을 건 투쟁입니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사무실 공짜 임대 문제 같은 어쩌면 사소할 수도 있는 일에 감정을 키우고 갈등한 것 아닐까요?
어쩌면 문 사령관과 박 여단장을 무리하게 꽂아준 윤 대통령과 국방부도 명단 유출 사건에 엮일지 걱정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김 의원은 8일 국방위에서 “정보사령관과 여단장 맞고소 과정에 핵심적인 의혹이 세 가지 있는데 세 가지 다 신원식 장관이 관여돼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첫 번째는 진급 비리 의혹이고, 두 번째는 영외 사무실을 민간연구소에 사용하게 한 것이고, 세 번째는 하극상 조치의 미온적 조치”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이번 사건에 신원식 국방부장관이 연루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같은 회의에서 박선원 민주당 의원은 “군 인사권은 김용현 경호처장이 사실상 행사하고 있다. 그래서 (신 장관이) 국방부장관의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고 싶은 마음에 (군사정보발전연구소 대표인) 조보근 예비역 중장에게 휴민트 정보 조직을 장관실 직속으로 갖는 방안을 검토하고 논의한 바 있다”라고 주장하며 정보사의 인사 갈등을 “김용현의 중앙파, 신원식의 국방파 갈등”으로 분석했습니다.
김 경호처장은 윤 대통령 고등학교 1년 선배로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소문이 전부터 돌던 인물입니다. 또 강성희 의원 강제 퇴장 사건, 카이스트 졸업식 학생 강제 퇴장 사건 등 이른바 ‘입틀막’ 사건들의 주범으로 윤 대통령에 과잉 충성하는 인물로 꼽힙니다.
박 의원의 주장이 맞다면 김 경호처장과 신 장관이 서로 군부를 장악하기 위해 무리한 인사 경쟁을 하고 있으며 이 여파로 이번 정보사 사건이 터졌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가 생기면 교통 정리를 해야 할 윤 대통령은 두 손 놓고 전혀 수습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잘못된 인사로 인해 벌어진 사건이라면 인사권자가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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